제17장 독두천왕(禿頭天王)
흑산풍의 제이권도 정확하게 공격한 것이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영호량의 신 형은 그곳을 벗어나서 어느새 흑산풍의 정면에 이르고 있었다. "이 죽일 놈이!" 흑산풍은 이를 갈았다. 그는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마구 쌍권을 격 출시키며 영호량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영호량의 마음은 처음과는 달리 아주 태연해졌다. 갈수록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붙게 되자 그는 가능한 한 흑산풍에게 무안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보법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따라 서 그는 가능하면 흑산풍의 권풍이 자신의 몸에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금세 피해 버리곤 하는 방법을 썼다. 허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두 사람이 아주 치열하게 싸우며 돌아가고 있으며, 영호량이 간발의 차이로 간신히 흑산풍의 공격을 피하며 위기를 모 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 흑산풍의 공격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또한 영호량의 움직임은 날로 능숙 해져서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임기응변의 행동으로 위험을 모면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 장내에는 한 차례의 뜨거운 열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밖에는 전혀 아무 런 소리도 없는 긴장이 깔리고 있어서 마치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영호량은 이제 보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상황에 이 르자 주위의 표정을 살피고는 다소 난감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이 흑산풍은 성격이 매우 화급하여 갈수록 더욱 길길이 날뛰고 있었고, 이 제는 거의 기력을 다해서 나중에는 기력을 탕진하고 정신이 분산되어 몸을 망치게 될 것 같았다. 따라서 영호량은 이제는 이런 격전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가볍게 그의 몸 뒤로 돌아가서는 손가락으로 그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다소 앞으로 밀려날 것으로 생각했던 흑산풍의 신형이 갑자기 앞으로 삼사 장이나 날려 가며 곤두박질을 하는 것이 아닌 가! "으악!" 거의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장내의 분위기가 흑산풍의 신형이 날아가 마루 위에 곤두박질함으로써 엉망이 되었다. 이 결과에 대해서 영호량은 다소 괴이하게 생각했다. 그는 흑산풍의 등을 민 순간 그의 몸이 특별히 매우 딱딱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뿐이었다. 약간 밀었을 뿐이고 힘을 강하게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데 어째서 흑산풍은 무려 삼사 장이나 날려가 버린 것일까? 게다가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흑산풍은 마루바닥에 떨어진 이후 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연신 신음을 발하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의자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조장이 다소 짜증스러운 음성으 로 소리쳤다. "아흑, 어서 일어나지 못해! 갑자기 그게 무슨 짓인가?" 흑산풍은 조장의 책망하는 음성을 듣자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일어나지 못했다. "저, 저자식이 갑자기 내 등을 아프게 찌르는 바람에…… 저는 아파서 도저 히 일어나지 못하겠습니다, 조장!" 마치 금방이라도 울 듯한 음성이었다. 그것을 보자 장내의 사람들은 다함께 크게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사서 창피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특히 흑산풍의 성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던 일이었다. 헌데 그 가 갑자기 싸움을 하다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심한 엄살을 떨고 있 다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장내의 사람들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지자 금방 영호량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정작 영호량 역시 괴이쩍은 표정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도 도저히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장내에서 한 명의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장한 하나가 흑산풍에게 다가 가서 그의 등을 조사해 보았다. 헌데 그는 안색이 순간 가볍게 변하더니 이 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조장, 그는 등에 구멍이 뚫렸소!" ……! 그 말은 일시 장내에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조장의 다소 놀란 듯한 음성이 들려 왔다. "뭐라구? 그는 일신에 철포삼(鐵布衫)을 익힌 사람으로 도검도 불침하는 사 람이다. 그런데 갑자기 구멍이 뚫리다니? 아흑, 혹시 너의 등에 조문( 門) 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조문. 그것은 바로 금종조(金鍾 ), 철포삼 따위의 외가의 횡련기공을 연성하여 근골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 경우 비록 겉으로는 전설의 금강불괴와 비 슷해지지만, 역시 하나의 연문(練門)이 생겨서 그곳은 오히려 아주 연약해 져서 반대로 삼척동자의 힘이라도 한 번 찔리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결정적 인 급소를 말하는 것이었으며, 횡련기공을 연성한 자는 그 장소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밀로 해 두고 있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었다. 조장의 말은 혹시 흑산풍의 조문에 공격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었 다. 그 말에 흑산풍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 등에 조문을 두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랬다면 저는 벌써 부터 죽었었게요? 저의 조문은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흑산풍이 멍청하게 자신의 조문의 위치를 발설하려는 것을 보고 조장이 급 히 말을 가로채어 못하게 했다. "그만하면 됐다." 이어 조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이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대해 서 곰곰히 생각을 굴려 보는 모양이었다. …… 그것을 보고 흑산풍이 아프다고 신음을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 기 뒤에 서 있는 예의 그 키 큰 장한을 향해 물었다. "부조장님, 대체 어떻게 됐습니까? 제가…… 저의 등에 혹시 피라도 나는 것이 아닙니까? 혹시 그렇다면 얼마나……" 부조장. 무심코 보았던 그 키다리 장한이 바로 이곳의 부조장인 모양이었다. 그의 안색은 아주 깡말랐고 냉막하기 그지없었다. 부조장이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피가 나고 있지. 아아, 구멍이 뚫렸는데 피가 나오지 않을 리가 있 는가? 자, 여기를 보게." 부조장은 직접 손에다 흑산풍의 등에 흘러내리는 피를 묻혀 가지고 그의 눈 앞에 보여 주며 대답했다. 그러자, "으악!" 흑산풍은 그것을 보고 그만 기겁을 하고 기절해 버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의 부상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심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부조장은 즉시 사람들을 시켜서 흑산풍의 등을 치료해 주라고 지시를 내렸 다. 그러는 가운데 은연중 장내의 시선은 영호량에게 집중되었다. 일반적으로 철포삼의 외문공력(外門功力)을 닦은 사람에게는 창과 칼이라고 할지라도 상처를 깊이 내기가 어려운 것인데, 대체 어떤 방법을 썼길래 그 와 같은 심한 상처를 입혔냐는 것이었다. 영호량은 역시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단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 었을 뿐이라고는 대답해 보았자 오히려 그들의 의심을 살 뿐이라는 것을 알 고 있었으므로 묵묵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흑산풍의 치료를 거의 끝내 가는 것을 보고 부조장이 일행을 향해 냉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봐, 너희들이 강호에서 어떠한 위치의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여 기에 들어왔으면 이곳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감히 여기에 들 어와서 조장에게 거역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영호량은 이미 사건을 일으킨 후였기 때문에 조금 자제하는 기분으로 묵묵 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헌데 대신 제갈수가 문득 나서서 입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동심각의 위사가 위기 위해 들어온 것이지 그대들의 시종이나 하인이 되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오. 나는 처음부터 마치 왕이 노예를 대하듯, 혹은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것처럼 이렇게 무례하게 대한 것은 참을 수가 없소." 그때, "뭐라구?" 한 마디의 고함이 터지며 빙긍 조장이 앉아 있는 의자가 돌아갔다. …… 의자가 돌아가며 조장의 모습이 눈앞에 훤하게 드러났는데, 실로 그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기인한 느낌이 들게 했다. 우선 이 조장이라는 사람의 체구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작고 가늘었고, 대 신 머리는 커서 머리카락 하나 없이 둥글둥글했는데, 민대머리인 그 머리의 중앙에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박혀서 번들거리는 것이 다소 상대에게 흉칙 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조장이라서 그런지 지닌 바의 무예가 어느 정도 상당한 모양이었다. 눈에서 흘러나오는 살벌한 한광이 제갈수를 향해 강렬하게 발출되고 있었 다. "너는 누구냐?" 조장의 언사는 격노해 있었고 매우 강압적이었다. 장내의 분위기와 이와 같은 조장의 음성과 태도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공포 심을 느끼게 했고 굴복하게 만들 것 같았은, 유독 제갈수만은 거기에서 예 외인 것 같았다. 조장이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불 행인 것 같았다. 제갈수는 아주 담담한 태도로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흐흐흐……" 조장은 얼굴 가득 음침하고 살벌한 웃음을 흘렸다. 이것은 마치 어떤 기선 을 제압하기 위한 힘겨루기와도 같았다. "네가 감히 나의 이름을 물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제갈수는 함께 노기를 떠올리기는커녕 오히려 가볍게 웃었다. 이러한 상황 에서 그렇게 부담없는 웃음을 떠올릴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실로 이 제갈 수야말로 진정한 재야에 묻혀 있는 한 마리의 용이요, 훌륭한 인재라는 것 을 웅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이 말해 주지 않아도 능히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소." 그 말에 왠지 조장의 안색이 가볍게 일변했다. "너, 너는 그게 정말이냐?" 제갈수는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당신의 이름을 말해 볼까, 독두천왕(禿頭天王)?" ---독두천왕! 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조장은 제갈수의 그 한 마디 말에 갑자기 안색이 시뻘겋게 변하다가 하얗게 질리더니 불그락부르락했다. 틀림없이 제 갈수가 말했던 그 별호에 대해서 많은 충격을 느낀 모양이었다. "피, 필요없다!……" 영호량은 이어 조장이 마치 미친 듯이 제갈수를 향해 달려들 것으로 생각했 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게도 정반대의 것이었다. 다만 필요없다는 한 마디의 말을 하더니 조장은 전신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소 애원하듯 제갈 수를 향해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너, 너는 그래서 무엇을 원하느냐?" 이것은 그야말로 도깨비 장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흉악 해 보이던 조장의 태도가 갑자기 이렇게 달라지다니…… 하지만 오히려 제갈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담담하게 웃 으며 대꾸했다. "우선 우리를 제대로 환영하고 대접해 주어야 할 것이오." "그, 그렇군……" 조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키가 커다란 부조장을 향 해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어서 저들을 반갑게 환영하지 않고 뭣 하느냐?" ……? 장내의 많은 사람들은 크게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었다. 틀림없이 제갈수 등이 조장과 다투다가 동심각을 떠날 것으로 생각했던 그 들은 일이 의외로 이렇게 풀려 나가자 저마다 크게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들 이었다. 아마도 제갈수가 말했던 그 독두천왕이라는 말에 어떤 열쇠가 있는 것 같았 다. 그렇다면 그것은 조장의 과거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독두천왕 이라는 별호를 가졌던 조장의 과거는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모든 의문이 일시에 치밀어 올랐지만 장내의 사람들은 다음 순간 일시에 바 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위사들의 심판대가 되었던 장내가 금방 변하여 성대한 환영의 장소로 돌변하게 되었다. 넓은 양쪽의 마루 위에 일행을 위한 먹음 직스러운 잔칫상이 마련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아무튼 어정쩡한 분위기 가운데 일행은 잘 먹고 마시며 가장 좋은 자리에 짐을 풀고 동심위사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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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량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서 환영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제갈수를 불러내어 독두천왕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예상 외로 그 대답은 별로 시원치 않은 것이었다. 과거에 녹림흑도에 독두천왕이라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별로 악행을 저 지른 것도 드러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녹림이라는 조직에 깊이 관여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녹림이 지하로 숨어들자 동심각에 몸을 의탁하고 동심 위사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온 모양인데, 워낙에 활동이 미미했던 독두천왕 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제갈수는 그간의 강호사에 능했기 때문에 독두천왕이라는 특이하게 생 긴 사람이 녹림에서 활동을 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독두천왕은 어렵게 올라간 조장이라는 직위가 자신의 과거가 밝혀짐 에 따라 사라져 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제갈수에게 쩔쩔매고 있는 모양이었 다. 거창하고 어이없는 상황의 변화에 비해 그 내면의 실상이 너무나도 보잘것 이 없는 얘기이자 영호량은 다소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그러나 그렇게 됨 으로써 이제부터 그들의 행동이 매우 자유로워진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조장은 겉으로는 그들 일행에게 매우 잘 대해 주었다. 비록 이 제이십조는 악명 높은 곳이었지만 이제부터 영호량 등의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그야말로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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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수는 은밀히 나중에 조장과 만나서 간단하 협상을 본 것 같았다. 제갈 수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서로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고 가능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이 영호량 등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편리하게 될 것은 지극히 자명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곳 제이십조의 사람들은 대부분 매우 거칠은 사람들이었는데, 다른 조에 있으면서 한 가지씩의 실수를 해서 이쪽으로 옮겨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은 조장에게 완전히 굴복을 당해서 살아 가고 있었다. 그것은 제갈수 등과 함께 들어왔던 남은 다섯 명의 신입위사들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유독 조장이 제갈수의 일행인 다섯 명에 대해서만은 아주 깍듯하게 모시게 되자 다른 사람들과 다소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기실 이곳이 비록 악명 높은 곳이라고 해도 겨우 위사들이 모인 곳에 불과 하여 무공이 높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또한 인물들도 거의 없었다. 다른 위사들은 영호량의 일행을 다소 경원시했고, 일행 역시 그들과 굳이 가까이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이곳 제이십조 막사의 규율은 아주 엄격했다. 철저하게 조장과 부조장의 지 시에 의해 모든 위사들의 행동이 통제되고 있었고, 감히 누구도 거역하지 못했다. 이곳은 바로 위사들의 격리된 감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팎으로 그러한 내용은 서로 알면서도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막사 안의 분위기가 유독 영호량의 일행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고 마치 봄바람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물론이었다. 시간은 아주 빨리 흘러갔다. 식사는 이곳 막사에서는 당번이 가서 매일 타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막 사의 뒤쪽에 작은 동굴 같은 것들이 있어서 무공을 연마하거나 혼자 내공을 연성할 때에 사용되고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모든 시설은 좋은 편이었다. 식사도 좋았고 갖가지 시설도 좋았으며 대우도 좋았기 때문에 일행은 아주 편안하게 어떠한 막사 안의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생활할 수가 있었으며, 간간이 무공을 익히기에도 좋았다. 왜냐하면 다른 곳은 몰 라도 이곳만큼은 조장인 독두천왕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 문이기도 했다. 일행 다섯 명은 그야말로 막사 부근을 멀리 벗어나는 일 외 에는 마음대로 행동했다. 기실 막사에서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게 되는 할 일이 많게 되기 마련이었다. 식사당번이나 청소당번은 물론이고 위사로서의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많은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항상 바쁘고 엄격하게 짜여진 규칙 속에서 일을 하고 있건만 일행에게는 전혀 어떠한 일도 하라는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새로 들어온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행 이 아닌 나머지 다섯 사람의 신입위사들에게는 조금씩 일을 시키고 있는 것 을 알아차리고는 일행을 그대로 두는 것은 바로 조장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끔찍히도 고마운 조장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사흘이 지났다. 영호량은 막사 안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막사 뒤쪽의 연공 실에 들어가서 살다시피 했었다. 이날은 남궁장천 등도 별로 할 일이 없고 해서 막사를 떠나서 영호량의 주 변에 모여 있던 중이었다. 헌데 그때였다. 막사 쪽에서 제갈수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왠지 제갈수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 보이는 것을 보고 황보룡이 물었 다. "제갈 형,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제갈수는 일행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별일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여러분에게 해야 할 말이 있소. 그것 은 바로 우리도 위사로 들어온 만큼 그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오." 황보룡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본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라도 했다 는 말이오?" 제갈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왠지 우리에게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는 것을 보고 조장에게 가서 물어 보았소. 그랬더니 실은 우리가 맡아야 할 근무소 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감히 일을 나가라고 하지 못했다는 것이 었소." 황보룡이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제갈 형에게 잘못 보이면 그자의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이곳의 조장이라는 직위는 알고 보니 한 번 해 볼 만하던데?" 제갈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웃기만 할 일이 아니오. 우리가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만인에 게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은 반드시 하기로 약속했소." 팽호가 눈을 휘둥그래 뜨며 반문했다. "아니, 그럼 우리도 그 자식들처럼 그릇을 닦고 막사의 청소를 하는 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오?" 제갈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는 않소. 그런 것들은 그들이 모두 신경을 써서 대신 해주기로 했 소. 그것이 조장의 배려요.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할당된 근무지만 지켜 주 면 되는 것이오." 그렇다! 일행은 지금 막사 안에서 거의 조장에 버금가는 극진한 대우를 받 고 있는 형편이었다. 황보룡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그 근무지는 어디요?" 제갈수는 대답했다. "내가 마악 조장에게 그 장소를 알아가지고 오는 길이오. 식사는 그들이 날 라다 줄 것이고, 우리는 하루종일 그곳에 있다가 돌아오면 되는 것이오." 남궁장천이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하루종일이라면 너무 오랜 시간이 아니오?" 제갈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비록 오전과 오후 모두 근무를 서는 곳이지만 바로 그곳은 가장 근무를 서 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바깥과도 통하게 되어 있으니 아주 좋은 곳이오. 아 마도 그곳에 가 본다면 근무를 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오. 그리 고……" …… "우리야 가능하면 막사에서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이 아 니겠소? 우리가 하루종일 근무를 서고 돌아오면 그들은 아마 더욱 잘 대해 줄 것이오." 제갈수의 말에 일행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자 제갈수는 앞장을 섰다. "자, 그럼 나를 따라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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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모두 동심위사를 상징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것은 동심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금빛의 상하의에 각각 동심원의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아름 다운 의복이었다. 일단 막사에서의 생활이 아닌 근무지에 나가게 되면 이러한 의복으로 갈아 입어야 하며, 그래야만 비로소 근무를 선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근무지에 나가기 위해서는 각자 한 가지 이상의 병기를 휴대하게 되 어 있는데, 영호량만이 병기대에서 한 자루의 장검을 집어들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이미 독문병기 를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갈 수는 하나의 백우선(白羽扇)이었 고, 남궁장천은 등에 맨 한 자루의 장검, 그리고 팽호는 한 자루의 칼이었 는데, 황보룡은 빈손이었다. "황보 형은 병기를 가지지 않소?" 영호량이 그렇게 질문을 하자 황보룡은 웃으며 자신의 두 주먹을 높이 치켜 올리는 것이었다. "내 병기는 바로 이 두 개의 주먹이오." 기실 황보룡의 이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 황보룡의 가문은 산동의 황 보세가로서 권법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다. 과거 한때 무림에 오대세가가 명성을 날리고 있었을 때에는 황보세가의 천왕권(天王拳)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고 했다. 높이 치켜든 황보룡의 주먹은 마치 그러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대했고, 특히 오른 주먹은 왼 주먹에 비해 배가 될 정도로 매우 컸다. 그것은 바로 그가 천왕권을 연성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모든 것을 준비한 다음에 일행은 근무지로 향해 떠났다. |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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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감사 감사 ;;;;;;;;
즐독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