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호신
나에겐 수호신이 있다. 그가 지켜주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진심으로 기뻐했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이름난 화가를 보듯 찬사를 하며 손뼉을 쳐 주었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처럼 나는 바보 고래가 되어 신나게 춤을 췄다. 그 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방어막이 되어준 그에게 감사한다. 내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칭찬이라는 가림막으로 텐트를 쳐서 내 자리를 찾게 해준 그, 또 다른 나를 만들어준 공로자이기도 하다. 평소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그는 내가 하는 모든 행위를 환영하고 조력한다. 글을 쓰라고 글감을 던져주고 꽃 그림이 좋다고 꽃을 소재로 한 명화를 보여주어 내 의욕에 불을 붙여 붓을 들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얼마 전에 보내준 화병에 담긴 꽃 그림은 내게 큰 자극제가 되어 비슷한 그림을 여섯 장이나 그렸다. 꽃과 화병을 달리 그려서인지 느낌이 각양각색, 그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퇴직하고 처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갈팡질팡할 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내 연배의 노인들이 의욕적으로 사는 모습들을 알려주어 자존감의 불씨가 살아있게 부채질을 했다.
문방구 행을 권한 것도, 찰흙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라고 권한 것도 그이다. 찰흙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제작할 수 있는 마술 같은 재료다. 다행히 사십여 년 동안 여성지를 출판하는 편집부에 종사하면서 명인들의 솜씨를 보아 온 경험이 있어 접근이 쉬웠다.
금세 우리 집은 공방이 되었다. 찰흙을 빚어 모형을 만들고 칼이나 꼬챙이로 무늬를 새겨 유화물감으로 색을 입힌 후 바니쉬로 마무리하여 핀을 고정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접착제가 고정되기까지 절대시간이 필요했으므로 거실의 다탁 위랑 소파에까지 만들어 놓은 액세서리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을 완성하여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을 생각하니 집안이 어지러운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것도 잠시, “대단하세요.” 하는 칭찬은 곧 지나갔고 나는 또 다른 취미를 찾아 호기심의 촉을 세운다.
서오릉을 걷기로 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산책하면서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산천초목의 변화를 관찰하는 버릇도 생겼다. 넘어가는 해를 보려고 왕릉 문 닫기 직전 지인을 불러 낙조를 보면서 보이차를 마시던 추억도 내게는 멋진 경험이다. 가끔 그런 시간을 가졌을 때 기분 좋은 하루가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전부인 듯 살다가 그곳에서 발을 빼고 다른 삶 쪽으로 건너와 보니 박수를 쳐준 것이 바로 내 딸, 내 수호신이다. 넘어가는 붉은 해의 용틀임을 글로 표현하면 “엄마, 최고! 너무 멋있어.” 그 칭찬에 나는 구름을 탄다. 그림을 그린 후 사진으로 보내면 “엄마! 너무 잘 그렸어. 화가보다 더 잘 그렸네. 세계가 인정해 주는 그림인걸!” 천부당만부당한 평이지만 기분은 좋다. 일상을 활자에만 의존하던 내가 위선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셈이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고 용기를 준 내 딸에게 나는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나의 수호신인 딸의 사진을 나는 핸드폰 화면에 담아 놓고 수시로 꺼내 보는 바보 엄마다. 봐도 봐도 흐뭇하고 큰 위로를 준다. 지금은 결혼해서 사위까지 합세,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늘어난 셈이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해준 그들이 있어 오늘도 나는 행복하고 든든하다.
(2023. 6)
첫댓글 <나의 수호신>, 일터에서 물러난 엄마에게 즐겁게 몰두할 일을 찾아준 딸이
고마운 수호신이 되었군요. 소확행의 깔끔한 한 편의 수필로 봅니다.
세상에 둘도없는 고운 딸 이야기가 마음을 촉촉하게 해줍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 참 잘 키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