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32/가을하다]한 해의 마무리 그리고 시작
어제부로 가을 수확을 끝냈다고 할 수 있다. 말린 서리태(검정콩) 타작이 남았지만. 여름내내 풍성하던 뒷밭 뒤처리(비닐 걷어 치우기, 폴대 빼 묶어놓기, 무 20여개 캐 땅에 묻기, 마늘싹 돌보기, 죽은 감나무 제거, 마지막 작두콩 따기 등)를 오랜만에 서너 시간 했더니 노곤한 게 낮잠이 밀려온다. 아, 이런 게 ‘가을하다’구나 싶다. 명사 ‘가을’에 ‘-하다’를 붙인 고유어 ‘가을하다’를 <우리말 겨루기> 프로에서 처음 알았다. 농작물 등을 거두어들이다는 뜻이란다. 일상에서 써도 좋은 말이다. 당연히 “나는 어제 가을했다”는 과거형도 되리라. 나는 어제 종일 가을했다. 이렇게 가을이, 올 한 해가 가는구나 싶다.
논이고 밭이고 텅 비었다. 허허롭다. 그러잖아도 섬같은 우리 동네, 초겨울 장마와 함께 심란스럽고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에 고샅에 할머니들의 발걸음도 끊겼다. 아버지도 안 계신 시골집 대문이 쓸쓸하다. 열린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간다. 하마 오마지 않는 임이 일도 없이 기다려진다는 절창絶唱의 시조 구절도 생각난다. 오늘은 아무데도 안가고 하루종일 책만 읽으리라. 최근 원로 선배께서 무척 아끼는 것이라며 빌려준 수필집의 수필 몇 편을 읽다가 엄청 깜짝 놀랐고 감동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수필가를 여지껏 몰랐다니? 나의 무식이 창피했다.
윤오영 선생의 『곶감과 수필』(2000년 1쇄, 태학사, 246쪽, 6000원)이 그것이다. 절판된 지 오래,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범우사 산문선』중 한 권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피천득 선생과 친구이셨다한다. 두 분을 ‘수필의 달인이나 대가大家’라 하면 실례가 될 것같다. 목성균의 『누비처네』를 읽은 후 이렇게 맛깔스런 수필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고투古套의 단어와 문장이 너무 맘에 들고 졸깃한 맛까지 있다. 총 55편 중 30여편을 이미 읽었는데, 500편이 남았다해도 내처 숨도 안쉬고 다 읽고 싶다. 정민의 ‘윤오영론’만 읽어도 윤선생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한들, 삶의 본질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변한 것이 없는 것을, 우리는 종종이 아니고 늘 까먹고 산다. 우리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면서도 되레 정신의 황폐를 느낀 적이 무릇 기하이지 않던가. 그래서 몇백 년 또는 몇십 년 전 사람들이 글이 낯설거나 생경하지 않고 뜻깊게 읽히는 까닭이리라. 좋은 글에는 늘 향기가 있고, 또한 글쓴이의 체취가 묻어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옛날’이란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겨울, 피천득, 윤오영, 목성균, 법정의 주옥같은 수필 읽기를 강강강추추추(강추)한다. 나만 세상 물정 모르게 순진해서 ‘한 감동’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최소한 나의 지인들만큼 읽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나와 ‘글의 소통’이 됐으면 좋겠다. 이것도 농작물은 아니지만 ‘독서야말로 마음이 양식糧食’인만큼‘ 가을하다’의 일종이 아닐까. 우리, 가을합시다!
유독 눈 많은 내 고향산천에 이제 곧 눈이 내리리라. 여섯 살 손자에게 눈 내리는 날, 아빠에게 할애비집 가자고 떼를 쓰라고 진작부터 못을 박아놓았다. 신새벽, 산자락 신작로에서 빈 들판에 펼쳐진 설경雪景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이육사 시인의 <광야曠野>란 시를 읊조리곤 했다. 늘 마지막 구절이 너무 좋았다. 올 겨울에도 그리하리라.
<지금 눈 나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어느 누가 이 구절을 멋지게 영어로 번역해 놓아 옮긴다.
<Now that it snows/And the fragrance of plum blossoms spreads alone,/Let me sow the seeds of my poor songs//In remote days to come/When a superman rides on a white horse,/I will call him bitterly in this wilderrness>.
육사가 목 놓아 부르고 싶어하던 그 ‘superman(초인)’이 백마(white horse)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remote days(천고의 날)이 아니고 가장 가까운 날(in the near day)에 한걸음에 달려왔으면 좋겠다.
첫댓글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리라, 삶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인문학의 숨은 대가 우천의 말씀.
AI로도 대체 할 수 없는 사람의 감성, 우천의 감성에 깜짜깜짝 놀라요.
올 겨울 냉천부락에 눈이 많이 내려서 사랑하는 손자 윤슬과 행복한 겨을나들이 보내길 기도드립니다.
코리아의 어린아이들에게 정서지능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 냉천부락 정성지능 본부^ 출범식도 언젠가 이루어지길 또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