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0.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큰 믿음, 네 소원대로 되라 유백선 목사
마태복음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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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공부마을석천학당원장 박재희 박사가 “인생의 태풍을 만났을 때” 칼럼에서 말했습니다. 동양의 사상가 맹자가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태풍의 이름을 ‘우환(憂患)’이라고 했습니다. 우환은 집안에 좋지 않는 일이나 아픈 사람이 생겨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태풍으로 근심이 많아져서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누구도 고통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인생의 우환이 왜 생기는 것입니까?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우환을 옵션으로 넣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이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의 태풍이 고풍(苦風)으로 정신적인(mentality) 우환입니다.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고풍의 우환은 돈과 지위를 모두 가진 사람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바라던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하여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노풍(勞風)으로 육체적(health) 우환입니다. 건강관리를 소홀해서 근육(筋과 뼈(骨)가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육체가 보내는 이상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방치해서 오는 것입니다. 과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세 번째가 아풍(餓風)으로 재정적인(finance) 우환입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재산을 탕진하고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잘못해서 원금을 몽땅 잃어버리고 우환을 겪는 것입니다. 나태와 게으름으로 가난의 우환을 겪습니다. 재정적인 우환으로 자유를 잃고 속박을 당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태풍 때문에 더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환이 없이 사는 인생이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네가 만나는 근심과 고통이 너를 살릴 것이다.(生於憂患) 네가 만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너를 죽일 것이다.(死於安樂)” 인생의 태풍이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됩니다.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두려운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자 빌 게이츠(William H. Gates)회장이 말했습니다. “누군가 지금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이것이 가장 두렵다.” 사람들이 날마다 편안하고 좋은 일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가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습니다. “앞날에 좋은 길이 있더라도 편안하고 안락한 선택보다 배고픈 선택이 오히려 인생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의 고통과 역경이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시련을 단련하고 성장시키는 커다란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을 때, 헤어 나올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신(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많습니다. 나(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찾습니까? 내(우리) 믿음이 얼마나 큽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큰 믿음을 가졌다.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합니까? 떡을 먹을 때 왜 손을 씻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물어보셨습니까? 유대인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식하는 사람이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외식하는 사람에게 꾸짖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이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도다.”(사 29:13=마 15: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21절) 두로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226km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이집트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이자 중심무역항입니다. 다윗이 왕궁을 짓는데 두로 왕 히람이 백향목과 목수, 석공을 보내서 협조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레바논산 백향목을 욥바로 보내서 건축을 도왔습니다.(왕상 5:10) 두로인들은 해상무역을 통해서 부강해지자 국방을 강화하고 식민지를 거느렸습니다.(겔 27:25)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던 두로 사람들이 사치와 환락으로 멸망하였습니다. 두로 지방의 사람들이 교활한 헤롯 왕에게 아첨하기도 했습니다.(행 12:20-25) 시돈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0km를 가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에 가셨을 때 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가나안(수로보니게=페니키아/막 7:26)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습니다. 본문 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주(퀴리에/κυριε/kyrie)”는 “최고의 권위자, 통치자, 하나님, 주인,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주(퀴리오스)’는 예수님의 존귀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메시아 직분의 존엄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유일성과 탁월성을 드러내는 독립된 하늘의 직분을 가리킵니다. “다윗의 자손( 휘오스 다위드/υ’ιος Δαυιδ/hyios Dayid)”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의 계보입니다.(마 1:1)
여러분! 가나안 여인이 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했습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하나님께서 치셔서 심히 앓게 되었을 때 금식하며 울면서 간청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아이를 살려 주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삼하 12:22) 그래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외치며 호소했습니다.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감당하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야 나의 고통과 호소에 개입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엘레에손/ελεησον/eleeson)”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측은히 여기다, 동정하다, 긍휼히 여기다, 자비를 경험하다, 괴롭거나 도움을 찾는 사람을 돕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느 9:31)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셔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십니다.(시 9:13)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셔야 살게 하십니다.(시 119:77)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마 5:7)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긍휼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영적으로 귀신에 눌려서 억압하고, 괴롭힘을 당합니다. 군대 귀신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셉니다.(눅 8:29-30) 귀신이 들어가면 정신적으로 불안증상이 나타납니다. 귀신은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을 보면 눈치를 살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귀신이 들리면 자학하며 ‘환청이 들린다, 자꾸 뛰어내리라.’ 라고 말합니다. 살인의 영이 있어서 죽이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피부의 색깔이 녹색으로 변하고 추악해집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다(카코스 다이모니제타이/κακως δαιμονιζεται/kakos daimonizetai)는 말은 “악한 귀신에 들리다, 불행하게 하는 귀신에 들리다, 악마에 의해 성가시게 괴롭힘을 당하여 비참하다, 악령의 권세 아래 있어서 병들다.”라는 뜻입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으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분노, 슬픔의 감정에 포로가 됩니다. 딸이 귀신에 괴롭힘을 당하자 엄마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괴로워서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이 호소할 때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2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자 제자들이 와서 요청했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니 시끄럽습니다. 그녀를 보내십시오.” 제자들은 가나안 여인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이방인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 불쌍히 여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겪고 있다는 고통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고통에 대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고통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본문 2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기서 “이스라엘 집의 그 잃어버린 그 양(타 프로바타 타 아포로로타/τα προβατα τα απολωλοτα/ta probata ta apololota)”은 “완전히 파괴된 그 양, 손상을 받은 그 양, 멸망하는 그 양”이란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구원하려는 것이다.”(눅 19:10) 유대인들이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상처를 받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관심이 없어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던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소외를 받고, 천대를 받은 사람들이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을 찾아서 구원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그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왜 ‘네 믿음이 크다.’ 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 번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거절하심에게 구원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관심을 알고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큰 여인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호소에도 거부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거부감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주께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지치지 않고, 주께 도움을 호소합니다. 자신이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주의 긍휼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여기서 “절하다(프로세퀴네이/προσεκυνει/prosekynei)”는 말은 “주인의 손을 핥은 개처럼 입을 맞추다, 굽실거리다, 경의의 표시로 부복하다, 존경하다, 예배드리다, 존경의 표시로 손에 입맞춤을 하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존경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주께 경의를 표시하며 도움을 호소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겸손하게 주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존경하며 주께서 구원하실 것을 믿고 순종합니다. “도우소서(보에떼이/βοηθει/boethei)”는 “구원하다, 원조하다, 돕다, 구조하다.” 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성실하게 행동하여 주께 구원을 받습니다.(잠 28:18) 믿음이 큰 사람이 왜 주께 구원을 요청합니까? 오직 주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구원하신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시 3:8) 믿음이 큰 사람이 지속적으로 주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주께 구원을 받은 사람이 기쁨을 얻습니다.(삼상 2:1) 주께서 구원하심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존귀와 위엄을 입혀주십니다.(시 21:5) 주께서 의인을 구원하시고 환난 때에 산성이 되십니다.(시 37:39) 주의 구원이 주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시 85:9)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 자기 백성을 기뻐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심으로 아름답게 하십니다.(시 149:4)
둘째는 가나안 여인은 개 취급을 받는 모멸감을 견디고 주의 긍휼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마땅하지 않다(우크 에스틴 칼론/ουκ εστιν καλον/oyk estin kalon)”는 말은 “선하지 않다, 아름답지 않다, 가치 있지 않다, 덕스럽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 정직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귀신에 들린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이 선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치 있지 않고, 덕스럽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가나안 여인이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에게 서운한 마음, 실망스런 마음,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긍휼히 여겨주셔서 딸이 귀신으로부터 구원받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인간의 모멸감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무슨 말씀하시든지, ‘주여, 옳습니다.’ 인정한 것입니다. 본문 27절을 상반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여기서 “옳다(나이/ναι/nai)”는 말은 “예, 진리, 진실함, 참되다, 확실하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예”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고후 1:19-20)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큰 사람은 멸시와 천대, 모멸감을 이기고 믿음으로 주 안에서 자랑하며 삽니다.(고전 1:31)
셋째는 가나안 여인은 간절하게 주인의 부스러기 은혜와 긍휼을 구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부스러기 긍휼이라도 달라고 간청합니다. 본문 27절 하반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기서 “부스러기(프시키온/ψιχιων/psikion)”는 “아주 작은 조각, 적은 양, 소량, 작은 한 입”이란 뜻입니다. ‘저는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긍휼이라도 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극적으로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소원을 응답해주셨습니다. 본문 2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기서 “너의 그 믿음이 크다(메가레 수 헤 피스티스/μεγαλη σου η πιστις/megale soy he pistis)”는 말은 “너의 그 믿음이 아주 위대하다, 풍부하다, 능력이 있다, 덕성, 권위, 능력이 탁월하다, 강하다.” 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주를 기뻐합니다. 주께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시 37:4) “소원대로(오스 뗄레이스/’ως θελεις/hos theleis)”는 말은 “결정하다, 선택하다, 선호하다, 원하다, 기원하다, 좋아하다, 즐거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께 부스러기 긍휼을 구할 때 예수님께서 큰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없다.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던 두 사람이 이방인이었습니다. 가나안 여인과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은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구했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서 괴로워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겠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말씀으로만 하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 것이다.”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마 8:6-10,13)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큰 사람에게 치유의 능력을 행하십니다.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자 귀신이 딸에게서 나갔습니다.(막 7:29) 귀신은 정신과 상담으로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귀신들림은 약물로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입니다.(막 16:17) 기도로만 귀신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막 9:29)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이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합니다.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사 58:6) 믿음이 크고, 믿음이 굳건해야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이 물러가야 행복합니다. 믿음이 커야 근신하고, 깨어서 귀신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벧전 5:8,9) 믿음이 큰 사람이 주께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벧전 1:6,7)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온 가족이 영적으로 강건하여 주께서 칭찬하는 큰 믿음으로 소원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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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