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이암은 개나 고양이와 같은 작은 동물들의 순진무구한 모습과. 아름다운 화조의 배경이 한데 어루러져 자아내는. 평화스럽고도 정감어린 분위기의 묘출을 통하여. 조선시대 영모화의 한국적 전통수립에 중추적 역활을 했다. 이 화조구자도는 그의 이러한 명성과 회화 세계의 특색을 잘 엿보여주는 수작중의 하나이다. 백도화(白桃花) 향기 그윽한 어느 포근한 봄날의 정경을. 꽃내음 맡으며 굽어진 가지위에 앉아있는 한쌍의 새. 꽃을향해 날아드는 호랑나비와 꿀벌. 그리고 나무밑에서 제각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마리의 강아지들을 통해서 엮어놓았다. 구성도 짜임새 있지만. 가는 묵선으로 윤곽을 두르고. 그 안을 고운 설채로 메운 구륵전채(鉤勒搷彩)와. 수묵몰골(水墨沒骨)의 조화로운 대비 또한 훌륭하다. 그리고 강아지 들의 때묻지 않은 천진난만함을 강조하기 위해. 특이한 훈염(暈染)으로 형태와 빛깔을 나타냈으며. 주변의 바위에는 16세기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했던 단선점준(短線點皴)을 구사하여 화면의 정취를 한층 돋구어 놓았다. 일본의 화가 타니분쬬오 도 고화비고(古畵備考)에 유조선화풍(有朝鮮畵風) 이라고 특기해 놓았던 이암의 이러한 회화세계는 뒤에 김식(金埴)과 변상벽(卞相璧) 등에게도 계승되어 조선시대 영모화풍의 근간을 이루었다. 특히 묵훈(墨暈)의 음영법으로 다루어진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은 17세기 전반경에 할동한 일본의 화가 소오겐의 개그림 들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 한동안 그를 자기네 나라의 화가로 잘못 알고 있었고. 또 그의 그림들이 일본에 더 많이 전래되었던 사실 등은 그의 화풍이 일본 화단에 미쳤을 영향관계를 추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가 : 신사임당(申師任堂)
당호 : 사임당(師任堂).시임당(媤任堂)·임사재(妊思齊)
제목 :
초충도(草蟲圖) 8폭중 4폭
언제 : 16세기 전반
재료 : 종이에 채색
규격 : 각폭33.2 x 28.5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서 후세에 크게 존경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높은 인품과 함께 시. 서. 화 에 두루능해 가정교육의 사표(師表)로 국문학사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회화사에 있어서도 간과할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호(號)만이 알려져 있을뿐 조선시대의 모든 여인이 그러하듯 이름은 없다.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거유(巨儒) 이이(李珥)의 율곡집(栗谷集)에 의하면. 사임당은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방(倣)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밖에 여러 사람들의 문집(文集)에서 그녀의 그림에 대한 기사들을 찾아볼수 있다. 신 사임당이 즐겨 그린 그림은 산수. 화조. 어(漁). 포도. 매(梅). 난(蘭). 화훼초충(花卉草蟲)등 여러 분야에 두루 미친다. 다방면의 소재에 모두 뛰어났으나. 그중에서 그녀의 성가(聲價)를 높인 것은 포도와 초충도로 생각된다. 이 초충도들은 원래 초충도 8첩에 신사임당의 방손(傍孫)인 신경(申暻)의 발문(跋文). 오세창(吳世昌)의 발문과 함께 10폭으로 꾸며져 있다. 이 발문에 의해 전래사유를 분명히 알수있다. 일찍이 종실 출신 이양원(李陽元)이 소장하던 것을 그의 후손이 신경에게 팔았다. 그후 200년가량 지나 이용희(李用熙)교수가 소장케 되어. 이를 오세창에게 보이자 1946년에 발문을 쓴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초충도 병풍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1)수박과 들쥐, 2)가지와 벌, 3)오이와 개구리, 4)양귀비와 도마뱀. 5)맨드라미와 쇠똥구리. 6)산나리와 매미. 7)어승이와 개구리. 8)산차조기와 사마귀 등이다. 작품명을 정하는데 있어 그림에서 살필수 있듯이. 식물도 한 가지가 아닌 두가지 이상이며. 곤충도 두 가지 이상씩이어서. 화면을 차지하는 비중에 의거하여 명명하였다. 이 일련의 그림들은 삼각형이나 원형의 안정된 구도로 그려져 섬세하고 정확한 표현 그리고 선명한 채색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수작임을 두루보여 준다. 그림에 따라서는 등장된 곤충류의 형태나 포치에 있어 장식성으로 인해 소재 사이의 연결이 어색하게 보이는 점도 없지 않다. 소재가 단순해짐을 우려해서인지 도판에서 보이는 것처럼 수박이 중심이나 그 옆의 패랭이를 가미한다거나 맨드라미와 들국화 등 크기에 의해서 비중을 알수 있게끔 함께 나타냈고. 곤충들도 여러가지 각기 다른 동작을 함께 그려서 변화와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하단에서 4분의1쯤 되는 지점에. 태점(笞點)을 농담 이중으로 꼼꼼히 찍어. 지면과의 경계를 나타낸것도 개성적인 화면처리에 들 것이다. 여성 특유의 청초함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에서. 장식적인 화면구성이 엿보이긴 하지만. 뛰어난 묘사력과 색채감각을 보여준다.
가지와 벌
수박과 들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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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차조기와 사마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file.paran.com%2FBLOG_510341%2F200702%2F1172384865_b53.jpg)
오이와 개구리
작가 : 이정근(李正根)
아호 : 심수(心水)
제목 :
미법산수도(米法山水圖)
언제 : 16세기 후반
재료 :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
규격 : 23.4 x 119.4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정근의 호는 심수(心水)이고 벼슬은 정6품 사과(司果)를 지냈다. 그의 집안은 부친 이명수(李明修) 이래로 대대로 화원(畵員)벼슬을 이어갔는데. 이명수의 두 아들 정근(正根). 정식(正植)과 사위 유성업(柳成業) 그리고 정식의 아들 수형(壽亨). 손자 홍규(泓虬). 증손 기룡(起龍). 고손 형정(衡精)등이 모두 화원이었다. 그의 화풍에 대하여 윤두서(尹斗緖)의 화단(畵斷)에 “안견을 조(祖)로 삼았고. 필법이 섬교하고 능히 멀고 아득한 것을 표현할수 있어서. 가이 이불해 보다 앞섰다고 할 만하다” 고 적혀있는데 이러한 화풍의 작품으로 설경산수도를 들수있다. 이와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제작된 이 미법산수도는 옆으로 긴 화면안에 오른쪽 하단. 즉 근경을 농묵으로 처리하고. 담묵의 원경에 이르기 까지 완만한 대각선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원산 윗 부분에 미불의 모옥(茅屋)에 비내리는 것을 감상하는 그림의 뜻을 방(倣)하여 남창(南窓)을 위하여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으로 이야기함을 그렸다. 는 내용의 제발(提拔)이 있다. 길고 완만하게 대각선을 이루면서 멀어지는 구성. 촘촘한 미점(米點)의 사용. 담담하게 변화되는 묵법등에서 명대(明代) 미법산수의 영향이 엿보이고 있어. 원대(元代) 초기의 비법산수를 토대로 한국화된 15세기 말의 최숙창(崔叔昌)등의 미법산수와는 차이를 드러낸다. 남종화(南宗畵)의 지류인 미법산수가 16세기 화원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 특이 주목된다.
작가 : 이흥효(李興孝)
제목 :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언제 : 16세기 후반
재료 : 화첩 비단에 수묵
규격 : 29.3 x 24.9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흥효는 이상좌(李上佐)의 아들이며 그의형 이숭효(李嵩孝)가 일찍죽은 탓인지 당대에 더 화명을 떨친듯 하다. 그는 명종(明宗)의 어용(御容)까지 그려 군직(軍職)을 받기도 했으며. 양송당(養松堂) 김제(金禔)의 필법을 좋아했다고 전한다. 이그림은 6폭가운데 맨 마지막 엽으로. 안견파 화풍 영향을 여실히 들어내고 있다. 편파구도계(偏頗構圖系)의 전통을 반영하듯. 화면의 중심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이그림은. 조선 초기의 사시팔경도 에서 찾아볼수 있는 구도와 공간감의 여운이 남아 있다. 근경의 소나무와 뒷편 언덕위에 늘어서 있는 침엽수가. 모두 세찬 바람으로 왼편으로 기울고 있는 반면. 성곽위의 깃발은 오른쪽을 향해 나부끼고 있어 어색한 느낌을 주는데. 이런 유형의 작품이 정형화 되어가는 면모를 엿보게 한다. 주산에 가해진 단선점준(短線點皴)은 16세기 전반의 액선트를 가한 듯한 예리한 필치에 비해. 굵고 길며 뭉툭하게 변하여 훨씬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 작품에 보이는 전반적인 구도나 주산의 형태. 공간감 등은 이정근(李正根)의 <설경산수도>와도 연관지어 볼수 있다.
작가 : 작가미상
제목 :
풍악도(風岳圖)
언제 : 16세기 후반
재료 : 비단에 담채
규격 : 27.5 x 34 cm
소장 : 한국 개인
해설 :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전(전) 안견(안견)의 사시팔경도(사시팔경도)가운데 만도(만동) 부분을 변형시켜 재구성한 듯하며. 그보다 경물들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짐으로 인해 공간감이 줄어든 것이 차이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구성 내용은 이흥효(이흥효)의 <설경산수도> 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상단부의 산 표면에 단선점준이 훨씬 날카롭게 구사된 점이라든지 근경의 나지막한 둔덕 표면에 피마준을 연상케 하는 필치가 보이는 점 등은 이흥효의 작품과는 다른 면모라 하겠다. 그리고 근경의 소나무를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이흥효의 <설경산수도>에 비하여 필치가 예리하고 섬세한 느낌을 준다. 15세기 이래의 안견파 화풍을 계승하여 여기에 새로운 요소들을 가미하여 전개되었던 16세기 산수화풍의 일면을 잘 보여 준다.
작가 : 함윤덕(咸允德)
제목 :
기려도(騎驢圖)
언제 : 16세기 후반
재료 : 비단에 담채
규격 : 15.6 x 19.2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함윤덕은 16세기에 활약했던 화가로. 윤두서(尹斗緖)의 기졸(記拙)에. 그의 그림에 대한 짤막한 평이 남아 있을뿐, 출신 배경이나 행적등이 전혀 알려져 있지않다. 유작 또한 이 기려도 한점이 유일하게 전해온다. 이그림은 유력(遊歷) 중의 기려고사(高士)를 그린 것으로. 긴여행에 지친 듯 다리를 저는 나귀와. 피어오르는 시흥(詩興)에 잠긴 선비의 단아한 모습이 대조를 보이며. 화의(畵意)의 핵심으로 부각 되어있다. 이와 같이 독립된 주제의 기려인물은. 시객(詩客)으로서의 두보(杜甫)와 소식(蘇軾)의 고아한 풍취를. 염두에 두고 그리는 경우가 많다. 짙고 옅은 먹빛으로 화면의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촛점을 이루는 인물과 나귀엔는 붉은 색과 갈색을 베풀어 강조했으나. 지금은 거의 탈색되어 묵색이 주조를 이룬다. 구성은 강희안(姜希顔)의 <고사관수도>에서 전형화되었던 소경(小景)산수인물화의 구도를 계승하며. 배경에 암벽과 덩굴나무의 부분만을 배치하는등 인물중심으로 간결하게 짜놓았다. 암벽에 보이는 길고 날카롭게 빠진 부벽준(斧劈皴) 모양의 준찰(皴擦)이라든지. 그옆 공간을 메우고 있는 자생덩굴과 나무잎의 양태 등은. 남송의 마하파(馬夏派)에서 명대의 절파(浙派)로 이어지는. 일련의 특색들을 반영하고 있는데. 화면의 맨 앞에 바위의 일부를 포치하여 전경의 공간을 한정시킨 것은 원말(元末) 이후에 나타나는 경향이다. 인물의 의문(衣紋)또한 마원(馬遠)이래의 전통을 받아들여 겨드랑이와 옷자락 부분을 방사선 모양으로 퍼지게 하였다. 그러나 시필(始筆) 부분의 노봉(露鋒)이 누에 머리처럼 더욱 두드러지면서 짧고 힘차게 삐친 주름의 필선은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당시의 한국적 특징이라 하겠다. 비록 편폭(片幅)에 불과한 소품이지만. 필치도 유연하고 화면 전반에 아운(雅韻)이 감도는 가작이다.
작가 : 이숭효(李崇孝)
제목 :
귀어도(歸漁圖)
언제 : 16세기 후반
재료 : 모시에 수묵
규격 : 21.2 x 15.6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숭효의 자(字)는 백달(伯達)이며. 화원 이상좌(李上佐)의 아들로. 그의 동생 이흥효(李興孝). 그의 아들 이정(李楨)등이 모두 화원이었다. 이숭효는 일찍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매우 드물어 현재까지 알려진 작품은 이 귀어도가 유일한 것이다. 대각선으로 이어진 비탈길을 한 늙은 어부가. 잡은 고기를 왼손에 들고. 오른쪽 어깨에는 낚싯대를 걸머메고 돌아오는 모습이다. 주변의 자연공간은 갈대잎으로 간결히 설명되고 있고. 낚시꾼의 초연한 모습이 이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산수화에서 근경의 인물부분만이 크게 강조되어. 어부도(漁夫圖).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관폭도(觀瀑圖).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조선중기 절파(浙派) 화풍의 한 가지 특징이기도 하다. 갈대잎의 활달하고 조방(粗放)한 필치나. 굵고 가는 거침없는 옷주름의 묘사 또한. 절파 화풍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 이 작품에서는 어부의 비척거리는 걸음거리와. 달관을 한 듯한 표정이 생기있게 묘사되어 있다. 올이 굵은 모시에 그렸기 때문에. 붓길이 매끄럽지 않은 대신에. 끊긴듯 이어지는 여운은 더 잘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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