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 현을 차로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산과 도심 속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불이 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바로 온천의 도시 벳푸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이므로. 일본 제일의 용출량을 자랑하는 온천 도시답게 벳푸시의 거리 곳곳에서는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벳푸에 즐길 거리가 온천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산중턱에서 내려다 보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작고 아름다운 해안도시인 벳푸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파리, 돌고래와 놀 수 있는 최첨단 아쿠아리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헬로키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완벽한 주말 여행지로, 낮에는 신나게 돌아다니고 밤에는 뜨끈한 온천 물에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tourdemonde.com%2Ffsboard%2Fdata%2F__FCKeditor%2Fb1.jpg)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남짓 됐을까? 짐을 머리 위 선반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기내식으로 나온 샌드위치를 먹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린다. 반짝 추위로 영하까지 내려갔던 서울의 날씨와는 달리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10월말의 규슈九州. 후쿠오카에서 두 시간 정도를 차로 달리니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오이타 현 중부의 벳푸別府 시가 나온다. 아직 낙엽으로 물들지 않은 초록의 산과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여행 엽서 사진처럼 사랑스런 느낌이다. 벳푸는 원래 온천, 그 중에서도 간나와 온천 주변에 집중되어 있는 9개의 온천을 도는 지옥순례地獄めぐり(지고쿠메구리)로 가장 유명하지만 이번에 기자는 조금 다르게, 가족 여행지로 매력적인 벳푸의 명소 일곱 군데를 둘러 보았다.
사라져버린 A군의 행방은? 다카사키야마 원숭이공원高崎山自然動物園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다카사키야마 원숭이공원은 높이 628m의 다카사키야마高崎山에 꾸며놓은 자연동물원으로 2,000 마리 정도의 야생 원숭이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이 원숭이들은 크게 A군, B군, 그리고 C군의 세 집단으로 나뉘어져 우두머리 원숭이의 통솔 아래 각 그룹별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몇 년 전 A군이 C군과의 결투에서 패배한 후 해체되어 실제로는 B군과 C군만 남아 있다고 한다. 겁이 많아 길에서 비둘기만 봐도 도망가기 바쁜 기자는 ‘원숭이들이 풀어져 있다는데 나한테 달려들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사실 이 일정이 달갑지만은 않았었는데 입구에 들어서서 맑은 산 공기를 쐬니 한결 상쾌한 기분이다.
원숭이가 그려진 깜찍한 모노레일 ‘사룻코’도 있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단체관광으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기에 걸어 올라가기로 한다.
경사가 심하지만 거리가 짧은 ‘토끼길’과 경사가 완만하고 조금은 돌아서 가는 ‘거북이길’의 갈림길이 나와 우선 토끼 길을 선택해 길을 올랐다.
얼핏 본 표지판에 원숭이를 만지거나 놀리거나 눈을 마주치면 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주의사항이 써 있어 다시 한 번 움찔하긴 했지만 실제로 본 원숭이들은 무섭고 징그럽기보다는 의외로 깨끗해 보이는 털이 복슬복슬해 귀여웠다.
주기적으로 사육사가 뿌려주는 먹이를 바쁘게 주워먹거나 서로 이를 잡아주느라 여념이 없던 그들은 특히나 표정이 살아 있어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이따금씩 아기 원숭이들이 관람객의 가방끈이나 바짓단을 당기면서 장난을 걸기도 했다. 처음에는 원숭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공격당할까봐 안 보는 척하면서 힐끔대기만 했는데 차차 익숙해져 카메라 렌즈를 과감히 들이대도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갓 태어난 듯한 새끼 원숭이의 어미는 관람객이 조금만 접근해도 위협하듯 거친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역시 동물의 세계에서도 모성애는 살아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tourdemonde.com%2Ffsboard%2Fdata%2F__FCKeditor%2Fb4.JPG)
돌고래와 공놀이, 우미타마고うみたまご
다카사키야마 원숭이공원의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우미타마고는 벳푸의 오래된 수족관인 마린팔레스를 전면 리뉴얼해서 2004년 새로이 탄생시킨 최첨단 수족관이다.
바다 알이라는 뜻의 우미타마고의 이름은 생명의 근원이 바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데서 착안되었다고 한다.
오션존, 원더존, 트로피칼존, 프리지드존 등의 실내 에어리어와 돌고래풀, 어린이 수족관, 야외 퍼포먼스 에어리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개나 불가사리, 해삼 등의 바다생물을 비롯해서 상어나 해마, 바다표범까지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되어 있는 터치풀과 풀장에 있는 돌고래와 직접 공을 주고 받으며 놀 수 있는 돌고래풀은 특히 인기 코너이다. 온통 네모난 실내 수조만으로 이루어진 아쿠아리움과는 차원이 다른 오감만족 수족관 우미타마고는 최근 몇 년 사이 벳푸의 인기명소로 급부상하였다.
기자는 평일 오전에 방문했는데도 벳푸 시내의 유치원이란 유치원에서 다 현장학습을 나왔는지 노랑, 분홍, 하늘의 모자를 쓴 유치원생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은 우미타마고는 벳푸에 왔다면 꼭 한 번은 방문해야 할 곳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tourdemonde.com%2Ffsboard%2Fdata%2F__FCKeditor%2Fb5.JPG)
야생 그대로의 동물들을 만나다, 아프리칸 사파리アフリカンサファリ
아프리칸 사파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자연동물원이다. 철창 속에 갇힌 동물들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동물원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면 아프리칸 사파리에 갈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115만㎡의 넓은 들판에 69종 1,300여 마리의 각종 동물들이 야생 그대로 살고 있는 아프리칸 사파리에선 특수 제작된 정글버스를 타고 서식 특성별로 5개의 구역에 나뉘어 자리잡고 있는 곰, 사슴, 사자, 낙타, 기린 등에게 먹이를 줄 수도 있다.
사파리 투어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50분으로 총 이동거리는 약 6km이다. 사파리 투어 외에도 여러 볼거리, 즐길 거리가 구비되어 있는데 그 중 사랑스러운 새끼 호랑이를 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가 있어 기자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뒤의 사람과 찍을 때부터 으르렁대던 호랑이가 그만 한 중국인의 손에 ‘큰’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하하하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는데 다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남에게 일어나서 더욱 즐거운 해프닝이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tourdemonde.com%2Ffsboard%2Fdata%2F__FCKeditor%2Fb6.JPG)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헬로키티가 있는 곳, 하모니랜드ハーモニーランド
하모니랜드를 보통의 놀이공원이라고 생각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모니랜드는 헬로키티로 유명한 산리오사의 캐릭터를 총동원해서 꾸민 테마파크로 주 타깃 층은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다.
연중 내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축제와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어린 유아들도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각종 놀이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짜릿한 스릴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을 좋아한다면, 특히 헬로키티의 팬이라면 성인이라도 가볼 만한 곳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평일 늦은 오후로, 꽤나 한적한 시간대여서 하모니랜드의 최고 인기 어트랙션이라는 헬로키티의 집Kitty Castle에서도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총 세 명(?)의 헬로키티를 만났는데 특히 마지막에 만났던 헬로키티는 지금껏 보았던 인형(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 단연 최고였다. 보통은 사진을 같이 찍고 손을 흔들어주는 정도로도 충분할 텐데 아이들과 사진을 찍은 후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추면서 한동안 손을 마주잡아 주는 모습이 가히 감동적이었다.
나이를 이미 먹을 만큼 먹은 기자도 결국 헬로키티와 두 손을 마주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검은색 플라스틱일 뿐인 눈과 인조 털일 뿐인 손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져 잠시나마 어린 소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자녀와 함께 간다면 온갖 캐릭터 상품이 가득한 기프트샵을 조심해야 할 듯하다. 폭주해버린 환율 때문이 아니더라도 절대 싸지 않은 상품들이지만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을 자랑하고 있으므로…….
지옥을 맛보다, 간나와 온천 거리鉄輪温泉街
앞에서 말했듯 지옥순례로 유명한 벳푸. 여기서 지옥이란 지하 250~300m에서 100도 정도의 열탕과 분연이 분출되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부분 간나와 온천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는 총 9개의 지옥온천 탐방을 가지 않더라도 간나와 온천 거리는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고즈넉한 거리를 거닐어보는 것뿐만 아니라 지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봄에 오픈한 지옥 찜질공방 간나와는 온천이 분출하는 증기열을 이용한 조리법으로 만드는 음식인 ‘지옥 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옥 찜 요리는 간나와에서 에도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조리법으로 시금치, 달걀, 게, 소라, 새우, 감자, 밤, 쌀 등 각종 식재료를 소쿠리에 얹어 100도를 넘는 증기를 내뿜는 ‘지옥 가마’에 넣고 뚜껑을 닫기만 하면 완성된다.
고온 증기로 단번에 찌는 만큼 식재료의 신선함을 그대로 살린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그 외에도 다리 찜질과 족욕을 즐길 수 있는데 고온 증기에 무릎까지 푹 담그는 다리 찜질을 직접 경험해본 결과 왠지 이대로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내 다리도 찜 요리로 나올 것 같은 무시무시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만의 향기를 갖고 싶다면, 오이타 향기 박물관大分香りの博物館
오이타 향수 박물관에서는 세계 향수의 역사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전시되어 있는 향수의 향을 직접 맡아볼 수도 있다. 단순히 향수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2,000엔)을 지불하면 직접 향수를 만들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갖추어져 있어 더욱 인기다.
이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각각 세 개의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에서 하나씩을 선택해 자신만의 비율 조합으로 향수를 만들게 되는데 자신이 만든 30ml의 향수를 공병에 담아 갈 수 있다. 물론 기자도 플로럴향, 프루티향, 머스크향을 섞어 마치 자신이 장 그루누이라도 된 듯 킁킁대면서 ‘나만의 향수’를 열심히 만들었다.
비록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디서 많이 맡은 향이라는 반응이어서 살짝 실망은 했지만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층에는 가벼운 식사와 차 한 잔을 할 수 있는 카페와 기념품 판매점도 있는데 특히 카페의 경우 예쁘게 가꿔진 허브 정원을 보며 샌드위치나 스파게티 등을 즐길 수 있어 박물관과 별개로 식사만 하러 오는 여성 고객들도 많았다.
허름해도 매력이 철철, 라쿠텐치ラクテンチ
라쿠텐치는 유원지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고도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시설도 낡은 편이고 탈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산 위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아름답고 공기도 맑은 데다 미니 동물원, 오리 경주장, 닥터피쉬 족욕탕, 온천탕 등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들이 가볍게 즐기기 좋다.
입구에서 <이웃집 토토로>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고양이 케이블카(강아지 케이블카도 있다)를 타고 산으로 입장하여 라쿠텐치의 상징인 흔들다리 레인보우대적교를 건너 본다.
왠지 시골장터에 온 듯한 느낌의 오리 경주장에서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분홍색 오리에 100엔을 걸었다가 비실해 보였던 흰색 오리가 의외로 분발하는 탓에 돈을 잃고 발을 동동 굴러도 본다. 라쿠텐치는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가족들과 오고 싶은 곳이다.
글과 사진 정순화 기자 취재협조 전국 타운지∙정보지 커뮤니케이션 벳부대회 실행위원회 사무국
[출처;뚜르드몽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