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28:18-2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웨슬리 형제의 기념비에는 찾는 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몇 가지 문구가 있습니다. ➀“세계는 나의 교구다”입니다. 그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그가 가진 구령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➁“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하고 계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특정한 사람에게만 매이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꼭 그 사람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➂“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임종할 때 기력이 쇠하여 말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네” 얼마 후에 웨슬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라네”라고 말하고는 평화롭게 잠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설교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셨습니다. 흠과 티가 없으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열한 제자에게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중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대목에 집중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은 성령으로 믿는 자 안에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은 하늘로 올라가실 것인데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24:35을 보십시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천지는 없어져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도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는데 어떻게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까? 모순처럼 보이는 그 말씀이 진리인 이유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때문입니다.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과 성령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삼위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지만 본질상 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계시는 것이고 성령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시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성령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가시지만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도들에게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1장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성령께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5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도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서 오직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날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모인 집에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눈에 보였는데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습니다. 거기에 120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 즉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삼각산에 기도하러 갔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120문도에게 성령께서 임하실 때 경험했던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6월 13일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제 혀가 말리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설악산보다 더 큰 바위 꼭대기에서 무지개빛의 십자가가 쫘아악 내려오더니 제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의 가슴에 불이 붙은 십자가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그날 성령님은 제 안에 오신 것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산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마치 천국을 맛보는 듯한 행복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사람에게 함께 하실까요?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2장을 보면 120문도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자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모여든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사도행전 2:38-39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베드로의 대답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입니다. 악한 길, 불신앙의 길에서 돌이키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죄사함을 받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분의 죽음이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고 그분의 부활로 인하여 내가 새생명 가운데서 산다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의 약속인데 이 약속은 누구에게 주신 약속인가입니다. 성령의 약속은 그 당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3천 명의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모든 먼데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여기서 모든 먼데 사람은 지리적으로 먼데 사람인 이방인들도 포함되는 것이고 시간적으로 먼데 사람인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다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성령을 받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생명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믿는 자 속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2.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힘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 잘 될 때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잘되고 형통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풍성한 사역을 할 때, 예루살렘 교회가 잘 될 때에 성령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었다면 초대교회의 부흥은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6:20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나가 두루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셔서 많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루에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도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우리가 잘 될 때는 함께 하시지만 어려운 일을 만날 때는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요한웨슬리가 미국 선교 활동에 실패하고 돌아오다가 대서양에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요한 웨슬리와 그의 형제 찰스 웨슬리는 죽음이 두려워서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러던 중 배의 다른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는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그 무리들은 모라비안교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가 “당신들은 어떻게 이 위험한 시기에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차분히 앉아서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이 풍랑 중에도 하나님이 계시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요한 웨슬리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크게 회개 하고 믿음으로 무장하여 기독교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가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은 찬송이 찬송가 441장입니다. “♬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 많은 우리 주 나를 품어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구주 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잠시 계시다가 떠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풍랑 중에도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내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을 때는 함께 하겠다고 모여들지만 내가 약해지고 무능력해지면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내가 힘 있고 능력 있을 때도 함께 하시지만 내가 병들고, 내가 약하고, 내가 무능력하고, 내가 실패 할지라도 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혜사이시고, 성령님도 보혜사이십니다. 요한복음 14:16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은 아버지께 구하여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는 ‘파라클레톤’인데 ‘파라클레토스’의 단수 목적격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보혜사로 우리를 돕는 분이시고 성령님도 우리를 돕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도우시는데 어떤 면을 도우실까요?
1)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도우십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은혜로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은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생활도 도우시는 분입니다. 스가랴 12:10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셔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간구하는 심령을 주셔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간구하는 심령을 주셔도 내가 의지를 드리지 않는다면 기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주의 도움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현대교회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처럼 교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교회 생활에 대해서 사도행전 4:32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온 교우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공유할 만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앞 절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4:31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교회가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증거로 모인 곳에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파했고 천국과 같은 교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응답으로 성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교회 생활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도우십니다.
성령님께서 오신 목적 중에 중요한 것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성령님은 그 일을 위하여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 능력은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능력도 포함되지만 우리의 삶 전반에 걸친 다양한 능력입니다.
11월 첫 주에 오셔서 치유집회를 하실 최00선교사님은 의사이시면서 신유은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에게는 치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분이 오지에 가셔서 선교를 하시면 현장에서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에 제 기억으로는 하루에 평균 20명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제 몸상태를 알아보신 선교사님이 사역을 해주시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제 목에 손을 대는 순간 제가 핑 도는 것을 두 번 느꼈습니다. 처음해본 경험입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사역이 끝나고 나니 제 어깨가 얼마나 부드러워졌는지 모릅니다. 사역을 하시다가 제 오른쪽 어깨가 왼쪽 어깨보다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오른쪽 어깨를 수술했잖아요. 하나님은 그분에게는 치유의 능력을 주셔서 전도하고 선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몸이 아픈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몇 달 전에 어린이 성경학교를 할 때 오셔서 인형극을 하셨던 김흥영목사님은 남다른 재주가 있으십니다. 보셨다시피 인형극도 너무 잘하시고 풍성아트도 탁월하십니다. 하나님은 김흥영목사님에게는 인형극과 풍선아트라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김목사님은 그 능력으로 전도하고 선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어떤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음악의 능력을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미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버는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전문성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전문성이든 아니든 하나님은 그 능력을 주신 이유는 전도하고 선교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요즘 전도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전도에 힘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➀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게 사명이니까 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지상명령(至上命令)은 한문으로 풀면 지극히 높은 명령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절대로 복종해야 할 명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지상명령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특별히 부르심이 있을 때는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➁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전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전도만한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마음을 가지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도우십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면과 전도하고 선교하는 면만 도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도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활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주님의 도움을 받는 생활을 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잠언 3:6을 보겠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범사는 영적인 일과 전도와 선교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➀늘 정해진 기도생활을 하십시오. 이것이 영성의 비밀입니다. ➁예배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➂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말씀이 케논입니다. ➃자기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외식만 일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듯 남의 교회 기웃겨리는 것은 좋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내 교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➄범사에 주님의 뜻을 묻고 결재를 받으십시오. 왜요? 그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⑥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좋은 일도 감사하시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감사하십시오. 주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제입니다. 이것이 실제가 되려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성실해야 합니다. 불성실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기도도 성실해야 잘하고, 예배 생활도 성실해야 잘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성실성을 가지고 주님을 인정합시다. 그래서 늘 주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을 도우십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살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천국에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천하고, 가난하고, 무시당하며 살았어도 천국에 간다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천국은 반드시 가야 합니다. 지옥은 결코 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릴 수 있는 수많은 영적인 함정과 덫이 있습니다. 사방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마치 지뢰밭을 통과하듯이 영적 지뢰밭을 평생 동안 지나가는 것입니다. 언제 지뢰를 밟을지 모릅니다. 언제 빵하고 터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기 까지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교단은 칼빈주의에 속한 교단입니다. 칼빈주의는 칼빈을 추종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칼빈이 가진 신앙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칼빈주의에는 칼빈주의 5대교리가 있습니다. ➀인간의 전적 타락 ➁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➂예수님의 제한적 속죄 ➃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 ➄성도의 견인입니다. 언젠가 제가 여러분들과 칼빈주의 5대교리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운데 다섯 번째가 성도의 견인입니다. 이 말은 한 번 선택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견인차가 고장난 자동차를 정비공장으로 끌고 가듯이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님은 택한 자들을 도우셔서 한 사람도 천국 가는 길에서 이탈하여 지옥에 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0:28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누구도 예수님의 손에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뺏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 가는 동안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천국에 무사히 들어가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도우시고,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을 도우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우리의 신앙도 달라지고 우리의 생활도 달라질 것입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미국교포인 강동만 집사의 사냥개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입니다. 강 집사님은 사냥개 두 마리와 함께 사냥을 갔습니다. 그런데 사냥개가 산천이 진동하도록 짖어대는 소리에 달려가 보았더니 집채만한 호랑이가 소나무위에 올라가 있고 그 밑에서 사냥개들이 짖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총을 쏘아서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강 집사의 사냥개들은 사냥을 하면서 주인의 총 앞에 수많은 맹수들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해왔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사냥개들의 머릿속에는 “내 뒤에는 능력이 충만한 주인이 있고 주인의 총 앞에는 쓰러지지 않는 맹수가 없다”고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무서운 호랑이도 겁내지 않고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모든 짐승이 자기만 보면 두려워 떨고 오금을 못 펴는데 감히 사냥개 주제에 얼마나 저돌적으로 덤벼들고 쫓아오는지 숲속의 황제인 호랑이도 엉겁결에 도망을 치게 되었고 다급해지자 소나무 위로 피했다가 강 집사의 총에 처참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내 뒤에 주인이 있다는 사냥개의 확신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호랑이를 때려잡은 사냥개처럼 우리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언제나 내 속에 계시며 나를 돕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우리 앞에 장애물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기적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성경을 들고 함께 신앙고백을 합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