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지구/김행숙
사람들이 증발했다. 밤새 지구 크기의 우주선에
실려 간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다. 전기와 수도를 사용하는 삶이 변경되지 않고, 지
하철은 지하에, 메리의 아주머니는 정원에, 참새는
나뭇가지로부터 50센티미터에 비행기는 번개 근처
에………… 있는 모든 것이 옮겨지면, 공동묘지의 비석들도 줄지어 옮겨지는 것이다.
돌에 새겨진 모년 모월 모일의 날짜들이 무한 우
주 속으로 흡입되는 광경을 나는 상상했다. 왜 나는
데려가지 않았어요? 왜 모든 것 속에 나는 없어요?
나는 무의미해져도 무가 되지 않고, 무감각해져도
무가 되지 않고, 무한해져도 무가 되지 않고, 커도
어른이 되지 않고, 불행한 이웃을 그리워해도 불행
한 이웃이 되지 않고・・・・・・ 되지 않는 모든 게 진짜 나란 말입니까. 되지 않는 모든 것을 합치면, 결국 뭐라도 됩니까. 지구는 대체 몇 개예요?
신호등 하나가 남아 있었다. 지구에 남겨진 유일
한 신호처럼 붉은 눈을 뜨고 있었다. 내게는 습관이
남아 있었고, 나는 서 있었다. 그날 당신이 내게 말
을 건넨 거예요. 나는 약속했고, 무의미해져도 지킬
거예요. 약속 장소에 갈 거예요. 북극점에 꽂힌 한 개의 깃발처럼 감동적이었다. 나는 꼴깍 침을 삼키고, 어, 어, 어, 어, 드디어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박진
불가능한 회피'의 고유한 흔적
그렇기에 김행숙은 『에코의 초상』에서 낮모르는 타인의 죽음들을 '옆집'에서 일어난 '이웃'의 일로 받아들인다. "파도"에 휩쓸려 "되돌아오지 못한 사람(「저녁의 감정」)과 “철길" 위에서 "자살"한 사람(「철길」)과 "가스밸브를 오픈하”며 “죽음"을 선택한 사람(도시가스공사의 메아리」) 등은 모두 '세상의 모든 옆집'에 사는 그녀의 이웃들이다. 하여 그 죽음들 앞에서 그녀는 매번 "현기증이 감정처럼 울렁여서 흐느낌이 되고(「저녁의 감정, "몇 번을 죽었다 태어나는 사람이 되며(「철길」),
"침묵에 가장 가까워진 "목소리"로 익명적인 "인간의
몸" (도시가스공사의 메아리」)과 만난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자
에게 갖는 면제되지 않는 책임일 것이다. 그런 책임은.현존의 과잉(주체의 자발성과 능동성)이 아니라 그것의 치명적인 결핍인, '수동성보다 더한 수동성'에서 나온다. 이럴 때 그 수동성은 영향받을 수 있는 능력이자 상처 입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존재에 대한 염려로 귀착되지 않는 이 같은 주체의 주체성은 그저 재이고 티끌인 '나'를 찢어놓으면서 고양시킨다.
물론 이 책임 속에는 어떤 실패가 있다. 감당할 수 있
는 것 이상을 견디는 수동적인 참을성은 그 속에 '인내하지 못함'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또 덮" (밤에)으며 존재 안으로 돌아 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실패는 윤리적인 원자가(原子價)를 갖는 실패이며, 말해진 것의 윤리를 능가하는 윤리적인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