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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연꽃 같은 소설 〈심청전〉은 국문 필사본이 144편에, 국문 방각본이 79편, 국문 활자본이 34편, 한문 필사본이 2편이나 된다. 국문 소설 중, 이본으로 단연 4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고소설사에서도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설이다.
〈심청전〉은 판소리계 소설이다. 거타지, 인신공회, 맹인 득안 등의 전래 설화를 창극화한 판소리를 다시 소설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은 민중에 의해 첨삭되기에, 이를 ‘적층성’이라 부른다.
〈심청전〉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의 제수(祭需)가 될 때까지이며, 후반은 환생하여 왕비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가 다시 눈을 떠서 행복하게 살 때까지다. 이는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에다 유교의 효, 도교의 신선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해조가 〈강상련〉이라는 신소설로 개작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몇 마디 첨부해야겠다. 이해조는 20세기 초엽 신교육과 개화사상을 고취하면서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반영하였던 신소설 작가다. 그는 ‘〈홍길동전〉과 〈춘향전〉’에서 살폈듯이 〈자유종〉에서 〈심청전〉을 처량 교과서라고 폄하하였다. 그리고 〈춘향전〉을 〈옥중화〉로, 〈심청전〉을 〈강상련〉으로 개작하였다. 이 신소설 〈심청전〉은 광동서국에서 4판까지, 신구서림에서는 11판까지 찍어 냈으니, 그 인기를 어림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조가 개작하였다는 ‘강물 위의 연꽃’ 〈강상련(江上蓮)〉은 충남 서산 출생으로 개화기 가야금 병창의 명인인 심정순(沈正淳, 1873~1937)의 구술을 그대로 받아 적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정순 창본 〈심청가〉와 이해조의 〈신소설〉에서 다른 점은 이해조가 허두 부분만 소설적으로 개작한 것뿐이다.
이것을 보면, 이해조가 그렇게 〈심청전〉을 처량 교과서라고 폄하할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신소설’로 쓴 것이 실은 고소설 〈심청전〉과 이웃한 판소리 〈심청가〉를 받아 쓴 것에 지나지 않기에 말이다. 따지고 보자면 모든 세상사가 이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 옛것을 배워 이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세상의 정연한 이치다. 그래 ‘이 작품에 저 작품이 저 작품에 이 작품’ 있다는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란 말을 꼭 수입해야만 깨달을 일도 아니다.
〈심청전〉의 이본은 상당수가 있는데 그중 전주에서 간행한 완판본만 6종이나 되고, 그것도 여러 곳에서 여러 번에 걸쳐 판각되었으니 전주 지방에서 〈심청전〉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심청전〉 내용이야 다들 알겠지만 그래도 몇 자 적어 본다.
황주 도화동의 심학규와 곽 씨 부인은 기자 정성을 하여 딸 심청을 낳았다. 심학규는 봉사였고, 곽 씨 부인은 청을 낳은 후 죽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젖동냥을 다니는 심 봉사를 측은히 여겨 청에게 젖을 먹여 준다.
시간이 흘러 심청은 육칠 세가 되자 아버지를 이끌고, 십일 세가 되자 인물과 효행이 인근에 자자하였다. 십오 세에는 삯바느질로 아버지를 극진히 공양한다. 인물이 뛰어나고 재질이 비범한 청을 장 승상 부인은 수양딸로 삼고자 하나 청은 아버지를 생각하여 거절한다.
어느 날 늦게 돌아오는 딸을 마중 나간 심 봉사는 개천에 빠진다. 이때 몽운사 화주승이 그를 구해 주고 공양미 3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이후 심 봉사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고, 이를 알아차린 청은 남경 상인들에게 몸을 판다. 청은 인당수의 제물이 되는 대가로 받은 공양미 3백 석을 몽운사로 시주하고, 아버지에게는 장 승상 댁의 수양딸로 팔렸다고 거짓말한다. 드디어 배가 떠나는 날, 청은 승상 부인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하고 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를 한다. 뒤늦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심 봉사는 함께 고기밥이 되자지만 하릴없다. 인당수에 당도한 남경 상인들은 제를 올린다. 청은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인당수에 뛰어든다.
청은 용궁으로 가 후한 대접을 받고 어머니 곽 씨 부인을 만난다. 용궁 생활을 하다가 청은 연꽃을 타고 인간계에 나온다. 남경 상인들은 귀국하던 도중에 바다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한다. 그 연꽃을 건진 남경 상인들은 상처한 송 천자에게 이를 바치고 그 꽃 속에서 청이 나온다. 천자는 청을 황후로 맞는다. 청은 아버지의 일을 말하고, 천자는 맹인 잔치를 연다.
그동안 심 봉사는 뺑덕어미를 얻고 재산을 탕진한다. 뺑덕어미와 심 봉사는 잔치 소문을 듣고 황성으로 떠나지만 도중에 뺑덕어미는 황 봉사와 눈이 맞아 심 봉사의 행장까지 훔쳐 도망간다. 우여곡절 끝에 안 씨 맹인을 만나 인연을 맺고 심 봉사는 맹인 잔치에서 황후가 된 청을 만나 눈을 뜨고 부원군에 제수된다. 심 봉사는 안 씨 맹인을 맞아 70세에 생남하고 심 황후의 덕은 천하에 드리운다.
〈심청전〉에 대한 기록은 이미 조수삼의 《추재집》 ‘전기수’에도 보인다. 이때가 이미 19세기를 전후한 시기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독서 대중은 왜 이 〈심청전〉을 읽었을까?
〈심청전〉의 주제에 대해서는 불공에 따른 극락왕생 또는 불교적 재의(齋儀)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대체로 심청의 효를 주제로 본다. 고종 때 진주 부사를 지낸 정현석(鄭顯奭)은 《교방가요(敎坊歌謠)》에서 “〈심청가〉는 눈먼 아비를 위해 몸을 팔았으니 이는 효를 권장한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효의 성격에 대해서 논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주제에 대한 강조뿐 아니라 작품 중에는 당시 하층민이 겪어야 했던 가난과 가치관의 소멸로 평범한 의미의 효도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나 심청은 효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그래서인지 경판본 〈심청전〉에는 뺑덕어미가 나오지 않는다. 〈심청전〉에서 뺑덕어미는 심 봉사를 갖은 꾀로 꾀어서는 열다섯 살 먹은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팔아 시주하고 남은 돈을 몽땅 써버리고 샛서방 황 봉사와 함께 줄행랑을 놓는 마음보 고약한 여인이다. 이본마다 다르지만 완판 71장본 〈심청전〉에서 이 뺑덕어미의 품성을 어림작하고 효 문제로 넘어가겠다. 열다섯 어린 몸을 판 돈이 뺑덕어미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심 봉사에 의해 저렇게 시나브로 없어진다.
마을 사람들이 심 맹인의 돈과 곡식을 착실히 늘려서 집안 형편이 해마다 늘어 갔다. 이때 그 마을에 서방질 일쑤 잘하여 밤낮없이 흘레하는 개같이 눈이 벌게서 다니는 뺑덕어미가 심 봉사의 돈과 곡식이 많이 있는 줄을 알고 자원하여 첩이 되어 살았는데, 이년의 입버르장머리가 또한 보지 버릇과 같아서 한시 반 때도 놀지 아니하려고 하는 년이었다.
양식 주고 떡 사먹기, 베를 주어 돈을 받아 술 사먹기, 정자 밑에 낮잠자기, 이웃집에 밥 부치기, 마을 사람더러 욕설하기, 나무꾼들과 쌈 싸우기, 술 취하여 한밤중에 와 달싹 주저앉아 울음울기, 빈 담뱃대 손에 들고 보는 대로 담배 청하기, 총각 유인하기, 온갖 악증을 다 겸하였으되, 심 봉사는 여러 해 주린 판이라, 그중에 동침하는 즐거움은 있어 아무런 줄 모르고 집안 살림이 점점 줄어드니, 심 봉사가 생각다 못해서 물었다.
“여보소, 뺑덕이네. 우리 형편 착실하다고 남이 다 수군수군했는데, 근래에 어찌해서 형편이 못 되어 다시금 빌어먹게 되어 가니, 이 늙은 것이 다시 빌어먹자 한들 동네 사람도 부끄럽고 내 신세도 악착하니 어디로 낯을 들어 다니겠는가?”
뺑덕어미가 대답한다.
“봉사님, 여태 자신 게 뭐요? 식전마다 해장하신다고 죽 값이 여든두 냥이오, 저렇게 갑갑하다니까. 낳아서 키우지도 못한 것 밴다고 살구는 어찌 그리 먹고 싶던지, 살구 값이 일흔석 냥이오, 저렇게 갑갑하다니까.”
- 정하영 편, 〈심청전〉(완판 71장본)
서방질 일쑤 잘하여 밤낮없이 흘레하는 개같이 눈이 벌게서 다니는 뺑덕어미와 딸을 잃고도 저런 뺑덕어미와 동침하는 즐거움 때문에 집안 살림이 줄어드는 줄도 모르는 심 봉사의 모습이 그려진 대목이다. 이러한데도 이 〈심청전〉을 효로 읽어야 할까? 좀 떨떠름하지 않은가.
그래 효에 대해서 좀 짚어 봐야겠다. ‘동방의 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는 일찍이 이 효에 대한 문헌 기록을 쉽게 볼 수 있다. 신라의 경우는 지금의 대학격인 국학(國學)에서 《효경》이 필수 과목이었고, 《삼국사기》에 보이는 〈향덕(向德)〉, 〈효녀 지은(知恩)〉, 〈설씨녀(薛氏女)〉, 〈탁영전(卓英傳)〉 등이 모두 효에 관련된 이야기다.
2024.6.16.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정수인 · 판소리 · 심청가」 "희(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