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목포문학의 역사(목포문화원) |
2004/03/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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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목포문학의 역사(1945년-1977년)
□ 현대 목포의 문학
1943,4년경 그러니까 광복 이전부터 목포에서 문학활동을 하고 있던 동경 유학생 홍순태, 박문석, 박경창, 장병준, 백두성 등이 가끔 싼 설렁탕 집에서 막소주나 마시면서 문학열에 중독되어 있었을 때 동인지를 갖자고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국 광복 전에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고 1945년 해방을 맞아서야 이들은 「호남평론」에서 활동했던 문인들과 함께 문화운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논의하고, 시, 수필, 시론, 꽁트 등을 게재한 타블로이드판 문예지를 발간, 차남진, 천독근, 김철진을 비롯한 유지들로부터 작품집 기금을 위한 협조를 얻게 되었다. 사무실도 목포경찰서 앞에 있는 적산가옥 2층을 쓸 수 있게 되어서 문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휴식할 수도 있었으며 이 무렵부터 김일로, 이동주, 서광호 등이 가담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45년「예술문화」는 탄생되었고, 1946년 조희관, 차재석, 박기동, 박진철 등이 모여 조희관의 발의로 「보국문학」을 발간하기도 하는 등 당시 목포문학은 박화성, 조희관, 이동주, 이가형, 박기동, 박진철, 나천수, 박종옥, 오성덕, 심인섭, 정철, 홍순태, 박문석, 박경창, 장병준, 백두성, 서광호, 김일로, 차재석, 최기영, 심응섭, 박동화, 강운순, 이영해, 문일석 등이 주로 활동하였다. 1947년은 목포문학으로서는 매우 뜻깊은 해이다. 목포 최초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것은 곧 박화성의 첫 번째 단편집 「고향없는 사람들」출판기념이었다. 옛날 권번의 기생과 인력거가 한창이던 시절 대표적인 요정이었던 「국취관」의 무대까지 마련된 큰 방에서 성대한 문학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훗날 차재석은 「목포문단사」자료에서 이날의 모임을 이렇게 적고 있다. 1935년「신동아」에 게재되었던「고향없는 사람들」을 비롯한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펴낸 이 출판기념회는 기록할 만한 모임이었습니다. 그후 이 출판기념회가 계기가 되어 용당동 박화성의 서재 세한루는 목포문학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이때 동인지가 발간되어 책이름도 「밀물」이라 짓기까지 했지만 책은 끝내 못내고 말았다. 그러나 1948년에는 국문학에 열중해 오던 박종옥(1953년 작고)이 상원(桑園) 시조집을 발간 했는 이태극의「시조의 사적연구」와 김해성의「한국현대 시문학 전사」, 「한국시조 큰사전」등에 연인본으로 상언 시조집이 수록돼 있다.
1. 50년대의 목포문학
1951년 9. 28수복이 되자 해군 목포경비부가 옛모습으로 진주, 그에 따른 정훈사업으로 월간지「갈매기」와 주간지「전우」를 발간했다. 이때 해군 정훈실의 위촉을 받은 조희관, 이가형, 장병준, 백상건, 이진모, 장덕, 김장한, 차재석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갈매기」는 김평옥이「전우」는 조희관, 차재석이 각각 편집주간을 맡았다. 「갈매기」는 지령 4호로 중단되었지만은 6. 25이후 모든 출판계를 통털어 최초의 월간지란 기록을 세웠고 목포문단이란 바탕을 정립하는데 잊을 수 없는 금자탑을 세웠으니 1951년 2월 1일자 발행「갈매기」창간호를 보면, 시에 김현승, 조희관, 목일신, 이수복, 박흡, 이석봉, 박순자, 임성순, 장병준, 소설에 이가형, 김해석, 희곡에 차범석 등의 작품이 실렸고, 그 뒤를 이은 「갈매기」에는 정소파, 이영식, 이을호, 허건, 김평옥, 홍순태, 손철, 김방한, 이동주, 전병순, 김승한, 승지행, 임병주, 조영암, 박계주, 김송, 공중인, 국승돈, 이금남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을 인쇄해준 제일 인쇄소 정판길은 1982년에 작고했다. 한편, 항도출판사에서 발행한 「전우」는 16절판으로 20여페이지 분량에 시, 꽁트, 수필, 희곡, 중고생 작품을 실었다. 특히, 이 「갈매기」나 「전우」는 당시 광주 등지에 피난와 있는 문인들의 작품 발표무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51년 1월 27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목포지부」가 발족된 이래 차범석은 목포문화협회 주최 예술제에서 2막극「별은 밤마다」를 상연함으로써 실질적인 처녀작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52년 서근배의 단편소설 「항구」가 2년전 「탁보」(1950)에 이어 「문예」에 추천됨으로써 목포 출생의 자랑스러움을 널리 알렸고, 강범우는 학생잡지 「학생예원」을 주관했으나 아깝게도 1집만 내고 말았다. 1952년 9월 5일자로 창간된 「시정신」은 이병기, 신석정, 서정주, 김현승, 박흡, 이동주의 시와 계용묵의 산문 그리고 고 박용철의 시를 싣고 있어 명실공히 한국 대표시인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5백부 한정판으로 화려하게 창간된 「시정신」은 그후 1954년 6월 15일에 2집, 1955년 5월 1일에 3집, 1956년 9월 19일에 4집, 그후 10년 뒤인 1966년 2월 10일에 5집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1953년부터 목포에는 조희관, 김우정, 김일로, 전승묵, 권일송, 차범석, 백두성, 박화성, 차재석, 김영복, 박순범, 이남식, 박정온 등이 활발하게 문학활동을 하고 있음에 영향을 받은 데뷔 이전에 학생 시인들이 많았는데 즉, 목포고의 정규남이 주동이 된 「시와 산문」, 목포사범의 김영근을 비롯한 「벌판」, 「별밭」, 목포여고의 김광자를 비롯한 「은원」등의 동인활동은 당시 어느 지역 못지 않게 활발했다.
또한 1955년에 최성문, 안정훈, 김우정, 강보현, 이영식, 오유찬 등의 「각서」동인활동이, 그리고 1959년의 김소남, 김희웅, 김길주, 고광득 등이 참여한 「낙서」동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954년 차범석이 「근대 1막극선」이라는 희곡 번역집을 항도출판사에서 발간해 냄으로써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희곡집이 출간된 희귀한 기록을 남기고 있거니와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목포의 본격적인 등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등단문인으로는 최일수(조선일보 평론), 차범석(조선일보 희곡), 이창렬(한국일보 소설), 박동화(서울신문 희곡), 권일송(한국일보, 동아일보 시), 김재희(문학예술 시), 윤삼하(조선일보 시), 박훤(전남일보 시), 천승세(현대문학 소설), 최덕원(시조문학 시조), 정일진)한국일보 시), 박문재(여수일보 시), 최인훈(자유문학 소설), 백두성(자유문학 소설), 윤종석(국도신문 시), 전승묵(한국일보 시) 등이다. 한편 1958년 9월 15일 오후 4시 목포방송국 공보관에서 재목 예술동인 50여명이 참석하여 고 소청 조희관의 추도 묵념에 이어 「목포문화협회」창립총회를 갖고 회장에 남농 허건을 추대했으며, 문학쪽에서는 김일로가 부회장, 차재석이 간사장, 백두성, 권일송이 문학부문 간사를 맡았다. 이어 9월 20일 「목포문학회」가 조직되어 회장에 차재석, 부회장에 백두성, 간사에 전승묵, 김영복, 정규남, 정태정 등이 선출됨으로써 명실공히 조직적인 문단활동을 펼 수 있었다. 이 해에 특히 두드러진 활동으로는 「청도문학」동인들로서 이들은 학생동인 「송사리」「해솔」「벌판」「밀꽃」「여울」「보리수」「바위」「호박」등이 훗날에 성장함에 따라 합동으로 조직한 동인들인데 당시 동인으로는 최재환, 이태웅, 김순광, 신균준, 이인택, 이석운, 이광섭, 박영호, 박정환, 박준배 등이다. 또한 8월 5일 오후 8시 청호다방에서는 재경 목포문학회 주최, 유달문학회 주관 <문학과 음악의 밤>이 개최되었는 바 주민식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행사에는 천승준, 천승세, 이태식, 이광진, 이광섭, 민정열, 권일송, 정규남, 최두호 등이 각각 작품발표를 했다
2. 60년대의 목포문학
1960년대 접어들면서 1월 19일 길다방에서는 목포문학회의 <까뮈의 밤>이 개최되었는데 이것은 이창열이 자동차 사고로 숨진 까뮈의 추도식을 차재석에게 제안한데서 비롯되었다. 특히나 1960년이 목포문단사에서 길이 기억되어져야 할 획기적인 점은 3월 15일 「목포문학」창간호가 항도출판사에서 발간된 사실이다. 발행인은 차재석, 편집의원은 배두성, 전승목, 차재석, 김우정, 권이송, 정규남 등이며 총 181페이지의 분량이다.
「목포문학」창간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작 상주(1막) 차범석/상이형 백두성/쉬어가는 사람들 찬승세/탈출 천승걸
·시 하년유한 이동주/자세 전승목/유달산 권일송/깜한 정규남/부동항 김재희/산 김정숙/춘향이에게 송철렵/싸이렌 범대순/울타리 정영래/ 검척기 이송희/역사시대 정지하/비를맞는 탑 김인자/정담대요(동요) 김일로
·목포문학의 발자취 박화성 ·번역 자연에 관한 단장 괴에테작 이만성역 / 마-가렛을 위한 비가 스펜더시 윤삼하역 ·평론 현대문학의 시험 이남식 한편 박화성이 제 2회 묵포문화상을 권일송·안도섭이 전남도문화상 문화부문 장려상을 수상했고 12우러 1일부터는 제 2회 목포시 종합예술제가 열려 어린이 글짓기,중고등학생 자작시 낭송, 고등학생 토론대회를 개최했다.
1961년 목포의 정예작가 최하림, 윤종신, 정일진, 김중식, 최규철, 김소남, 최광섭, 박금석 등으로 구성된 「아틀라스의 사람들」이나 김우정, 최성민, 차양, 라향 등의 「아카데미」동인들은 문학을 위한 씨뿌리기에 최선을 다했으며, 1962년은 1월 29일부터 2월2일까지 최하림 연출로 샤무엘 베케트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연극공연으로부터 한해가 시작되었다. 이때 참석한 연극인으로 김소남, 양현필, 이청하, 박석규, 최득수 등이다.
3월 10일엔 목포문화협회의 발전적인 해산에 따라 한국예총목포지부로 개편, 차재석이 예총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문협목포지부 초대 지부장까지 겸하게 되었다.
김현, 최하림은 강호무, 김산초, 김승옥, 김치수와 함께 「산문시대」동인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후 5집까지 발간했다.
1966년은 목포문학사에서 기억되어야 할 시전문동인지 「흑조」 창간을 비롯 60년대 학생동인의 대명사인 「강강수월래」「징검다리」「뚝배기」등의 활동이 컸다.
먼저 1966년 12월, "어둠을 지나 밝음에로 또는 미명을 거쳐 참다운 삶에 옮겨가고자 하는 의지로서의 검정색 이미지"를 내걸고 청마 유치환의 결려사를 책머리에 실으면서 「흑조」창간호가 나왔다.
1967년 5월 1일 「보름시대」문학동인들의 「보륨시대」창간호가 나왔다. 이들은 생활하면서 문학을 닦고, 문학을 닦으면서 생활하는 생활문학의 시도로 이태웅, 정영수, 김관재, 임차랑, 박용주, 김봉식, 명기환, 이재용, 임중철, 최덕원, 김충곤, 차원재, 박동철 등이 참여한 제1집을 발행한 후 1970년 10월까지 6호를 발간했으며, 그동안 나순녀, 김순녀, 안양순 등이 동참했다.
1967년 10월 1일에는 「해안선」문학동인들의 동인지 「해안선」창간호가 나왔다. 당초 무안군 관내 교직원중 문학에 취미와 소질을 가지고 있는 박현숙(회장), 김용원(부회장), 이준행(총무), 나영복, 김정옥, 김현수, 박종봉, 김성자, 김길순, 양대성, 강갑순, 양문열, 양재철, 김원기, 박진남, 김준기, 홍성구, 박무웅 등이 8월 8일 발기인 총회를 거쳐 조직한 것이나 회원 중 타시군으로 전출할시라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회원으로 존속할 수 있기(동인회칙 제3조) 때문에 후에 목포, 신안 일대의 교단문인들의 중심처가 되었고 이에 윤미순, 김상수, 김성원, 양계승, 김정원, 이무성 등이 동참하여 1971년까지 계간 발행으로 8집까지 발행했다.
1967년 12월 5일 목포시내 국민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문학써클 목요회」의 동인지 「목요회」창간호가 발행되었다. 김학래는 동인지 창간호 서문에 「목요회」의 특생을 첫째 한결같이 젊다는 것, 둘째 여자회원이 많다는 것, 셋째 학생시절 영특한 사람들이라 모두 영재교사들이라는 점을 들어 매주 목요일 문학의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동인으로는 김학래, 최두호, 김관석, 임차랑, 이태웅, 김봉식, 김은정, 이요한, 박옥진, 김운희, 신덕순, 해정미, 윤덕, 박공자, 주민자, 천원주, 김화자, 김순녀, 정성심, 박춘자, 박성천 등이다.
1969년 1월 15일 「목포교육」창간호가 목포시교육연구소 간행으로 선보임으로써 목포문학의 작품활동지가 되었는 바 김학래의 계속적인 편집의 공이 컸고, 5월 10일에는 새로운 동인지 「목문학」이 창간됨으로써 70년대 목포문학의 앞날을 밝게 예견시켜주기도 했다.
한편 60년대에 등단한 문인들은 다음과 같다.
천승준(현대문학,평론), 윤종석(자유문학,현대문학,시), 조정자(여원,시), 김정숙(현대문학,시), 김하림(자유문학, 시), 박홍원(현대문학, 시), 최일환(아동문학, 동시), 김현(자유문학, 평론), 김송희(현대문학, 시), 최하림(조선일보, 시), 김종한(서울신문, 동화), 김길호(중앙일보, 희곡), 천승제(국립극장, 희곡), 김학래(새교실, 교육자료, 수필), 박훤(TBC-TB, 드라마), 송기숙(현대문학, 평론), 정규남(현대문학, 시), 박건한(문학, 시), 원갑희(중앙일보, 희곡), 정영일(문화공보부, 시), 강무창(전남일보, 소설), 김엄조(호남매일신문, 시), 김지하(시인, 시), 양동온(교육자료, 시)
3. 70년대의 목포문학
70년대 목포문학은 1970년 한국문협 지방순회 강연회(남일극장)으로부터 시작된다.
1971년에는 12월 24일 목포시 교육장 박찬대가 발행하고 김학래, 김관재, 손수남, 박성천, 김정신등이 편집한 「어린이 목포」가 있다. 특히 「어린이 목포」는 동요 동시를 <노래글>, 산문을 <줄글>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이름지었고, 목포시내 어린이들의 글 42편을 실어서 목포문학의 새싹키우기 운동으로 번졌다.
1973년 11월 9일 목포YMCA 강당에서는 제2회<전남아동문학의 밤>이 전남 아동문학회와 현대아동문학사 주최로 성대히 치뤄졌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문협 부이사장 김요섭, 한국문협 아동문학분과회장 박화목, 현대아동문학 주간 송명호, 한국 아동문학회장 김영일이 래목했다. 아울러 이 해에 이어령의 문학강연이 남일극장에서 있었다. 1974년의 큰 행사로는 7월 13일 밤 YMCA 3층에서 일주일전에 타계하신 신석정 선생을 기리는 <석정 추모의 밤>이었다. 이날 최덕원 문협지부장의 사회로 박순범의 추모자, 차재석 예총지부장의 <석정의 생애와 인간성>에 이어 이생연, 박동철, 최일환, 최연종, 승린, 문선지, 김경자, 김용일의 <석정작품>낭동과 김신철, 조희범, 이태웅, 김관석, 정갑순, 김학래, 양문열의 자작시 낭독이 있었다.
한편 7월 8일 목포YMCA 강당에서는 전남아동문학회 주최 박화목 초청강연 및 <소라 아동문학의 밤>이 있었고, 이어서 다음날 김신철이 박화목 선생을 모시고 <혜인문학의 밤>을 가졌다.
특히 1975년 9월 13일은 목포시내「대학 학도호국단 문예부 연합체」(목포교육대학, 목포성골롬반간호전문대학, 목포해양전문대학)가 지형원을 운영위원장으로 발족, 11월 18일부터 24일까지 본정다실에서 시화전을 개최하고 시화전이 끝나는 24일 오후 7시에 YMCA현관에서 문학의 밤을 열었다. 또한 배재남, 박영, 김맹진, 김재풍, 신정숙, 김옥천 등으로 구성된「씀회」가 비원다실에서 12월 23일부터 28일까지 <1975,겨울시화전>을 열었다.
1976년 새로이 동인지 「청호」와 「나루」의 창간을 본 해이기도 하다.
「청호」는 이미 1974년 목포의 옛 이름 청호의 기치를 들고 40대의 문인들이 향토를 지키면서 문학하는 목포의 풍토를 회복하자는 뜻에서 결성된 동인회로 김신철, 김재희, 문성원, 양문열, 박순범, 이태웅, 최일환, 최재환, 김학래 등이 작품을 모아 2월 20일 「청호」제 1집을 발간했다.
「나루」는 년전에 결성된 목포시 대학문예부연합체의 동인지로 강정숙, 신수균, 박순례, 신종식, 황부영, 최점순, 지형원, 전성연(이상 시), 박영자, 박원석, 윤종기, 정희숙, 이문임, 문행규, 추향수, 양선일(이상 수필), 오재원 박수호(이상 논단), 정연근, 정금덕(이상 창작, 꽁트), 채희윤(희곡)등이 참여하여 3월 6일 발행했다.
1979년에 특기할 것은 12월 21일 구 유달호텔 3층에 「청하출판사」가 생긴 일이다. 대표에 김남표, 기획에 하동민, 편집위원에 주정연, 최병두, 정설헌으로 되어있는 출판사 「청하」는 이 지방의 출판문화 창달에 기여하고자 문을 연 것과 10월 9일 오후 7시30분 노동회관에서 예총목포지부 주최로 제1회 <목포예술인대회>가 열려 한국예총부회장 차범석, 한국문협부이사장 이동주의 예술강론이 있었던 점이다.
1970년대에 등단한 문인은 다음과 같다.
정중수(한국일보, 시, 동화, 중앙일보, 동시), 허형만(월간문학, 시, 아동문예, 동시), 주정연(시집『인구문제』), 이지흔(전남일보, 희곡, 조선일보, 소설), 윤미순(새교실.동시),김청원(중앙일보, 서울신문,희곡), 정일진(현대문학, 시), 김종두(소년,동시), 최재환(중앙일보,동시, 시문학.시), 조승기(중앙일보, 소설), 박훤(월간문학,시) 김수기(서울신문,넌픽션), 서오군(월간문학,동시), 김양호(한국일보,소설), 김재용(아동문예,동시), 박순범(아동문예,동시)
4. 80년대의 목포문학
1980년 5월 11일 목포예식장에서 목포문협 첫행사인<한국문인협회 전국순회 문학강연회>가 열렸다. 이 고장 문학발전과 문학 인구의 저변확대를 기하고자 열린 강연회는 청호 라인온스클럽(회장 김창룡)의 협찬으로 이루어졌는데, 김동리의 「신인간주의적 사실주의 문학」, 정을병의 "문학에 있어서의 진실문제". 김윤성의 "왜 시를 쓰는가?"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또한 8월 2일부터 4일까지 목포해양전문대학에서는 "현대시의 실험과 개방성"이라는 주제로 <1980년 한국현대시인협회 세미나>가 열렸다. 이때 김규태의 "해양문학과 현대시" 신세훈의 "시는 왜 존재하는가" 함동선의 "현대시는 어디만큼 왔나", 김재희의 "목포문단의 오늘" 이라는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어 11월 3일에는 밀물다실에서 <고 이동주 시인 추모 문학의 밤>을 가졌다. 이 해에 "시류"문학동인회가 양동온에 의해 조직되기도 했다.
1981년 목포예총에서는 제1회 남동, 남교문화예술상을 제정하고 향토문화 예술 활동에 헌신적인 봉사와 문화예술 활동에 크게 이바지하여 목포예총 회원으로서 긍지를 일깨워 준 회원에게 본상을 수여했는데, 차재석이 남농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또한 8월 19일에는 해양전문대학에서 전남아동문학가협회 주최 아동문학 발전 세미나, 12월에는 소설가 이동하 교수 초청 RCY 중고교 문학의 밤이 각각 있었다.
1982년에 문협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영산강 하구둑에서 <목포문학의 과제>라는 주제로 제1회 목포문학 호반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서울에서 박화성도 참석한 가운데 이동하, 주정연, 조승기, 김학래 등이 주제발표를 했다.
특히 1982년은 월간 "소설문학" 10월호에 지방문학의 현장인식을 위한 기획좌담 세 번째로 <목포편>이 소개돼 기억되어질 해이기도 하다.
"소설문학"의 좌담은 8월 30일 성일식당에서 이동하, 주정연, 최덕원, 최일환, 조승기, 강무창, 허형만 등이 참여하여 토론했던 내용이어서 <예향문학의 뿌리>를 캐고 아울러 정리한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남는다.
그리고 이 해 6월 15일 정림다방에서는 최건, 김찬호, 명기환, 최덕원, 강무창 등에 의해 탄생된 제1회<해안선 시와 산문의 밤>이 열렸다.
1983년 목포예총의 제3대 지부장과 문협지부장등을 역임하면서 목포 예술문학의 증인으로서 목포예총과 목포문학을 널리 이해시키고 향토 예술인의 긍지를 심어준 다목동 차재석이 2월 6일 타계한 소식으로부터 한 해가 시작되었다.
특히 1983년도에는 고 소청 조희관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높은 유지를 길이 계승코자 유족들의 지성어린 뜻에 의해<소청문학상>이 제정되었는데, 소청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조호현, 위원 조수향, 황의돈, 박순범, 이생연, 최일환, 윤종석)는 제1회 수상자로 권일송을 선정, 12월 22일 오후5시 행복예식장 2층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한편 이 해 12월 7일은 "목포교단문학회"가 창립되어 회장 박순범, 부회장 최병두, 박종채, 신정숙등 5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4년 6월 6일엔 제2회 목포문협 심포지엄이 "남도문학의 맥을 찾아"라는 주제로 강진의 김영랑 생가와 다산초당 그리고 해남 고산 녹우당을 답사하면서 실시되었는 바 이날 주제발표는 허형만이 "영랑 시와 남도의 미", 이생연이 "다산문학과 남도의 기", 최병두가 "고산시조와 남도의 혼"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7월 20일은 KBS목포방송국(국장 양회선)이 주최하고 문협이 주관한 가 행복예식장에서 열렸다. 문학에 소질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문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고장 청소년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는 제1부에서 허형만, 최병두, 최일환, 황의돈등 기성문인의 찬조시 낭송과 목포시내 고등학교 문학도 24명의 시가 낭송되었으며, 제2부는 작가인 이동하가 「문학은 왜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문학강연을 했다.
또한 8월 6일엔 행복예식장에서 정다운 스님을 비롯한 각지의 시인들과 부름회 회원들로 구성된 <전국 국토 시인 순례> 시낭송 대회가 있었으며, 한편 같은 날인 8월 6일부터 7일까지 청해사에서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주체 제11회 아동문학 세미나가 「오늘의 어린이 현실문제와 아동문학」이라는 주제로 성대하게 열렸다.
특히 또 하나 전국적인 행사는 10월 27일 목포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84목포대회」이다. 이날 오후2시 시조시인 선정주의 개회식으로부터 시작된 현대시조 목포대회는 중·고·일반부 백일장과 서울여대 김준교수, 현대시조 이우종 주간, 박순범, 허형만 순으로 「현대시조의 재조명」이라는 주제에 따른 발표가 있었다.
1984년의 동인지로는 3월 2일, 새로이 발족된 「시울문학회」의 동인지「시울」창간호가 나왔다. 「시울」창간호는 회장 양회성, 편집 홍로기를 비롯한 김현숙, 김영미, 김화숙, 김선기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월에 2호, 7월에 3호, 9월에 4호, 11월에 5호를 내는 등 한 해에 5권씩이나 동인지를 발간하는 동안 김민재, 이동범, 최재건, 류현옥, 박소미, 서유미, 고춘림, 황금산, 김광우 등이 동참했다.
또한 「새솔문학회」가 2월 중순 발기식에 이어 3월 1일 첫모임을 갖고 3월 31일 동인지 「새솔문학」창간을 보았다.
1985년에는 목포시내 각 대학 문학동아리인 「글빛」「쌍룡」「Y」「조약돌」「한솔」 및 기존「시울」동인들이 모여 목포청년문학회를 결성했다.
목포문협은 8월 11일 한국문협 전국 지부장 회의(경주)에서 우수지부 표창패를 받았으며, 문학심포지엄(6.6해남 녹우당)과 청소년 문학강좌(5.4 KBS), 어린이 백일장대회(7.8 KBS), 문협송년문학의 밤(12.22)등의 행사를 치루었고, 소청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는 제1회 소청 조희관선생 추모 문학의 밤 및 제3회 소청문학상 시상식(11. 16 행복예식장)을 가졌다.
한편 3월 21일 한국문협 김동리 이사장이, 11월 19일 여성문학회 구혜영, 김양식, 박정희 시인이 각각 목포를 방문했으며 7월 25일 현대문학사가 지방순회 문학강연을 개최한데 이어 9월호에 목포시인 특집을 실었다.
그러나 2월 4일 문성원 시인이, 12월 8일 황의돈 시인이 각각 타계했다.
1986년 시작은 2월 8일 목포시 주관 시내 초중고생 대상 국토공원화 운동을 위한 백일장이 개최되면서부터이다. 그후 흑조시인회가 8월 21일 황금찬시인 초청 <시의 밤>(이어도)과 12월 6일 창립 20주년 기념<시의 밤>(KBS공개홀)을 개최했고, 목포문협이 문학심포지엄이 「남도문학의 뿌리를 찾아」(6. 6일, 담양 식영정, 송정리 박용철 생가), 다목동 차재석 선생 공적비 건립 및 추모문학의 밤(6. 22, 행복예식장), 황의돈 유고시집 「백년초」발간기념회(12. 7, 시립도서관) 행사를 치루었다.
특히 목포문협은 4월 19일 소설가 박범신, 박양호 초청 독자와의 만남 제1회 목포문학 신인상 시상식을 아람 커피숖에서 가졌는데 수상자는 김재석씨였다. 이어 같은 장소에서 7월 12일 아동문학가 엄기원, 차원재 초청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으며, 아동문학가 김재용 시인이 「새벗」출신 제1회 아동문학 세미나와 자신의 시화전(세종다방)을 개최하기도 했다.
1987년은 새해 벽두부터 소설가 한수산을 초청, 지난해와 같은 「작가와의 만남」(1. 20 아람커피숍)이 이루어졌고, 남도문학 심포지엄(6.6)과 독서강좌(7.4)도 꾸준히 이어졌다. 9월 15일은 목포출신 정규남 시인아 타계했다.
5월 10일 기존의 한국문협 목포지부가 해체되고 그 대신 전남지부(지부장 최일환, 사무국장 김수기)로 결성되었따가 8월 26일 다시 환원되어 새로이 임원을 선출하고 새출발을 했다(새 지부장 김학래, 부지부장 김재용, 박길장, 총무 윤종석, 감사 정순열, 양회성)
1988년 1월 30일 목포 출신 소설가 소영 박화성 선생이 타계했다. 한국문협 제24회 문학 심포지엄 「분단시대와 문학사 재조명」이 6월 3일부터 5일까지 신안비치호텔에서, 아동문예사 주최 제3회 해변청소년 문학교실이 7월 30일 봉황예식장에서, 목포 시인들의 시낭송회가 4월 22일 전원커피숍에서, 시울문학회 하계세미나가 7월 10일 강진에서, 그리고 목포문협 주관 독서교양강좌가 2회에 걸쳐 가톨릭 회관에서, 목포문학 송년의 밤이 12월 26일 청호식당에서 각각 이루어졌다.
1989년 9월 1일 박순범 시인이 타계했다. 5월 8일부터 12일까지 전남도민 체육대회 경축 회원 시화전이 황실다방에서 열렸고, 독서교양강좌가 2회(6월 3일, 7월 15일)에 결쳐 실시 되었다.
참고로 장르에 관계없이 1980년대에 등단한 목포출신 및 목포거주 문인은 다음과 같다.
박록담(한국시학, 현대시조, 시조문예, 월간문학), 고정선(교육자료, 아동문예), 김선기(경향신문 생활수기), 최건(시문학), 정기석(시문학), 최병두(시와 의식), 김재용(새벗), 조승기(시와 의식), 김정삼(월간문학), 명기환(시문학), 양회성(아동문예, 월간문학), 김찬호(시와 의식), 김수기(아동문학평론, 월간문학), 정순열(월간문학), 김재석(세계의 문학), 신정숙(현대시학), 장근양(영화진흥공사, 스포츠서울), 김광채(아동문학, 수필문학), 채승재(동양문학), 이중기(동양문학), 윤미숙(문학과 의식), 김하린(시집), 조기호(광주일보), 박문재(현대문학), 김관재(한국시), 이충이(월간문학)
5. 90년대 전반기의 목포문학
1990년 4월 16일 유달산 소재 목포시사에서 전국 유림 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시 백일장대회가 열렸다. 특히 8월 31일 민간단체인 「우리문학기림회」(회장 이명재 중앙대교수, 평론가)에서 목포 출신 문인 박화성, 김우진, 김진섭의 표지비를 세움으로써 이 지역 최초의 문인 현창사업으로 평가받아TEk.
목포 KBS 초청 서울대 박동규 교수(평론가) 문학강좌(7월 2일), 동원산업과 YMCA 공동주최 어린이「바다」글짓기대회(5월 20일), 교양강좌(6월 30일), 고 박순범 시인 추모 겸 유고집 「임성리 옛집」출판기념회(8월 19일, 초원관광호텔)등의 행사가 있었다. 또한 흑조시인회에서는 신년시의 밤 (1월 15일), 흑조시 낭송회(7월 7일), 시의 밤(12월 5일), 25주년 송년시의 밤(12월 29일)등의 행사를 치루었다. 목포시립도서관에 향토문인의 작품실이 설치되기도 했다.
1991년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신안비치호텔에서 한국소설가협회 제13차 심포지엄이 「한국 소설의 세계성지향」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고, 목포지역 방송통신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글문학회 「터」(회장 원순주)가 창립되었따.
1992년 목포문협 주최 제1회 소영 박화성 선생 기념 백일장 대회(12월 12일, KBS)와 전남시인협회 주최 해변 시낭송회(8월 28일, 대반동 유달해수욕장 방파제)등이 개최되었으며, 향토문화관에 <박화성 문학기념관>이 설치되었다.
1993년에는 한국희곡작가협회 하계세미나(7월 22일 ∼ 25일, 신안비치호텔)와 한국아동문학회 하계 세미나(8월 14일 ∼ 15일, 신안비치호텔)가 연달아 열리었고, 그리고 목포시립도서관이 제1회 목포시민 백일장대회를 개최했다.
한편 목포민예총문학위원회가 「민족문학과 지역문학의 중흥과 창달」을 취지로 1993년 12월에 발족했다. 강흐들, 김주완, 유종화, 이기봉, 문영란, 김성호, 이수행, 박관서, 고운, 김승필, 최정윤, 정경이 등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목포민예총 문학위원회는 매년 여름 대반동 해수욕장에서의 해변시 낭송회와 남도 푸른시 낭송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95년에는 연간집 「민예」와 「민족문학회보」를 발간하고 있다.
목포민예총 문학위원회의의 참여 작가 중 유종화, 이수행, 박관서, 고운, 김성호, 강흐들 등은 광주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에도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고, 특히 1996년 11월 30일 목포에서 열리는 영호남문학인대회도 치루었다.
1994년은 목포시문학회가 10월 11일 초원관광호텔에서 「시와 함께 시인과 함께」시낭송회를 그리고 11월 1일 새마을문고 3층 강당에서 시의 날 「목포시낭송회」를 각각 가졌다.
1995년 4월 15일 문학과 지성사 김병익 대표를 비롯한 김현문학비 건립위원회가 향토문화관 뜨락에 건립한 김현문학비 제막식이 있었다. 한편, 전날인 4월 14일 저녁 목포 MBC 공개홀에서는 전야제 형식의 <목포문학의 밤>이 열렸는데 허형만 시인의 사회로 김지하, 최하림 시인의 문학강연과 황동규, 황지우, 김혜순 시인 그리고 목포 거주 시인들의 시낭송회가 있었다. 아울러 제막식이 끝난 후 김병익 대표는 목포문학 중흥을 위해 창작기금 1천만원을 목포문협에 전달했다.
연초 최재한 시인이 새로이 목포문협 회장으로 직무를 수행했으나 11월 17일 최재한 지부장의 사퇴로 김재용 지부장이 선임되었고 3월 22일 김엄조 시인이 제11대 한국예총목포지부 감사에 최일환 시인이 목포 YMCA 부이사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윤종석 시인이 목포를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흑조시인회에서는 1월 21일 「흑조문학」100집 출간 겸 새해맞이 시낭송회를 봉황예식장에서 열었고 전남시협은 5월 27일 청소년 시낭송회를 11월 4일 시의 날 기념 시낭송회를 각각 남경문화회관에서 개최했다.
이 해에는 목포민예총의 「민예」와「민족문학회보」흑조시인회 동인지 24호, 청호문학 동인지 20호의 발간이 있었다.
1996년 3월 20일 가톨릭회관에서는 <문학회 뻘>창립식이 있었다. 이들은 참된 문학, 삶의 문학을 열어간다는 문학운동의 기치 아래 1995년 8월 20일부터 준비해왔었다. 회원으로는 이혜용, 안정배, 정재호(이상 시), 박현수, 홍미희, 김대호(이상 소설), 최현주, 김한곤(이상 희곡·시나리오)등이다.
8월 6일에는 목포문협과 전남시협 주최로 '시로 찾아가보는 목포의 뱃길 백리' 선상 시 낭송회가 있었으며 제4회 전남 청소년 시낭송회가 5월 18일 서남방송 공개홀에서 서울문학동인회 시낭송회가 옛 소방서 강당에서 각각 열렸다. 3월 22일 목포문협의 「목포문학」18집 출판기념회를 그리고 7월 8일 목포시 문학회 동인지 10집 「깊은바다 섬이 되어」출판기념회가 시립도서관에서 각각 열렸다.
한편, 11월 30일 광주전남민족문학작가회의의 영호남문학인대회가 남경문화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으며 그동안 중단되었던 목포문학 신인상이 다시 실시되어 김갑수씨가 시부문에 당선되었다. 또한 이생연 시인이 전남공무원학회 회장에 연임되기도 했다.
참고로 장르에 관계없이 1990년대에 등단한 목포 출신 및 목포 거주 문인들은 다음과 같다.
정순열(계몽사, 세계일보, 삼성문화재단), 장근양(스포츠서울), 조기호(조선일보), 우영숙(동양문학), 고복록(문학세계), 이생연(문학세계), 최완복(월간문학), 이태웅(한국시), 최주자(한국시), 김광채(동양문학, 한맥문학), 강성상(한국시), 박주익(시세계), 고재복(문학춘추, 시세계), 이윤정(문예한국), 장희(광주일보), 유종화(시인과 사회, 민족문학), 박관서(문학과 사회), 강흐들(시세계), 안효순(한겨레문학), 이수행(광주일보), 최훈주(우리문학), 김선태(광주일보, 현대문학), 김영천(문학세계, 한국시), 김혜경(문학춘추, 한국시), 박행자(한국시, 해동문학), 안정환(문학춘추, 순수문학), 이명길(문학춘추), 이환채(창조문학), 박미경(우리문학), 유용남(시세계), 임용운(겨레시조), 강영애(문학춘추), 서재복(문학21), 김용원(세기문학, 문학춘추), 이현보(문학춘추), 김문옥(창조문학), 박시린(한국시), 전상동(아동문학), 김병남(한국시), 박춘배(한맥문학, 평화신문), 권기태(아동문예), 김정식(문학춘추), 정대성(아동문예), 김상근(문학춘추, 순수문학), 김경춘(우리문학), 김동하(한겨레문학), 신화금(시문학), 유태원(문학세계), 서영호(문학세계), 최현규(문학춘추), 안정배(전남일보), 윤정애(문학춘추), 김혜경(KBS-TV)
(목포개항백년사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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