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오죽헌(烏竹軒)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가 탄생한 율곡의 생가이다
. 1975년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강릉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현재 오죽헌에는 율곡 선생의 사당인 문성사(文成祠)와 율곡 선생의 어미니인 신사임당이 태몽을 꾸었다
는 몽룡실(夢龍室), 정조의 명으로 지었다는 어제각(御製閣), 오죽헌의 사랑채에 해당하는 구옥(舊屋),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 매창 등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율곡기념관 등이 있으며, 입지문(立志門) 너머로
강릉시립박물관과 향토민속관 그리고 강릉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유적 등이 있다.
오죽헌의 정문을 들어서면 시원한 진입로를 지나 자경문(自警門) 앞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 자경문 안쪽
이 오죽헌이라 할 수 있다. 자경문을 들어서면 율곡기념관 앞의 제법 넓은 공간이 있고, 자경문 앞에 율
곡선생 유적 정화 기념비가 있는데, 그 옆으로 율곡 선생의 사당인 문성사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문성사
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신사임당이 율곡 선생의 태몽을 꾸었다는 몽룡실이 있다. 이 몽룡실(夢龍室)은 전
형적인 조선 초기의 별당 건물로 현재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도 그리 큰 건물은 아
니지만 그 고풍스러움이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문성사 왼쪽 옆으로는 이 집의 이름이 유래된 오죽(烏竹)이 아직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오죽헌(烏竹軒
)이란 이름은 집 주위에 까마귀 색처럼 검은 대나무(烏竹)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문성사와 어제각
주변에는 아직도 오죽이 있문성사 왼쪽, 몽룡실 뒤의 문을 지나면 오죽헌의 사랑채를 일부 재현해 놓은
구옥(舊屋)이 있고, 이 구옥 옆으로 어제각이 있다. 어제각(御製閣)은 조선 정조 임금의 명에 의해 건립
된 건물로 건물 안에는 율곡 선생이 쓰던 벼루와 율곡 선생의 저서인 격몽요결이 있다.
구옥 앞의 문을 나서면 율곡기념관 앞으로 나온다. 율곡기념관은 율곡 선생과 어머니인 신사임당 그리고
누이인 매창의 유품과 여러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자운서원의 율곡기념관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규모는 좀 작은 편이다.
율곡기념관 앞 공간, 문성사 맞은편으로 문이 있는데, 이 문이 입지문(立志門)이다. 이 문을 나서면 향토
기념관과 강릉시립박물관 그리고 강릉 지역에서 출토된 고분과 유적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향토민속관은 강릉의 풍습과 변천사, 여러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복식연구가인 김영숙 선생이 기
증한 전통의복, 장신구 등의 전시품 7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향토민속관과 똑같이 생긴 강릉시립박물관
에는 강릉 일대에서 발굴된 토기 등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향토민속관 옆으로 병산동 고분과 유적, 금산리 고분 등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이 오죽헌은 본래 선생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집이다. 원래 신사임당 외조부의 집이었는데, 외조부가 아
들이 없어 무남독녀인 신사임당의 어머니에게 집을 상속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신사임당 어머니의
집인 셈이다. 즉,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율곡 선생의 외가인 것이다.
율곡 선생은 외가인 이 오죽헌에서 태어나 6세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당시 율곡 선생의 본가는
파주에 있었으며, 현재도 경기도 파주에 율곡선생의 무덤과 위패가 있는 자운서원이 있고, 율곡 선생이
즐겨 찾았다는 화석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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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