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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중29회,고16회(송설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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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송정으로 가는 추억마차 송정으로 가는 추억마차 81- 야구의 추억
익명 추천 0 조회 351 06.07.18 23:25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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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18 19:34

    첫댓글 정성기선배는 자식(정진원;배명고-단국대-한화 ,포지션/유격수, 봉황대기 최다타점상)도 야구룰 하여 배명고 야구 학부형 회장도 역임하여 동대문운동장에서 자주 만났다.자기자신의 선수생활에 대해서는 입이 무거웠다.속초상고도 야구하는 판에 우리학교가 교세가 부족하여 야구부창단못하는건지 모르겠다.야구팀이 학교를 알리는데는 최고의 종목인데...지금이라도 검토해보면 어떨까...

  • 06.07.18 23:38

    박 박사님의 글은 정말 그메모리 대단합니다, 그때 김천에서 전국중학야구대회 대단했지요. 손문석 선배님은 지금도 저가 교류하고 있음다.가끔 그때 이야기 한답니다. 그당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때 딴데가지말고 계속 김고에 있어라고 장학금 줄태니 체육선생 두분이 와서 그래서 대구쪽에서 스카웃이 와도 안가고 김고에 말뚝박앗데요.................

  • 06.07.19 09:35

    자랑스런 장현, 종명, 창효 친구의 옛 모습이 보이는 듯 하군요. 옛날의 그 끈기로 지금도 사회에서 앞서가는 삶을 영위하니 자랑스럽군요.

  • 06.07.19 09:44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박창효가 해야 하는데 ... 컴맹이니 할수없이 내가 해야 겠다 50후반60년대초에 김천에는 초등학교 야구시합이 치열했었다 그중 라이벌이 서부초등과 김천초등이였는데 서부의 언드스로 괴물투수가 박문규(박행남으로 개명) 김초의 정통 왼손잡이 김득용으로 툭정지어져 재미를 더한 시절이 있었다 이 학년의 선수들이 김천의 야구명맥을 이어갔던 선수층이였다 서초에는 박행남,손문석,하태경.김재한 등 였고 김초는 김득용, 한석봉,김맹추. 이고 중앙은 김갑수, 여수정,김정태, 등이 있었지 김초선수들은 성의중으로 진학해서 축구선수로 많이 변신했고 서초와 중초 선수들은 김중으로 진학해 지금의

  • 06.07.19 10:10

    야구 이야기의 중심 인물들이 되였지 ... 중2년 때 연식야구면맹 회장기 쟁탈 전국대회가 열렸었지 김천야구는 아마추어도 초보라 실력이 일천하여 다른 중학의 실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고1학년이 였던 박행남 김재한,하태경 여수정 등선배들과 중3선수의 최진수 김해천 김광석 그리고 박창효 본인(후보)등이 출전선수로 구성되어 서울의 경서중학과 시합을 가졌는데 다 이겨 마지막 런러 3루 투아웃 상황에서 3루앞 땅볼을 당시 3루 베이스맨 김광석의 폭투로 경기를 놓졌다 그후 선생들의 질책으로 자괴감에 빠진 김광석선배는 김고로 진학하지 않고 농고로 진학하는 일까지 있었다

  • 06.07.19 10:42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1964. 10. 23.경북 경식야구대회는 고등학교 선수가 모자라 중3선수인 창효와 내가 출전했지 창효는 투수로 (이때 부터 전적으로 투수로 연습시작) 난 외야수로 출전했다 가을시즌의 2학년이하로 구성된 대구의 팀들은 우리와 수준이 비숫했다 그러나 동계훈련이 끝나고 나면 많은 차이가 난다 우린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야 하니 새씨즌이 시작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 시합에서 대구공고와의 시합에서 센터앞 빨래줄 히트를 야수 실책으로 그라운드 홈런을 친 기억이 난다 이시합이후로 김고의 야구는 사실상 해채와 같이 유명무실해 진다 제일문제가 경비 선수수급 및 코치수급 등 여러 문제가 있다

  • 06.07.19 11:24

    박교수 그리고 김주인장 수고가 많았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중학교 부터는 야구공이 준경식 경식으로 기억이 되고, 우리 동기중엔 사진이 실린 이장현 이종명 박창효 선수는 소질도 상당했다고 기억되나 당시 김천은 축구나 야구나 다른 종목도옳은 지도자를 돈이없어 모시질 못했습니다. 운동을 해본 사람으로서 옳은 지도자 없이 함부로 교기를 정하는 것은 선수들의 장래를 망치는 일 입니다. 운동은 어릴때 기본기가 평생으로 이어 지니까요.

  • 06.07.19 11:38

    이장현 선수!. 박행남 투수는 오른팔 over throw 투수가 아닌가요?. in curve 가 좋았으나 투수로는 체력이 부족 했다고 기억이 되고..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지요?.

  • 06.07.19 13:26

    초등학교에서는 오른손 싸이드 스로라고 할까 언드스로 가까이 던졌고 중에 와서 투구를 고쳐더라 고쳐도 정통 오버스로 는 아니고 낙차큰 커브가 일품이 였지 체력때문에 완투는 무리였고 투수가 없어 완투를 많이 했지 중앙초 출신 댓빵(이름을 잊었네 ) 있었지 이분이 강속구에다 힘있는 투수였지 나중에 픽업해서 둘이 갯투(이어던지기)했었지

  • 06.07.19 11:58

    정승기선배님은 현재 김천시 야구협회장과 육상경기연맹회장을 동시에 맡으시며 지역스포츠 발전을 위하여 많은 도움을 주시고 계십니다. 고31회 김태섭

  • 06.07.19 16:02

    시골서 김천유학에 생전처음 야구경기 기억납니다.야구규칙을 몰라서 그냥 지나친 바보짓 했지요.글,사진 잘 봤습니다.

  • 06.07.21 01:39

    놓치고 빠뜨린 야구의 추억이나 감회들은 친구들이 댓글로 더 많이 풍성하게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 06.07.21 19:47

    누가 혹시 정승기 선배 연락처라도 올릴수있나요? 후사하겠습니다

  • 06.08.08 10:20

    대구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초등학교 시절 교기가 야구 였는데 학반별 야구부가 있을정도로 방과후에 시합을 했었다 경상중학교에 진학을하여 실장을 했는데 교기가 야구여서 선수 선발을 체육시간에 할때 일조했었다. 타격좋은 선수를 후보로 뽑는다는 것이었는데 난 파울 볼을 쳐서 아웃되었지만 우리반에서는 잘 치는 편이었다 야구 선수들 대부분이 대구초등 출신들이 많았고 경상중 우리 동기들이 후에 전국을 석권한 뉴스가 있었다 지금도 야구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어 야구를 한 친구를 좋아하고 TV 중계를 꼭 본다

  • 06.09.01 21:14

    야구는 신앙에서 출발? HOME-BASE는 SWEET HOME이고...1루...2루...3루...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게임....HOME-RUN......가정은 정말 아름다운 안식처요, 가족사랑이요, HOME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훈련? ....저의 목사님 설교에서...

  • 06.10.12 10:16

    정승기연락처는011-9376-2900번이구요 구름님께서는 그당시 일들을 아주 잘알고 계시는듯하군요 그당시 문교부장관배전국연식 야구대회는 김천을 떠들석하게 하였지요참전한 선수들은 2년선배인 박행남 손문석 김재한여수정 그리고1년선배인댔빵이라고 하는 최성오 그리고 김해천이아니고 최해천 김광석 나영배 하춘탁등이었지요 그다음 이장현 박창효 이종명등 아무턴 감개무량합니다

  • 작성자 06.10.12 14:02

    polly님 구름님이 바로 이장현님 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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