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지전(鼠同知傳-쥐 서, 쥐 이야기) - 작자미상 바른♥국어
[줄거리]
중국 옹주땅 구궁산 토굴 속에 서대주(鼠大州)라는 짐승이 살고 있었다. 당태종이 금용성을 치려할 때, 서대주는 종족을 거느리고 금용성 창고에 양식으로 쌓아둔 쌀을 없애 버리는 큰 공을 세운다. 이 일로 서대주에게는 세민황제로부터 벼슬을 제수 받고 잔치를 베풀어 여러 쥐들을 초대한다. 이때 하도산에 다람쥐라는 짐승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간악하고 집안 형편이 가난한 데도 나태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다. 다람쥐는 서대주가 잔치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다람쥐는 잔치가 끝난 뒤 서대주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여 생률(生栗- 날밤)과 백자(栢子-잣)를 얻어가지고 돌아온다. 다람쥐 부부는 그것으로 봄을 무사히 지냈으나 겨울이 돌아오니 다시 굶는 신세가 된다. 다람쥐는 다시 서대주에게 가서 구걸하나, 그는 종족의 형편을 들어 거절한다. 이에 다람쥐는 원한을 품고 아내의 충고도 듣지 않고 곤륜산의 백호산군(白虎山君-호랑이)에게 거짓으로 소송장을 올린다. 계집다람쥐는 소송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힘껏 충고하다가 도리어 남편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는 분한 나머지 집을 나가고 만다.
백호산군은 서대주를 잡아오게 하여 그의 말을 들어보고 다람쥐가 허위로 고발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에 산군은 허위 고발한 다람쥐를 유배 보내고 서대주는 내보낸다. 마음이 착한 서대주는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같이 내보내줄 것을 간청한다. 산군은 서대주의 인후한 심덕에 감동하여 다람쥐를 내보낸다. 이에 다람쥐는 자기의 배은망덕한 처사를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사과한다. 서대주는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황금을 주어 돌려보낸다.
[등장인물]
*서대주 : 딱한 처지에 있는 다람쥐에게 양식을 주어 돕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간악한 다람쥐에게 관용을 베푸는 후덕한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뇌물이라는 부당한 수단까지도 이용하는 현실적인 사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기존의 봉건적 인습에 구속됨이 없이 스스로의 권익을 추구하는 근대 지향적 인물 유형으로 당시 새롭게 등장한 상공인 계층을 대변한다.
*남편 다람쥐 : 게을러서 가난해도 일하지 않고, 서대주에게 입은 은혜도 잊은 채 그를 모함하여 송사를 일으키는 간악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가부장적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정당한 충고를 하는 계집 다람쥐를 도리어 나무란다. 이런 점에서 봉건적 사고방식과 권위 의식에 젖어 있는 몰락한 양반 계층을 대변한다.
*계집 다람쥐 : 사리 분별이 분명하고 가부장적 권위 의식에 항거하는 적극적이고 현명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남존여비와 여필종부라는 당시의 윤리관에 비추어 볼 때, 가부장적 권위에 항거하는 면모는 새로운 근대적 인간상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동지전의 인물 설정과 그 효과 : 이 작품에서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쥐는 긍정적으로, 다람쥐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일종의 ‘낯설게 하기’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이 기존의 통념과 고정 관념을 뒤집어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참신한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 의식을 깊이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한다.
[핵심 정리]
*성격 : 교훈적, 풍자적 *표현 : 의인법 *제재 : 쥐와 다람쥐의 송사 사건
*주제 - 표면적 주제 :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인물에 대한 경고
- 이면적 주제 : 개인의 실리 추구를 우선시하는 가치관 대두
*의의 : 기존의 유교적 질서 수호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다람쥐와 같은 실리추구형 인물을 제시하여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기능을 수행함.
[문제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다람쥐 노발대발하여 가거늘 서대쥐 도리어 웃고 가로되,
“옛말이 옳도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요 은반위수(恩反爲讐-은혜를 베푼 것이 도리어 원수가 됨)라 함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로다. 그러나 영피부아(寧彼附我)이언정 아불부피(我不附彼)[제(다람쥐)가 나(서대주)에게 빌붙을지언정, 내가 그에게 빌붙지는 않을 것임] 하리니 후일 다시 그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하더라.
이때 다람쥐 가로되, / “그런 일은 없으나 그대 말을 듣지 않고 다만 신정지초(新正之初-1월 초)에 절화(絶火-아궁이에 불이 끊어진다는 뜻으로 가난하여 밥을 짓지 못함을 이름)를 면할까 하고 가서 서대쥐 보고 슬픈 소리와 애련한 말로 생각하기를 바라노라 한즉 서대쥐 답이 궁가빈족(窮家貧族-가난한 집의 가족들)을 구제하기에 염불급타(念不及他-바빠서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음)라 하고 빈말로 불안한 말만 하는 중 언어 불순하고 여간 재물이 있어 집이 부요하다 자시하고 대접이 경박하니, 설사 본디 저축함이 없을진대 용혹무괴(容或無怪-혹시 그럴 수도 있으므로 괴이할 것이 없음)로되 세전의 기물이 많을 뿐 아니라 요사이 천자께서 사패하신 율목(栗木-밤나무)이 4만여 주라 나를 생각하여 활협(闊狹-인색하지 않고 시원스러움)한대도 수백 석 줄 것 아니요, 많으면 일이 석이요 적으면 일이 두 줄 것이어늘 내가 이같이 무료히(양식을 전혀 얻지 못하고) 돌아옴을 괘념치 아니하니 어찌 통분치 않으리오. 생불여사(生不如死)요 욕사무지(欲死無地)라.[살아도 죽은 것만 못하고, 욕됨에 죽으려고 해도 죽을 자리가 없는지라.] 내 마땅히 산군(山君-산의 임금. 호랑이)에게 송사하여 이놈을 잡아다가 재물을 허비토록 엄중한 형벌로써 몸을 괴롭게 하여 나의 분을 풀리라.” -다람쥐가 서대쥐를 고발하는 이유가 제시(염치가 없음)
계집 다람쥐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꾸짖어 가로되,
[A]【“낭군의 말이 그르도다. 천하 만물이 세상에 나매 신의를 으뜸으로 삼나니, 서대주는 본래 우리와 더불어 항렬(혈족의 관계를 표시하는 말)이 남과 다름이 없고[쥐와 다람쥐는 다른 종자임, 인간의 항렬에 적용함], 하물며 내외를 상통함도 없으되 다만 일면 교분[친구 사이의 정]을 생각하고 다소간 양미[서대주가 주었던 쌀]를 쾌히 허급하여 청하는 바를 좇았으니, 서대주가 낭군 대접함이 옛날 주공이 일반(一飯)의 삼토포(三吐哺)하고 일목(一沐)에 삼악발(三握髮)보다 더하거나[성왕이 백금을 노나라에 봉하자, 주공이 노나라 사람에게 교만하게 굴지 말라며 훈계하기를 “나는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아우이며 성왕의 숙부인데, 또한 천하에 재상 노릇을 하면서도 천하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한 번 목욕하는 동안에 세 번 머리를 움켜쥐고 한 번 밥 먹는 동안에 세 번 내뱉으면서, 오히려 천하의 선비를 잃을까 우려했었다.”고 한 데에서 나온 구문임. - 토포악발(吐哺握發)] 늘 한 번도 치하함이 없다가 무슨 면목으로 또 구활함을 청하매[목숨을 구걸하매] 허락치 아니하였다고 오히려 노하는 것[관청에 허위 송사하려는 이유]이 신의가 없는 일이어늘, 하물며 포악한 마음을 발하여 은혜 갚을 생각은 아니하고 오히려 관청에 송사를 이르고자 하니, 이는 이른바 적반하장(賊反荷杖-도둑이 도리어 막대를 들고 대듦)이요 은반위구(恩反爲仇-은혜가 오히려 원수가 됨, 은반위수)라. 낭군이 만일 송사코자 할진대 서대주의 벌장(罰狀-잘못을 적어 관에 바치는 고소장)을 무엇으로 말하고자 하느뇨[서대주는 잘못이 없다는 말로 서대주가 낭군을 극진히 대접하였음을 강조하는 말]. 옛말에 일렀으되 지은(知恩)이면 보은(報恩)이요 지지(知之)면 불태(不怠)라 [은혜를 알면 반드시 갚아야 하고, 그것을 안다면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하니, 원컨대 낭군은 옛 성인의 책을 널리 보았을 테니 소학(小學)을 익히 알리라. 다시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은혜를 갚기를 힘쓰고 거칠은 말을 하는 마음을 버릴지라. 서대주는 본디 관후장자(寬厚長者-관대하고 후하며 점잖은 사람)라 반드시 후일에 낭군을 위하여 사례를 할 날이 있으리니 비록 천한 여자의 말이나 깊이 살피어서 후회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도록 하옵소서소.”】
다람쥐 듣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가로되,
“이 같은 천한 계집이 호위인사(好爲人師-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함. 함부로 나서서 가르치려 함)로 나를 가르치고자 하느냐. 계집은 마땅히 장부가 욕을 입음을 분히 여김이 옳거늘 오히려 서대주를 관후장자라 일컫고 날더러 포악하다 꾸짖으니 이 내 형세 곤궁함을 보고 배반할 마음을 두어 서대주를 얻고자 함이라. 예로부터 부창부수(夫唱婦隨-남편이 부르면 아내는 이에 따르는 것이 부부 화합의 도리임)는 남녀의 정이고 여필종부(女必從夫-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름)는 부부의 의(義)이어늘 부귀를 따라 딴 마음을 둘진대, 갈려면 빨리 가고 머뭇거리지 말라.” -헐, 가부장적인 모습
계집 다람쥐 발딱 화를 내어 눈을 부릅뜨며 귀를 발룩이고 꾸짖어 가로되,
“그대로 더불어 남녀 간의 연분을 맺어 아들 두고 딸을 낳으며 남취여가(男娶女嫁-장가들고 시집가는 일)하여 고초를 달게 알고 그대를 좇는 바는 부귀를 뜬구름같이 알고 빈천을 낙으로 알아 상강(湘江)의 이비(二妃-요임금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 함께 순임금에게 시집가고 순임금이 죽은 뒤 상강에 빠져 죽음)를 본받아 여상(呂尙)이 마씨(馬氏)를 꾸짖는 바이어늘, (강태공 여상이 문왕을 만나 부귀공명을 이루게 되자, 이 소문은 굶주리다 친정으로 도망간 아내 마씨의 귀에까지 전해짐. 마씨는 여상을 찾아와서 “이전에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떠났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돌아왔다오.”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있다가 그릇의 물을 마당에 쏟으며 “저 물을 그릇에 담아보시오.” 마씨는 당황해 하며 물을 그릇에 담으려고 했지만, 쏟아진 물은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들어감. 여상은 차가운 표정으로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소. 한 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소.”) 더러운 말로써 나를 욕하니 이는 한때의 끼니를 아끼려고 처자를 내치고자 함이라. 고인이 일렀으되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요,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라 하였나니[구차하고 천할 때 고생을 같이한 아내는 내칠 수 없으며, 가난할 때의 사귐은 잊을 수 없음], 오늘날 가난하고 못살 때의 쓰고 단 것을 함께 한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이같이 욕보이니, 두 귀를 씻고자 하나 영천수(潁川水)가 멀어 한이로다[요임금이 기산의 아래에서 은거하던 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이를 더러이 여기고 영천강가에서 귀를 씻었다고 함]. 오늘 수양산을 찾아가서 백이숙제(伯夷叔齊)[사마천(司馬遷)에 의하면 고죽군(孤竹君:고죽은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루룽 현[盧龍縣])의 아들이라고 한다. 고죽군은 막내아들인 숙제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그가 죽은 뒤 숙제는 이것이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여 맏형인 백이에게 양보했지만 백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나라를 떠나 서백(西伯) 문왕(文王)의 명성을 듣고 주나라로 갔다. 그곳에서는 이미 문왕이 죽고 아들인 무왕(武王)이 문왕의 위패(位牌)를 수레에 싣고 은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러 가려는 참이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효이며 신하로서 군주를 치는 것은 불인(不仁)이다"라고 하며 말렸지만 무왕은 듣지 않고 출정해 은을 멸망시키고 주의 지배를 확립했다. 두 사람은 주의 녹(祿)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융지 현[永濟縣])에 숨어살며 고사리를 캐먹고 지내다 굶어죽음] 채미(採薇)타가 굶어 죽은 일을 좇으리니 그대는 홀로 자위하라.”[갈등의 고조]말을 마치며 짐을 꾸려서 훌쩍 문 밖으로 나가더니 자취가 보이지 않는지라[여필종부의 봉건적, 전통적 윤리관을 타파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엿보임].
1. 윗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현재의 사건과 과거이 사건이 교차되고 있다. ② 서술자가 직접 인물의 미래를 언급하고 있다.
③ 대화를 중심으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④ 배경 묘사를 통해 인물 간의 갈등을 암시하고 있다.
⑤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긴박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2. 윗글의 ‘다람쥐’의 생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① 서대쥐는 재물이 있다고 해서 나를 무시하고 있다. ② 서대쥐가 빈족을 구제한다는 것은 빈말임이 틀림없다.
③ 내가 이렇게 가난한 것은 본디 저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④ 부귀를 따라 다른 마음을 품은 여자와는 함께 살 수가 없다.
⑤ 아내는 남편이 욕을 당한 일에 대해 함께 분하게 여겨야 한다.
3. <보기>를 참고할 때 윗글 뒤에 이어질 핵심 사건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송사 소설(訟事小說)은 억울한 일을 관청에 호소하여 해결하는 송사의 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소설로, 주어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마음 착한 주인공은 악인의 모함을 받아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대개 현명한 재판관의 판결을 통해 그 지위가 회복된다.
① 다람쥐가 재판관에게 뇌물을 바쳐 송사를 승리로 이끈다.
② 다람쥐가 서대쥐를 상대로 송사를 벌이지만 결국 패배한다.
③ 서대쥐가 초월적 존재의 신비한 능력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④ 계집 다람쥐가 다람쥐에게 송사를 걸어 아내의 지위를 되찾는다.
⑤ 서대쥐를 모함하려던 다람쥐가 아내의 말을 듣고 송사를 포기한다.
4. [A]의 말하기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은혜를 생각하여 신의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② 고사에 빗대어 서대쥐가 한 행동을 평가하고 있다.
③ 앞으로의 일을 고려하여 신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④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송사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⑤ 배운 사람으로서 수준 높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답> 1③ 2③ 3② 4④
다람쥐 더욱 분노하여 가로되,
“소장지변(蕭墻之變)은 유아이사(由我而死)라[소장은 군신(君臣)이 모여 회견하는 곳에 쌓은 담을 말하고, 소장지변은 그곳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의미이다. 유아이사는 ‘나로 말미암아 죽다’라는 뜻이다. 문맥상으로 보면, 다람쥐가 송사를 해서 변고를 일으키면 서대주가 자신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도시 서대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라. 내 당당히 서대주를 설욕하고 말리라.”
인하여 일장 소지(訴紙-고소장)를 지어 가지고 바로 곤륜산 동중에 이르러 백호궁(白虎宮 -호랑이의 궁. 호랑이가 동물의 왕으로 나오기 때문에 호랑이의 궁을 찾아감)의 형방을 찾아 들어가서 다람쥐 억울한 마음을 올림을 고하니, 이 때 백호산군(白虎山君)이 태산오악(泰山五嶽 -태산에 있는 유명한 다섯 골짜기)을 순행하다가 곤륜산으로 돌아와 각처 짐승의 선악을 문죄코자 하더니 홀연 형부 아전이 들어와 고하되,
“하도산(河圖山) 낙서동(洛書洞) 등지에 거하는 다람쥐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거늘 백호산군이 형부관에 명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이라 하는지라. 다람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형졸을 따라 백호궁 앞뜰에 이르니, 전후좌우에 위엄이 범상치 않은지라.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을 나직이 하여 복지대령(伏地待令-땅에 엎디어 명령만 기다림)하였더니, 이윽고 전상(殿上-전각이나 궁전의 위)에서 형부 관헌이 나와 소지를 빨리 올리라 하니, 다람쥐 품속에서 일장 소지를 내어 받들어 올리는데 백호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본즉 사연에 가로되,
“하도산 낙서동에 거하는 다람쥐는 다음의 일의 이모저모를 고하나이다. 신은 본디 낙서동에서 나서 자라 천성이 어리석고 마음이 졸직(拙直-순박하고 강직함)하온 바 항상 굴문을 나오는 바 없고, 밖으로는 강 건너 친척 없으며 오척에 동자 없고[앞에 친척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척동자(일반적으로 키가 작다는 의미로 쓰임)라는 말을 풀어서 쓴 말이다. 일종의 언어 유희] 척신[홀몸]이 고고[외롭고 가난함]하여 다만 미천한 계집과 약한 자식으로 더불어 낮이면 초산에서 나무를 베며 산야에서 밭을 갈고, 밤이면 탁군에 자리를 치며 패택에 신을 삼고, 춘하에 사엽하며 추동에 독서하여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만수 천산 깊은 곳에 꽃을 보면 봄철을 짐작하고 잎을 보면 여름을 깨닫고 낙엽으로 가을을 양도하며 서리와 눈이 내리면 겨울임을 알아 문호에 명철보신(明哲保身-사리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몸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함)으로 일삼고 청운(靑雲-푸른 빛깔의 구름, 높은 지위나 벼슬을 가리키는 말)에 공명을 기약지 아니하여 부귀를 뜻하지 아니하고 천수만목(千樹萬木-각양각색의 많은 나무들)의 열매를 거두어 양식을 삼고 하루하루 재산을 계산하옵더니, 뜻밖에 지난 달 보름밤에 구궁산 팔괘동에 거하는 서대주 놈이 노복쥐 수십 명을 데리고 한밤중에 신의 집에 불문곡직(不問曲直 -옳고 그름을 따져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하고 돌입[어떤 곳이나 상태에 기세 있게 뛰어드는 것]하여 천봉만학에 흐르는 날밤과 높은 봉우리와 험준한 골짜기에 떨어진 잣을 천신만고하여 주우며 거두어, 비바람 치고 눈 오는 추운 겨울날에 깊은 엄동(嚴冬-한겨울)을 보전코자 저축하온 양미 수십여 석을 탈취하여 가며 오히려 신을 무수히 난타하온즉, 신의 슬픈 정세는 땅 없는 외로운 망량(端紀-도깨비)이라. 막막한 세상에 호소할 곳 없는고로 극히 원통하와 한 조각 원정을 지어 가지고 엎디어 백호산군 밝은 다스림 아래에 올리옵나니 신의 참상을 살피신 후에 능력을 발하사 이 같은 서대주 놈을 성화착래(星火捉來-급히 잡아들임)하여 엄형으로 중히 다스려 잔약한 신의 약탈된 양미(糧米)를 찾아 주옵소서. 혈혈단신으로 의지할 곳 없는 잔명이 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게 하옵심을 천만 빌어 산군주 처분만 바라나이다. (무진 정월일에 고장을 올림)”
하였거늘 백호산군이 읽기를 마치고 제사[題辭-관부(官府)에서 백성이 제출한 공소장에 쓰는 판결이나 지령]를 불러 왈,
“대개 만물의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을 사용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바르고 그릇됨을 아는 데는 양쪽의 말을 듣는 것만 같음이 없나니, 한편의 말만 듣고 좋고 나쁨을 경솔하게 판결치 못하리라. 소진(蘇秦)[소진과 장의는 모두 전국 시대에 활약하던 달변의 정치가. 전국 시대 말에 진나라가 나머지 다섯 나라와 대치하고 있을 때 소진은 나머지 다섯 나라가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견제할 것을 주장하며 각국을 설득함. 그러나 진나라의 장의는 소진의 합종설을 뒤집어 나머지 오국의 단결을 깨뜨리고 각각 진나라와 연계하도록 일을 꾸밈]의 말로써 진나라를 배반함이 어찌 옳다 하며 장의(張儀)의 말로써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그르다 하리오. 소장(訴狀) 양쪽의 말을 같이 들은 연후에 종횡을 쾌히 결단하리니, 다람쥐는 우선 옥으로 내리고 서대주를 즉각 잡아와서 상대한 연후에 가히 밝게 분변하리라.”(공평하고 신중한 백호산군)
한 번 제사하매 오소리와 너구리 두 형졸로 하여금 서대주를 빨리 잡아 대령하라 분부하니 두 짐승이 명을 듣고 나올새 오소리가 너구리더러 일러 왈,
“내가 들으니 서대주 재물이 많으므로 심히 교만하매 우리가 매양 괴악히 알아 벼르던 바였는데, 오늘 우리에게 걸렸는지라. 이놈을 잡아 우리를 괄시하던 일을 설분(雪憤-분함을 씻음)하고 또 소송당한 놈이 피차 예물을 바치는 전례는 위에서도 아는 바라. 수 백냥이 아니면 결단코 놓지 말자.”(오소리, 너구리-타락한 관리의 모습)
하고 둘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호호탕탕한 기분을 내며 예기(銳氣-성질이 굳세어 굽히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감)는 맹렬하여 바로 구궁산 팔괘동에 이르러 토굴 밖에서 소리 높여 부르며 가로되,
“서대주 고소를 당하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패자(牌子-지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글)를 가지고 잡으러 왔나니 서대주는 빨리 나오고 지체 말라.”
독촉이 성화같은지라. 비복들이 이 말을 듣고 혼백이 흩어져 버리는 듯 놀라서 급급히 들어가서(혼비백산) 서대주께 연유를 고할새 서대주가 호흡이 급해지고 한출첨배(汗出沾背-무서워서 땀이 배어 등을 적심)하는지라. 모든 쥐들이 이를 보고 눈을 둥글고 두 귀 발록발록하여 황황망조(遑遑罔措-마음이 급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함)하거늘 서대주 왈,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옛말에 일렀으되 칼이 비록 비수라도 죄 없는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우리 본디 죄를 범한 바 없는지라 무엇이 두려우리오.”
인하여 자손과 노복쥐를 데리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주 나옴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 하는지라. 서대주 오소리를 보고 흔연히 웃어 가로되,
“오별감은 그 사이 무양하셨느뇨[잘 지냈습니까?]. 나는 층암절벽 한 곳에 토굴을 의지하고 그대는 천봉만학 경치가 빼어난 곳에 산군을 모시고 있어 유현(幽顯)의 길이 다른지라[어두움과 밝음과 같이 분명히 다름]. 마음은 항상 생각이 있으나 승안접사(承顔接事-웃어른을 만나 뵙는 일)를 일차 부득하더니 오늘 관고(官故)로 말미암아 누추한 곳에 오셔서 의외로 청안(淸顔)을 대하니 패자예차는 천천히 수작하려니와 일배 박주(薄酒)[한 잔의 거친 술]를 잠깐 나누기를 바라노니 허락함이 어떠리오.”(현실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서대주)
오소리는 본디 마음이 순박한지라, 서대주의 대접이 심히 관후함을 보고 처음에 발발하던 마음이 춘산에 눈 녹듯이 스러지는지라. 서대주더러 왈,
“우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서대주와 다람쥐로 더불어 재판코자 하여 성화 착래하라 분부 지엄하니 빨리 행함이 옳거늘 어찌 조금이나 지체하리오.”
장자(長子)쥐 왈,
“오별감 말씀이 옳은지라, 어찌 두 번 청함이 있으리요마는 성인도 권도(權道-원칙에서 벗어나서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행동함)함이 있나니 원컨대 오별감은 두 번 살피라.”
모든 쥐들이 일시에 간청하며 서대주는 오소리의 손을 잡고 장자쥐는 너구리를 붙들고 들어가기를 청하니, 너구리는 본래 음흉한 짐승이라 심중에 생각하되,
‘만일 들어가는 경우에는 죄인 다루는 데 거북할 테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뇌물을 받으려면 톡톡히 실속을 차려야 한다.’(오소리보다 더 썩은 관리-너구리)
하며 소매를 떨치고 거짓 노왈,
“관령은 지엄하고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어느 때에 술 마시고 완유(玩遊-놀며 희롱함)하리오. 관령이 엄한 줄 알지 못하고 다만 일 배 박주에 팔려 형장이 이 몸에 돌아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가. 나는 굴 밖에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하고 말을 마치며 나와 수풀 사이에 앉아 종시 들어가지 않는지라.
< 중략 >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를 부르매 그 제사에 가로되,
“예로부터 일렀으되 아랫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것이어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는 마땅히 만 번이라도 죽일 만하다.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魏)나라 임좌는 그 임금 측천무후의 그름을 말하였고 하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덕이 없음을 말하니 너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무후와 한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오. 어불성설(語不成說-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 반대는 만불성설)이니 다람쥐는 엄형으로 다스려 귀양 보내고 서대주는 즉시 풀어 주어라.”
제사 이미 내리니 서대주 일어나 다시 꿇어 가로되,
“산군의 밝으신 정사를 입어 풀어 주심을 입사오니 황송 무지[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름]하온지라 다시 무엇을 고하리요마는, 신의 미천한 마음을 감히 산군께 우러러 알리옵나니, 다람쥐의 죄상을 의논하올진대 간교하온 말로써 욕심을 내고 기군망상(欺君罔上-임금을 속임)하온 일은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으며 죽어도 죄가 남겠으나, 헤아리건대 다람쥐는 일개 작은 짐승으로 배고픔이 몸에 이르고 빈곤이 처자에 미치매, 살고자 하오나 살기를 구하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또한 구하기 어려우매 진퇴유곡(進退維谷)하던 항우(項羽)의 군사라, 다만 죽기를 달게 여기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고로 방자히 산군께 위엄을 범하였나 보옵니다. 오히려 생각하올진대 가련한 바이어늘, 다람쥐로 하여금 중형으로 다스릴진대 이는 죽은 자를 다시 때리는 일이요, 오히려 노승발검(怒蠅拔劍-파리에 화내어 칼을 뺀다는 뜻이니, 곧 사소한 일에 화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산군은 위엄을 거두고 다람쥐로 하여금 쇠잔한 명을 살려 주시고 은택을 내리는 덕을 끼치사 일체 풀어 주시면 호천지덕(昊天之德-하늘과 같은 덕)을 지하에 돌아간들 어찌 잊으리까. 살피고 살피심을 바라옵고 바라나이다.” / 산군이 듣기를 다하매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기특하도다, 네 말이여. 다람쥐가 큰 부처님의 선함을 누르고자 하니 한갓 불로 하여금 달빛을 가리고자 함이라. 서대주의 선한 말을 좇아 다람쥐를 풀어 주니 돌아가 서대주의 착한 마음을 본받으라.”
하고 인하여 방송(放送-석방, 풀어 줌)하니, 다람쥐가 백 번 절하며 사은하고 만 번 치사한 후 물러가니라. 백호산군과 녹판관, 저판관이며 모든 하리 등이 서대주의 인후함을 못내 칭송하더라.
[문제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백호산군이 왈,
“대개 만물의 경중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곡직을 알진대 양쪽의 말을 들음만 같음이 없나니, 한 쪽의 말만 듣고 선불선(善不善)을 가벼이 판결치 못할지라. 소진*의 말로써 진나라를 배반함이 어찌 옳다 하며 장의*의 말로써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그르다 하리오. 소장(訴狀) 양쪽의 말을 같이 들은 연후에야 종횡을 쾌히 결단하리니, 다람쥐는 우선 옥으로 내리고 서대쥐를 즉각 잡아 와서 상대한 연후에 가히 밝게 분변하리라.”
하고, 오소리와 너구리 두 형졸로 하여금 서대쥐를 빨리 잡아 대령하라 분부하니 두 짐승이 명을 듣고 나올새 오소리가 너구리더러 일러 왈,
“내 들으니 서대쥐 재물이 많으므로 심히 교만하매 우리 매양 괴악히 알아 벼르던 바이러니, 오늘 우리에게 걸렸는지라. 이놈을 잡아 우리를 괄시하던 일을 분풀이하고 또 소송당한 쪽 전례는 위에서도 아는 바라. 수백 냥이 아니면 결단코 놓지 말자.”
하고 둘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호호탕탕한 기분을 발호하고 예기는 맹렬하여 바로 구궁산 팔괘동에 이르러 토굴 밖에서 소리 높여 부르며 가로되,
“서대쥐 고소를 당함에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패자(牌子)*를 가지고 잡으러 왔나니 서대쥐는 빨리 나오고 지체 말라.” 독촉이 성화 같은지라.
비복들이 이 말을 듣고 혼백이 흩어져 버리는 듯 놀라서 급급히 들어가서 서대쥐께 연유를 고할새 서대쥐 호흡이 급해지고 땀이 배어 등을 적시는지라. 모든 쥐들이 이를 보고 눈을 둥글고 두 귀 발록발록하여 허둥지둥하거늘 서대쥐 왈,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옛말에 일렀으되 칼이 비록 비수라도 죄 없는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우리 본디 죄를 범한 바 없는지라 무엇이 두려우리오.”
인하여 자손과 노복쥐를 데리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쥐 나옴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 하는지라. 서대쥐 오소리를 보고 흔연히 웃어 가로되,
“오 별감은 그 사이 평안하셨느뇨. 나는 층암절벽 한 곳에 토굴을 의지하고 그대는 천봉만학 절승처에 산군을 모시니 유현(幽顯)*의 길이 다른지라. 마음은 항상 그윽하나 승안접사(承顔接事)*를 일차 부득하더니 오늘 관고(官故)로 말미암아 누추한 곳에 왕림하여 의외로 청안(淸眼)을 대하니 패자예차는 서서히 수작하려니와 일배 박주(薄酒)*를 잠깐 나누기를 바라노니 허락함이 어떠리오.”
오소리는 본디 마음이 순한지라, 서대쥐의 대접이 심히 관후함을 보고 처음에 발발하던 마음이 춘산에 눈 녹듯이 스러지는지라. 서대쥐더러 왈,
“우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서대쥐와 다람쥐로 더불어 재판코자 하여 빨리 잡아오라 분부 지엄하니 빨리 행함이 옳거늘 어찌 조금이나 지체하리오.” / 장자쥐 왈,
“오 별감 말씀이 옳은지라, 어찌 두 번 청함이 있으리오마는 성인도 권도(權道)함이 있나니 원컨대 오 별감은 두 번 살피라.”
모든 쥐들이 일시에 간청하며 서대쥐는 오소리의 손을 잡고 장자쥐는 너구리를 붙들고 들어가기를 청하니, 너구리는 본래 음흉한 짐승이라 심중에 생각하되,
‘만일 들어가는 경우에는 죄인 다루는 데 거북할 테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기왕 뇌물을 받으려면 톡톡히 실속을 차려야 한다.’ / 하며 소매를 떨치고 거짓 노왈,
“관령은 지엄하고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어느 때에 술 마시고 놀며 희롱하리오. 관령이 엄한 줄 알지 못하고 다만 일배 박주에 팔려 형장(刑杖)이 이 몸에 돌아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가. 나는 굴 밖에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하고 말을 마치며 나와 수풀 사이에 앉아 종시 들어가지 않는지라. 서대쥐 이 말을 듣고 오소리더러 너구리를 청하라 권하매, 오소리 나아가 너구리를 이끌어 가로되,
“서대쥐 이처럼 간청하거늘 어찌 차마 거절하리오. 잠깐 들어가 동정을 봄이 좋도다.”
너구리 가로되, / “그러면 ㉠전례는 어찌한다 하느뇨.”
오소리가 너구리 귀에 대고 대강 이르니, 너구리 그제야 오소리와 더불어 가니 화려한 누각이 굉장한지라. 전각에 올라 서대쥐와 더불어 좌정 후에 다람쥐 송사한 일을 두어 마디 수작하더니 얼마 안 되어 안으로서 주찬이 나오는지라. 잔을 잡아 서로 권할새 수십 배를 지난 후에, 장자쥐 화각(畵角) 모반에 황금 스무 냥을 담아 서대쥐 앞에 드리니, 서대쥐 황금을 가져 오소리 앞으로 밀어 놓으며 가로되,
“이것이 대접하는 예는 아니나 서로 정을 표할 것이 없으매 마음에 심히 무정한고로 소소한 물건으로 옛정을 표하나니 두 분 별감은 혐의치 말고 나의 적은 정성을 거두소서.”
오소리 웃으며 왈,
“서대쥐의 관대함이 감사하던 중 이같이 후의를 끼치시니 받는 것이 온당치 못하오나 감히 물리치지 못할지라. 그러나 서대쥐는 조금도 염려치 말고 다람쥐와 결송케 하면 내일 재판할 때에 우리 둘이 집장(執杖)할 터이오니 어찌 다람쥐를 중죄(重罪)하여 서대쥐의 분풀이를 못하리오.” / 하고 인하여 서대쥐와 더불어 떠나더라.
*소진, 장의: 중국 전국시대에 활약한 달변의 정치가.
*패자: 지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글.
*유현: 사람의 눈에 띄지 아니하는 곳과 눈에 띄는 곳.
*승안접사: 웃어른을 만나 뵙는 일. *박주: 맛이 좋지 못한 술.
7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서술자의 직접 개입이 나타나지 않는다. ② 인물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③ 회상 형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④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로 비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⑤ 사건 전개에 따른 인물의 심리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2. 작중 인물의 생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서대쥐 : 두 형졸에 대한 나의 대접이 소홀하여 부끄럽다. ② 백호산군 : 다람쥐 말만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③ 너구리 : 이 기회에 서대쥐에게 돈을 뜯어내야겠다. ④ 장자쥐 : 형편에 따라 원칙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⑤ 오소리 : 평소 서대쥐의 행실이 불만스러웠다.
3. ㉠에 내포된 의미로 알맞은 것은?
① 죄를 자백하겠다고 하는가? ② 음식은 준비했다고 하는가?
③ 재물을 바치겠다고 하는가? ④ 재판정에 나가겠다고 하는가?
⑤ 교만함을 사죄하겠다고 하는가?
4. 위 글을 읽고 나서 보인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진실성 없이 겉과 속이 다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두었군.
② 관(官)의 힘에 기대어 위세를 부리는 인물을 풍자하고 있군.
③인정세태를 그리기 위해서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기법을 사용했군.
④돈의 힘을 알고서 능란하게 쓸 줄 아는 인물의 처세를 보여주고 있군.
⑤절차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재판 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있군.
<정답> 1⑤ 2① 3③ 4⑤
[문제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백호산군(호랑이-긍정적 인물)이 양구(良久-오랜 후에)에 왈,
“진실로 선재라.(좋은 일이다) 이는 충의의 말이라. 그러나 들으니 요사이 다람쥐와 더불어 무슨 결원(結怨-원한을 품음)이 있어 남(다람쥐)의 과동(過冬-월동, 겨울을 지낼) 양식을 도적하였다니 무슨 연고인고.”(다람쥐의 허위 고발)
하고 인하여 다람쥐(부정적 인물)를 붙들고 불러들여 서대주(긍정적 인물)와 대송할새 다람쥐의 소지(訴旨-소송의 뜻, 고발장)를 내어 서대주에게 읽혀 들리며 분부 왈,
“서대주는 들으라. 다람쥐의 소지 원정(原情-사정을 하소연함)이 이와 같으니 사실이 과연 이러한고. 조금도 은휘(隱諱-꺼리어 감추고 숨김)치 말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
서대주 말을 듣고 전상을 우러러 소리를 높이며 왈,
“산군 조령지하에 어색하온 말로 감히 품달키 어려운지라. 바라건대 잠깐 머무르시면 한 장 소지를 베풀어 하정을 고달하리이다.”
산군이 이에 허락하니 서대주 지필을 취하여 수유간(須臾間-잠깐 사이)에 일장 소지를 지어 올리거늘 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보니 가로되,
“구궁산 팔괘동 서대주는 아뢰나이다. 무릇 소지의 사단은 신이 엎디어 들으니, 자고로 만물의 쟁소(爭訴-쟁송, 소송)하는 바는 나라의 도(道) 없으면 임금의 덕(德)이 없는 사유라. <중략> 산군의 용맹은 천산만학에 순행하사 백 짐승의 으뜸이로되, 위엄은 천 리 밖에 나지 못하고 덕은 백 리 밖에 베풀지 못하사 수하(手下-손아래)의 작은 짐승이 산군의 교화를 입지 못하고 항렬 사이에 서로 소송을 일으키며 쟁송지경에 이르니 슬프기 그지없소이다.(산군의 덕 없음을 비판하는 서대주) 이번 송사도 신과 다람쥐 사이에 무도함이 아니라 책재원수(責在元帥-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음)라. 산군의 교화가 이르지 못함이요 덕이 무왕을 효칙(效則-본받음)지 못함이라. 신은 구궁산에 거한 지 수년에 조상의 전하온 재물이 수천 금에 지나고 겸하여 요사이 당천자 사급하옵신(상으로 내리신) 율목(밤나무)이 4만여 주에 지나오니 항상 마음에 과복함을 염려하는 바요, 상하 권솔이 매양 무슨 볼일이 있어도 출필고(出必告-나갈 때 반드시 알림) 반필면(反必面-돌아오면 반드시 알림)하옵거늘 노복 종이라도 하일에 무엇이 부족하여 타인의 양미를 엿보아 도적을 하오리까.(설의법) 다람쥐는 수십 세를 내려오며 빈한(貧寒)한 것은 천산만학이 중소공지(衆所共知-뭇사람이 모두 아는 일)요, 성품이 본래 장구지계하는 원려(遠慮-앞날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가 없고 다만 고식지계(姑息之計)로 어제 거두어 오늘 살고 금일 취하여 내일 지내오며, 또한 가중(家中-집 안)이 본디 적막하여 휘장삼처(揮杖三處)에 사벽이 무애(지팡이를 휘두르나 막히는 것이 없음-살림이 방 안에 전혀 없음. 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어늘, 무엇이 넉넉하여 도둑맞을 수십 양미를 어느 겨를에 저축하오리까.(설의법) ㉡다람쥐가 거년에 애연한 사정을 신더러 말하옵기에 생률백자 1, 2석을 주어 구활하온 후 금년 신정에 다시 나와 두 번 와 사정하오나 마침 신의 집에 용도가 많아서 그 청을 들어주지 못하였더니, 그로 활원하와 보은함은 생각지 않고 이같이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니 어찌 억울치 않사오리까. 증공의 글에 일렀으되 도적이 증거를 밝혀야 도적에게도 도리어 복을 주게 된다고 하였으며, 옛날 한 태조는 진나라를 멸하고 함양에 들어가 포로로 더불어 삼장법(三章法)을 언약할 제 살인자는 사(死)하고 상인자(傷人者-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자)와 도적은 죄로 다스리기로 국법을 밝혔사오니, 원컨대 산군은 진상을 명찰하신 후에 만일 신이 도적에 나타나는 형상이 분명하올진대 쾌히 신을 명정기죄(明正基罪-명백하게 죄목을 지적하여 바로잡음)하와 일후 다른 짐승으로 하여금 징계하시고, 산군도 덕화를 멀리 베풀지 못하사 교화 널리 흐르지 못하므로 이런 송사가 생기는 것이오면 스스로 탄식만 하옵시고 신 등의 쟁송함을 그르다 마옵소서.”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를 부르매 그 제사에 가로되,
“예로부터 일렀으되 아랫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것이거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는 마땅히 만 번이라도 죽일 만하다.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魏)나라 임좌는 그 임금 측천무후의 그름을 말하였고, 한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덕이 없음을 말하니 너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무후와 한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오. 어불성설(語不成說-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 반대는 만불성설)이니 다람쥐는 엄형으로 다스려 귀양 보내고 서대주는 즉시 풀어 주어라.”
제사 이미 내리니 서대주 일어나 다시 꿇어 가로되,
“산군의 밝으신 정사를 입어 풀어 주심을 입사오니 황송 무지[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름]하온지라 다시 무엇을 고하리요마는, 신의 미천한 마음을 감히 산군께 우러러 알리옵나니, 다람쥐의 죄상을 의논하올진대 간교하온 말로써 욕심을 내고 기군망상(欺君罔上-임금을 속임)하온 일은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으며 죽어도 죄가 남겠으나, 헤아리건대 다람쥐는 일개 작은 짐승으로 배고픔이 몸에 이르고 빈곤이 처자에 미치매, 살고자 하오나 살기를 구하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또한 구하기 어려우매 진퇴유곡(進退維谷)하던 항우(項羽)의 군사라, 다만 죽기를 달게 여기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고로 방자히 산군께 위엄을 범하였나 보옵니다. 오히려 생각하올진대 가련한 바이어늘, 다람쥐로 하여금 중형으로 다스릴진대 이는 죽은 자를 다시 때리는 일이요, 오히려 노승발검(怒蠅拔劍-파리에 화내어 칼을 뺀다는 뜻이니, 곧 사소한 일에 화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산군은 위엄을 거두고 다람쥐로 하여금 쇠잔한 명을 살려 주시고 은택을 내리는 덕을 끼치사 일체 풀어 주시면 호천지덕(昊天之德-하늘과 같은 덕)을 지하에 돌아간들 어찌 잊으리까. 살피고 살피심을 바라옵고 바라나이다.”
산군이 듣기를 다하매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기특하도다, 네 말이여. 다람쥐가 큰 부처님의 선함을 누르고자 하니 한갓 불로 하여금 달빛을 가리고자 함이라. 서대주의 선한 말을 좇아 다람쥐를 풀어 주니 돌아가 서대주의 착한 마음을 본받으라.”
하고 인하여 방송(放送-석방, 풀어 줌)하니, 다람쥐가 백 번 절하며 사은하고 만 번 치사한 후 물러가니라. 백호산군과 녹판관, 저판관이며 모든 하리 등이 서대주의 인후함을 못내 칭송하더라.
1. 위 글에 드러난 ‘서대주’의 성격에 대한 반응으로 적절한 것은?
① 약자만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아 사리 판단이 불분명한 인물이군.
② 계층 간의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것으로 보아 보수적인 인물이군.
③ 판관(判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아 버릇이 없는 인물이군.
④ 강한 자에게 맞서 직언하는 것으로 보아 의기 있고 당당한 인물이군.
⑤ 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융통성이 부족한 인물이군.
2. 위 글의 성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우회적으로 풍자함 ② 동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우의적 수법이 사용됨
③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여성의 비판 의식이 나타남 ④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을 지님
⑤ 사건의 신이한 전개에 의한 전기적(傳奇的) 요소가 드러남
3. 위 글에서 서대주가 다람쥐를 풀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20자 이내로 쓰시오.
4.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상징적 소재를 통해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② 서술자가 상황에 대해 직접 논평하고 있다.
③ 대화를 통해서 인물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다. ④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고 있다.
⑤ 공간적 배경에 따라 인물의 심리가 변하고 있다.
5. ㉠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송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추리하고 있다. ② 현명한 판결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③ 자신의 무고함을 논리적으로 항변하고 있다. ④ 산군의 덕을 칭송하며 상대방을 예찬하고 있다.
⑤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며 상대방을 설득하고 있다.
6. <보기>는 송사 소설의 특징이다. <보기>를 통하여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억울한 일을 관청에 호소하여 해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함. ---ⓐ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하는 역할을 함. ---ⓑ
* ‘과제 부여’ → ‘과제 해결’의 구조로 되어 있음 ---ⓒ
*사건에 대한 판결 내용이 작품의 주제 의식으로 부각됨. ---ⓓ
*전기적 요소 없이 사건이 진행되어 비교적 사실적임 ---ⓔ
① ⓐ : 백호산군이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② ⓑ : 상대방을 모함하는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한다고 볼 수 있다.
③ ⓒ : 서대주가 다람쥐에게 빌려 줄 양식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에 해당된다.
④ ⓓ : ‘권선징악’과 ‘관용’이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⑤ ⓔ : 입장 진술과 판결이라는 재판의 과정이 사실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7. ㉡에서 다람쥐를 평가하는 한자 성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각주구검(刻舟求劍) ② 견리사의(見利思義) ③ 천방지축(天方地軸) ④ 부화뇌동(附和雷同) ⑤ 적반하장(賊反荷杖)
<정답> 1④-직언한 서대주를 백호산군이 높게 평가하고 있음 2⑤-구름을 타고 나는 등의 비현실적인 전기적 요소는 찾아 볼 수가 없다. 3. 배고픔이 몸에 이르고 빈곤이 처자에 미쳐서 4③ 5④ 6③ 7⑤
[문제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가장이지만 집안을 돌보지 않아 가난하게 생활하는 나태한 다람쥐는 서대주가 베푼 잔치에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호소하여 밤과 잣을 얻어 간다. 겨울이 되어 식량이 부족하자 다람쥐는 다시 서대주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서대주는 종족의 형편을 들어 이를 거절한다. 서대주에게 앙심을 품은 다람쥐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결심을 계집 다람쥐에게 말하나 계집 다람쥐는 다람쥐의 신의 없음을 비판하고 집을 떠난다.
다람쥐 더욱 분노하여 가로되, / “소장지변은 유아이사라. 도시 서대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라. 내 당당히 서대주를 설욕하고 말리라.”
인하여 일장 소지를 지어 가지고 바로 곤륜산 동중에 이르러 백호궁의 형방소(刑房所) 찾아 들어가서 다람쥐 억울한 마음을 올림을 고하니, 이때 백호산군이 태산오악을 순행하다가 곤륜산으로 돌아와 각처 짐승의 선악을 문죄코자 하더니 홀연 형부 아전이 들어와 고하되,
“하도산 낙서동 등지에 거하는 다람쥐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거늘 백호산군이 형부관에 명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이라 하는지라.
다람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형졸을 따라 백호궁 앞뜰에 이르니, 전후좌우에 위엄이 범상치 않은지라.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을 나직이 하여 복지대령하였더니, 이윽고 전상에서 형부 관헌이 나와 ⓐ소지를 빨리 올리라 하니, 다람쥐 품속에서 일장 소지를 내어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는데 백호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본즉 사연에 가로되,
“하도산 낙서동에 거하는 다람쥐는 다음 일의 이모저모를 고하나이다. 신은 본디 낙서동에서 나서 자라 천성이 어리석고 마음이 졸직(拙直)하온 바 항상 굴문을 나오는 바 없고, 밖으로는 가까운 친척 없으며 오 척에 동자 없고 척신(隻身)이 고고하여 다만 미천한 계집과 약한 자식으로 더불어 낮이면 초산에서 나무를 베며 신야(新野)에서 밭을 갈고, 밤이면 탁군에 자리를 치며 패택에 신을 삼고, 춘하에 사엽(射獵)하며 추동에 독서하여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만수 천산에 깊은 곳에 꽃을 보면 봄철을 짐작하고 잎을 보면 여름을 깨닫고 낙엽으로 가을을 양탁(量度)하며 서리와 눈이 내리면 겨울임을 알아 문호에 명철보신으로 일삼고 청운에 공명을 기약지 아니하여 부귀를 뜻하지 아니하고 천수만목의 열매를 거두어 양식을 삼고 하루하루 재산을 계산하옵더니 뜻밖에 지난 보름밤에 구궁산 팔괘동에 거하는 서대주 놈이 노복 쥐 수십 명을 데리고 한밤중에 신의 집에 불문곡직하고 돌입하여 천봉만학에 흐르는 날밤과 높은 봉우리와 험준한 골짜기에 떨어진 잣을 천신만고하며 주우며 거두어, 비바람 치고 눈 오는 추운 날에 깊은 엄동을 보전코자 저축하온 양미 수십 석을 탈취하여 가며 오히려 신을 무수히 난타하온즉, 신의 슬픈 정세는 땅 없는 외로운 망량(輞輛)이라. 막막한 세상에 호소할 곳 없는 고로 극히 원통하와 한 조각 원정을 지어 가지고 엎디어 백호산군 밝은 다스림 아래에 올리옵나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의 참상을 살피신 후에 아랫사람들을 보내시어 이 같은 서대주 놈을 성화착래하여 엄형으로 중히 다스려 잔약한 신의 잃어버린 양미를 찾아 주옵소서. 혈혈단신으로 의지할 곳 없는 잔명이 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게 하옵시는 산군 주 처분을 천만 번 간절히 바라옵니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다람쥐의 소지를 본 백호산군은 서대주를 잡아들여 심문한다. 서대주는 고사를 들어 백호산군의 덕화가 부족함을 지적한다.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를 부르매 그 제사에 가로되,
[A]【“예로부터 일렀으되 아랫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것이어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는 마땅히 만 번이라도 죽일 만하다.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魏)나라 임좌는 그 임금 문후(文候)의 그름을 말하였고 한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덕이 없음을 말하니 너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문후와 한 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오. [ ㉠ ]이니 다람쥐는 엄형으로 다스려 귀양 보내고 서대주는 즉시 풀어 주어라.”】
1. 윗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적절한 것은?
①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여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②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여 긴박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③ 인물의 외양을 자세히 묘사하여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④ 대립적 성향의 인물을 제시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⑤ 특정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하여 그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2. ⓐ에서 다람쥐가 말하는 내용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① 자신은 농사지을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② 자신은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다.
③ 자신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열매를 모아 두었다. ④ 서대주가 자신의 식량을 탈취해 갔다.
⑤ 자신은 서대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를 원하고 있다.
3. 〈보기〉를 활용하여 [A]를 적절하게 비판한 것은?
<보기> 다람쥐와 서대주의 연이은 소지 제출로 진행된 재판에서 다람쥐는 패소하고 서대주는 승소한다. 재판관인 백호산군은 다람쥐의 소지에 따라 서대주를 소환했지만, 이후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다람쥐의 소지를 전혀 검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대주의 소지를 검토할 때에도 다람쥐의 고발 내용과 무관한 내용만을 검토한 후 판결을 내린다.
① 백호산군은 다람쥐의 인물됨을 근거로 판결하고 있다.
② 백호산군은 다람쥐의 소지 내용이 거짓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
③ 백호산군은 법적 근거 없이 서대주의 덕성을 근거로 판결하고 있다.
④ 백호산군은 구체적인 증거를 토대로 다람쥐의 유죄를 입증하고 있다.
⑤ 백호산군은 다람쥐와 서대주의 신분을 비교한 결과를 토대로 판결하고 있다.
4. 문맥상 ㉠에 들어갈 한자 성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간담상조(肝膽相照) ② 견마지로(犬馬之勞) ③ 곡학아세(曲學阿世) ④ 마이동풍(馬耳東風) ⑤ 어불성설(語不成說)
<정답> 1④-서대주와 다람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립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서대주는 부민이고 다람쥐는 빈민이며, 언행의 격에 있어서도 서대주가 원칙에 입각해서 절도 있게 행동한다면, 다람쥐는 무원칙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렇게 대립적인 인물 설정은 권선징악이라는 주제 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2①- ‘신의 슬픈 정세는 땅 없는 외로운 망량이라.’에서 다람쥐에게 땅이 없음을 알 수 있다.
3③-백호산군은 서대주의 소지에서 ‘문후와 임좌의 고사’와 ‘한제와 주운의 고사’를 자신과 서대주의 관계와 연결 짓고서 이를 토대로 서대주의 덕성을 평가한 후 판결하고 있다. 결국 사건과 관련된 사실에 대한 검토 없이 주관적으로 판결한 셈이다.
4⑤-서대주가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했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문맥이므로,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을 의미하는 말인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에 들어가기에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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