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보고, 대구의 재실
94.【한훤당 종택】(서흥김씨) 소학세향·소학세가 한훤당 종택
글·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전 성균관청년유도회 대구광역시본부 사무국장)
프롤로그
예로부터 ‘현풍8문’하면 현풍곽씨와 서흥김씨가 첫손가락에 꼽혔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시간에 대니산 남쪽 솔례마을에 자리한 현풍곽씨 솔례종택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풍의 서흥김씨 종택인 한훤당 종택 역시 솔례 인근에 있다. 솔례와는 작은 산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못골이라는 마을에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그곳에 현풍의 서흥김씨 종택, 정확하게 말하면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종택이 있다.
서흥김씨 대구입향 내력
서흥김씨(瑞興金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 조에서 중낭장을 지낸 김보(金寶)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김천록(金天祿)은 고려 원종 때 삼별초 토벌과 고려·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서 큰 공훈을 세운 인물이다. 그 공으로 광정대부 도첨의시랑 찬성사상장군 판판도사사에 오르고 서흥군에 봉군되었다. 이를 연유로 후손들은 서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천록의 현손 대[7세]에 이르러 서흥김씨는 3개 파로 분파된다. 김중건(金中乾)은 경기파, 김중곤(金中坤)은 영남파·호남파·해남파, 김중인金中寅)은 초계파의 파조가 되는데 이들은 형제간이다. 서흥김씨 대구 입향조는 세종 조에서 통정대부 예조참의를 지낸 영남파 파조 김중곤이다. 그가 현풍의 솔례곽씨 문중으로 장가를 들면서 서울 정릉을 떠나 처향인 솔례로 들어온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서흥김씨들은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를 거쳐 지금의 못골에 종택을 짓고 세거지를 형성했다.
못이 있어 못골이라
솔례와 못골의 갈림길에 용흥지라는 아담한 못이 하나 있다. ‘현풍곽씨12정려각’ 바로 앞에 있는 그 못이다. 용흥지를 등지고 왼쪽으로 가면 솔례마을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못골이다. 못골은 한자로 지동(池洞)인데 말 그대로 못이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우리네 전통마을들 중에는 마을입구에 마을연못이나 마을숲이 조성된 예가 많다. 이는 대체로 풍수지리나 아니면 무속적인 이유 때문인데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흥미롭다. 못골 역시 마을 초입에 마을연못과 마을숲이 있다. 마을연못을 조성한 것은 풍수적인 이유 때문이다. 마을이 나비를 닮은 형국이라 나비가 좋아하는 물을 가까이 두기 위해 연못을 팠다는 것이다. 마을숲은 좋은 기운은 갈무리하고 나쁜 기운은 막는다는 풍수적 의미와 함께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의 대상이 되는 당산숲·당산나무의 기능을 한다. 참고로 못골의 마을연못은 우리네 전통 연못조성방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흔히 방지원도(方池圓島)라고 하는 것으로 사각형의 연못 가운데 원형의 섬이 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동양의 전통사상을 연못에다 투영한 것이다. 한훤당 종택 안에도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 역시 방지원도로 조성되어 있다.
못골 한훤당 종택의 내력
‘한훤고택’. 종택의 솟을대문 앞 표지석에 새겨진 이 집의 택호다. 그런데 택호와는 달리 이 집에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거주한 사실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훤고택은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무려 275년 뒤에 세워진 집이기 때문이다. 한훤고택은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인 1779(정조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의 11세손인 김정제(金鼎濟)라는 인물이 지금의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에서 이곳 못골로 이거할 때 건립한 종택인 것이다. 본래 못골은 수원백씨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한훤당 종택이 옮겨온 이후부터 서서히 서흥김씨들의 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훤고택은 크게 4개 영역으로 구분된다. 생활공간인 ‘정침’과 제향 및 사랑채 역할을 하는 ‘광제헌’과 ‘불천위사당’ 그리고 ‘퓨전카페’ 영역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훤고택 역시 현풍곽씨 솔례종택처럼 6.25한국전쟁의 피해를 직접 입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의 불천위사당, 대문채, 광채는 피해를 입지 않은 옛 건물 그대로이고, 나머지 정침, 광제헌 등은 새롭게 복원한 건물이다. 현재 한훤고택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건물이 정침 곧 안채다. 그리고 솟을대문과 안채 사이에 본래 중사랑채가 있었는데 6.25때 사라져 아직까지 복원을 하지 못한 상태다. 한훤고택이라는 명칭은 한훤당 선생의 불천위사당을 갖추고 그의 종손이 사는 집, 한마디로 한훤당 종택이라는 뜻이다.
불천위 사당과 광제헌
불천위 사당은 안채 뒤편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청인 광제헌 뒤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불천위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으로 반 칸 툇간을 둔 개방형 사당이다. 또한 불천위 사당에 걸맞게 단청이 입혀져 있다. 신주 설치는 북벽 중앙에 한훤당 선생의 불천위신주가 놓여 있고 동쪽 벽에 고조·조, 서쪽 벽에 증조·고가 놓여 있는 소목법(昭穆法)을 취하고 있다. 이 불천위 사당은 1615년(광해군 7) 현풍현감 허길의 감독 하에 건립된 것으로 국명에 의한 건립이었다. 현재 사당 기단부 석재에 을묘(乙卯)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는데 서기로 환산하면 사당 건립연도인 1615년이 된다. 그렇다면 종택 건립이 1779년이고, 사당 건립 1615년이니 사당 건립이 종택 건립보다 무려 164년이나 앞선 셈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지금의 한훤고택 불천위 사당은 도동리에 있던 옛 사당을 못골로 이건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침을 마주보고 섰을 때 좌측에 제청이자 사랑채의 역할을 하는 광제헌이 있다. 광제헌은 정면 6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 나머지 좌우 3칸은 방이다. 건물 전면 처마에는 한훤고택, 대청 북벽에는 소학세가(小學世家) 편액이 걸려 있다. 광제헌이라는 이름은 비온 뒤의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을 의미하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는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말은 본래 유가에서 나온 말로 황정견이라는 인물이 염계 주돈이 선생의 인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주돈이의 인품이 고상하고 마음이 대범한 것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 갠 날의 달과 같다.(舂陵周茂叔 其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위풍당당 광제헌, 그 아래 잘 가꿔진 뜰과 반송 그리고 방지원도. 제청으로 건립된 광제헌은 그 이름만큼이 맑고 깨끗한 공간으로 마치 풍광 좋은 자연과 그곳에 세워진 별장을 집안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에필로그
현풍권 답사에 있어 ‘현풍곽씨12정려각’은 필수코스에 들어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답사객들은 정려각만 보고 이 지역을 그냥 지나친다. 정려각에서 걸어 5-10분 거리에 있는 현풍곽씨 솔례종택과 한훤고택의 존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긴 안다하더라도 유가문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한 종손이 살고 있는 살림집을 방문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다. 한훤고택 뜰에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퓨전카페가 생겼기 때문이다. 평소 출입이 부담스러웠던 종택 뜰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종택 내부를 둘러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역시 전통과 현대는 서로 만나야 더욱 멋스러워지는 법이다.
끝...
2019년 5월 4일
砧山下 풍경산방에서
訥齋 송은석拜
☎010-9417-8280, 018-525-8280
-------------------------------------------------------------
※ 지역의 유교유적, 유교문화, 문중 등은 기존의 자료가 충분치 못한 관계로 내용 중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신 경우 전화 또는 댓글로 조언을 주시면 적극 경청하고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당부 드립니다.
2019년 4월 어느날. 한훤당종택의 모습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안채이고,
안채 지붕 위로 살짝 보이는 기와지붕이 불천위 사당의 지붕이다.
우측에 조금 보이는 건물이 퓨전카페 '바이소가'인데
주변의 광채와 대문채 그리고 뜰의 일부를 찻자리로 사용하고 있다.
광제헌 반송과 연못
광제헌 방지원도
2012년 4월 한훤당 종택의 모습이다.
본디 유가의 예법은 이렇다.
반드시 절을 한다.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진 문화이다.
두루마기를 걸치신 어른이 2018년 고인이 되신 고 김병의 종손이시고
그 좌측 곤색 자켓을 걸친 분이 현 종손이신 김백용 종손이다.
2012년 4월의 모습이다..
광제헌을 돌아 불천위 사당으로 가는 길
불천위 사당이다
사진 우측의 짙은 색 감실 내부에 한훤당 선생 내외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2012년 4월. 한훤고택
2012년 4월. 종택에 대한 소개를 하고 계시는 현 김백용 종손
2012년 4월. 종택 앞 400년 은행나무 아래에 놓여 있던 행천(杏泉) 비석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보이지 않는다
2012년 4월. 한훤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