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바쁘게 지나갔던 시간들과 그 동안의 방황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1년 전 길수라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천바로알기종주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도에 이미 이 종주를 마친 적이 있었던 친구 길수가 그 때 당시 돌아왔을 때 지친 내색은 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즐거웠다며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부러운 마음과 당연히 ‘쉽겠지’라는 굳은 믿음에 나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2일-아무도 앞으로의 고된 1주일을 예상하지 못한 체, 첫째 날의 해가 밝았다. 종주단 카페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과 길수의 조언에 의지하고 친구 홍희와 홍희아버지의 도움으로 문학경기장에 위치한 검도장에 도착. 햇빛이 비추는 아래 검도장을 찾는 것만으로 벌써 진땀을 빼야했었다. 검도장 안은 시큰둥한 표정의 천차만별의 나이대의 학생들과 각 학생들의 부모님들로 붐볐다. 무작위로 선정된 조가 편성되고 적절한 의례가 끝나자마자 우선 서로의 얼굴을 익히기에 앞서 조장을 선정했고 조를 상징할 깃발 제작에 들어갔다. 우리 2조는 인천에서 점점 보기 드물어지는 저어새와 인천의 세 가지 상징물 중의 하나인 장미를 그려 넣었고 곧 있을 인천세계도시축전의 성공을 빌며 必勝仁川(필승인천)이라는 글자를 각각 네 모퉁이에 적어 큰 바램을 표현해보았다. 그렇게 조원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검도장 바로 옆에 위치한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다음날부터 시작될 고난을 모른 체 반가운 나머지 조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밤을 새어갔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3일-둘째 날, 드디어 인천종주의 시작 서먹했지만 단체 활동을 하는 특성상 가족 같은 분위기로 서로를 맞춰가며 활동은 시작됐다. 다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하게 씻은 후, 식사를 마치고 몸을 풀기 위해 운동을 했다. 그리고 여러 후원인들과 중요직에 위치하신 분들을 만나 덕담을 듣고 앞서 준비해왔던 수통에 물을 채운 후, 종주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먼저 우린 승기천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본 도심 속 대자연이 이번 종주를 통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정시간을 걷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을 유지하며 다음 코스인 송도갯벌타워를 향해 머리를 틀었다. 걸으면서 단장님께선 이번 종주단에겐 날씨가 도움을 준다고 미소를 지으셨다. 갯벌타워에 도착해서 여러 볼거리를 보고 점심을 먹은 뒤 종주단은 생태공원에 찾아갔다. 그곳에선 우리 조의 상징이 되었던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도착지인 인천대공원에 도착했을 땐, 직접 종주를 한 첫 날이기도 해서 모두가 말수가 적어지고 남은 5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어댔다. 우선 밥을 먹은 후 일정대로 인하대의 FLEX(Fun Love Experience) 동아리와의 첫 대면을 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모두가 팝핀을 추어댔다. 동작 하나하나에 세밀한 관심과 작지 않은 힘이 필요했지만 근육들이 도통 말을 듣지 않아 춤에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다. 늦게까지 대화를 했던 어젯밤과는 달리 오늘은 불쌍하게도 난 곯아떨어졌고 종주 첫 날의 밤은 이렇게 끝이났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4일-셋째 날, 난 10대가 아니다. 아침기상. “으아아......” 온몸이 쑤셔댄다. 정말 밉게도 우리 팀장님들께서는 마치 군기를 잡듯이 큰소리로 행동 하나하나를 지도하셨고 이 날 만큼은 10대답지 않았던 몸을 이끌고 밥을 먹은 후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이라는 말을 귀에 못 박히게 듣고 아침체조를 시작했다. 체조 후 우리가 향한 곳은 부평역. 어제부터 심상치 않았던 발이 드디어 나에게 물집이 났다며, 나를 그만 괴롭히라며 통증을 호소했다. 맛있는 음식내가 진동하는 부평시장을 통과하고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지식을 쌓은 후 4일째 도착지. 이름만 들어도 오싹한 흑룡부대에 도착했다. 내무반으로 들어가 짐을 꾸리고 군의관님들께서 상처를 치료해주신다기에 식사를 뿌리치고 치료를 받으러갔다. 인천이 도심지라 민간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찾아가니 내심 군인들은 흐뭇해하는 표정들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맛있었던 군대밥을 먹은 후 즐겁게 팝핀을 추었다. 자기 전 조원들과 마지막 날에 있을 장기자랑을 짜고 부모님들께서 보내주신 간식을 먹고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엽서를 쓴 후 편하게 잠이 들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5일-넷째 날, 고난의 끝을 보여주는 계.양.산. 정말이지 난 평지만 걷는 줄 알았다. 슬프게도 군부대 근처의 철마산을 오르게 되었다. 아픈 발 때문이기도 했으나 평소에 산타는 걸 즐겨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최악의 날이였을지도 모른다. 철마산에 이어 계양산도 완등했을 땐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반 이상이였다. 그래도 우리의 맘을 예상하고 있었냐는 듯 일정상 버스를 타기로 되어있었다. 오늘따라 더워서 피곤했는지 단원들은 모두 지쳐 잠을 청했다. 짧은 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꿈만 같은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도착한 강화 고인돌 유적지. 더운 와중에도 우리를 찾아주신 강화군수님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고 고인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다시금 새로운 지식을 적립했다. 서사 체험장에 도착했을 땐 잠시 동안 긴장이 풀려 운동장에 앉아 졸기도 했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기에 주변의 건물들을 보고 ‘편안히 자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깨고 운동장에서 야영을 한다고 하셨다. 비록 120여명을 수용하기엔 너무나도 작았던 장소에서 팝핀을 배우느라 답답했지만, 샤워시설도 좋았고 그 날 역시 간식이 찾아와 행복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6일-다섯째 날, 이젠 몸이 회복이란 기능을 잃은 듯하다. 발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잠도 그리 편안하게 못자고 설친 것 같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종주에 임하기로 맘먹었다. 오늘은 마니산 근처에 위치한 마니산 수련원이 목적지라고 처음부터 단장님께선 말씀해주셨다. 목표를 잡고 일을 실행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했고, 걸으면서 말동무가 되어줄 친구를 찾아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걸었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그러다가 좀 지칠 때쯤 점심을 먹는다고 삼랑고등학교에 잠시 머무르겠다고 하셨다. 마침 그곳엔 우리 또래로 보이는 학생이 공을 차고 있어서 힘든 와중에도 중학교 때 즐겨했던 축구가 기억났는지 나의 중학교동창 5조장 정현이가 공을 한 번 차보고 싶다며 단장님께 제안하여 승낙 싸인을 받아냈다. 나도 정상이 아니었던 발에겐 미안했지만 한 번이라도 공을 차보고 싶은 마음에 밥을 빨리 먹고 운동장에 섰다. 승부는 2:1 종주단의 승리. 난 현재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의 동아리 활동으로 축구부의 골키퍼를 맡고 있어서 골키퍼를 했는데 너무 우습게 한 골을 먹혀 단원들에겐 많이 미안했지만 모두가 이해해주었고, 정신력 하나만을 믿고 승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가 뿌듯해했다. 기쁨도 잠시 또 다시 고난 길은 시작됐다. 오늘따라 동생과 또래 친구들의 가방을 많이 들어줬었는데 수련원에 도착하기 1~2km 전부터 허벅지와 종아리를 잇는 근육이 풀려 엄청 고생을 해서 후회도 잠시 했었지만 내 한 몸 희생하여 동료들이 편했다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리고 수련원에서 보이는 마니산의 전경과 그 곳의 시설은 내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해주었고, 그야말로 최고의 식사를 먹으며 너무나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7일-여섯째 날, 난 다리 근육이 풀렸을 뿐이고~ 종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고~ 비가 내렸다. 어젯밤은 정말 집에서 잤던 잠보다도 달콤했다. 에어컨으로 온도를 유지하고 이불 위에서 정말 사람답게 잔 것 같았다. 아침밥을 먹기 전 우리는 다 같이 귀엽게 형형색색의 우비를 입고 마니산 등산길에 올랐다. 넷째 날 그 힘든 철마산과 계양산을 등반했기에 마니산은 쉽게 등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참성단까지는 갈 수 없었다. 듣기로는 길이 닫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여정이 줄었기에 모두가 좋아했다. 산을 내려와 맛있게 밥을 먹고 침낭을 옮기기 위해 조장들끼리 따로 숙소에 모였다. 마침 센스있는 9조장 재의형이 어제 인천고등학교동문회에서 우리를 위해 챙겨주신 치킨을 몇 곳에 숨겨놓았는데 찾아서 함께 먹었다. 이미 밥을 먹은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잘도 넘어갔다. 이게 진정한 우리들만의 여행의 묘미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역시 관광버스를 타고 영종도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으로 달렸다. 처음 도착했을 때 난 너무 즐거웠다. 사실 난 비행기를 타보지도 못했고, 공항에 와본 적도 없기에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공항 안의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단체 활동을 했던 우리들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모두가 몸에서 땀 비린내가 나서 어쩌면 예민한 분들께는 폐를 끼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공항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경험을 하고 종주단의 나침반은 장봉도로 향했다. 배를 타서 짭조름한 바닷물 냄새를 맡아가며 장봉도에 도착했다. 장봉도란 곳은 처음으로 듣는 섬이었기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주웠고 ‘정말 여행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장봉도의 해변으로 가기 위해 산을 넘어 우리의 야영지가 될 장소에 도착했을 땐 벌써 우리 단원들의 장기자랑을 위한 무대가 지어지고 있어 밤에 있을 멋진 축제를 연상케 했다. 단장님께서는 특별히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길 기회를 주셔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날뛰었다. 나는 물집이 잡힐 때로 잡혀 물에 들어가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 가만히 놔둘 종주단원들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내 몸은 소금물에 쩔어 있었고 난 다음 희생자를 찾아 헤맸다. 도중에 우리의 안전을 지켜야한다며 예민하셨던 단장님을 빠뜨렸었는데 핸드폰이 그만 함께 잠수를 하는 바람에 모두가 집에 갈 수 있게 해줄 유일한 통신수단의 길이 막힌 줄 알고 순간 당황했다. 그렇게 즐겁게 놀고 시간이 없어 청결하지 못하게 대강 샤워를 끝내고 어두워지자 드디어 장기자랑의 대장막이 올려졌다. 장기자랑의 순서를 랜덤하게 정했는데 첫 번째 희생조가 옆에 나오자 좋아했던 우리 조. 하지만 다음 순서가 우리 조였으니......; 드디어 앞 조의 장기자랑이 끝나자 우리의 차례가 다가왔다. 우리 조의 장기자랑은 노래. 이전에 한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의 가사에 맞춰 멋지게 장기를 끝낼 생각을 했지만, 노래가 없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한 끝에 찾아낸 노래-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무대에서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아쉽게 마치고 다른 조의 무대도 즐겁게 바라보며 호응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조는 Zebra란 조명을 가진 7조였는데 7조장 시훈이형이 모든 무대를 에드리브로 끝냄으로써 진정한 레크레이션 킹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당히 1위를 하였다. 조원들 역시 너무나 열심히 응했기에 멋진 무대였다. 종주단원들의 무대가 끝나자 그 동안 우리에게 팝핀을 가르쳐주었던 인하대 FLEX팀이 진정한 팝핀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며 근사한 무대를 선사했다. 그리고 이 멋진 무대도 부족했는지 워낭소리의 OST를 제작한 ‘아나야’ 팀의 무대까지 보았고 프로젝터기를 이용해 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했다. 평소에는 공부에 매달려 시간이 없던 나는 이런 공연을 즐긴다는 것이 정말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환상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월 8일-모든 게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다가온 마지막 날 어제가 마지막 밤이어서 친한 단원들끼리 밤을 새기로 했는데 다 같이 새기로 주장했던 9조의 지원이형은 먼저 꿈나라로 가고 나 역시 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너무나도 재미있었다는 형들의 재담에 후회를 하긴 했지만, 드디어 집에 돌아간다는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장봉도를 나가는 배에 탔을 땐, 지나갔던 6일 동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월미도에 도착한 종주단은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차이나타운은 이름만 들어봤지 처음 가는 곳이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느꼈던 기분을 또다시 느꼈다. 점심으로 맛있게 자장면을 먹고 자유공원을 경유해 동인천역 지하상가를 통과하고 인천시청으로 향했다. 도중에 발의 고통을 차마 견딜 수가 없어 9조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의 어깨를 빌려 부축당하며 걸었다. 정말 그 친구에겐 미안하고 고마웠다. 마지막엔 먼저 그 친구를 보내고 나 홀로 인천시청을 향해 정처없이 걸었다. 차를 타라는 한 팀장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난 끝까지 종주하고 싶었고 결국 난 해냈다. 꼴찌로 마지막 종착지인 인천시청 앞을 걸어 들어가는 순간 모두가 나에게 환호성을 질렀다. 1등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완주해낸 꼴찌에게도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신 모든 부모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리고 마음속으로 메아리치듯 박수를 보냈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종주후기... 사실 이 종주에 참여한 목적은 공부에만 매달렸던 현실로써의 도피 행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실로부터의 도피, 부모님으로부터의 도피, 틀에 박혀 계속되는 내 생활로부터의 도피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었던 것만큼 170km의 도피 행각은 그리 행복하고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행군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170km만큼이나 내 목표가 앞서게 되고 남을 이해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종주단을 창단하여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단장님 이하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종주단의 회원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감사히 참여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단장님 이하 모든 여러분들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첫댓글 잘썻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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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난 천젠가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ㅎ 잘썻심 ㅎ
채희범 ㅋㅋ 폰 깨져서 아디 못만들고 아빠꺼로 하고있다니까 ㅠ.ㅠ
키키키키키키ㅣ키키키ㅣ 오빠 나 정현이 오빠 동생인데 내가 꼴찌다 ㅋ케ㅔㅋ케케케케케케케ㅔ
ㅋㄷ 잘썼는데? ㅋ 수고했어 ㅋ 역시퉁퉁이야 ㅋ
퉁퉁이 퉁퉁이!
오 퉁퉁이 퉁퉁이 !!! 꼴지 아니다 꼴지 아니다 정정해라 ㅋㅋㅋㅋㅋㅋ
오...엔터를 사랑합시다
잘썼으잘썼으 그때 고생했어 그래두 멋졌어
큭큭
관선우 존경해..진짜 너무 잘썻어..!
ㅋㅋ 수고했어
ㅋㅋㅋㅋ돌쇠잘썼네
선우 잘썻는데?ㅋㅋ
나는 그런약속한적없는거같은데...
ㅋㅋㅋ 퉁퉁이형 잘썻네요~ -병범
아아아아아아 !!!!! 왜 다 나보고 평범이래 ㅡㅜㅋ
누군지 모르지만 잘쓰셨네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이따구로마니써...ㅋㅋㅋㅋ퉁퉁이
퉁퉁이 답게 썼네 잘 썼다
퉁퉁이 답게 썼네 잘 썼다
내가 누구게?
퉁퉁아 ㅋㅋㅋㅋㅋ 잘썻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