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광진·중랑 초고층 빌딩 탄력
여의도 면적 4배 규제 완화 그린벨트 등 중복 규제 살펴야
롯데그룹은 1988년 서울 잠실동 석촌호수 인근 8만여㎡의 땅을 서울시로부터 매입했다. 이 부지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좀처럼 허가가 나지 않았다.
교통량 증가와 고도 제한에 따른 성남시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었지만 성남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성 논란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전용기가 오르내리는 서울공항은 공군 비행단이 주둔하는 군사시설이다.
기존 활주로 각도를 감안할 때 항공기와 건물이 충돌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초고층 빌딩 신축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활주로 각도를 2.71°가량 틀어 안전거리를 확보하기로 하면서 해법을 찾았다.
높이 555m, 123층의 롯데월드타워는 2015년 말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완공되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관광 홍보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이착륙 항로까지 변경한 롯데월드타워 건설은 일자리 창출과 투자 촉진을 위해 규제를 완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롯데월드타워 우여곡절 끝에 착공
전국 각지에 군부대가 주둔한 우리나라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는 지역이 많다.
8월 기준으로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인 곳은 전국적으로 9600만여㎢(약 2900여만평)에 이른다. 경기 연천과 파주는 면적의 90% 이상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비행장이 있는 지역은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돼 고도제한을 받는다.
이 같은 개발제한으로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역주민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정부는 매년 두 차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 심의위원회를 열어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하거나 새로 지정한다. 구역 해제에 따라 해당 지역의 땅값이 오르고 개발사업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국방부는 9월 말 전국 군사시설보호구역 1430만㎡를 해제 또는 변경했다. 총 면적의 약 15% 가량이 풀렸다. 서울 송파·광진구, 경기 성남·용인시 등 여의도 면적의 4.3배에 달하는 1258만㎡의 지역은 비행안전구역에서 해제됐다. 경남 사천시 축동면 일대 72만㎡는 통제구역에서 제한보호구역으로 변경됐다. 강원 철원, 경기 양주 등지의 100만㎡는 협의 위탁지역으로 지정됐다.
관심은 비행안전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에 모아졌다. 비행안전구역에서는 군 공항 활주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건축물 높이가 20~152m로 제한된다. 또 안전구역 내에서 건물을 지으려면 군부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롯데월드타워가 대표적인 경우다. 성남시의 경우 서울공항 안전 문제로 45m 고도 제한을 받아왔다. 쓰레기 소각장 굴뚝조차 이 높이를 벗어날 수 없다.
이번 비행안전구역 해제는 롯데월드타워 건설이 영향을 미쳤다. 군 비행장의 동편 활주로 각도를 변경하면서 비행안전에 지장이 없는 구역을 무더기로 해제한 것이다. 그동안 75~108m의 30층 이하 건물 밖에 지을 수 없었던 광진구에서 앞으로 100m를 훌쩍 넘는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다.
광장·구의·중곡동이 포함됐다. 중랑구는 면목·상봉·망우동 일부 지역이 포함됐고,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는 송파구는 잠실·신천·풍납·송파·석촌·가락동 등 6개동 125만9960㎡가 비행안전구역에서 해제됐다. 경기도에서는 성남시 분당·수내·서현동 등 12개동, 용인시 모현면과 기흥구·수지구 일대, 광주시 오포읍과 구리시 교문·수택동이 혜택을 입었다.
폭발물 관련 통제보호구역에서 제한보호구역으로 변경된 경남 사천시 축동면 일대는 지금까지 아예 건물을 지을 수 없었으나 지역 부대장과 협의하면 신축이 가능해졌다. 일종의 조건부 해제다.
협의위탁지역으로 조정된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와 동송읍 관우리 일대,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와 선암리, 광적면 덕도리 일대 등 100만㎡는 지역 부대장과 협의하지 않고도 건축물 신축 등 개발행위를 할 수 있다. 기존에 협의위탁지역으로 지정된 곳 중에서 철원군 동송읍과 양주시 광적면, 연천군 전곡읍 일부 지역 45만여㎡(약 13만평)는 건축 높이 제한을 5.5m에서 최고 12m로 완화했다.
이 밖에 국방부는 군사시설보호구역 내 토지 활용을 위한 민원인들과 관할 부대장과의 협의 기간을 30일에서 15일로 단축하고, 구역 내에서 천재지변이나 재해로 건축물과 공작물이 손실을 본 경우 재건축할 수 있도록 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의 국민의 재산권 행사에 따르는 불편과 피해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변경에 따라 해당 지역에 토지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주민들은 증·개축이나 신축 때 고도 제한 등 제한에서 벗어나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서울 송파·광진·중랑구나 경기 성남 등지에서는 고층 건물 신축 등 개발사업이 가능해졌다. 133층짜리 상암DMC 랜드마크 타워 등 마천루를 짓는 개발사업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속속 무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상봉재정비촉진지구나 위례신도시 등지에서 랜드마크 시설로 고층 건물 신축이 추진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조민이 에이플러스리얼티 팀장은 “롯데월드타워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서울 동부권에서 30층 이상 고층 빌딩을 비롯한 대규모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은 것은 비단 고도 제한 때문만은 아니었다”면서도 “고도 제한 완화로 해당 지역 내의 신도시나 택지지구, 재개발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개발 사업의 선택 폭이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군 공항과 가까운 서울 외곽 일부 지역에서는 갤러리·공연장과 같은 문화시설이나 실버타운 등을 짓는 소규모 개발사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 성남이나 용인·구리 등은 이미 개발이 거의 완료된 지역이어서 대단지 아파트나 대형 오피스 빌딩이 들어설 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 완화에도 해당 지역의 땅값이 단기간에 급등할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다른 규제가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개발이 이뤄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면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나 문화재보호구역 등 이중삼중의 중복 규제에 묶인 땅이 여의도 면적의 434배에 이르는 상황이다.
소규모 개발사업 활기 띨 수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태원 의원(새누리당)이 17개 광역시·도로부터 받은 ‘개발제한구역 중복 규제 현황’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전국 11개 시·도에 지정된 그린벨트 면적 3619.1㎢ 중 문화재보호구역이나 군사시설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으로 중복 지정된 면적은 1257.7㎢에 달했다.
특히 그린벨트 면적이 1176.4㎢에 이르는 경기도의 중복 규제 면적은 여의도의 211배에 이르는 612.4㎢로, 경기도 전체 그린벨트의 절반 이상(52.0%)이 중복 규제 대상지였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해제되더라도 그린벨트로 묶여있거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면 개발 행위가 제한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번에 협의위탁지역으로 변경된 철원·연천·양주시의 일부가 여기에 해당된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단순히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고 해서 땅값이 오르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과 연계된 개발이 실제로 이뤄져야 가치가 상승한다”며 “이번에 해제된 지역에 토지 투자를 하려면 추가 규제 여부와 개발 계획 등을 두루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