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암 주논개(朱論介, 1574 ~ 1593)의 생애
♣ 논개의 생애가 밝혀지기까지
충의의 고장 장수가 낳은 인물, 논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21년 어우당 유몽인(於于堂 柳夢
寅)이 저술한 '어우야담(於于野談)'이다. 하지만 논개의 집안이나 생장과정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
18세기 초, 진주 사람들은 논개의 순절을 널리 알리고 기려줄 것을 나라에 건의했다. 이에 조
정에서는 경상우병영(慶尙右兵營)에 논개의 후손을 찾아 포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병영은
영남 일대에 관문(官文)을 띄워 후손을 수소문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논개는 후손이 없음)
그 후, 논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가차원에서 논개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에
이른다.
우선 18세기 중반 권적(權適)의 '경상우병사 증좌찬성 최공시장<慶尙右兵使 贈左贊成 崔公 諡
狀, 여기서 최공은 최경회(崔慶會)>'을 비롯하여,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호남읍지(湖南邑
誌)','동감강목(東鑑綱目)','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일휴당실기(日休堂實記)','매천야록(梅
泉野
錄)' 등의 여러 문헌과 장수, 진주 지역에 전해오는 논개 관련 이야기들, 그리고 노공(老
公)들의
증언을 통해 논개에 대한 많은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논개의 탄생
논개는 1574년 9월 3일 밤, 지금의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주달문(朱達文)의 외동
딸로 태어났다. 주달문은 선비로 마을에서 서당을 꾸리고 있었으며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논개
의 집안은 '신안주씨(新安朱氏)'로 넉넉하진 못했지만 기풍이 서린 양반가의 집안이었다.
일부
에서는 논개가 기생 출신으로 알고들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논개는 특이하게도 4갑술(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 갑술년은
개의 해인데, 월과 일, 시(時)까지 모두 개를 상징하는 시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주달문은
딸의 사주를 살펴보고는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딸에게 어여쁜 이름을 지어
줄 만도 하지만 그는 계집의 이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논개'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이유는 딸을 술시에 낳았으니, 개를 낳은(놓은) 것과 같고, 그것을 거꾸로 읽으면 '놓은개'가
된다.
'놓은개'를 빨리 발음하면 '논개'로 발음되니 그 발음 그대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 순탄치 않은 논개의 어린 시절
논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비범했으며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의 집안은 그런
데로 화목을 누리며 살았으나, 5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논개 모녀는 몇년동안
모진
고초를 겪는다.
의지할 곳이 없던 모녀는 같은 마을에 사는 숙부, 주달무(朱達武)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주달무는 형과 달리 거의 인간말종에 가까운 위인이라 매일 노름에 빠져 가산(家産) 말아먹기
에
바뻤다고 한다. 결국 집까지 죄다 날려먹자 숙부는 풍천마을에 사는 김풍헌(金風憲)이란
사
람에게 조카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고는 멀리 줄행랑을 쳤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모녀는 외가가 있는 함양 안의(安義)로 급히 피신했으나, 김풍헌의
고발로 장수 관아로 압송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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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 관아에서 최경회에게 재판을 받는 논개 모녀 |
♣ 최경회(崔慶會, 1532 ~ 1593)와의 만남
그 시절 장수현감(長水縣監)은 장차 논개의 남편이 되는 최경회였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달
아난 숙부 주달무에게 죄가 있음이 드러나면서 논개 모녀를 무죄 방면한다.
최경회의 부인인 나주김씨는 그들이 오갈게 없는 처지임을 알고 내아(內衙)에서 지낼 것을 권
했다. 최경회 내외의 배려로 내아에서 생활하게 된 논개는 낮에는 잔심부름을 하거나, 김씨 부
인을 간호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였다.
몇해가 흘러 논개의 어머니가 별세하고, 최경회의 부인마저 병으로 죽는다. 서로의 소중한 존
재를 잃은 최경회와 논개는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같이 살게 된다. 두 세대에 버금가는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연분은 점점 커져만 가고, 결국 담양부사(潭陽
府使)
재직
중이던 1590년 혼인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최경회의 나이는 58세, 논개는 겨우
17
세였다.
(아우 부러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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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혹은 1590년 후반) 모친상을 당한 최경회는 3년상(喪)을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능주(綾州, 화순군 능주면)로 가면서 논개를 장수로 보냈다.
♣ 임진왜란 발생과 최경회의 죽음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최경회는 다시 장수를 찾았다. 그는 월강리 들판에 의병청(義兵聽)
을 세우고 의병을 모아 매일 훈련에 임했다. 논개는 동네 아낙들과 함께 의병들의
식사와 병영
청소, 빨래 등을 도맡아 하며 최경회를 도왔다.
그의 의병은 무주 우지치에서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격퇴시킨 것을 시작으로 산청,
김천,
성주 지역에서 계속 승리를 거둔다.
1593년 4월 조정에서는 그의 공에 대한 답례로 경상우도 병
마절도사(慶尙右道 兵馬節度使)를 재수하였다.
최경회는 논개를 데리고 부임지인 진주로 떠났는데, 진주로 온지 채 1달도 되지 않은 1593년 6
월 19일, 왜군의 13만 대군이 진주성을 공격했다.
전쟁이 한참일 때 최경회는 성 밖으로 나가
후일을 기약하라고 하였다. 그의 권유에 논개는 밖으로 빠져나가 외진 곳에 숨어 있으면서 전
황을 살폈다.
1592년 진주성 대첩과 달리 이번에는 왜군에게 승리의 여신이 돌아가면서 성은 끝내 함락되고
만다. 6만의 관,군,민은 거진 전사하고, 최경회는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남강에 뛰어들어 장
렬한 최후를 마친다.
♣ 도도히 흐르는 남강 위에 한송이 꽃이 되어 떨어지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죽었다는 소식에 논개는 비통에 잠겨 어찌할 바를 몰랐다.
힘겹게
진주성에 입성한 왜군은 1년 전, 김시민(金時敏)에게 당한 개망신을 만회한 기쁨을 누리고자 7
월 7일 기생들을 죄다 불러놓고 촉석루(矗石樓)에서 승전연을 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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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 |
논개는 이 때가 기회다 싶어 진주 수안기생(首安妓生)
에게 기생들의 명단이 적힌 기적(妓籍)에
자신의 이름
을 넣어줄 것을 부탁하고 오로지 칠석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이 밝았다. 진주 기생의 협조를 얻어 촉석
루로 들어선 논개는 누각으로 오르지
않고, 강가 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몇몇 자료에는 누각에 들어가 왜장
과 잠시 어울려 놀았다고도 함)
승리의 기쁨에 취한
왜장은 기생들의 미모와 곡차에
다시금 취하면서, 연
회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만
간다.
그런 왜장 중에는 진주성 공격의 선봉이었던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란 체격이
좋은 장수가 있었다.
그는 문득 강가를 바라보니 왠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
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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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에게 단단히 눈이 도망간 게야무라는 저도 모르게 강가로 내려갔다. (진주 기생들이
논
개를 돕기 위해 내려가 보라며 부추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논개는 그를 계속 유혹하고, 그녀
를 덥썩 안으려는 순간, 그의 허리를 단단히 껴앉고 남강에 몸을 던져 최경회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뒤따르니, 그녀의 나이 불과 19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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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사 기념관에 마련된 촉석루 배경의 기념촬영코너 |
♣ 그 이후
논개에게 얼떨결에 폐기처분된 게야무라의 고깃덩어리는 낙동강 하류에서 발견되어 왜국으로
수습해 갔다고
한다. 논개의 시신 역시 부근에서 발견되어 장수 근처인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에
유택을 만들어 모셨으나, 관리소홀로 그만 무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근 300년 이
상 무덤의 위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으며, '의암사적보존회'와 향토사학자 등의 노력으로
1976년 간신히 무덤을 찾기에 이른다.
후세 사람들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하였으며, '의암'은 점차 논개
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세상 사람들이 그녀에게 바친 일종의 시호(諡號)라
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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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의 혼과 정신을 모신 사당, 장수 의암사(義巖祠, 논개사당)
- 전북 지방기념물 46호 |
의암사는 장수 고을의 자랑이자, 장수3절의 하나로 추앙받는 논개의 사당으로 장수읍의 동남쪽
,
남산 자락에 자리해 있다.
의암사는 몇백년 된 오래된 사당은 아니다. 불과 50년 정도 된 곳으로, 1956년 장수 지역 유지
들이 돈을 모아 세운 것이다. 이때 부통령을 지냈던 함태영(咸台永)이
친필 휘호를 보냈으며,
친일 화가인 김은호가 자신의 마누라를 모델로 삼아 논개의 영정을 그려 바쳤다.
1960년대 후
반, 본격적으로 의암사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2만여 평에 대지를 마련하여
사당을 옮겼다.
경내에는 논개생향비를 비롯하여 기념관, 의암사 등이 있으며, 사당 앞에는 '의암공원'과 '두
산제'란 호수를 만들어 군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꾸몄다.
의암사는 장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거의 꼭 들르는 장수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장수 사람
들의 자부심이 깃든 곳으로 그들의 의암사에 대한 애정은 실로 지대하다.
※ 의암사 찾아가기 (2008년 11월 기준)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4회 운행
* 대전동부터미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8회 운행
* 광주터미널과 남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9회 운행
* 전주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17회 운행
* 장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의암사까지 걸어서 12분 거리
* 승용차로 갈 경우 (의암사 앞에 주차장이 있음)
- 대전~통영고속도로 → 익산~장수고속도로 → 장수나들목에서 장수방면 19번 국도 → 계남 →
장수읍내 → 장수교 → 의암사입구에서 좌회전 → 의암사
- 88올림픽고속도로 → 남장수나들목 → 장수 방면 19번 국도 → 장수읍내 못미쳐 의암사입구
에서 우회전 → 의암사
♣ 의암사 관람 정보 (2008년 11월 기준)
*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9시 ~ 18시
* 매년 음력 9월 3일, 의암공원을 중심으로 장수군의 축제인 '의암 주논개 대축제'가 열린다.
축제기간은 2~3일 정도로 첫날에 의암사에서 대제(大祭)를 지낸다.
(축제 문의는 장수군청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535)
* 소재지 -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 (의암사 관리사무소 ☎ 063-350-2561, 351-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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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사 앞에 펼쳐진 휴식공간 ~ 의암공원과 남산공원
의암사 앞에는 '두산제'란 넓다란 호수를 품에 안은 의암공원과 남산공원이 자리해 있다. 군
민과 의암사를 찾은 관광객의 휴식공간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이들 공원은 의암사 성역화 사업
으로 조성되었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8%2F221-90.jpg)
▲ 누런 갈대가 심어진 두산제 호수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8%2F221-91.jpg)
▲ 두산제 호수와 마봉산
한 폭의 그림처럼 베풀어진 두산제, 의암사 뒤에 자리한 마봉산 등의 산과 호수 주변
나무들이
잔잔한 호수를 거울 삼아 그들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그렇게 봄을 기다린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8%2F221-92.jpg)
▲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남산공원에 어느 정자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부메랑 모양의 구름이 이채롭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05FD2444E9A777D1E)
▲ 저녁으로 먹은 전주 콩나물국밥 |
장수에서 논개 누님을 만나 뵙고, 진안(鎭安)을 거쳐 전라북도의 수부(首府)인 전주(全州)로
나왔다. 전주를 찾은 것은 저녁으로 콩나물국밥을 먹기 위함으로 전주에 올 때마다 꼭 국밥을
먹는다. 전주는 음식의 고장이라 전주비빔밥과 한정식, 오모가리탕, 콩나물국밥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하게 그리고 많이 먹을 수 있는 건 바로 콩나물국밥이다.
단돈 4,000원(2008년 2월 기준)에 콩나물과 해산물, 밥이 듬뿍 말아져 있는 국밥을 비롯하여
호남의 인심이 돋보이는 맛깔스런 반찬들(장조림, 김, 깍두기, 젓갈, 계란) 거기에 밥 1공기
가 따로 더 나온다. 솔직히 국밥 1그릇으로도 배가 차는데 정말 뱃가죽 두둑히 채우기에는 안
성맞춤이며 목구멍과 혀가 즐거워 비명을 지를 정도이다.
이렇게 하여 본 글은 대단원의 막을 고하며 끝으로 논개를 너무 미화했다는 식의 헛소리는 정
중히 사절한다. ~~~ |
첫댓글![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4.gif)
...아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부러워라요...^^![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라고 ![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려들겠구마넌..![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종](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deco.hanmail.net/contents/emoticon/things_34.gif)
교보다 깊고![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7.gif)
지 말고..![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논개누님 같으면야 물불 안가리고
함 만나
논개누님정도면 대통령감이지 싶은데..
요즘 설치는 여자 구캐의원들은 영 맘에 안차네요..
아비가 할배가 우째 하나같이..
거룩한 분노는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논개누님보고 좀 배워라..나대지 말고..
흑색선전 일
공덕비 세운다고 야단떨지 말고..
영정 저래가 쓰것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품위 없는 미인대회 그림이가
여자가 예쁘기만 하면 되나
문화재청은 도대체 뭐하는댄지 모르겠네요..
국쇄도 사기꾼 같은 넘한테 맡기고..탈나고..
사천원 밖에 안하는구먼
시원한 콩나물국 마시고 속좀 차리마
좋겠구마는
울나라에도 여걸 많았던가 봅디더..
사회주의 독립운동 하신 분들 중에서요..
러시아에서도... 중국에서도...
논개누님 같은 분들 많았답디더...
누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장보살 멸정업다라니 옴바라마니다니사바하
지장대성위신력
항하사겁설난진
견문첨례일념간
이익인천무량사
고아일심귀명정례..()()()
낳은 개, 놓은개, 논개.^^* 이름의 연유가 흥미있네요.
유관순누나처럼 논개누님, 그렇게 부르니 더욱 살가워지네요.
마애불지기님 덕분에 의암사와 논개 이야기, 잘 읽습니다. ()
진주 촉석루에는 더러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도 논개 사당이 있지요^^*
... ... ... ... ....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속같은 입술`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열심히 외웠던 시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