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지옥에서 보낸 한 철-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1968년 1월 21일, 정체불명의 군인 31명이 청와대를 목전에 두고 세검정 고개에서 불심검문을 당했다. 경찰이 수상하게 생각하는 낌새를 눈치챈 군인들은 별안간 무차별 난사를 가하여 일대 접전을 벌였다. 그 중 29명은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한명이 자폭하였으며, 나머지 한명은 가까스로 생포되었다. 1.21 북한무장간첩 청와대 습격사건, 이른바 ‘김신조 사건’의 전모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격분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특수부대를 세우게 된다. 31명으로 구성된 ‘주석궁폭파부대’는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무인도 실미도로 향했다. 평범한 민간인 출신이었던 부대원들은 ‘나라를 위해 딱 3개월만 봉사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겠다’라는 약속만 믿고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훈련을 견디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주석궁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할 수 있는’ 특수부대원으로 재탄생하였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고 예정되었던 1968년 8월 북한 침투명령이 취소된 후, 실미도 특수부대는 어떤 약속이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훈련 도중 7명의 부대원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도대체 왜? 당시 외부의 상황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이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었으며, 평화통일안이 주창되고 남북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한은 화해 무드에 젖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완전히 버려지고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1971년 8월 23일, 예정된 파국이 다가왔다. 누가 왜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원흉은 박정희다! 남아 있는 24명의 부대원들은 새벽 6시 자신들을 훈련시켰던 기간병들을 사살하고 실미도 탈출을 시도했다. 오후 12시 30분경 인천 해안에 상륙한 이들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 청와대로 향했다.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겠다는 일념만으로(이 부분은 경향신문의 ‘684주석궁폭파부대’ 시리즈를 참조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쉬쉬하며 풍문처럼 전설처럼 떠돌아다녔던 실미도 특수부대의 비극은 몇 년 전 백동호의 장편소설 “실미도”와 MBC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 실미도 사건은 소위 ‘박통 시절’이 껴안고 있던 멸공 이데올로기의 모순, 일인독재 체제가 필연적으로 불러온 인권 유린의 상황,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 광복 이후 분단체제를 지속시켰던 서구 열강의 책략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균열을 그대로 드러내는 축약판이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이 거대한 파노라마는 또 한 편으로 영화화에 대한 끊임없는 매혹을 불러일으켜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야심을 실현시키는 적임자로 결정된 강우석 감독은 전작 <공공의 적> 스태프들과 함께 다가오는 2003년 봄, 신작 <실미도>의 크랭크인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이 순간 <실미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국영화에서 경찰을 다루는 방식의 컨벤션을 창조해냈던 강우석 감독이 아주 오랜만에 전혀 다른 장르 영화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첫 번째 지점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예기치 못한 변화일까? 우리는 그가 예전에 로맨틱 코미디부터 정치 스릴러까지 다양한 화법으로 관객들에게 말걸어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소재를 끌어오든 기본적으로강하고 짜임새 있는 드라마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왔으며, 웃음과 페이소스가 겹쳐지는 당대 현실의 한 단면을 기민하게 포착하여 부조리한 폭소로 풀어내는 영화전략을 지켜왔다. <실미도>는 물론 코미디가 아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리얼리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리얼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화법으로 ‘픽션’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포부를 보인다. <실미도>를 그의 전환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소재나 장르의 확장에 주안점이 놓이기보다는, 오히려 강우석 감독이 어떻게 자신의 화법을 웃음이 아닌 격렬한 페이소스로 온전히 채워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옳을 것이다. 두 번째는 충무로 침체기의 돌파구를 여는 장본인이 강우석 감독이라는 데서 오는 산업적 관심이다. 언제든지 좋은 시나리오에 대해 기회는 열려 있다고, 어떤 것이든 기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그의 명료한 믿음은 유행처럼 혹은 주먹구구처럼 판박이로 양산되어 쏟아져 나왔던 근래의 매력 없는 영화들을 단숨에 물리칠 수 있는 근본주의이기도 하다.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만큼의 효과를 최대치로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자신감은, 할리우드 메이저인 콜럼비아와의 협업이라는 외적인 조건과 더불어 ‘큰 영화’의 모범적 성공에 대한 영화산업계 일각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블록버스터 시대라는 기치를 내걸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2002년이 오히려 ‘작은 영화’들의 승리로 끝났고, 강우석 감독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 올해 초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완성도 있는 장르영화 <공공의 적>을 선보임으로써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이제 그는 2003년에 이르러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그런 궁금증에 대해 강우석 감독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공공의 적>은 장르영화의 모범을 직접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오히려 이야기의 규모에 맞춘 영화를 만들었고 그 규모 이상의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실미도>의 경우는 반대의 의미에서의 선례를 남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미도>도 <공공의 적>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예산은 두배 세배 이상 크지만, 돈이 들어갈 곳에만 들어갈 것이다. 보여지는 효과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찍고 싶다. 불필요한 돈 씀씀이를 줄임으로써 60억 짜리 영화를 50억에 맞추 찍게 되면, 나머지 10억은 다른 영화에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실미도> 프로젝트에 끌렸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실화라는 점이 좋았다. 우리 근대사에 이 이상 극적인 사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드라마틱함이 매혹적이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실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화되는 픽션은 주로 어떤 부분입니까?
실미도를 다룬다고 하면 대부분 부대원들의 훈련 과정이 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가, 그리고 강자가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가, 전쟁이 어떻게 놀이화되는가 하는 부분들이다. 말은 쉽게 하지만 이게 얼마나 힘들겠나(웃음). 실화를 기반으로 하되 픽션화시키는 방식에서 내가 느끼는 분노를 관객들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실미도의 생존자들이 ‘우리가 저렇게 하진 않았지만 느낌은 똑같다’라고 인정할 수 있게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실미도에 관한 이야기는 김신조 사건부터 시작하여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까지 아울러야 합니다. 게다가 부대원들 개개인의 내면까지 포함되려면 이야기의 폭이 굉장히 넓어질 것 같은데요.
그걸 다 담아내겠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포인트가 될지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을 때 확실하게 결정될 것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지금에 와서 다시 보면, 담아야 할 것과 담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 약간 혼동이 있었던 것 같다. 잘 만들었다는 칭찬은 들었지만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는 인간을 너무 뭉뚱그려 그렸기 때문니다. 조금 이야기가 느슨해지더라도 인간의 속내를 그려줬어야 했다. <공공의 적> 같은 경우 아무리 엽기적인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사람 냄새가 풍긴다. 폭력경찰답게, 살인마답게, 또는 부패한 조직폭력배도 정말 저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최대한 가깝게 그린다. 그래서 관객은 같이 분노하게 된다. 반쯤 농담으로 하는 말인데, 영화는 예술 이전에 과학이고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큰소리는 치지만(웃음), 사실 <실미도>의 시나리오가 완벽하게 나오지 않으면 영화를 접을 수도 있다. 그래서 콜롬비아 측이나 제작자 한맥 영화사로부터 일부러 돈을 미리 받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진행비는 전부 시네마서비스가 집행하고 있다. 만약 시나리오가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의 드라마라는 판단이 든다면 정말로 안 찍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미도 사건은 1971년에 일어났습니다. 아마 그때쯤 당신은 국민학생이었을 텐데요. 혹시 당시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이 있습니까?
시골에 살다가 서울 세검정 국민학교로 전학오기 직전 김신조 사건이 터졌다. 세검정 근처에서 한동안 총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던 순간의 아주 묘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김신조 사건 때 순직한 최규식 서장의 동상이 세워지던 것도 기억난다.
<공공의 적>은 폭력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이 확립되는 영화였습니다. 그렇다면 ‘김일성 목을 따러 가는’ 부대가 등장하는 <실미도>의 경우 폭력은 어떤 식으로 보려질까요?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실미도 부대원들은 흔희 말하는 북파 공작원과 다르다. 후자는 지원병과 차출병, 정식 군인들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일반 사형수나 군 사형수 출신이다. 영화 속에도 나오겠지만 훈련 교관들은 언제나 ‘너희가 죽든 말든 아무도 모른다’라고 주입시킨다. 익명의 범죄자 집단화시키는 인권말살의 상황은 실제로 훈련병이 여럿 죽어 가는 상태에 이른다. 닭살 돋는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r런 부분이다.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저렇게까지 인권을 짓밟을 순 없다는 것. 의식적으로 강조하진 않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부대원들이 불쌍하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그들이 자폭할 때 관객이 다같이 울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가줘야겠지. <실미도>에서 휴머니즘을 빼면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건 액션 영화가 아니다.
동시에 실미도 사건은 현실, 특히 정치적 현실과의 접점에 대한 고려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글쎄, 일부러 리얼리티를 강조하진 않을 생각이다. 역사적 상황도 상당 부분 픽션화시킬 것이고, 대신 좀더 극적인 캐릭터와 디테일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예를 들자면 <람보>와 월남전이 이상하게 맞물리는 뉘앙스 같은 걸 이 영화에서 살리고 싶다. 만일 내가 정치를 본격적으로 다루려 했다면 현대 정치 쪽으로 갔어야 했다. <실미도>는 정치 영화가 아니다. 이건 아무리 잘 만들어도 내가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꿈은 정치를 코미디로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코믹해질 순 없다.
<실미도>는 월드와이드 개봉을 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인 특수한 소재와 보편성을 결합시키는 방식에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어떤 것입니까?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70년대 한국의 상황이라는 특수한 뉘앙스가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이라크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해 사형수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충분히 공유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난 사람들이 <공공의 적>을 보면서 ‘어떻게 부모까지 잔인하게…’ 하고 쇼크받을까봐 상당히 우려했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 시사히를 열었을 때 사람들이 웃는 지점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러니까 상황만 정확하게 묘사하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한국 관객은 할리우드화되어 있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이 열광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오케이라고 믿는다. 그건 휴머니즘을 건드림으로써 충분히 가능해진다. <실미도>가 액션영화가 아니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다. 난 항상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액션에 목숨 걸지 말아라, 그 속에 드라마가 있을 때 찍어라, 어떤 희한한 그림을 만들어도 관객은 그 자체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건 이미 <소림축구>가 다 보여줬다고(웃음).
<공공의 적>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전부 생생한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미도> 역시 군상 영화로 부를 수 있을 텐데요, 캐릭터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의 차이, 또는 연출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조연을 잘 묘사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다. 영화 마지막까지 주인공 외 인물들의 등퇴장을 얼마나 명확하게 해주느냐가 감독의 임무이다. 그러지 않으면 영화를 보다가 관객들이 ‘어, 아까 그 사람은 어디 갔어?’ 하고 의아해 한다(웃음). 최소한 단역보다 조금 큰 역할들은 정확하게 그려주고 마지막까지 해결해주어야 한다. 실미도에 상주했던 사람들은 부대원과 기간병 등을 합쳐서 70명 가까이 되는데, 핵심적인 인물은 4명 정도다. 이 영화에서도 그 많은 군상을 제대로 묘사하는 게 관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톱스타는 설경구 하나면 충분하다. 나머지 인물들은 가능한 알려지지 않은 얼굴로 갈 것이다. 알려지더라도 연극 쪽에서 선택하려고 한다. 누군가 등장하는 순간 저 사람 재밌겠네 하고 관객들이 기대하면 안된다. 그러면 내가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없어진다. 예를 들어 <공공의 적>에서 강신일 이나 유해진은 모두 다 과거에 사람들을 별로 웃겨 본 적이 없는 배우들이었다. <투캅스>의 최종원도 원래 연극계에서 굉장히 시니컬한 연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 상황 코미디에 던져버리니까 전혀 예상치 않은 웃음이 생기더라.
언제쯤 촬영이 시작됩니까?
이르면 3월 1일, 늦으면 4월 1일이다. 촬영 기간은 5개월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 영화들과 달리 물리적으로 횟수가 많아지는 대신 아주 노동집약적으로 찍으려 한다.
2003년 한국 영화계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제작되는 편수가 크게 줄 것 같진 않다. 메인스트림 영화가 5~60여 편 정도는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시네마서비스에서 그 중 반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웃음). 올해는 정말 즐거워할 수 없는 한국영화가 대다수였지만, 내년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며칠전 강제규 감독과도 술 한잔 마시면서 당부했다. 이번 영화 잘 찍어서 2003년을 너의 해로 만들라고(웃음). 내년엔 임권택 감독님도 커머셜한 영화를 찍으실 테고, 장윤현 감독이나 장진 감독처럼 반짝이는 사람들도 신작을 내놓을 거다. 내년은 되게 재밌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끝)(인터뷰 김용언 기자)
첫댓글 방대한 글을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