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에서 오정심관(五停心觀)의 위치
김재성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Ⅰ. 머리말
인도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선정 수행의 기초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오정심관이라는 수행법이 인도 초기불교 전통에서는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본 논고의 목적이다.
오정심관이라는 용어의 어원적인 의미와 각 항목의 개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도초기불전의 용례를 검토하면서 인도불교에서의 오정심관의 위치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을 살펴본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오정심관이라는 수행법이 부파불교나 대승불교에서 그리고 중국불교 전통에서 기초적인 단계의 수행법으로 정립되기 이전에 불교 수행의 핵심을 이루는 수행법의 측면이 있다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
오정심관에 대한 연구로는 사쿠타베 하지메의 연구,132) 釋惠敏의 연구,133) 大谷信千代의 연구134) 등이 있다. 이러한 논문들이 오정심관의 인도대승불교와 중국불교를 중심으로 한 연구 성과라면, 본고는 초기불교의 오정심관에 초점을 맞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Ⅱ. 어원적 근거
오정심관(五停心觀)이란 다섯 가지 번뇌의 장애를 가라앉히는 수행법을 말한다. 오정심관은 오종관법(五種觀法)135), [五種] 법문(法門)136), 오문선(五門禪)137), [五種] 정행소연(淨行所緣, carita-viśodhana-ālambana),138) [五種] 소취입문(所趣入門, avatāramukhāni)139), [五種]도문(度門)140), 오종치행경계(五種治行境界)141)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142) 하지만, ‘오정심관’이라는 용어 자체는 인도불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143)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 523-592)의 大乘義章을 위시로 하여, 천태 지의(智顗, 538-597)의 마하지관 등의 저술, 화엄종 지엄(智儼, 602-668)의 화엄경공목장 등의 중국 문헌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구사론에 대한 주석문헌144)에서는 구사론 「현성품」의 7가지 준비단계 수행(七加行)의 첫 번째인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삼현(三賢)의 첫 번째로 오정심관을 들고 있지만, 구사론 본문에서 나타나는 수행법은 부정관(不淨觀)과 입출식념(入出息念) 두 가지145)이다. 따라서 ‘오정심관’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인도의 전통이라기보다는, 혜원 등에 의해 비롯된 중국 전통에 의한 것이며,146) 이를 중국의 경론 주석가 및 종파의 스승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147)
대승의장에 의하면 오정심관의 내용은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계분별관(界分別觀), 안나반나관(安那般那觀)이다.148) 대승의장에 제시된 오정심관의 다섯 가지 항목은 주로 인도 대승불교 유식(唯識) 계통의 문헌에서 보이며, 坐禪三昧經(대정장 15, 217c)이나 五門禪經要用法(대정장 15, 325c) 등의 선경류(禪經類) 또는 삼매경류에서는 계분별관(界分別觀), 대신에 염불법문(念佛法門)이 들어가 있다.149) 먼저 대승의장에 보이는 오정심(五停心)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 다섯 가지는 경 가운데150)에서 오도문(五度門)이라고 하며, 또한 정심(停心)이라고도 한다. 도문(度門)이라고 말할 때, 도(度)는 벗어남[出離]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 다섯 관을 닦아서 탐욕 등의 다섯 가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이름하여 도(度)라고 한 것이다. 또한 번뇌를 끊고 생사를 건너 여의므로 또한 이름하여 도(度)라고 한 것이다. 지나는 사람이 들어오기 때문에 문이라고 한다. 정심(停心)이라고 할 때 정(停)은 가라앉고 멈추어 편안하게 머문다는 뜻이다. 탐욕 등을 가라앉혀 여의고 마음을 다스려, 부정(不淨)등의 수행법에 머물기 때문에 정심(停心)이라고 한다.151)
하지만 대승의장에서는 ‘오정심관’의 ‘관(觀)’에 대한 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오정심관에서 관(觀)은 지관(止觀)의 지혜를 의미하는 관(觀, 팔리어 vipassanā, 범어 vipaśyanā) 또는 수관(隨觀, anupassaī, anupassan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수행 또는 수습(修習)을 의미하는 bhāvanā에 해당하는 용어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앞서 지적했지만, 유가사지론 「성문지」의 정행소연(淨行所緣)으로 제시된 다섯 항목과 「보살지」의 산스크리트어와 한역에서는 ‘관(觀)’이라는 용어가 없이 사용되었다. 즉, aśubhā(不淨), maitrī(慈愍) 또는 慈, idaṃ-pratyayatāpratītyasamutpādaḥ(緣性緣起), dhātuprabhedaḥ(界差別), ānāpāna-smṛti(阿那波那念)이다.
대승의장에서 말하는 안나반나관(安那般那觀)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서는 안반염(安般念)152)이라고도 한다. 이는 입출식념(入出息念)인 ānāpānasati(팔리) ānāpānasmṛti(범어)를 가리키므로 이때의 관(觀)은 일단 염(念)의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염이 생략되고 bhāvanā의 의미를 살려서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정심관’의 ‘관(觀)’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각 항목에 대한 개념풀이에서 설명한다.
오정심관은 각각 다섯 가지 번뇌, 즉 탐욕, 분노, 어리석음, 아만, 분별을 다스려 가라앉히는 수행법이다.153) 유가사지론 「성문지」에 인용된 레와타(Revata)154)에 대한 가르침에 제시된 번뇌와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적절한 대상에 마음을 고정(또는 안정)시키는가? 레와타여, [만일 그] 요가행을 닦는 수행자(yogī yogacāra)인 비구가 다름 아닌 탐욕의 성향이 있는 자(rāgacarita)라고 한다면, 그는 부정(不淨)한 대상에 마음을 고정시킨다. 이와 같이 적절한 대상에 마음을 고정시킨다. 하지만 분노의 성향이 있는 자(dveṣacarito)라면, 자애(慈愛)에, 또는 어리석음의 성향이 있는 자(mohacarito)라면, 이것을 조건으로 하는 연기(緣起)에, 또는 아만의 성향이 있는 자(mānacarito)라면 요소의 구별에, 레와타여, 만일 그 요가행을 닦는 수행자인 비구가 다름 아닌 분별의 성향이 있는 자(vitarkacarita)라고 한다면,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에 마음을 고정시킨다. 이와 같이 적절한 대상에 마음을 고정(또는 안정)시킨다.155)
이 경전을 통해서 ‘정심(停心)’은 “마음을 고정시키다(cittam upani-badhnāti, 安住其心)”라는 표현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upani-badhnāti(upa-ni-bandh)는 ‘글을 쓰다’ ‘작문하다’라는 뜻이 있고, 어원적으로 '가까이 묶어 두다', '고정시키다', '안정시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156) 따라서 「오정심관」이라는 용어 자체가 인도에서는 술어화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인도불교 문헌인 성문지 등의 내용을 근간으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157)
Ⅲ. 오정심관의 개념에 대한 이해
오정심관을 이루는 다섯 가지 수행법에 대해 초기경전을 중심으로 아비달마 논서를 보조적인 문헌으로 삼아 해석해 본다.
1. 부정관(不淨觀) asubha [bhāvanā](팔리), aśubhā [bhāvanā](범어)
초기경전이나 아비달마논서에서는 부정수관(不淨隨觀, asubānupassī) 또는 부정상(不淨想, 팔리 asubhasaññā, 범어 aśubhasaṃjñā)이라는 명칭으로도 자주 사용된다.158) 부정(不淨)이 수행을 의미하는 bhāvanā와 복합어를 이루거나 동사형인 bhāveti의 목적어로 쓰인 예도 있다.159) 부정상(不淨想)의 상(想, saññā, saṃjñā, )은 정(定 samādhi)을 이루는 수행법을 의미하거나 선정의 동의어로 보아도 좋다.160) 따라서 부정관(不淨觀)이라는 용어는 부정수관(不淨隨觀)의 준말이거나 부정상(不淨想)을 의미하며, 부정(不淨)을 닦는 수행(asubha-bhāvan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정관은 탐욕의 성향이 있는 사람(貪行, rāga-carita)의 탐욕 또는 감각적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수행이다. 외적으로는 타인의 육체(시체)가 부패하여 백골로 변해가는 9가지 모습(九想) 혹은 10가지 모습(十想)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난 후 상기(想起)하는 방법과 내적으로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31가지 또는 32가지)를 상기(想起)하면서 부정(不淨)하다고 생각하는 수행법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서 감각적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부정관 수행의 목적이다.161)
2. 자비관(慈悲觀) mettā(팔리), maitrī(범어)
자비관에 사용된 ‘자비(慈悲)’라는 용어는 정확하게는 ‘자(慈)’, ‘자민(慈愍)’, 또는 ‘자애(慈愛)’를 말한다. 자비(慈悲)는 자(慈, mettā, maitrī)와 비(悲, karuṇā)로 이루어진 말이지만, 오정심관의 ‘자비관’의 ‘자비’는 유가사지론 등에 의하면 일단 ‘자’만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남방불교의 수행법에서 ‘자관(慈觀)’이라고 할 때, 자애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애수행(慈愛修行, mettā-bhāvanā)에 대한 번역어로 사용되며, ‘자애를 닦는 수행’을 의미한다.
자비관은 분노의 성향이 있는 사람(瞋行, dosa-carita)162)이 분노, 악의(惡意)를 제어하기 위한 수행법이다. 자(慈)의 가장 간략한 의미는 ‘(중생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모든 존재들이 행복한 상태가 되기를.’163)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Suttanipāta의 게송 73에 대한 주석에서 四無量心을 해석하는 가운데 mettā(慈)와 karuṇā(悲)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이라는 방식(naya)으로, [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을 주려고 하는 마음상태(hita-sukhupanayana-kāmatā)가 慈(mettā)이다.
‘[사람들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이라는 방식으로, 해로움과 괴로움을 없애려고 하는 마음상태(ahita-dukkhāpanayana-kāmatā)가 悲(karuṇā)이다.164)
이 주석을 통해서, 자(慈)는 다른 존재에게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주려는 마음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처럼 자(慈)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기원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분노(dosa, dveṣa 瞋)나 나쁜 의도(vyāpāda 惡意)를 없애기 위해서 자애를 닦는다.165)
mettā-bhāvanā라는 용어가 초기경전에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닦아야 한다.’(bhāvetabbā: bhāveti의 미래수동분사)라는 동사의 주어로 mettā가 사용되었기 때문에166), 의미상으로 mettā가 bhāveti의 목적어가 된다. 따라서 자비관, 또는 자관이란 자비 또는 자애를 닦는 수행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인연관(因緣觀)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a(팔리) idaṃ pratyayatāpratītya-samutpādaḥ(범어)
‘인연관’에 대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의 정확한 한역어는 차연성연기(此緣性緣起)이며, 연성연기(緣性緣起) 또는 종종연성연기(種種緣性緣起), 십이인연(十二因緣), 인연관(因緣觀) 등으로 한역된다. 차연성연기(此緣性緣起)의 의미는 ‘이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라는 조건에 의한 발생’이다.
차연성(此緣性, 팔리 idappaccayatā, 범어 idaṃ pratyayatā)이라는 용어는 12연기와 함께 사용되는 용어로 연기(緣起, 팔리 paṭiccasamuppāda, 범어 pratītyasamutpāda)와 동격어 내지 동의어로 사용되거나167), 연기의 도리의 진리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사용되는 말이다.168) 따라서 ‘이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라는 연기’ 즉 구체적으로 12지연기169)에 대한 관찰이 인연관의 내용이다.
인연관을 12지연기에 대한 관찰이라고 했을 때, 산스크리트 자료나 팔리 자료를 통해서 ‘보다’ 또는 ‘관찰하다’는 의미의 관(觀)에 해당하는 용어로는 ‘passati'가 있다.
‘연기를 보는 자, 그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 그는 연기를 본다.’170)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행위[業]를 보는 현자는 연기를 보는 자이고 업의 과보를 잘 아는 자이다.’171)
‘비구들이여, 이렇게 성인의 제자들에게 이 연기(緣起)와 이 연기에 의해 생겨난 법들[緣已生法]이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에 의해서 잘 보여 졌다(또는 체험되었다).’172)
또한 연기가 훌륭한 이치에 맞는 사고[sādhukaṃ yoniso manasikaroti, *善如理作意]의 대상으로 제시된 경전도 있다.173)
이처럼 ‘인연관’ 또는 ‘연기관’이라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으나 ‘연기를 본다.’ ‘연기와 연이생법(緣已生法)이 바른 지혜에 의해서 잘 체험되었다.’ ‘연기에 대해서 이치에 맞게 사유한다.’라는 표현에서 ‘연기관’의 ‘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성문지」에서 보았듯이 인연관은 어리석음의 성향이 있는 사람[癡行, moha-carita]이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한 수행법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어리석음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는 지혜를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174). 유부의 아비달마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행단계에서 오정심관의 위치가 수행의 입문에 해당하기 때문에, 유부 아비달마체계에서 연기관은 초보적인 단계의 지혜를 닦는 수행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4. 계분별관(界分別觀) dhātuppabheda(팔리)175), dhātuprabhedaḥ(범어)
계분별관은 계차별관(界差別觀)이라고도 하며, 설일체유부의 논서인 대비바사론에서는 계방편(界方便)176)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계는 기본적으로는 4계(四界)177) 또는 6계(六界)178)를 말하며 때로는 18계179) 를 의미하기도 한다. 4계의 경우에는 네 가지 물질의 근본요소(四大)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하며, 6계의 경우에는 4계에 공간[ākāsa, 空과 의식[viññāṇa, 識을 더한다. 18계의 경우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말한다.
자신의 육체 또는 육체와 마음을 구성요소인 4계 또는 6계 등으로 분석해서 관찰하는 수행법을 계분별관 또는 계차별관이라고 한다. 이 수행법은 초기경전 대념처경 등의 염처경류에 간략하게 제시되어 있고, 중간 길이 가르침(中部) 140경인 계분별경등180)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계분별관은 아만의 성향이 있는 자[mānacarito]의 아만을 극복하기 위한 수행법이다. 즉 육체[rūpa 色]나 정신[nāma 名]을 ‘나’라고 생각하는 아만을 극복하기 위해 4계나 6계 등의 요소로 분석해서 관찰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5. 안나반나관(安那般那觀) ānāpānasati(팔리), ānāpānasmṛti(범어)
아나반나관은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ānāpānasati 入出息念]을 의미하며, 수식(隨息)181), 수식(數息) 또는 수식관(數息觀)182), 안반염(安般念)으로 번역되었다. ‘입출식념’에 ‘수행’이라는 말이 함께 사용되어, 입출식념수행을 닦는다183), 입출식념 수행의 실천[ānāpānasati-bhāvanānuyogam]184), 입출식념수행185)이라고 사용된 용례가 있고, 입출식념에 의한 삼매186)라는 표현도 사용된 것으로 볼 때, 안나반나관 또는 수식관은 입출식념을 닦는 수행을 의미하며 그 결과로 삼매를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들숨과 날숨[入出息]에 주의를 집중하여 관찰하는 수행법으로 초기경전에 의하면 색계 4선(四禪) 등을 이루는 방법으로 제시되기도 하고187), 4념처를 통해서 7각지를 이루어 지혜와 해탈에 이르는 수행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188) 앞서 「성문지」에서 보았듯이 분별의 성향이 있는 자[vitarkacarita]가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을 통해서 마음을 안정시킨다.
6. 오정심관의 다양한 구성
오정심관에서 자비관 대신에 사무량심을 넣은 예189), 계분별관 대신에 염불법문 [buddhānusmṛti, 佛隨念]을 넣은 예190), 계분별관이나 염불 대신에 골쇄관(骨鎖觀)이 제시된 예191)도 있듯이 다섯 가지 항목은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192)
曇無讖譯의 대반열반경에서는 인연관이 제외된 4 가지 수행법이 제시되어 있고, 계분별관에서 계가 18계로 제시되어 있다.193)
Ⅳ. 초기불전의 용례를 통해본 오정심관의 의미
팔리 삼장이나, 한역 아함경에서 오정심관에서 제시된 다섯 가지 수행법이 한 세트로 제시된 예는 보이지 않는다. 초기 경전에서는 개별적이거나 몇 가지 항목이 오정심관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수행법들과 함께 제시되었다.194)
이렇게 하신 말씀(如是語經)과 하나씩 더하는 가르침(增支部)에 의하면, 세 가지 좋지 않음의 뿌리[三不善根: 貪瞋痴] 가운데 부정상(不淨想)을 통해서 감각적 욕망[rāga]을 다스리고 자애(慈愛)를 통해서 분노[dosa 또는 vyāpāda, byāpāda]를 다스리며, 지혜[paññā, prajñā]에 의해서 어리석음[moha 또는 avijjā(팔리) avidyā(범어)]를 다스린다195)고 한다.
또한 부정관[asubhānupassī]을 통해서 감각적 욕망의 잠재성향[rāgānusaya]을 다스리고, 입출식념[ānāpānasati]을 통해서 분별의 잠재성향[vitakkāsaya]을 다스리며, 무상관[aniccānupassī]을 통해서 어리석음[avijjā]를 끊는다고 제시된 예도 있다.196)
부정(不淨, asubha)을 통해서 감각적 욕망을 끊고, 자애(慈愛)를 통해서 악의(惡意, byāpāda)를 끊고, 입출식념(入出息念)을 통해서 분별[vitakka]를 잘라버리고, 무상의 지각[無常想, aniccasaññā]을 통해서 아만(我慢, asmimāna)를 끊는다고 제시된 경도 있다.197)
하나씩 더하는 가르침(增支部)의 [다섯] 덮개를 끊어 버림의 장[nīvara.na-pahāna-vagga]에 의하면 다섯 덮개인 감각적 욕망에의 욕구(kāmachanda)는 부정의 모습(asubhanimmitta, 不淨相)으로, 악한 의도(vyāpāda, 惡意)는 자애(mettā, 慈)로, 혼침과 수면(thīna-middha)는 세 단계의 정진198)으로, 들뜸과 후회(uddhacca-kukkucca)는 마음의 평안(cetaso vuupasama)으로, 회의적 의심(vicikicchā)은 이치에 맞는 사유(yoniso manasikarota)로 끊어 버린다고 한다.199)
중간 길이 가르침(中部) 62경 라훌라에 대한 큰 가르침(Mahā-rāhurovāda-sutta)에서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 부정(不淨), 무상상(無常想), 입출식념(入出息念)이 제시되어 있다. 자애(mettā, 慈)는 악의(byāpāda, 惡意)를, 연민(karuṇā, 悲)은 해치는 마음(vihesā, 傷害)를, 더불어 기뻐함(muditā, 喜)은 불쾌(arati)를, 평온(upekkhā, 捨)은 대립(paṭigha)을, 부정(不淨)은 감각적 욕망(rāga)을, 무상상(無常想)은 아만(asmimāna)을 없애주며, 입출식념을 닦으면 큰 결실(mahāpphala)과 큰 이익(mahānisaṃsa)이 있다고 한다.200) 큰 결실과 큰 이익이란 입출식념경에서 설해진 4념처와 7각지를 갖추어 지혜와 혜탈을 이루는 것201)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역 증일아함경의 「羅雲」이라는 경에는 입출식념(安般之法)을 닦으면 슬픔과 근심의 생각[愁憂之想]을 제거하고, 부정상을 닦으면 탐욕을, 자심(慈心)을 닦으면 분노[瞋恚]를, 연민의 마음[悲心]을 닦으면 해치려는 마음[害心]을,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닦으면 질투하는 마음을, 마음을 지키는 수행[行護心]을 닦으면 모든 교만을 없애버린다고 한다.202)
1. 부정관에 대한 초기불전의 용례
앞서 ‘부정관’의 개념풀이의 각주에서 밝혔듯이 라모트는 대지도론의 不淨想에 대한 설명에 앞서 초기경전의 여러 가지 상(想) 가운데 不淨想에 대한 부분과 팔리 아비담마의 十不淨想(dasa-asubhā-saññā), 설일체유부 아비달마 및 대승경전에 보이는 九(不淨)想의 용례를 제시하고 있다.203) 부정상에 대해서는 라모트와 하야시마의 글 등을 참조하여 정리해본다.
초기 경전에 보이는 부정(不淨)
팔리경전 가운데 不淨(asubha)이라는 경명이 붙은 예204)와 不淨(asubha) 또는 不淨想(asubhasaññā)이 경전에서 다른 수행법과 함께 열거되어 나타난 예, 부정관이 시체의 해체 과정을 관찰하는 것으로 제시된 예205) 등이 있다.
부정(不淨)이 경전에서 다른 수행법과 열거되어 나타난 예를 살펴본다.
먼저 3법으로 제시된 예206)에서는 부정(asubha), 자애(mettā), 지혜(paññā)가 각각 탐욕(rāga), 악의(vyāpāda), 어리석음(moha)을 끊어버린다.
4법으로는 부정(asubha), 자애(mettā), 입출식념(ānāpānasati), 무상상(aniccasaññā)이 제시되고, 무상상(aniccasaññā)에 의해서 무아상(anatta-sañña)이 갖추어지고, 무아상에 의해서 아만심이 제거(asmimāna-samugghāta)되어 지금 여기서 열반을 이루게 된다.207)
5법 또는 5상(想)으로는 부정수관(不淨隨觀), 음식에 대해 싫어하는 상(食厭想), 모든 세간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 상(想), 모든 행에 대한 무상상(無常想), 죽음에 대한 상(死想)이 제시되는 예가 있고208), 부정상(不淨想), 사상(死想), 혐오상(嫌惡想), 식염상(食厭想), 모든 세간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 상(想)이 제시되는 예가 있다.209)
7상(想)으로는 무상상(無常想), 무아상(無我想), 부정상(不淨想), 혐오상(嫌惡想), 사단상(捨斷想), 이욕상(離欲想), 멸상(滅想)이 제시된 예210)와 부정상(不淨想), 사상(死想), 식염상(食厭想), 모든 세간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 상(想), 무상상(無常想), 무상에 대한 고상(苦想), 고에 대한 무아상(無我想)이 제시된 예가 있다.211)
9상(想)으로는 부정상(不淨想), 사상(死想), 식염상(食厭想), 모든 세간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 상(想), 무상상(無常想), 무상에 대한 고상(苦想), 고에 대한 무아상(無我想), 사단상(捨斷想), 이욕상(離欲想)이 제시되어 있다.212)
10(想)으로는 위의 9상(想)에 멸상(滅想)이 추가된 예213)와 무상상(無常想), 무아상(無我想), 부정상(不淨想), 혐오상(嫌惡想), 사단상(捨斷想), 이욕상(離欲想), 멸상(滅想), 모든 세간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 상(想), 모든 행에 대한 무상상(無常想), 입출식념이 제시된 예214) 등이 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상(想)이나 수관(隨觀) 가운데 설해진 부정상 또는 부정수관은 수행법의 하나로 고, 무상, 무아 등의 수행법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고, 무상, 무아는 초기불교의 세 가지 수관(隨觀)을 이루는 핵심적인 수행법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법구경(法句經; Dhammapada) 277-279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현상(諸行)은 영원하지 않다(無常)라고 지혜에 의해 볼 때,
그는 괴로움에 대해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현상(諸行)은 괴로움(苦)이라고 지혜에 의해 볼 때,
그는 괴로움에 대해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모든 법들은 영원한 자아가 없다(無我)라고 지혜에 의해 볼 때,
그는 괴로움에 대해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이 말은 바로 세 가지 법의 특성(三法相)인 무상, 고, 무아에 대해서 지혜로써 관찰하는 것이 바로 청정(열반) 에 이르는 길임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구경에서 말하는 지혜로써 관찰한다(passati)215)는 말이 다름 아닌 관(觀) 수행인 위빠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무상, 고, 무아에 대한 관찰과 함께 설해지는 부정관 수행의 중요성을 반증해 준다고 할 수있다.216)
2. 자비관에 대한 초기불전의 용례
초기불교의 자애수행217)
초기불교의 자비관 또는 자애(慈愛) 수행은 계정혜 삼학의 모든 과정과 일반 재가자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권해진 수행이었다.
먼저 계학과 자애수행의 관계를 살펴본다. 계와 관련된 자애의 실천은 불살생계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長部의 두 경전인 梵網經 과 沙門果經의 小戒에 대한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218)
대왕이여, 비구는 어떻게 계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대왕이여, 비구는 살생을 버리고 살생에서 떠나 있습니다. 막대기를 버리고, 칼을 버렸습니다. 마음으로 부끄러워하고[lajjī] 자애심이 있고[dayāpanno]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이것이 비구의 계입니다.
계란 의지[cetanā]로 지니는 자율적인 규범이라고 할 때, 첫 번째 계인 불살생계는 살생을 피하고, 폭력을 피하며, 살생과 폭력을 부끄러워하면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이익을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불살생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정학(定學)과 자수행(慈修行)의 관계이다. 마음집중을 의미하는 정[samādhi 定]과 관계가 있는 자수행은 앞에서도 살펴본 사무량심(四無量心) 또는 사범주(四梵住)와 관련이 있다. 앞서 예를 든 라훌라에 대한 큰 가르침에서 붓다는 수행법으로 라훌라에게 사무량심과 부정(不淨), 무상상(無常想), 입출식념(入出息念)을 제시하고 있다.
자비희사의 네 가지 덕목을 통해서 악의(惡意, byāpāda), 상해(傷害, vihesā), 불쾌(不快, arati), 대립(對立, paṭigha)이라는 번뇌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사무량심이라는 수행으로 심해탈(心解脫)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장부(長部) 17경 大善見王經219)에 사선(四禪)을 성취하고, 다시 사무량심을 좌선의 자세로 수행하는 방법이 설해져있다.
은으로 된 자리에 앉아, 慈를 지닌 마음을 가지고, 한 방향에 가득 채우고서 지낸다. 똑 같이 제 2의 방향에, 제 3의 방향에, 제 4의 방향에 채우고 지낸다. 이렇게 위, 아래, 옆, 모든 곳을 향해,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모든 것을 포함한 세상에 慈心이 있는 넓고 크며 한량없고, 성냄이 없고,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지낸다.
앉은 자세에서 마음속으로 사방사유와 위아래의 모든 방향을 향해서, 한량없는 慈心을 가득 채우고 수행하는 방법은 바로 선정수행의 한 방법으로 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정수행법으로 제시된 사무량심은 청정도론220)에서 자세히 해설되고 있다.
혜학(慧學)과 자애수행의 관계를 정리해보자. 팔정도에서 혜학에 해당하는 덕목으로 정견(正見)과 정사(正思)를 들 수 있다.221) 정견이란 사성제에 대한 이해를 말하고, 바른 사유[sammā saṃkappa, 正思]는 감각적 욕망[kāma]을 버리는 원리(遠離, nekkhamma), 성냄을 버리는 불악의(不惡意, avyāpāda), 남를 해치려는 마음을 버리는 불상해(不傷害, avihiṃsā)를 의미한다. 불악의는 바로 자심을 의미하며, 불상해는 비심을 의미하므로, 혜학에도 자비의 실천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혜와 자비는 상보적이어서 한 쪽이 결여되면 다른 한 쪽도 결여된다고 볼 수 있는 경전이 있다. 상응부의 「念處相應」의 한 경전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기를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보호할 때,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하는 것인가? 많은 수행을 함을 통해서이다. 그러면 어떻게 남을 보호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인가? 인내와 해치려는 마음이 없음(不傷害)과 남의 행복을 바라는 자심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의 마음를 통해서이다. 222)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혜학으로서 염처수행을 설하면서, 남을 지키는 방법으로는 자비의 실천을 설하는 이 경전을 통해서 초기불교 수행법에서 지혜와 자비의 상보적인 관계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성자(聖者)와 자비의 실천에 대해 살펴본다. 붓다는 많은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 45년간 법을 폈다. 5비구와 야사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60명의 아라한 제자들에게 선포한 전도의 선언도 세상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법을 설하라는 말씀이었다223). 지혜의 완성에 의해 모든 번뇌가 소멸한 아라한이 해야 할 일은 바로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자비의 실천이었음을 우리는 전도의 선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숫타니파타(Suttanipāta)와 소송경(Khuddaka-pāṭha)에 수록되어 있는 慈經(Mettā Sutta)은 바로 ‘평온의 경지를 깨닫고 나서(yan taṃ santaṃ padaṃ abhisamecca)’ 행해야 하는 자비행을 설한 경전이다. 이 경전은 지혜에 의해 자신의 평안 즉 열반에 이른 이는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듯이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을 자비로서 돌보라는 가르침이다. 아라한의 자비행은 바로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회향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애수행을 하면 11가지 유익함을 얻게 된다.224)
비구들이여, 자애심으로 마음의 해탈이 훈련되고 개발되고 숙달되고 탈 것이 되고 기초가 되고 확고해지고 견고해지면, 11가지 유익함이 기대된다. 무엇이 11가지인가? 1. 잠을 편안하게 자고, 2. 편안하게 깨어있고, 3. 악몽을 꾸지 않고, 4. 인간에게 사랑받고, 5.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서도 사랑받고, 6. 천신들이 보호하고, 7. 불, 독약, 무기로 해침을 받지 않고, 8. 마음이 쉽게 집중되고, 9. 얼굴빛이 밝고, 10. 혼란 없이 죽고, 11. 출세간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범천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의 자애수행은 삼학으로 대표되는 실천체계에서 시종일관 동반되는 중요한 수행임을 알 수 있었고, 수행의 완성을 이룬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강조된 실천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혜에 의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자비행은 바로 지혜를 나누는 실천임을 붓다의 삶과 아라한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행복이란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이며, 이 열반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므로 깨달음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깨달음을 이룬 후에도 자비행은 초기불교에서 중요한 실천법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3. 인연관에 대한 초기불전의 용례
초기경전에서는 ‘인연관’ 또는 ‘연기관’이라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으나 ‘연기를 본다.’ ‘연기와 연이생법(緣已生法)이 바른 지혜에 의해서 잘 체험되었다.’ ‘연기에 대해서 이치에 맞게 사유한다.’라는 표현에서 ‘연기관’은 연기에 대한 체험적 이해 또는 이치에 맞는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초기경전에서 연기에 대한 체험적 이해에서 빠질 수 없는 두 가지 문구가 있다. 하나는 이른바 「초전법륜」을 듣고 콘단냐의 법의 눈(dhammacakkhu)이 열렸음을 말해주는 게송이다. 법의 눈이 열린 내용을 경전은 간단하게 ‘생겨나는 성질을 지닌 어느 것이든, 그 모든 것은 소멸하는 속성을 지닌다.’225)라고 전하고 있다. 이른바 조건에 의한 발생과 소멸을 말하는 연기의 이법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법의 눈이 열리는 이 체험에 의해서 콘단냐는 첫 번째 성인인 소타판나(수타원, 예류)가 된다. 다른 하나는 사리풋타 존자가 붓다의 제자가 되기 전, 붓다의 최초의 제자인 5비구 가운데 한 명인 아싸지(馬勝) 비구를 만나서 누구를 스승으로 해서 누구의 법을 즐기고 있는가라고 묻자 대답으로 들은 시였다. ‘원인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법들, 여래께서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또 그것들의 소멸에 대해서 말하셨나니, 이것이 대사문의 가르침이네.’226) 이 시를 듣고 사리풋타는 그 자리에서 법의 눈이 맑아져 소타판나가 되었다. 두 번 째 게송은 이른바 연기법송(緣起法頌)227)이라고 한다. 콘단냐 존자와 사리풋타 존자의 깨달음은 연기에 대한 체험적 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인연관 또는 연기관은 후대 아비달마에서 말하는 예류(預流)의 깨달음을 말하는 견도(見道)와 직결되는 수행법이라고 볼 수 있다.
연기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전은 붓다의 성도 후 1주일이 지난 후의 연기에 대한 사유를 전하는 기쁨에 찬 말씀(우다나) 첫 번 장인 「깨달음의 장(bodhivagga)의 처음의 세 게송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7일간 해탈의 즐거움(vimuttisukha)을 경험한 후, 선정(samādhi)에서 나와서 초야(初夜)에 연기(paṭiccasamuppāda)를 순서대로(anulomam) 훌륭하게 이치에 맞게 사유하였다(sādhukaṃ yoniso manasākāsi).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의 발생으로부터 저것이 발생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리석음(無明)을 조건으로 지음(行)이 있다. 지음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 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名色)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관(六入)이 있다. 여섯 감관을 조건으로 접촉(觸)이 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망(愛)이 있다. 갈망을 조건으로 집착(取)이 있다.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 슬픔과 비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번민이 있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발생이 있다.’228) 세존은 이 의미를 알고 나서 감흥의 시를 읊었다.
<初夜의 게>
진실로 열심히 선정을 닦는 바라문에게 법(dhammā 諸法)이 분명히 드러났을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는 원인 있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229)
중야가 되자 붓다는 연기를 역으로(paṭiloma) 이치에 맞게 사유하였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의 소멸로부터 저것의 소멸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리석음(無明)의 소멸로부터 조건으로 지음(行)의 소멸이 있다. 지음의 소멸로부터 식(識)의 소멸이 있다. 식의 소멸로부터 정신과 물질(名色)의 소멸이 있다. 정신과 물질의 소멸로부터 여섯 감관(六入)의 소멸이 있다. 여섯 감관의 소멸로부터 접촉(觸)의 소멸이 있다. 접촉의 소멸로부터 느낌(受)의 소멸이 있다. 느낌의 소멸로부터 갈망(愛)의 소멸이 있다. 갈망의 소멸로부터 집착(取)의 소멸이 있다. 집착의 소멸로부터 존재(有)의 소멸이 있다. 존재의 소멸로부터 태어남(生)의 소멸이 있다. 태어남의 소멸로부터 늙음과 죽음(老死), 슬픔과 비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번민의 소멸이 있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소멸이 있다.
<中夜의 게>
진실로 열심히 선정을 닦는 바라문에게 법(dhammā 諸法)이 분명히 들어났을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는 조건의 소멸을 알았기 때문이다.230)
후야가 되자 붓다는 연기를 순서대로, 역으로, 이치에 맞게 사유하였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 이와 같이 괴로움의 발생이 있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 이와 같이 괴로움의 소멸이 있다.
<後夜의 게>
진실로 열심히 선정을 닦는 바라문에게 법(dhammā 諸法)이 분명히 들어났을 때,
그는 악마의 군대를 깨트리며 머물렀다. 마치 허공을 비추고 있는 태양처럼.231)
초야의 게에서 원인 있는 법은 바로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법232)이며, 이것은 바로 조건에 의해 생겨나는 법(paṭiccasamuppannā dhammā 緣已生法)이며, 유의법(saṅkhatā dhammā)이다. 이처럼 복수 형태로 사용된 법dhammā은 기본적으로 유의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233) 특히 위의 게송 앞부분에 나오는 법은 12지연기의 각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12지 각지가 바로 원인 있는 법들이기 때문이다.234)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 이치에 맞는 사유를 통해 확인한 진리는 12지연기이며, 이것이 바로 초기경전에 보이는 연기관의 내용이다. 다마키 고시로 박사는 연기를 순서대로, 역으로, 이치에 맞게 사유한다는 이 경전은 연기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235). 붓다의 깨달음의 체험 직후의 이러한 사유에서 연기관의 원형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붓다의 깨달음의 체험과 관련해서 볼 때, 초기불교의 연기관은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위한 초보단계의 수행법이라고 보기 어렵다.236)
4. 계분별관에 대한 초기불전의 용례237)
수행도로서 「계분별관」 또는 「界差別」은, 팔리경전에서는 주로 사념처 가운데 身念処의 한 항목인 「四界差別」로 다음과 같이 설해진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름 아닌 이 신체를 있는 그대로, 놓여진 그대로, 요소(界)로서 관찰한다. 이 신체에는 地의 요소(地界), 水의 요소(水界), 火의 요소(火界), 風의 요소(風界)가 존재한다고.238)
이처럼 신체를 4요소로 관찰하는 수행도를 「四界差別」(catudhātu-vavatthāna)이라고 이름한 것은 팔리문헌에서는 清浄道論 등의 주석문헌에서이다. 그리고 清浄道論에서는 界作意(dhātumanasikāra), 界業処(dhātukammaṭṭhāna), 四界差別(catudhātuvavatthāna)은 같은 의미이며,239) 界分別(dhātuppabheda)이라고도 한다.240)
「四界差別」을 설한 3경전은 長部의 大念処経, 中部의 念処経, 身念経이고, 3경전 모두 身念処의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清浄道論에서는, 禅定 수행의 40 주제(kammaṭṭhāna)의 하나로 「四界差別」을 자세히 해설하고 있는데, 먼저 身念処의 하나로 간략하게 「四界差別」을 説明한 후, 象跡喩大経(Mahāhatthipadūpama-sutta)(MN i, 184쪽 이하), 教誡라훌라大経(Mahārāhurovāda-sutta)(MN i, 421쪽 이하), 界分別経(Dhātuvibhṅga-sutta)(MN iii, 237쪽 이하)을 인용하면서 자세하게 「四界差別」을 분석하고 있다.241)이 3 경전의 「四界差別」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머리카락(髪, kesā)․체모(毛, lomā)․손발톱(爪 nakhā)․이(歯, dantā) 등의 신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地界․水界․火界․風界에 배당하면서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中阿含経을 위시로 한 「界差別」
설일체유부 전승의 中阿含経의身念経242)과 念処経243)에는 지수화풍 四界에 空界와 識界가 더해져, 六界가 제시되어 있다.244)
유부의 아비달마에서 身念処 가운데 「界差別」(界方便)의 「界」가 모두 六界를 의미하게 된 것은 中阿含経의 영향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예컨데, 유부 아비달마에서 신념처의 계차별을 설명하고 있는阿毘達磨法蘊足論은 다음과 같다.
復次比丘.於此内身, 観察思惟諸界差別.謂此身中, 唯有種種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如是思惟諸界相時, 所起於法簡択乃至毘鉢舍那, 是循内身観, 亦名身念住(대정장 26, 476a28-b3)
雑阿毘曇心論에도 「不淨観」 「安般念」과 함께 三度門의 하나로 제시되어 있는 「界方便観」은 六界에 대한 관찰이다.245)
四界의 意味
수행도로서 「四界差別」에서 四界의 의미는 팔리문헌과 有部의 아함경이나 론서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地界는 堅性・固性, 水界는 結著性・流動性, 火界는 遍熟性・熱煖性, 風界는 支持性・浮動性이다246).
수행도에서 「界差別」의 위치
初期経典의 「界差別」
「界差別」이라는 수행도는 초기경전에서 사념처 가운데 신념처의 하나로(大念処経 等), 또는 五蘊(五取蘊)의 色蘊(色取蘊)으로서 사대에 대한 분석으로(象跡喩大経, 象跡喩経, 대정장 1, 464b-467a), 또는 六界(地水火風空識)로서(界分別経, 六浄経, MN iii, 30-37, 특히 32) 설하였다.
초기경전의 「界差別」이라는 수행도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心一境性)하는 선정의 측면보다는, 四大(四界)는 無常, 無我이며, 滅尽의 성질을 가진 것(khayadhammatā), 壊滅의 성질을 가진 것(vaya-dhammatā), 変異의 성질을 가진 것(vipariṇāmadhammatā)이라는 것247) 등을 아는 지혜의 측면이 중점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혜의 측면에서 본다면, 漢訳阿含과 팔리니까야에 보이는 「四界差別」은 観(vipassanā) 修行으로 位置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고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초기경전에서 「界差別」은 観(vipassanā) 修行으로 位置지을 수 있다.
清浄道論을 위시로 한 남방상좌불교의 아비달마 및 주석에서는 観의 측면과 観의 근거가 되는 近行定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位置지을 수 있다. 따라서 純観行者는 「四界差別」을 통해서 혜해탈자가 된다.
有部의 아비달마에서는 大毘婆沙論, 雑阿毘曇心論을 중심으로 四念住의 예비적 수행(加行)으로서, 不浄観, 持息観과 함께 三方便門으로 자리 잡게 된다.
5. 안나반나관에 대한 초기불전의 용례
초기불교의 입출식념248)
초기경전에 나타난 입출식념은 여러 곳에서 설해지지만,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이른바 염처계 경전249)이다. 그 가운데 대념처경에서는 신념처의 첫 항목으로 제시되며, 入出息念經(MN iii, 78-88)과 身念經(MN iii, 88-99) 등에서 구체적인 수행법을 찾아 볼 수 있다.
入出息念經은 신념처 수행의 처음에 제시되는 호흡에 대한 관찰 부분만을 설한 경전인데, 수행의 단계가 입출식념 → 사념처 → 칠각지 → 명(明, vijja)․해탈(解脫, vimutti)로 제시되어 있다. 「염처경」에서는 단순히 호흡에 대한 관찰250)만이 제시되어 있는데, 입출식념경에서는 호흡에 대한 관찰이 16 단계로 나뉘어져서 각 4 단계마다, 신수심법의 사념처를 순서로 적용시키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념처: (1) 긴 날숨과 들숨에 대한 관찰. (2) 짧은 날숨과 들숨에 대한 관찰, (3) 전신(全身)을 감지하면서(paṭisaṃvedī) 호흡, (4) [호흡이라는] 몸의 작용(身行)을 가라앉히면서(passambhayam cittasaṅkhāraṃ) 호흡.
수념처: (1)기쁨(喜, pīti)을 감지하면서 호흡, (2) 행복(樂, sukha)을 감지하면서 호흡, (3) (느낌이라는) 마음의 작용(心行, cittasaṅkhāra)을 감지하면서 호흡, (4) (느낌이라는) 마음의 작용(心行)을 가라앉히면서 호흡.
심념처: (1) 마음(citta)을 감지하면서 호흡, (2)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abhippamp-dayaṃ cittaṃ) 호흡, (3) 마음을 집중하면서(samādahaṃ cittaṃ) 호흡, (4) 마음을 해탈시키면서 (vimocayaṃ cittaṃ) 호흡.
법념처: (1) 무상(無常, anicca)을 반복해서 관찰하면서(anupassī) 호흡, (2) 이탐(離貪, virāga)을 반복해서 관찰하면서 호흡, (3) 멸진(滅盡, nirodha)을 반복해서 관찰하면서 호흡, (4) 버림(捨, paṭinissagga)을 반복해서 관찰하면서 호흡.
이처럼 호흡을 하면서 사념처로 진행되는 수행법은 입출식념경에서만 제시되고 있는 수행법이다. 호흡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사념처로 이어지고 사념처의 각 염처 수행은 다시 각각 칠각지로 이어진다(MN iii 85-88). 마지막으로 칠각지를 수행하여 지혜(明)와 해탈(解脫) 또는 지혜에 의한 해탈을 완성한다. 이처럼 입출식념경에 제시된 수행의 목적은 지혜(明)와 해탈임을 알 수 있다.
중부의 신념경(身念經)은 대념처경의 「몸에 대한 마음챙김」 부분만이 제시되어 있는 독립된 경전이지만, 몸에 대한 마음챙김 수행이 선정(禪定) 수행으로 이어지는 면이 중심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기본적인 내용은 염처경의 신념처에 해당하는 부분과 동일하지만 각 수행법 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노력하며 지내는 그에게, 재가(在家)의 기억과 생각(sarasaṅkappa)이 끊어져 버린다. 이것들이 끊어짐으로써 안으로 마음이 잘 머물고 가라앉으며, 한곳에 집중되고 안정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신념(身念)을 닦는다.251)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고 안정된다는 말은 곳 초선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초선을 이룬 후 신념경은 계속해서 제 2선, 제 3선, 제 4선을 이루고, 마지막 번뇌가 다한 누진통(漏盡通)을 포함한 여섯 가지 신통(abhiññā)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신념경에서는 신념으로 사선을 이루고 사선으로 6신통을 이루는 과정으로 설명되어 있다. 「신념경」의 체계에 따르면 입출식념 수행의 결과 4선을 이루게 되고, 4선을 이룬 뒤에 여섯 가지 신통을 얻어 아라한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입출식념으로 네 가지 선정252)을 이루었고, 이 선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전생을 아는 숙명지(宿命智), 다른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사생지(死生智), 그리고 네 가지 고귀한 진리(사성제)를 체득함에 의해서 모든 번뇌를 끊어버린 누진지(漏盡智)를 얻어 붓다가 되었다.253) 한 경전에 의하면 붓다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 보살이었을 때, 열심히 닦고 익혔던 수행법은 입출식념(ānāpānasati)이었고 바로 이 수행법을 통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했다254)고 한다. 붓다는 깨달은 이후에도 입출식념에 의한 마음집중(ānāpānasatisamādhi)에 머물렀다. 입출식념에 의한 마음집중은 성인이 머무는 곳 (ariyavihāro)이고 브라마가 머무는 곳(brahmavihāro)이며, 여래가 머무는 곳(tathagātavihāro)이 되며, 모든 번뇌의 소멸을 이루고(āsavānaṃ khayāya saṃvattati), 바로 이생에 행복하게 머물게 된다(diṭṭheva dhamme sukhavihārāya ceva saṃvattati)255). 이렇게 붓다는 깨닫기 이전부터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룰 때는 수행의 방법으로, 그리고 깨달은 이후에는 이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복으로 입출식념에 의한 마음집중에 들었다는 것을 볼때, 입출식념은 붓다의 기본적인 수행법이자 머무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256)
이처럼 입출식념을 붓다가 중시했음은 물론 제자들에게 부작용이 적은 수행법으로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257). 입출식념경에 제시된 입출식념은 사념처와 칠각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지혜와 해탈을 이루는 입문적 수행법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전에서 우리는 사념처의 전 과정에 입출식념 수행이 동반되어 있기 때문에 수행의 도입부분뿐만 아니라 수행이 제자리를 잡고 나서도 계속해서 입출식념을 닦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출식념을 통해 4선을 이룰 경우에는 선정 수행의 기본 방법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4선을 이루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입출식념은 4선을 이룬 후에 지혜가 열리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기반이 되는 수행법임을 알 수 있다.
V. 맺는 말
오정심관이라는 다섯 가지 수행법은 중국불교 전통에서 다섯 가지 번뇌를 다스리는 기초적인 수행법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특히 구사론 주석가들과 종파불교의 저술에 반영된 오정심관은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는 준비단계의 수행법으로 간주되었다. 인도불교의 유부의 교학이나 유식학의 전통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불교 전통에서 고찰해본 오정심관의 각 수행법은 준비단계의 수행만이 아니라 수행의 향상에 따라 함께 깊어지는 수행법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문지 등에서 일반적으로 부정관으로 탐심을, 자비관으로 분노를, 인연관으로 어리석음을, 계차별관으로 아만을, 안나반나관으로 분별을 다스린다고 한다. 하지만 각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면, 대치되는 번뇌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더 깊은 깨달음의 체험으로 이어지는 수행법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인연관과 계차별관은 그대로 성인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수행법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안나반나관도 지혜와 해탈에 이르는 전 과정의 바탕이 되는 수행법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정심관으로 정리된 수행법을 인도초기불교의 전통에서부터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교 수행의 다양성을 풍요롭게 하는 첫 걸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약어
Pāli Text와 略語는 Critical Pāli Dictionary(CPD) Vol. 1의 후기(Epiloegomena) 참조.
기타 약어는 다음 문헌에 따른다.
Abkurzungsverzeichnis zur buddhistischen Literatur in Indien und Sudostasien, herausgegeben von Heinz Bechert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0).
Pāli 문헌 검색 및 인용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로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였다.
Pāli Text Database (Pāli Text Society Editions) inputted by Association for Pali Text Inputting (APTI), Faculty of Letters, University of Tokyo, 1993-1998.
Chatta Saṅghayana Tipitaka CD III, Vipassanā Research Institute, Igatpuri, 1998.
Akbh: Abhidharmakośabhāṣya, ed. by P. Pradhan, Tibetan Sanskrit Works Series vol. 8, Patna, 1967. (구사론 등의 범어 원문 자료는 정신문화연구원 이종철교수가 입력한 자료를 이용하였다.)
Vism-mhṭ: Visuddhimagga-Mahāṭīkā (Paramatthamañjūsā), Burmese Chatta Saṅghayana edition, 2 vols, Yangon, 1960.
주제어
오정심관(五停心觀),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계분별관(界分別觀), 안나반나관(安那般那觀)
Wu-Ting-Hsin-Kuan, aśubhā, asubha, maitrī, mettā, idaṃpratyayatā-pratītyasamutpādaḥ,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a, dhātuprabhedaḥ, dhātuppabheda, ānāpānasmṛti, ānāpānasati
The Position of Wu-T'ing-Hsin-Kuan in Early Buddhism
Kim, Jaesung (Seoul Graduate School of Buddhism)
In this paper, I try to find out the position and meaning of Wu-T'ing-Hsin-Kuan (five contemplations of calming the mind) in early Buddhist literatures. Wu-T'ing-Hsin-Kuan had been accepted as basic methods of concentration meditation in the tradition of Indian sectarian Buddhism, Mahayana Buddhism and East Asian Buddhim.
At first, an etymological study of Wu-T'ing-Hsin-Kuan is made, and I try to analyse and understand the meaning of each concept through early Buddhist Literatures. In later Buddhist traditions, especially Mahayana Buddhism and the East Asian Buddhist tradition, Wu-T'ing-Hsin-Kuan was considered as the basic medita-tion methods for calming down certain mental problems (kilesā) which are sensual desires (kāmacchanda), hatred (vyāpada), wavering (vicikicchā), conceit (māna) and distracting thought (vitakka). But some parts of Wu-T'ing-Hsin-Kuan have essential and important roles in the meditation of the early Buddhist tradition, especially the contemplation on dependent origination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a) and the contemplation on the elements (dhātuppabheda) are the very practices to be connected with the enlightenment of the early Buddhist saints. We understand that these five parts of the Buddhist practices play roles as basic methods to overcome specific defilements and also some components directly and essentially contribute to the attainment of enlightenment in the early Buddhist tradition of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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