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일 경향신문 2면기사
세상은 쉽사리 안 바뀌고, 활동가들은 늙고 병들어간다
특별기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수술을 하고 암병동에 들어서니 고통을 먼저 겪어 하늘처럼 우러러뵈는 선배들이 물었다 " 암 소리듣고 누구 얼굴이 젤로 먼저 생각나대요?" 암환자들은 설명이 없어도 다 알아듣는 질문이다.
`본데없는 메느리 가르친다꼬 임신8개월의 메느리를 무릎 끓려놓고 몇시간을 갈치던 시아배. 메느리가 하는 일은 씨레기 봉다리 묶는 일도 눈꼴시러바 하던 시어매` ` 술먹으면 개그튼 남핀놈` `취직도 몬하고 주식한다꼬 돈이란 돈은 다 까쳐먹은 큰아들.`
라이프 스토리처럼 이어지던 ` 발암요인` 들을 들으며 난 크레인이 젤 먼저 떠올랐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공존하던 곳, 그런데도 선풍기도 난로도 없던 곳, 겨울엔 시루떡이 벽돌처럼 얼고, 널어놓은 양말이 동태가 된 채 며칠이 가도 녹지 않던 곳, 장마철엔 담요가 썪던 곳, 호시탐탐 침탈을 노리던 용역 깡패들 탓에 10분을 이어 잘 수 없던곳, 내려와서라도 몸을 좀 녹일 수 있었더라면 안 아팠을까. 항암을 마치고 4개월 만에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니 당장 먹을 게 없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두꺼비집이 내려가 다 썩어문드러진 냉장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 난 육십평생 나한테 밥한 끼 제대로 해준 적이 없구나.` 그때 때되면 밥이 나온다는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생각이 났다 처음 시작할 때 한진중공업 해고자들도 가서 쌍용차 콜트콜텍 기륭전자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등과 함께 힘 모아 만들었던 곳, 그러나 우울까지 깊었던 나는 쉴 곳이 필요했다. 면허증도 차도 없는 내겐 병원 다니는 일이 너무 난망하기도 했다.
박성호는 안 늙을 줄 알았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눈이 댕그랗고 못하는 게 없는 마을 청년회 총무 같은 박성호 박성호는 진짜 못하는 게 없고, 못 만드는게 없다. 집회 때면 꽹과리를 치고 1인시위 땐 피켓을 만들고 천막농성 땐 천막을 지었다. 박성호는 영도 똥바람에도 끄떡없는 자동문이 달린 2층 천막을 짓기도 했다 그뿐인가 전국의 민중열사 장례식엔 언제나 박성호가 있어야 했다. 1991년 박창수 위원장부터 2023년 양회동 열사까지 이소선 어머니든, 백기완 선생님이든 부산에서 박성호가 올라가 장례 전반을 챙겨야 비로소 편안하게 저 하늘로 가실 수 있었다. 박성호는 정년퇴임식 날까지도 일이었다. 지회에서 열어준 정년퇴임식에 늦게 도착한 주인공이 변명처럼 말했다 "노옥희 선생님 솥발산에 모시주고 온다꼬 늦었심니다."
그동안 쌓은 복만으로도 천년만년은 살아야 할 박성호가 심장이 갑자기 안 뛰어서 얼마 전 119에 실려갓다는 예길 들으니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우리 같은 해고자들, 사회운동 활동가들, 국가폭력과 자본폭력의 피해자 등이 비용 등 걱정 하나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무료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밍을 만든다고 몇날 며칠을 한진 동지들과 함께 남원 귀정사 비탈을 쉼터로 깎고 다듬었던 박성호,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산 일반 노조정승철 동지 가족을 싣고 사회연대 쉼터로 바삐 가던 우유배달 기름배달을 하다 간경화로 쓰러진 옛고무신공장 해고자 문민철을 쉼터로 보내 쉬게 하던 성호, 그가 이젠 쉬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세상은 쉽사리 안 바뀌고 활동가들은 늙고 병들어간다. 거리에서의 삶들은 쉬끝나지 않는다. 시국이 이런데 쉬는 건 막연히 불안하다 쉬려니 수요일의 시위가 걸리고 주말의 수련회는 누가 준비하나, 전국 장애인차별 철폐연대가 저렇게 짓밟히고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행동이 저렇게 당하고, 건설노조가 저렇게 두들겨 맞는데 어찌 쉬노, 세종호텔이 저러고 있고, 대우버스가 저러고 있고, 세월호도 이태원도 다 마음이 쓰이는데 어찌 쉬노, 그게 우리의 삶이었다. 난 내 삶에 후회는 없지만 나 자신에겐 좀 미안하다. 두군데 갔던 한의원에선 똑같은 예길 들었다.
" 몸에 기름기가 하나도 없어요" 비싼 약을 몇 제 먹고 세 번째 갔던 한의원에서 도 똑깥은 얘길했다. " 몸에 기름기가 있어야 버텨요" 잘 먹일 걸 따뜻한 데서 재울걸, 맨날 쫓기듯이 그렇게 동거리지 말고 좀 천천히 살걸, 활동가들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그리고 전북 남원 만행산 기슭에 터를 닦은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그런 우리 모두에게 맞춤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낙원으로, 그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10년이 되는 9월2일 마침 내가 좋아하는 문정현 신부님도 오시고, 정태춘님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성호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10년 전 개원식 날 백기완선생님이랑 함께 나란히 앉았던 느티나무는 여전하겠지. 10년만에 기금마련도 한다니 이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는 곳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