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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유인물 인쇄 ; 소설 원문을 B4크기에 행 간격, 좌우 여백, 머리말 꼬리말을 대폭 줄여 3단으로 편집하면 7쪽이 나온다.
② 낭독 ; 이 원문을 직접 낭독한다. 낭독은 소설에서 매우 중요하다. 묵독은 집중력을 쉽게 읽게 하고, 묵독으로는 텍스트의 육체성을 호흡할 수 없다. 혼자 다 읽기가 어렵기에 미리 반별로 ‘낭독 소년, 낭독 소녀’를 정해 나와 함께 셋이 번갈아 낭독한다. <우상의 눈물>의 경우 1.5차시 정도만에 낭독은 끝난다.
③ 퀴즈 풀기 ; 2차시 나머지 절반은 소설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퀴즈를 푼다. 나는 ‘쪼잔 퀴즈’라고 하여 소설 내용을 대목별로 확인할 수 있는 익살스러운 퀴즈 문제를 만들어 소설 원문과 같이 인쇄하여 내준다. 여기서 정답은 별 의미가 없다.
④ 과제물 결과 읽어주기, 토론 ; 소설의 핵심 문항 하나를 정해 거기에 대한 쓰기 과제를 내 준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그 내용들을 읽고 토론한다. 이렇게 하면 비교적 긴 단편소설인 우상의 눈물 전체 내용도 3차시 안에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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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예시
● 사천만이 기다리는 쪼잔퀴즈
1. 등장인물을 생각나는 대로 다 써 보세요.
2. 기표네 재수파들이 유대를 끌고간 곳은 학교 강당 앞이었다. ( ) ** 학교 강당 앞에서 린치를 가할 수 없다. 정답은 X, 학교 뒤다.
3. 기표는 웃옷을 벗어 팔뚝에 사이다 병 조각을 사각사각 그은 다음 피가 솟아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먹어, 핥아, 좋아?) ** 인상적인 대목을 되새겨볼 수 있게 익살을 부리는 것이다.
4. 담뱃불로 지짐질을 하면서 기표가 한마디 한 말은? (공부 좀 작작해, 건강도 좀 생각하면서 공부해, 이선생은 내 꺼야, 메스껍게 굴지 마) ** 소설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정답은 맨 마지막이다. 앞은 익살을 부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20문제 정도 퀴즈를 풀면서 줄거리를 다시 되짚어본다. (후략)
● 주요 사항
1. 기표가 도망치면서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맨 앞줄에 쓴 말은?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 필기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답을 미리 써 두고 읽는 것에 그친다.
2. 나는 어떤 사람인가. 냉정한 관찰자.(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 합리성과 판단력을 겸비한 사람으로 담임과 형우의 의도를 꿰뚫고 있음. 위선과 허위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음. ** 이 소설은 인물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주요 인물에 대해 확인하되, 역시 시간관계상 정답을 미리 써 두고 읽고 확인하는 것에 그친다. (후략)
●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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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통해 내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게 딱 한가지이다. 나는 이 소설의 핵심이 바로 ‘체제의 도덕성, 권력의 속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질문을 선택한 것이다. 그 핵심은 읽는 이마다 다를 수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써 온다. 그리고, 의외로 수준 높은 토론이 진행된다. 그 중 몇을 만나보자.
② 좋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최선이다. 왜냐하면 ~
현실적으로 기표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내가 아는 대로 나열해도 1. 도시락들, 2. 마스게임 츄리닝 3. 정신적 피해, 이 정도가 있다. 그러므로 그런 기표가 사라진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남는다. 아이들이 그를 끝까지 욕하지 않은 건 그가 순수한 악마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담임과 반장은 겉으론 착하지만, 권력으로 한 아이를 길들여버린 것, 그것도 자신들의 선행으로 포장시켰고, 그들은 위선자이다. 우리는 모순을 갖고 있다. 겉으로는 드러난 악을 싫어하지만, 그 악이 순수하다면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위선자를 싫어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니 인정하고 만다. 이게 현실이다. (2학년 황인수)
③ 나쁜 반이다. 왜냐하면 ~
사람은 날 때부터 폭력을 알고 태어나진 않는다. 기표도 사람이고, 어릴 적부터 불우했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남 잘 되는 거 못 보고, 뺏고 싶고, 착한 척하는 것 못 봐주는 성미도 생기고. 기표도 겉으로는 나쁜 짓을 일삼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따뜻한, 안정된 삶을 원하고 있지 않을까. 그 방법을 몰라서 자기 울분을 터뜨리는 길만 찾다가 나쁜 길로 접어든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형우와 담임은 너무 야비하다. 형우와 담임은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지금 정치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표가 없는 2-13반은 형우가 중심이 된 위선적인 반이 될 것이다. (2학년 최윤정)
③ 나쁜 반이다. 왜냐하면 ~
반에 착한 아이가 있으면 나쁜 아이도 있다. 범생이가 있으면 문제아도 있다. 나쁜 아이도 심성이 나쁜 건 아닐텐데, 작당해서 쫓아내는 건 못됐다. 기계에서도 부품들이 하는 일들이 있듯 분명 기표도 무언가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기표가 빠지면 잠깐은 즐겁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표 생각이 날 것이다. 반 전체가 짜고 기표를 길들인 것은 나쁜 행동이고, 그로 인해 기표를 몰아냈으니 그 반은 나쁜 반이다. (2학년 김재원)
① 좋은 반이다. 왜냐하면 ~
일단 그 반에서는 기표한테 맞는 애가 없고, 그리고 기표한테 주눅 들어 신경 쓸 일이 없어지니까 혈압이 낮아져서 성격이 좋아질 것이다. 기표가 불쌍한 애는 맞다. 그러나 지가 한 일은 졸라 못된 짓이다. 다른 사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방식이 나쁜 건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악당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반은 좋은 반이다. (2학년 박철호)
4. 제일 좋은 결과를 얻었던 작품 5선
수업 준비에서는 역시 소설 제재를 고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대학 때 읽었던 작품들, 그때 좋았던 작품들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다행히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낸 <문학시간에 소설읽기> 시리즈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저런 한계 속에서 수업을 진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작품 다섯을 꼽아보겠다.
① 체제의 도덕성과 권력의 속성을 이야기하다 ; 전상국, <우상의 눈물>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낸 <우리말 우리글>에도 실려 있지만, 소설을 통해 사회의 모습을 가르칠 수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다. 비슷한 구성을 가진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비교해도 돋보인다. 중우정치(衆愚政治)에 대한 혐오와 같은 이문열 특유의 보수성이 드러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동화처럼 단순한 도식에 바탕한 <아우를 위하여>에 비해 치밀하고도 실감나게 권력의 체제 운용하는 방식, 악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설이 매우 흥미롭고 긴박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집중도가 매우 높고, 읽은 뒤 작업도 잘 이루어진다.
② 문체의 아름다움, 우울의 정서를 발견하다 ; 김승옥, <무진기행>
<무진기행>은 분량이 길고, 흥미로운 반전도 없고, 시종일관 우울한 정서가 흐르는 작품인데도 아이들은 낭독되는 내용에 잘 몰입한다. 그것은 이 작품이 가진 문학적 우수성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발표된 지 5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소설의 현대적인 감각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문학적 감수성의 기저에는 우울한 자위, 자기 연민, 까닭모를 냉소 같은 것이 있고, 그런 민감한 촉수를 <무진기행>이 잘 건드리고 있다. 이 작품은 줄거리보다 문체와 거기 담긴 정서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지의 일부>
● 쪼잔퀴즈 (생략) ● 주요 사항 1. ‘무진’의 현재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 몇 가지를 찾아 써 보세요. 예) 안개, 그럭저럭, 화투, 개구리 울음소리
2. 하선생이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시골이 싫으니깐, 무작정 도시가 좋으니깐, 아니 꼭 그렇게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3.‘나’와 세무서장 친구 ‘조’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공통점 ; 성공했다, 속물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차이점 : ‘나’는 부끄러움을 알고, ‘조’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4.현실원칙과 쾌락원칙에 대해서 - 서울에서의 나 : 현실원칙 - 무진에서의 나 : 쾌락원칙 - 마지막 부분에서는 결국 누구의 승리? 현실원칙 (후략)
● 과제 1. 문학적으로 멋있게 다가오는 구절을 몇 개 옮겨 쓰세요. 2. 하선생에게 쓴 편지를 찢어버리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나’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③ 열등감, 방관자의 이기심 ;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코>
전국국어교사모임이 펴낸 <문학시간에 소설 읽기 1>에 실려 있다. 분량이 짧기 때문에 2차시만에 넉넉하게 끝낼 수 있다. 일본 한 이름높은 승려의 기다란 코에 대한 이야기인데,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방법을 빗댄 소품같은 소설이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열등감, 방관자의 이기심)은 만만치 않다.
<학습지의 일부>
● 쪼잔퀴즈 (생략) ● 주요 사항 1. 나이구의 긴 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나이구의 생각은 대조되는데, 이를 집약해서 말하면? (나이구 : 코 때문에 승려로써 불편한 일에 안 휘말려서 좋다. 주변 사람 ; 코 때문에 승려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후략)
● 과제 누구나 나이구의 ‘코’와 같은 것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 내가 가진 나이구의 ‘코’는 어떤 것인지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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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사춘기의 성(性)과 책임성 ; 벌리 도허티, <이름없는 너에게>
이 소설은 장편이다. 도서 구매 때 한 반 분량을 사서 수업시간에 같이 읽고 수업을 했다. 하루 대출까지 허용해서 돌려 읽히면 정규 수업은 3차시 만에 끝낼 수 있다. 한 반 분량의 책을 사고, 반별로 주고, 반납 받고, 다른 반으로 돌리는 수고로움만 견뎌낸다면 좋은 장편 소설을 엄선해서 돌려 읽게 하는 것도 좋다.
고교 졸업과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둔 영국의 고3 커플 크리스와 헬렌이 우연한 기회에 아이를 갖게 된다. 크리스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헬렌은 완고한 어머니에 눌려 살지만 명민한 소녀다. 크리스는 어린아이처럼 방황하고, 어머니을 찾지만, 헬렌은 어머니의 완고함을 견디면서 아기에게 온통 집중하면서 출산을 기다린다. 결국 둘은 헤어진다.
사춘기의 성과 남학생과 여학생의 책임성의 차이, 가족의 의미, 거기에다가 한국과 너무나 다른 영국 고교생들의 생활까지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 뒤에 월간 <작은책> 2004년 4월호에 실린 <민이>(청소년 미혼모 쉼터에서 성교육을 하는 안미선 씨의 체험담)라는 글을 같이 읽으며 한국 상황과 대조시켜 보았다.
● 쪼잔퀴즈 (생략) ● 주요 사항 1. 헬렌의 성격과 헬렌 가족의 분위기 2. 크리스의 성격과 크리스 가족의 분위기 3.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임신에 대한 남녀의 차이 4. 한국과 영국 고교생들의 생활은 어떻게 다른가.(후략)
● 과제 여러분이 각각 헬렌(여학생의 경우)이라면, 크리스(남학생의 경우)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쓰시오. |
④ 진정한 교육의 모습,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 그리고 영혼의 의미에 대해 ; 포리스터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어느 날 한 졸업생의 이메일을 받았다. 취업이 잘 된다는 꽤 괜찮은 지방대학을 졸업했는데, 결국 대기업 협력 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고,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쉬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때 함께 읽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꺼내 읽다 한바탕 울고,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포리스터 카터의 이 책은 모든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이름없는 너에게>처럼 한 반 분량을 사서 수업 시간으로 끌어 들이면 된다. 인생의 잠언으로 새겨도 좋을 아름다운 말씀들, 자연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생존방식,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체로키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의 성장을 통해 가르쳐 준다.
⑤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의 창조자가 되어 보자 ; 이승우, <미궁에 대한 추측>
<문학시간에 소설 읽기> 1권 맨 앞에 자리 잡은 소설이다. 아이들은 만화 때문이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의외로 정통하다. 그러나 대개 재미난 ‘이야기’로만 알고 있을 뿐 신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나 신화에 담겨 있는 문학적 상상력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보지 않은 듯하다. 이승우의 이 소설은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신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살피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신화를 해석하는 독후 활동은 늘 좋은 결과를 얻었다.
● 쪼잔퀴즈 (생략) ● 주요 사항 1. 왜 미궁이 필요했을까? ① 역사가의 미노타우로스의 비신화화 ; 용맹스러운 최고의 용사. ② 장 델뤽의 소설에서 나온 이야기들 - 건축가 ; 미궁은 감옥이다. - 종교학자 ; 미궁은 신전이다. - 건축가 ; 미궁은 다이달로스 생애 최후의 예술 작품이다. - 연극배우 ; 미궁은 불륜의 결과물이다. 예술혼이 아닌 욕망의 산물. (후략)
● 과제 위 해석을 바탕으로 미노스 왕의 미궁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 자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시오. |
5. 비슷한 주제로 엮어서 가르쳐 본 작품들의 목록
① <상처의 의미> • 가족, 유년 시절의 상흔 ; 김소진, <자전거도둑> • 사생아라는 출신성분, 열등감 ; 송기원, <아름다운 얼굴> • 여성의 상처, 소외와 배제 ; 오정희, <순례자의 노래> |
유년시절 얻은 것이건, 이후 사회 속에서 얻은 것이건, 상처는 인간의 삶을 크게 왜곡시킨다. 소설을 통해 상처를 들여다 보게 하고, 그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것은 문학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위 세 편은 그 주제에 값할 만한 작품들이었고, 실제 수업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소진의 <자전거도둑>은 ‘나’의 유년시절 아버지와 혹부리 영감의 가계와 서미혜의 오빠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엇갈리면서 흥미롭게 읽히지만, 마지막 부분이 좀 어렵게 처리돼 있다.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은 장돌뱅이 집안의 사생아라는 출신 성분에 대한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힌 자신의 성장기를 중년의 나이에 되짚어 보는 진실하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오정희의 <순례자의 노래>는 <문학시간에 소설읽기2>에 실려 있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남성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이 한 여성의 삶을 결정적으로 어긋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여성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회적 억압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② <가난과 웃음, 그리고 슬픔> • 극한의 고통과 바보 같은 사랑의 감동 ; 위화, <허삼관 매혈기> • 수탈과 고통, 그 반어적 형상화 ; 김유정, <만무방> |
<문학시간에 소설읽기 1>에 실린 <허삼관 매혈기>는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도 굶어서 다 죽어가는 가족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음식 놀음이 그랬고, 전처 소생의 아들 일락이를 위해 자신의 피를 파는 허삼관의 진한 자식 사랑에 숙연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김유정의 <만무방>은 익히 알려진 작품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수탈, 가난과 같은 삶의 고통을 이처럼 반어적으로 혹은 유머로써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은 작품들이다.
·③ <한국 교육의 현실, 그 속에서 ‘성장’ 한다는 것> • 우리는 푹 자고 싶다 ; 김곰치, <우주소년 철진> • 한국 성장 소설의 우수한 전범 ; 최시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
김곰치의 <우주소년 철진>은 어릴 때부터 잠이 많던 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스파르타식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겪는 ‘잠’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정신분석학적인 도식이 더러 사용되는 것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삶과 너무나 밀착된 이 작품을 실감나게 읽는다.
최시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필독서로 선정해 독후감을 쓰게 할 때에도 반응들이 좋았고, 거기에 실린 단편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만 따로 떼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왜냐 선생의 수업과 <허생전>의 허생이 겹쳐지면서 전교조 건설 당시 1989년 학교와 교실의 분위기들이 실감나게 얽혀 있다. 역시 우리나라 학교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다.
④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사랑의 충동과 운명 순응 ; 김동리, <역마> • 소처럼 순한 여인의 아련한 사랑 ;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 가슴이 뻐근한 슬픈 사랑 ; 박경리, <토지>(월선이가 죽어가면서 용이와 헤어지는 대목) |
가장 집중도가 높은 주제는 역시 ‘사랑 이야기’다. 사랑의 여러 모습은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구성하는 가장 농밀한 계기다. 내가 선택한 것은 저 세 편이지만, 더 좋은 사랑 소설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김동리의 <역마>는 화계장터를 무대로 역마살이 얽어낸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다. 결국 이모와 조카의 사랑 이야기가 돼버린다. 한국인들의 운명관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신경숙 소설 특유의 여성스러운 서간체가 낭독과 잘 맞아 떨어진다. 중년 유부남과 에어로빅 강사 여주인공의 ‘불륜’인데, 어린 시절 새어머니의 기억으로 갈등하는 모습이 애처롭고 슬프게 그려지고, 결국 담담히 이별을 감내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토지>는 25권의 대작 장편이지만, <문학시간에 소설읽기 1>에 실린 부분은 한 마을에 서로 오누이처럼 사랑을 키워오다 엇갈리는 인연 속에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용이와 월선이의 이별 장면이다. 죽음 앞에서 끝내 긍정하고 마는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은 <토지>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사전 설명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아주 흥미롭게 잘 읽어주었다.
⑤ <선하고, 의로운 개인> • 누구도 몰라본 의로운 사람 ; 솔제니친, <마뜨료나의 집> • 가난한 민중의 양심 ; 양귀자,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
아이들은 바보처럼 착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세상은 누가 떠받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저 소설들에서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
마뜨료나는 스탈린 철권 통치 시절, 러시아의 한 궁벽한 시골에 사는 바보처럼 순하고 착해빠진 여인이다. 여섯 자식이 모두 죽고, 남편도 전쟁으로 잃고, 병마에 시달리지만, 흙에서 일하는 데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고 모두에게 희생적인 여인이다. 마뜨료나는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나게 한다. 이 여인의 불행한 죽음과 거기에 대조되는 속물스러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진한 슬픔을 준다.
양귀자의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역시 참 좋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양심껏 품삯을 챙겨가는 인부, 겨우 받은 품삯으로 맥주를 내는 주인공 임씨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다.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감동적인 작품에 담긴 ‘삶의 형상’으로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다.
⑥ <도회적 삶과 고독, 그리고 문명> • 어쩌다 만난 세 남자 이야기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누군가가 나를 호출해 주었으면… ; 김영하, <호출> • 바코드 찍힌 통조림 같은 삶 ;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
도회적 삶이 보편화된 요즘에 아이들에게는 도시 문명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할 거리가 제공되어야 한다. 다행히 문학에는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이를 다루어 왔다. 나는 저 세 작품이 특히 좋은 거리라 생각한다.
김승옥의 작품은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김영하의 <호출>은 ‘삐삐’(호출기)가 이제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좀 뒤늦은 감은 있다. 우연과 고독 속에 침잠하는 한 무력한 젊은 남자의 몽상으로 벌어지는 가상의 연애가 우울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편의점’을 통해 바코드의 익명 체제 속에서 완전한 타자로 살아가는 도회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는 살아 있는 어떤 자연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익명, 바코드로 대표되는 전자 감시 체제, 아스팔트 같은 메마른 상징들이 작가 김애란의 날렵하고도 서늘한 문체로 직조돼 있다.
⑦ <문체 혹은 ‘분위기 소설’ 맛보기> • 홍상수 영화 같은 소설 ; 서정인, <강> • 부서진 삶의 형상 ; 윤대녕, <은어낚시통신> |
서정인의 <강>은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눈오는 밤 세 남자의 하룻밤 동행, 그들은 점점 삶의 나락으로 이끌리는 듯한 소시민이다. 거기에 끼여든 천사 같기도 하고 몽매한 백치 같기도 한 작부 여인이 있다. 이 소설은 줄거리나 인물보다 ‘분위기’에 지배되는 소설이다.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도 마찬가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사진, 재즈 등의 문화적인 코드와 함께 도회적 삶의 우울, ‘존재의 시원’과 같은 고급한 관념, ‘은어낚시통신’의 비밀스런 분위기까지 주로 부서진 삶의 분위기에 의해 지배되는 작품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한 번 읽어보고 느낌을 나누면 된다. 이런 분위기를 잘 흡수하는 학생들을 더러 만날 수 있다.
⑧ <역사의 상흔> • 좌익 활동가 아버지의 총살, 배고픔 ; 김원일, <어둠의 혼> • 증오와 화해의 드라마 ; 윤흥길, <장마> (소설 원문 전체 읽기) • 극우 반공 체제가 망가뜨린 한 의사의 삶 ; 황석영, <한씨연대기> |
문학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는 일은 국어 교사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라고 믿는다.
김원일의 <어둠의 혼>은 작가의 개인사가 투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하다 붙잡혀 죽은 날 ‘배고픈 아들’의 저녁 무렵을 그려내고 있다. 짙어 오는 어둠의 공포, 백치인 누나의 울음소리, 악다구니를 쓰는 무식한 엄마, 아버지의 시체에서 와락 달려드는 연민이 그려진다.
윤흥길의 <장마>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마지막 부분만이 실려 있다. 그 일부를 뜯어 읽는 것보다 원문을 통으로 읽는 게 좋다는 생각에 세 시간동안 낭독했다. 교과서만 다룰 때보다 집중도나 반응이 훨씬 좋았다. 복잡하고 분석적으로 가르치지 말고 ‘통’으로 감상하게 하는 소설 수업 방식에 대한 믿음을 확인받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는 월남한 의사 한영덕의 삶을 통해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극우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남한 사회가 한 양심적인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렸나를 그리고 있다.
⑨ <국가란 무엇 하는 존재인가?> • 조마이 섬과 갈밭새 영감의 고통 ;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 •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 채만식, <논 이야기> • 인격권 주장 - 벌금 2만원 ; 이문구, <여요주서> |
김선일 씨의 죽음이나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죽음을 보면서, 그리고 한동안 시끄러웠던 한반도 대운하를 보면서 대체 ‘국가가 대체 뭣하는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국어 수업을 통해 이런 주제를 어떻게 이야기할까를 고민하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의 <모래톱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해방이후 지역 유력자들이 제맘대로 주무른 조마이 섬과 거기에 저항하는 갈밭새 영감의 불행을 통해 이 질문은 올곧게 형상화된다.
채만식의 <논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동학란으로 관가에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고, 또 자신의 노름과 방탕한 생활로 땅을 잃고는 해방되면 땅을 찾을 생각에 들떠있던 한생원에게 다시 국가가 그 토지를 가진다 하니 그 모자라는 한생원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일 없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라고 하는 한생원의 몽매한 발언 속에서 역설적으로 국가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만날 수 있다.
<문학시간에 소설 읽기 2>에 실린 이문구의 <여요주서>는 1970년대의 풍경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어수룩한 촌사람 신용모가 꿩 파는 아이를 돕다 야생밀렵 단속에 걸리고, 폭행에 허위자백을 하고, 결국 죄를 뒤집어쓰려다 정작 판사 앞에서 ‘나도 인격이 있다’며 대드는 대목에서, “제발 사람 대접 좀 해달라”는 무지랭이 민초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수업에서 아이들은 이문구 소설 특유의 쫄깃쫄깃한 사투리가 낯설고, 구어체 장문을 잘 소화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⑩ <민중들의 삶의 여러 형상> • 복덕방 영감들의 퇴락한 삶, 못난 신세대 ; 이태준, <복덕방> • 윤리/도덕보다 깊고 뭉클한 자연의 삶 ; 오영수, <갯마을> • 세 남녀의 아름다운 동행 ; 황석영, <삼포가는 길> |
이태준의 <복덕방>은 신문물을 접한 이기적인 ‘하이칼라’들에게 밀려난 구한말 세대의 이야기다. 이태준 소설의 정확하고 절제된 묘사는 소설 문장의 한 전범이라 할 만하다. 오세영의 만화 <복덕방>과 함께 보는 것도 좋다.
오영수의 <갯마을>은 갯가에 터를 붙이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다. 두 남편을 각각 바다와 강제 징용에 잃고, 산골의 삶을 견디지 못해 다시 갯가로 돌아온 해순을 마을 사람들은 잘 품어준다. 윤리나 도덕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과 그 어울림이 잘 드러난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바람끼가 있지만, 정이 깊은 노동자, 겉은 거칠지만 속은 비단 같은 창녀, 고향을 찾아가는 출옥수, 이 셋이 동행하면서 얽혀가는 여로가 낭만적이고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고향 상실의 아픔까지. 역시 교과서에 수록된 일부보다 원문을 다 읽고 감상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6. 나가는 말
내가 서두에서 주창한 소설 교육의 원칙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많을 듯싶다. 교사의 역할을 너무 축소시키는 것이 아닌가, 혹은 너무 대충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식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좋은 소설은 굳이 교사가 뜯어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의 삶과 만나 충분히 흡수되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목록은 순전히 내 개인의 취향과 독서 체험이 반영돼 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목록보다 훨씬 좋은 제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특별히, 우리 전국국어교사모임이 펴낸 <문학시간에 소설읽기>의 덕을 많이 봤는데, 우리 모임의 역량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소설 교육에 관한 내 체험을 얼기설기 펼쳐봤는데, 이렇게 복잡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우리 모임 누리집이나 회지를 통해 각자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수업했을 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소설 작품들의 목록들이 많이 나누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개별 작품을 가르치는 미시적인 방법론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새삼스럽게 강조하지만, 스무 살 이전까지 읽은 소설은 평생 간다. 그러므로 소설은 힘이 세다. 아이들에게 좋은 소설을, 있는 힘껏, 최대한 많이 읽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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