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가보아야 할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45곳
01.강 화-시월애 촬영지, 갈메기와 함께 떠나는 석모도
처음 강화에 오시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코스입니다.
역사관에서 강화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얻으신 후에 관광하시기를 권합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전적지로서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피크닉하기 좋은 휴식공간이 있으며, 초지진에서는 운요호사건 당시 포탄 맞은 소나무와 대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설이 있는 전등사에서는 보물인 대웅전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동막해변 옆에 위치한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이 여러분들을 포근하게 안아줄 것입니다.
면적은 42.841㎢, 해안선길이 41.8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898세대에 2,4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강화도 외포 항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말엽까지는 석모도·송가도(松家島)·어류정도 사이에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선박이 왕래하였는데, 주로 예성강(禮成江)과 한강을 드나드는 화물을 수급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에 속하였다가 1910년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남동쪽 끝의 해명산(海明山:327m)과 중앙의 상봉산(316m)으로 인해 중부와 남부는 산지를 이루고, 북부와 서부의 간척지는 평지를 이룬다. 평지에서는 서해안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그 유역의 토지가 기름져 경작지 또는 취락으로 이용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콩·감자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는 병어·새우류·숭어·꽃게 등이 잡힌다.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굴양식이 활발하며, 삼량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한다. 지역 특산물로 섬쌀·순무·밴댕이젓갈·새우젓·천일염 등이 유명하다.
섬 중앙부의 낙가산(洛伽山) 기슭에 자리 잡은 보문사(普門寺)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27호인 보문사 석실(普門寺石室)과 제29호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普門寺磨崖石佛坐像), 기념물 제17호인 보문사 향나무, 민속자료 제1호인 보문사 맷돌이 있다. 섬에서 유일한 민머루해수욕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나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된다. 외포 항에서 석모도 석포항 사이를 운항하는 배가 평일에는 30분 간격으로 다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수시로 다닌다.
02.제 천-내륙의 바다 청풍명월 청풍호반 (청풍문화재단지)
정부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1978년 6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10월준 공되기까지 수몰지역내의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 평의 부지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1985년 12월 23일 개장하였습니다.
청소년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지금은 8만 5천 평의 규모로 확대 개발되어 우리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보관되어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 문화재는 직접 생활하거나 사용하던 것으로써 타 지역과 차별화되고 있으며 계속하여 놀거니, 볼거리, 먹거리장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청풍호반은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생성된 호수로 뱃길 130리중 볼거리가 가장 많고 풍경이 뛰어난 곳으로 내륙의 바다라고 합니다.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를 정점으로 해서 주위로 봉황이 호수 위를 나르는 형상의 비봉산, 어머니 품속과 같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금수산을 뒷배경으로 한 청풍호반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0. 4. 15에 개장된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 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현재 1개타워에 3종의 시설을 설치하는 번지점프장(번지점프 50m, 자이언트스윙 36m, 번지라이트 36m)및 수상레져시설 등이 완공되면 주위의 국민연금청풍리조트 호텔 및 E.S콘도미니엄의 종합휴양시설을 이용한 체류형 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어 그야말로 청풍호반은 보고, 즐기며, 체험하는 종합적인 국제적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것입니다.
03.신 안-때묻지 않은 자연 흑산도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논농사는 전무한 실정이고 수산업과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흑산도 예리항은 동지나해와 서남해 인근 어장의 전진기지로서 중국 어선들이 많이 입출항하고 있고 대규모 관광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최서 남단 가거도(소흑산도)는 어업전진기지로 개발되고 있다.
대흑산도를 중심으로 한 인근의 영산도, 다물도, 대둔도, 홍도 등은 천혜의 관광보고로 섬에 특유의 문화유적이 많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흑산도에는 해안을 따라 섬 전역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연장 24km의 일주도로가 닦여져 있어 이 길을 따라가면 흑산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을 거의 다 볼 수 있으며, 섬 여행의 제 맛인 해상관광을 하려면 예리항을 출발해 열목동굴→ 홍어마을→범마을→칠성동굴→돌고래바위→스님바위→촛대바위→남근석→거북이바위 등을 돌아보면 되는데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흑산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옛날에는 많은 인물들이 유배생활을 하던 섬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이자 조선후기 문신인 정약전 선생이 유배생활 15년 동안 근해에 있는 물고기와 해산물 등 155종을 채집하여 명칭, 형태, 분포, 실태 등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남겼으며, 학자이며 의병장이기도 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기봉강산 홍무일월"이라는 친필은 흑산면 천촌리에 있는 손바닥 바위에 새겨져 있다. 지장암 앞에는 후일 그의 문하생들이 면암 최익현 유헌비를 세워 선생의 고매한 애국정신과 후학양성을 위한 뜻을 후손에게 전달코자 하였다. 그리고, 한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던 초령목(招靈木)은 가지를 꺾어 불전에 놓으면 귀신을 부른다는 나무인데 주위에는 상록수림과 성황당이 있으며,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진리 지석묘 군락지, 삼층석탑 및 석등과 사촌서당 같은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대흑산도 인근 도서로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된 홍도, 영산팔경과 석주대문 바위의 절경을 품은 영산도, 촛대바위와 현대화 시범어촌마을의 다물도, 연중 바다낚시의 명소로 이름난 상. 중. 하태도, 그리고, 바다낚시와 중국 땅의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서해의 최서남단 섬인 가거도(소흑산도)가 있다.
04.담 양-대나무골 테마공원 죽녹원
담양군에서 조성한 담양읍 향교리의 죽녹원이 죽림욕장으로 인기다.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대숲이 죽녹원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오르며 굳어 있던 몸을 풀고 나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 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 순간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나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이 보이고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신선하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로차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죽림욕을 즐기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대나무를 올려다보자.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매력 또 한 가지고 있는 대나무와 댓잎이 풍기는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05.태 안-그 이름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꽃지 해안 공원
안면읍 승언리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승언리 4구 꽃지 해변이 위치한 이 해수욕장은 해안선의 길이가 삼봉해수욕장 다음 가는 약 5km에 달한다. 안면도 해변의 모래는 전부 유리 원료인 규사인데 이곳 꽃지해수욕장 역시 규사로 되어있어 바다와 산이 온통 광물자원이다.
간만의 차가 심하나 완만한 경사 때문에 수영하기에 안전하고 물이 맑고 수온이 알맞아 늦은 여름까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방포 포구가 있어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으며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는 이 해수욕장의 수문장인 듯 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꽃지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서있고, 수려한 쌍바위의 자태를 배경으로 붉은 태양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빚어내는 황홀한 저녁놀 풍경은 서해안 최고의 낙조임에 틀림이 없다.
06.남 해-가천 다랭이 마을
우리 마을은 선조들이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아 곧추 석축을 쌓고 계단식 다랭이 논을 만들어 토양의 소중함과 고단한 조상들의 삶을 애환을 느낄 수 있으며 다랭이논과 바다. 산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찾는 분들 모두 탄성을 자아내는 마을이다.
농촌전통테마마을은.... 정겨운 농가에 머물며 옛 조상님의 슬기와 지혜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곳 지친 현실을 떠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도시민과 농업인이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오랜 세월을 이어온 전통과 자연이 빚어내는 멋이 살아있습니다. 대를 이어 온 고향의 맛이 기다립니다. 넉넉하고 포근한 대지와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며 마음으로 느끼는 관광. 체험. 놀이가 있습니다.
☞ 관광 포인트
가족들과 연인들, 뜻이 맞는 사람끼리 신나는 여행을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다랭이 마을이 가족. 단체 손님을 항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원한 망망대해를 보면서 농사체험도 할 수 있고 조용한 해안을 산책하며 피로를 씻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아직 인터넷도 안 되고 불 때는 아궁이도 있고 자연과 주어진 여건에서 느긋하게 삶을 즐기며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고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터전을 그대로 간직하며 비탈진 척박한 땅에 옹기종기 모여 높은 곳에 있는 집은 높은 곳에 있는 대로 낮은 곳에 있는 집은 낮은 곳에 있는 대로 푸른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곳 우리의 일상처럼 바쁘게 스쳐 가지마시고 하룻밤 묵으면서 다랭이마을을 느껴 보세요?
07.부 안-기암괴석의 채석강
채석강은 내소사와 함께 부안을 대표하는 명승지이다.
채석강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시성 이태백이 뱃놀이를 하며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물에 빠져 숨졌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채석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 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7천만 년 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 만권의 책을 쌓은 듯 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는 관광지뿐만 아니라 퇴적층의 구조를 살펴 볼 수 있는 산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하루 두 차례의 썰물 때에는 퇴적암층에 붙어 있는 바다생물들과 해식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변산반도의 낙조와 노을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현재 채석강은 전라북도기념물 제28호로(면적:12만 7372㎡)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08.군 산-신선이 노닐던 섬 선유도
비가 오는 날이면 망주봉에서 7개의 물줄기를 가진 폭포가 생긴다고 한다.
최근 망주봉 등산로가 바뀌었다. 예전엔 명사십리 쪽에 로프가 매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반대편으로 길을 냈다. 위험한 앞산쪽 등산로는 폐쇄했다.
새로 뚫린 등산로를 따라가면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멀리 장자도가 바라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압권이다. 바다와 모래밭, 해변을 거니는 연인의 볼에도 붉은 물이 든다. 망주봉에서 내려다보면 포구 앞의 모래톱인 ‘평사낙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래톱에는 죽은 팽나무 2그루가 마치 비목처럼 꽂혀 있다. 3년 전쯤 고사했다고 하는데 어른 키만 한 작은 나무지만 수령은 200년이 넘는다고 한다. 모래톱에 고깃배들이 밑둥을 기대고 누워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망주봉 가는 길에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다.
모래 섶에는 키 작은 나팔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섬과 섬으로 둘러싸인 까닭에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파도가 마치 조약돌을 던져 생기는 물그림자처럼 여리게 밀려온다.
모래밭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물장난을 치는 젊은이, 연인과 깍지를 끼고 바닷바람을 쐬는 연인, 해수욕장 끝머리에서 조개를 찾는 아낙네…. 해변의 풍광은 언제나 평화롭다.
명사십리란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십리(4㎞)는 되지 않는다. 해수욕장 길이는 1.5㎞. 모래해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올해 바지선에 모래를 실어다 부려놓아 해변에 자그마한 언덕이 생겼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지만 이채롭다.
무녀도 가는 길에 있는 선유1구 해수욕장은 ‘넙돌' 해변이다.
보길도의 예송리처럼 검은돌 해변이다. 완도의 구계등처럼 몽돌해변이 아니라 넓적한 넙돌이 인상적이다. 명사십리보다 한적하고 호젓하다. 돌밭에서 푸른색 돌멩이를 찾을 수도 있다. 깨진 유리병이 파도에 닳고 닳아서 조약돌이 됐다.
장자도 쪽은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장자교는 1986년 12월31일 개통됐다. 차는 다닐 수 없고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다리.
장자도는 예전엔 멸치포구로 유명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포구에 젓갈 통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지금은 예전 같은 멸치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동서남해 할 것 없이 바다는 예전 같지 않다. 바다 가뭄은 뭍의 가뭄보다 심하다. 그래도 물은 맑다.
무녀도로 이어지는 선유교 역시 86년 말 장자교와 함께 개통됐다.
무녀도에는 논밭이 많다. 섬에는 18만평에 달하는 염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에서만 소금을 만들고 있다. 예전의 염전은 이제 습지로 변해가고 있다.
선유도는 앞으로 연륙교로 뭍과 연결될 것 같다. 선유도 바로 앞 신시도까지 새만금 둑방이 이어진 뒤 다시 신시도와 무녀도가 다리로 이어지면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가 모두 이어지게 된다.
‘선유8경'의 섬 선유도. 신선이 노니는 섬이란 뜻을 지닌 아름다운 섬. 날씨가 더워질수록 선유도의 그림 같은 풍광이 그리워진다.
선유도엔 버스나 택시도 없다. 대신 자전거가 교통수단이다. 걸어서 섬을 돌아보기에는 너무 넓다.
무녀도와 선유도, 장자도가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 자전거가 아니면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힘들다. 포구 어귀엔 기어가 21단까지 달린 MTB, 2인용 자전거, 어린이용 자전거 등 자전거 대여점이 3개나 있다.
09.완 도-사색의 섬 보길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자. 하나의 커다란 공원인 보길도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이 청별항이다. 보길도의 모든 여행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예송리와 백도리는 택시를 이용하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편리하다, 택시를 이용 예송리해변과 상록수림을 둘러보자. 해변은 태초에 생성된 검은 바위가 억만 겁의 세월 속에 파도에 씻기고 닳고 닳아 푸르고 둥근 청환석으로 생명을 부여받고 다시 태어나 일 년 365일 파도소리와 함께 사랑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뒤편의 상록수림은 마을의 방풍림으로 수령 1백년 이상의 동백과 소나무, 후박나무등 30여종의 목· 초본 류가 자라고 있다.
대기시켜 놓은 택시를 이용 백도리의 글 쓴 바위로 달려가자.
우암 송시열이 제주 귀향길에 올라 이곳을 지나다 우국충정 어린 마음을 글로 남겼다는 시조 한수가 해안가 암벽에 음각되어 있다. 내용을 조금 살펴보면 『83세 늙은 몸이 귀향을 가는 구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린다...』이때쯤이면 배가 살살 고파온다.
여행의 참다운 맛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아닌가. 청별의 식당에서 싱싱한 회에 매운탕으로 조금은 빠른 점심을 때우고 이제는 자전거나 발품을 팔아 고산윤선도 선생의 유적지를 둘러보자, 선생의 유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선생이 기거했던 낙서제와 학문을 익히며 여러 사람과 교우를 했던 동천석실, 놀이 공간이었던 세연정으로 나눌 수 있다.
낙서제는 복원을 위한 발굴중이어서 접근이 어렵고 부용동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동천석실에 올라보자, 청별에서 10분을 걸으면 세연정이고 다시 15분을 걸으면 부용동이다. 여기에서 산길을 따라 5분여를 오르면 한 평 남짓한 정자가 나온다. 동천석실이다.
부용동과 적자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고산이 글을 읽고 교유하였던 곳이다. 다조에 앉아 숨을 고르고 시심에 젖어보자 그리고 세연정으로 향하자 세연정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고산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조성한 원림이다. 고산은 이곳 세연정에 호광루, 동하각, 낙기란, 칠암헌이란 편액을 걸고 풍류를 즐기며 조선조 시가문학의 백미인 『어부사시사』를 창작하였다.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을 이용 망끝 전망대로 향하자, 우리나라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눈앞으로는 시원한 추자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
너무나 시원하고 아름다운 바다에 취해 누구나 이곳에 서면 모든 감정이 스스로 제어되지 아니한 곳! 이곳이 망끝 전망대다.
천길 단애를 끼고 500여m을 가면 보옥리 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멸젓이 생산되는 곳이다. 사실 추자멸젓도 실은 이곳 보길도 바다에서 생산된다. 마을 앞에 크고 작은 둥글 돌로 이루어진 공룡알해변이 있다. 해안가 1km에 걸쳐 둥글둥글한 돌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 선생이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가 이곳에서 창작되었다.
- 부용동 지역
조선시대 국문학계의 거목인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이곳 부용동 격자봉 자락에 정자를 짓고서 유명한 시가와 저서를 집필하였다.
- 낙서재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등 주로 기거하던 곳이다.
- 동천석실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동천석실이라는 한 칸 집의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변의 석문, 석천, 석폭, 석대도 장관이다.
- 세연정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정자로, 정자의 중앙에 세연지, 동편에 호광루, 남쪽에 낙기란, 서편에는 동하각과 칠암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 판석보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하며,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으로, 한국 정원의 독특한 유적이다. 이것은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 망끝 전망대
보길도의 가장 서쪽인 보옥리 바로 못 미쳐 망월봉 끝자락의 돌출부에 자리한다, 전망대에 서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천길 단애가 펼쳐진다. 끝없이 탁 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서해바다로 붉은 몸을 감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망끝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추자도와 함께 옥매, 가도, 상도 등 다도해의 수많은 섬과 함께하는 일몰은 한편의 서사시다.
10.거 제-남해의 금강산인 해금강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해금강마을 남쪽 약 500m 해상에 위치한다. 두개의 큰 섬으로 연접한 거제해금강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1971년 명승2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름은 갈도(칡섬)로서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 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갈도보다. 남해의 금강산을 뜻하는 해금강으로 널리 불리어지고 있다. 해발 116m 약 0.1㎢ 의 이 섬은 중국의 진시황제의 불로장생초를 구하는 서불이 동남동녀 3천 명과 함께 찾았다는 [서불과차]라는 글씨가 새겨질 정도로 약초가 많다하여 약초섬 이라고도 불렸다. 주위의 경관으로는 썰물 때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십자동굴, 사자바위, 환상적인 일출과 월출로 유명한 일월봉 등이 있다.
11.진 안-한국의 불가사의 마이산 탑사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의 탑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이산 탑군은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 35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만든 탑들은 태산처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 북으로 축조되어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 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12.가 평-가평군 축령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아침고요수목원
아침고요원예수목원은 경기도 가평군 축령산(해발879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립수목원으로 1996년에 한상경 교수(삼육대 원예학과 명예교수)가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예찬한데서 비롯된 ‘아침고요’라는 이름에는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과 동양적 신비감, 그리고 한민족의 고고한 얼을 그대로 담고 있다.
축령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병풍삼아 고즈넉이 안겨있는 아침고요는 최진실, 박신양을 주연으로 한 영화 ‘편지’의 배경장소이기도 했다.
하경정원, 에덴정원, 약속의정원, 석정원, 분재정원, 한국정원 등의 20개의 특색 있는 주제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야생화 전시실’, ‘난전시실’과 같은 실내 전시시설 2곳과 계절별 다양한 전시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산책을 즐기며 아름다운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가 있는 산책로’와 계절별 야생화로 가득한 ‘아침고요산책길’, 정원을 둘러싸고 흐르는 시원한 ‘아침계곡’, 방문객의 소망이 담겨있는 ‘탑골’, 오랜 세월에 걸 맞는 기이한 수형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아침고요의 상징 ‘천년향’ 등의 빼어난 자연경관도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자랑이다.
13.해 남-한반도의 남쪽 끝 땅끝 마을과 땅끝 전망대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14.고 성-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고지의 통일전망대
고성 통일전망대는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의 해발 70미터 고지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발 70m 지점에 위치한 전망대는 금강산이 가깝게는 16km, 멀리는 25km정도 거리로 해금강은 대부분 지역이 한눈에 듭니다.
또 해금강 주변의 섬과 만물상(사자바위), 현종암, 사공암, 부처바위등도 조망할 수가 있습니다. 중앙의 산악 능선을 바라보면 금강산 1만 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 구선봉(낙타봉)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지닌 감호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관음봉 등이 보입니다.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은 맑은 날씨에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망대에서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면 해금강이 불과 5km 떨어져있고 일출봉을 비롯한 금강산의 신선대, 옥녀봉, 구선봉, 접선봉과 바다의 만물상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아래에는 조국분단의 현실을 직접 볼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휴전선 철책이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전망대의 주변에는 1983년 세운 지름 1.25m, 높이 1.87m, 무게 500근 규모의 통일 기원 범종을 비롯하여, 높이 39m, 전등 1천5백 개가 달려 있는 전진십자 철탑, 민족웅비탑, 1985년 세운 마리아상, 통일 미륵불, 351고지 전투전적지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통일 전망대의 관문격인 통일안보공원은 전망대 남쪽으로 10km가 채 못 되는 거리에 국민 안보현장으로 활용하고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세운 곳으로 출입신고소, 주차장, 교육영화상영관, 매점, 식당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한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통일전망대는 조국의 분단현실을 실감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통일 교육장입니다. 1983년 통일의 의지를 다지고 망향과 분단의 설움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는 기념비적 명소로 알려져 있고 98년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후 더욱 더 국내·외 방문객들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15.화 성-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
제부도는 면적이 1.0㎢, 해안선의 길이가 12km인 한가롭고 작은 섬이다. 섬 중앙에 있는 최고봉은 62.5m에 지나지 않으며 섬 전체에 약간의 구릉지가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이다. 서쪽과 북쪽에 농경지가 발달해 있고 육지와 연결되는 동
쪽 해안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굴 양식이 활발하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사빈이 발달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었고 썰물 때에는 간석지를 통하여 동쪽 해안이 육지와 연결된다.
남양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제부도는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므로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 단위의 1일 휴양코스의 여행지로 적당한 곳이다. 특히 제부도는 6시간마다 간조와 만조가 엇갈리면서 바다길이 열리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현상이 하루에 두 차례씩 나타나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썰물 때 4~5m깊이의 바닷물이 빠져 나가 바닷물이 갈라지면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2.3km에 달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길 좌우에 펼쳐진 갯벌 사이의 시멘트 포장길을 건너는 묘미는 제부도 나들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 길 양쪽으로 폭이 500m가 넘는 갯벌이 펼쳐지는데 왼쪽은 진흙 밭이고 오른쪽은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다.
섬으로 들어서면 바로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들어서면 그림과 같은 해안선과 기암괴석, 넓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풀밭을 만나게 되고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광어, 우럭, 꽃게 등의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포구를 만날 수 있다. 섬을 싸고도는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이 마주치는 곳에서 1.4km 좁은 길을 달리면 모랫벌 남서쪽 끝에서 매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매바위는 제부도의 명물로 오랜 기간의 해식작용에 의해 기이한 모양을 한 기암괴석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매바위 주변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어 바지락이나 조개를 잡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섬의 서쪽에 1.6km에 달하는 곧게 펼쳐진 제부리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폭이 좁고 백사장 곳곳에 조개껍질이 깔려 있어서 맨발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수심이 얕고 고른 편이므로 밀물시간에 3시간 정도 바닷가에서 간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원래 이 제부리 해수욕장은 모래가 고운 것이 특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제부도 북쪽에 시화호가 건설되면서 서해 바다의 길이 바뀌어 제부리 해수욕장의 모래가 쓸려나가 지금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시화호 건설로 인해 제부도는 서쪽 해안의
갈대밭이 없어지는 등 많은 환경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제부도 나들이의 즐거움 가운데 또 다른 하나로 물이 빠진 바위틈에서 석화를 캐먹는 즐거움을 빼 놓을 수 없다. 또한 제부도의 갯벌에서는 제철이면 바지락과 굴을 쉽게 볼 수 있는데, 11월 말까지가 바지락 철이고 그 후는 굴이 제철이다. 많은 주민들이 굴양식을 하고 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산지 굴 판매도 하고 있다.
제부도는 조개류가 많을 뿐 아니라 맛 또한 매우 좋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식당에서 조개구이를 팔고 있고 이 바지락을 이용한 칼국수가 잘 알려져 있다. 제부도에서 조개를 잡으려면
호미와 맛소금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맛소금은 조개의 미끼로 사용되는데, 갯벌의 조개 구멍에 맛소금을 조금 뿌리면 조개는 바닷물이 들어 온 것으로 알고 구멍에서 갯벌로 나온다고 한다. 제부도 해안에는 무분별한 조개 채취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곳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제부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제부도의 낙조이다. 제부도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서해 지역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6.구 례-푸근하고 경건함을 주는 큰산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은 태백산맥이 서남으로 갈라지면서 소백산맥을 이루고 추풍령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한려수도로 흘러나가는 중턱에 굽이치며 우뚝 솟은 천하의 웅산으로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으로부터 서쪽의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만도 반야봉,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줄지어 버티고 있어 웅산 중의 웅산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자(1967년), 최대면적의 육상공원(471.75㎢)으로서 우리나라 산악의 대표성과 상징성 그리고 역사성을 고루 갖춰 흔히 민족의 영산으로 불릴 만큼 우리의 정서 속에 깊이 새겨진 자연유산인 지리산(智異山)은 산이 넓은 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두류(頭流), 방장(方丈), 지리(地理또는地利), 불복(不伏), 반역(反逆), 적구산(赤拘山)으로 불려온 산 이름에서 벌써 지리산의 속내와 아픔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산맥이 지리산에서 멈추었다 해서 두류(頭流)로 한다. 라고 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산세가 멀리 넓게 둘러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순 우리말 '둘러' '두루' '두리' 에서 음을 따와 한문으로 쓰다 보니 '두류'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불교적 용어로 대지문수사리보살의 지자와 리자를 따와서 지리산으로 불리다가 '지혜로운 이인이 많은 산' 이라는 뜻으로 변형돼 현재는 지리산으로 쓰인다고도 하며, 일부에서는 지리산이 크고 웅장해 「지루하다」의 남녘 사투리 「지리하다」에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말이라고도 한다.
방장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더불어 중국에서 말하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지리산을 지칭하는 이름인 동시에 불교적인 의미로도 쓰이는 산 이름이다.『삼국사기』는 지리산(地利山)으로 표기 했다가 『삼국유사』는 다시 '지리산(智異山)'을 썼으며, 조선시대에 편찬한 『고려사』는 '지리산(智異山)'으로 고쳐 썼다.
'지리산(地利山)'은 지리산이 문수도량이라 하여 문수사리(文殊師利)의 글자를 따서 부른 이름이며, '불복(不伏)'과 '반역(反逆)'은 태조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고 명산을 찾아 기도할 때 유독 지리산에서만 소지(燒紙)가 오르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유로 태조에 등극한 뒤에 지리산을 불복산, 반역산이라 하고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금강산은 빼어나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되 빼어나지 못하고」라는 서산대사의 비유가 있듯 지리산은 날카롭고 빼어남은 부족하나 웅장하고 두루뭉술한 기운이 돋보인다.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이 대표적이며,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잇는 100리 능선에는 1천 5백 미터가 넘는 고봉이 10개, 1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나 있을 정도로 높고 크다. 평평한 고원지대도 많이 발달해 야생화나 철쭉 등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17.당 진-일출 일몰의 명소 왜목 마을
전국에서 일출, 일몰, 월출 광경까지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특색 있는 관광명소임
-일출, 일몰, 월출을 볼 수 있는 이유는
포구의 독특한 지형구조 때문이며 해변이 남쪽으로 길게 뻗은 충청남도 서해의 땅끝 마을임.
해안이 동쪽을 향해 툭 튀어 나왔으며 바다 너머로 경기도 화성시 까지는 육지가 멀고 수평선이 동해안과 같은 방향이어서 일출, 일몰, 월출을 볼 수 있음.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출, 일몰, 월출 광경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
왜목마을 석문산 79m의 정상에 오르면 장고항 용무치~경기도 화성시 국화도를 사이에 두고 시기별로 위치가 바뀌면서 일출과 월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몰은 당진군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
-왜목마을 일출과 일몰의 장점은
동해의 일출은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서해 왜목마을 일출은 한순간 바다가 짙은 황토 빛으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기둥을 만들면서 소박하면서도 예쁘고 서정적임
일몰은 용광로 같이 활활 타오르던 태양이 서서히 빛을 감추면서 수평선과 하늘을 동시에 바다전체를 검붉게 물들이며 바닷속 깊이 잠겨 버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음
※ 일출,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일수가 어느 지역보다 긴 편임(최소 180일)
18.고 창-봄에는 동백꽃 만발하고, 가을에 단풍이 가장아름다운 선운사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한 가운데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운사는 조계종 24교구의 본사로 검단선사가 창건하고 대참사(참당사)는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천오백년 전의 일이고 현재는 도솔암, 석상암, 동운암과 함께 참당암이 있지만 옛날에는 89암자가 골짜기마다 들어섰던 것으로 전한다.
문화재로는 금동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선운사 대웅전, 참당암 대웅전, 도솔암 마애불 등이 보물이고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이 천연기념물이며 석씨원류 경판,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약사여래불상, 만세루, 백파율사비, 참당암 동종, 선운사 사적기 등이 지방문화재로 백파율사비는 추사가 짓고 쓰고 한 추사 글씨 중에서도 대표작이다. 선운산의 경치를 살펴보면 큰절에서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물줄기가 갈라진 곳에 자연의 집이 있고, 우측으로 더 올라가면 여덟 가지로 소담하게 벌어진 장사송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다.
개울 건너 산 중턱에 우뚝 선 바위가 이 산에 침입하는 마귀를 방어하는 신장역할을 하는 봉두암(일명 투구봉), 그 위 산등성이에 돌아앉은 바위가 역시 도솔천에 들어오는 마귀를 방어하는 사자암이고,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도솔암, 우측으로 층층의 바위계단을 오르면 천길 절벽 위에 도솔천 내원궁 즉 상도솔이 있다. 이곳에서 우측 암벽을 오르면 말 발자국이 파여 있어 이를 진흥왕의 말 발자국으로 전하며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서면 이곳이 만월대이며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놀고 갔다는 선학암이다.
다시 내려와 나한전에서 좌측을 보면 깎아지른 듯 한 암벽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도솔암 마애불이고 더 올라가면 용문굴,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낙조대가 있다. 바로 옆이 천마봉, 도솔천의 비경이 발아래 전개된다.
또한 선운산에는 풍천장어. 작설차. 복분자술 등의 특산물이 있어 풍천장어구이에 복분자술 한잔으로 최고의 별미를 맛볼 수 있다.
19.순 천-갈대와 환상의 낙조 순천만
순천시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호수와 같은 만으로,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으며 크고 작은 섬과 주변의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서해안 등 다른 지역과는 달리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순천시내에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행정구역상 도사동과 해룡면, 별량면, 39.8㎞의 해안선에 둘러싸인 21.6㎢의 갯벌, 5.4㎢의 갈대밭 등 27㎢의 하구 염습지와 갯벌로 구성된 만이다.
순천의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 지점으로부터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 전개되는 갈대군락은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으로 가을 무렵 갈대꽃이 피고 칠면초가 붉은빛을 띠며 흰색의 철새가 날아오르는 광경은 전국에서 가장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순천만은 오염원이 적어 잘 발달한 갯벌과 염습지, 갈대군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질 좋은 수산물이 풍부하며,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하여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란부리백로 등 국제적 희귀조류 11종과 한국조류 200여종이 월동 및 서식하는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종 조류가 많은 지역으로, 자연관찰과 탐조를 위한 자연학습장과 국제적 학술 연구의 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삼 척-5억년 어둠 밝힌 지하궁전 환선굴
매표소를 지나 통방아, 굴피집, 너와집, 신선교, 선녀폭포(이끼폭포), 엄나무, 철계단 398개를 오르면 거대하고 시원한 동굴입구에 다다른다. 동굴 주변에는 448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동굴입구에 들어서면 신천지가 펼쳐지며 만물상 우측 인공차단벽 너머에는 동굴 생물의 서식 환경이 가장 양호하고 여러 종류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미인상, 거북이, 항아리등 여러 모양의 종류석, 석순, 석주가 웅장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
제1폭포(Y계곡), 삼라만상, 오련 폭포, 흑백유석, 꿈의 궁전(종류관 생성과정 관람), 희망봉, 도깨비 방망이, 동물의 농장, 대머리 석순, 영지버섯, 백거북이, 소망폭포, 24계탕, 사랑의 맹세, 생명의 샘, 악마의 발톱, 지옥교, 오백나한, 참회의 다리, 유석계곡, 천당계곡, 휴식소, 옥좌대, 통일의 광장, 마리아상, 만마지기, 백두석순, 제2폭포, 은하계곡, 충식천정, 용식구와 용식공, 백색유석, 환선스님, 만리장성을 거쳐 입구로 되돌아 나오게 된다. 거대한 지하계곡(길이 1.6㎞, 넓이 20∼100m, 높이 20∼30m)을 관람하고 나면 자연의 신비와 오묘함, 그리고 환상적임을 체험할 수 있다.
21.보 령-신비의 바닷길 무창포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된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 1.5km 수심1~2m, 백사장 50m, 수온 섭씨 22도, 경사도 4도의 해수욕장으로 주변에는 송림이 울창하여 해수욕과 산림욕을 함께 즐길 수가 있다.
매월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을 전후하여 2~3회 해변에서부터 석대도 까지1.5km의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 바닷길을 따라 게, 조개 등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며, 기암괴석, 해송의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운치를 더하는 무창포 해수욕장은 주변의 바다낚시와 풍부한 지하수 등으로 전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 현상은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바로 앞, 무인 섬인 석대도 까지 바닷길이 열립니다.
바다가 갈라져 생기는 무창포 해수욕장과 석대도간의 1.5km바닷길은 그 신비한 장관과 게, 조개 등을 잡을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22.속 초-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 사계절 절경의 최고 명산 설악산 국립공원
☞설악의 8경
-용비승천(龍飛昇天)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며 최장인 대승폭포를 비롯하여 쌍폭, 소승폭포,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육담폭포, 오련 폭포, 천당폭, 독주폭포등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로 물줄기가 낙하하고 무지개가 발생하니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이 황홀하며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승 하는 듯 한 선경이 장관이다.
-설악무해(雪嶽霧海)
하절기이면 산봉우리마다 구름에 덮이고 안개에 쌓여 구름위에 솟아있는 대청봉의 풍경은 참으로 장관이며 또한 안개 속에 잠겨있는 설악의 골짝은 무해로 변하니 산봉우리에 앉으면 구름의 흐름이 선경을 방불케 해 그 조화는 8경중 제일이다.
-칠색유홍(七色有紅)
겨울철에 쉬지 않고 낙하하는 폭포수에 햇살이 반사되어 비수에는 영롱한 무지개가 발생하고 또한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홍해황엽(紅海黃葉)
만산에 단풍이 들고 나뭇가지마다 누런 잎에 쌓여 골짜기마다 금수강산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선경이다.
-춘만척촉(春滿擲蜀)
대청봉 남측에 발달한 진달래와 철쭉군락을 비롯하여 백화가 온 산을 덮어서 4월에서 7월이면 꽃들이 만발하여 가득하니 상상 할 수 없는 진경이며 비길 때 없는 풍경이고 행인의 눈을 어리게 한다.
-월야선봉(月夜仙峰)
가을 밤하늘이 밝을 때 둥근달이 중천에 뜨면 기암괴석의 모습이 난무하는 선녀같이 보이는 절경은 설악팔경에 빼놓을 수 없는 야경이다.
-만산향훈(滿山香薰)
춘삼월부터 산천초목이 소생하면 그윽한 향기가 산에 충만하며 바람이 불면 향긋한 냄새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며 코를 찌르는데 특히 대청봉, 화채봉, 오색계곡에 발생하는 눈 향나무 숲을 지나면 눈으로 보는 풍경도 좋고 여흥을 돋구어 준다.
-개화설경(開花雪景)
겨울철이 오면 온산이 흰색으로 물드는데 나무나 기암절벽에 눈이 쌓이면 온갖 형태의 눈꽃이 피어 절경을 이룬다.
23.합 천-법보종찰 팔만대장경 해인사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 장경판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 판에 이르고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8만4천 법문을 수록하였다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현종 때의 초조대장경 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대장경이므로 재조대장경판이라고 하며,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 대장경판이라 불리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 장에 보관되어 있다.
대장경판의 수는 일제 때 조사한 81258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대장경 판이 아닌 조선조 때 판각된 것도 포함된 통계이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cm내외, 가로70cm 내외이고 두께는 2.6cm 내지 4cm이다. 무게는 3kg내지 4kg이다. 대장경의 판각을 위해서는 국가에서 대장도감이란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총괄하고 실제적인 판각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이러한 것은 경판의 간기와 경판에 새겨져 있는 각수를 조사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대장경판의 권말에는 을묘해 고려국가대장도감봉칙조조등으로 간기가 기록되어 있고 각 경판의 권두제나 권미제 아래의 광곽 밖에 각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대장경판은 간행기록을 조사해 보면 고려 고종 24년(1237)부터 35년 (1248년)까지 12년 동안 새겼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 16년이 걸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준비기간을 합산한 것이며, 고려대장경판각 사업은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린 이듬해인 고종 20년(1233)경에는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새긴 대장경판은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의 특징은 무엇보다 이 사업을 주관했던 당시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비교하여 오류를 바로 잡은 데에 있다. 이때 수정한 내용은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은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신원사를 거쳐 태조7년 (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보관되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뿐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장경 판이다. 또한 이 대장경은 대장경 간행 역사에 있어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1614년에 이 대장경을 바탕으로 하여 대장경 <종존판>을 새기다가 중도에서 포기한 일이 있고 그 후 신연활자로 대일본교정숙쇄판대장경:1880~1885,대일본속장경:1902~1912, 대정신수대장경:1924~1934의 바탕이 되었으며 중국에서 불교대장경:1979와 현재 간행하고 있는 불광대장경:1983~현재의 바탕을 삼고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장경판은 수천만 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정밀한 서각 예술품으로 우리 민족이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24.단 양-기암호수의 진경 단양팔경
단양팔경은 예부터 중국의 소상팔경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상류에 도담삼봉, 석문이 있으며 충주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구담봉 옥순봉이 있어 선상관광의 백미를 맛볼 수가 있으며 선암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운선구곡에 있는 사인암을 단경팔경이라 부른다.
단양 팔경은 조선왕조 개국공신 정도전을 비롯하여 퇴계 이황 선생, 토정 이지함 선생 등 수많은 학자와 진경산수화를 추구한 단원 김홍도, 정선 등 많은 화가들이 아름다움을 한 폭에 담았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명승고적들이 산재해 있다. 이퇴계 선생이 군수 재직 시, 극찬을 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소백산과 금수산, 도락산의 계곡마다 기암괴석이 웅장하고, 맑은 물이 수많은 신비경을 이루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단양 팔경은 1코스 - 도담삼봉, 석문, 2코스 - 구담봉, 옥순봉, 3코스 -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근에는 충주호의 유람선과 단양 제 2팔경, 대명콘도개장 등을 중심으로 하여 종합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천동관광지 소백산계곡 수를 이용한 물놀이장이 조성되어 여름 피서 철 관광객이 많으며, 단양시내 고수대교 건너편에 단양 종합관광안내소가 위치해 있어 관광객의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25.정 선-화암동굴과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
-화암동굴
국내 수많은 동굴 대부분이 관광객이 드나들기 편리하게만 만들어 놓은 것에 비해, 화암동굴은 “금과 대자연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환상적으로 꾸며놓은 국내 유일의 테마형 동굴이다. 2,800㎡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석 광장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석회석 광장에는 동양 최대 규모인 황종유벽, 마리아상, 부처상, 장군석, 석화 등 크고 작은 종유석이 있다.
화암동굴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광지가 아니라 종유석이 자라고 있는 동굴생태 관찰, 금채취과정 및 제련과정 등 동굴체험의 교육현장으로 각광받고 있어 유치원생부터 초, 중,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화암동굴 입구까지는 국내 최초로 설치한 모노레일을 타고 가실 수 있으며, 은은히 흘러나오는 정선 아리랑을 들으면서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화암동굴에는 역사의장, 금맥 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대자연의 신비 등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보지만,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하면서 교육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
아우라지를 거쳐 구절리까지 달리던 철마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기적이 끊긴 철길에는 새로운 레포츠로 각광을 받는 레일바이크가 정선아리랑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절경을 지나다닙니다.
이름도 생소한 레일바이크는 페달을 밟아 철로 위를 달리는 네 바퀴 자전거로 유럽의 산악관광지에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철도(Rail)와 자전거의 약칭(bike)을 합친 말입니다.
코레일투어서비스가 운영하는 레일바이크는 2인용(무게110kg)과 4인용(138kg)이 있으며, 커다란 몸체와는 달리 부드럽게 움직이기에 4인용 레일바이크를 한사람이 페달을 밟아도 잘 달립니다.
시속 10~30km까지 낼 수 있고, 바퀴가 4개라서 넘어질 염려 없이 안전합니다. 구절리역에서 다정한 사람과 함께 레일바이크를 타고 송천의 맑은 물, 푸르고 싱그러운 산과 숲을 지나, 산위에는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면 행복한 그 순간, 시간이 멈춰지기를 바라는 분도 있을 겁니다.
노추산의 비경과 오장폭포를 둘러본 다음 구절리역안 여치의 꿈 카페에서 다정한 삶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신 후, 레일바이크를 타고 아름다운 송천계곡을 지나가면 철길과 강의 양쪽에 늘어선 기암절벽과 정겨운 농촌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레일바이크의 출발지는 구절리역이며 종착지인 아우라지역까지는 7.2km입니다. 레일바이크는 시속 10-3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주변경치를 여유 있게 즐기려면 시속 15km정도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26.경 주-신라천년의 숨결 경주남산 문화답사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앙된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아득한 옛날부터 남산 바위 속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땅위의 선신(善神) 들이 머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지켜준다고 믿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왔다. 이러한 신앙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비파바위(琵琶巖)의 부처님이 망덕사(望德寺)의 낙성재(落成齋)에 누추한 옷차림으로 참석하였는데, 왕이 그 누추함을 업신여기자, 왕을 꾸짖고는 진신석가(眞身釋迦)의 모습으로 바뀌어 홀연히 남산 바위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누추한 승복을 입고 광주리에 물고기를 담아 들고 나타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경흥국사(景興國師)의 제자가 나무라자, 말을 타며 호사스럽게 지내는 경흥국사를 크게 꾸짖고는 다시 남산 속으로 숨어버린 문수보살의 이야기도 있으며, 충담(忠談)스님은 삼화령(三花嶺)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다공양(茶供養)을 올린 후 경덕왕(景德王)에게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올려 군신(君臣)과 백성이 서로의 본분을 다할 때 나라가 태평하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화들은 곧 남산과 남산 바위 속에는 부처와 보살이 머물면서 권세 있는 자나, 존경받는 지식인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는 산에서 내려와 호되게 꾸짖고 가르침을 주고는 다시 산 속, 바위 속에 숨었다가, 백성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려와 보살펴 준다고 신앙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또한 예술로 승화되고 표현되어, 골마다 절이 세워지고, 바위마다 불상(佛像)이 조성되며, 수많은 탑이 세워져 불국토(佛國土)를 이루었다.
남산에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 초에 조성된 동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佛谷龕室如來坐像)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듯 한 모습으로 고즈넉한 주변 분위기와 어울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한국 최고(最古)의 감실불(龕室佛)이며, 7세기 중엽의 장창곡 석조미륵삼존불의상(石造彌勒三尊佛倚像)과 선방곡 석조여래삼존불(石造如來三尊佛)은 티 없이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잘 알려져 있다.
7세기 후반에 불세계(佛世界)를 만다라적(曼多羅的)인 기법으로 새겨 놓은 탑곡 마애조상군(磨崖造像群)은 사방의 불보살과 비천(飛天)들이 시시각각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나타나는 웃는 모습들은 가히 환상적인 불 세계를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삼국 통일 후 남산은 불보살이 머무는 신령스런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더욱 많은 탑과 불상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에 사방불(四方佛)을 더하여 조성한 칠불암(七佛庵) 마애조상군은 심산궁곡 바위 절벽을 부처님들이 머무는 하늘나라로 보고 험준한 산등성이에 절을 세운 용기와 큰 바위를 쪼아 대불(大佛)들을 조성하여 화엄세계(華嚴世界)를 구현해 낸 신앙의 열정에는 그저 감격 할 뿐이다.
조선 초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집필한 용장계곡 용장사지(茸長寺址)의 석조삼륜대좌불(石造三輪臺坐佛)은 자연석 바위를 하대석으로 삼고 둥글둥글한 대좌를 삼단으로 놓아 그 위 연꽃 방석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바로 수미산(須彌山) 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보살을 모신 것이 아니겠는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불상은 유가종(瑜伽宗)의 대덕(大德)이신 대현(大賢)스님께서 염불하면서 돌면 이 미륵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남산 전체가 마애불의 보고(寶庫)이지만, 특히 냉골(삼릉계곡)은 마애불이 많다. 입가에 방글방글 미소를 머금은 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듯 한 마애관음보살입상(磨崖觀音菩薩立像), 다듬지 않은 넓은 바위 면에 사바세계(裟婆世界)에서 설법하고 있는 석가삼존불과, 극락으로 왕생(往生)하는 중생을 마중 나오시는 신비스런 모습의 내영아미타여래(來迎阿彌陀如來)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새긴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 얼굴은 원만 상으로 조각하고 몸은 억센 선으로, 연화대좌는 부드럽고 희미한 선으로 처리하여, 기도하는 중생을 위하여 바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한 높이 6m의 상선암 마애대좌불(磨崖大坐佛) 등 남산 전체가 불보살의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하다.
부처님 나라를 그리는 간절한 신앙은 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용장계곡의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200여m가 넘는 높은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어 삼층석탑을 쌓았으니 하층기단인 바위산은 바로 8만 유순(由旬)이나 되는 수미산이 되는 것이오. 탑 위 푸른 하늘이 수미산정(須彌山頂)의 부처님 세계가 되니, 서라벌 벌판은 부처님이 굽어보는 복된 땅이 되는 것이다. 위산을 기단으로 삼은 탑은 최근 복원한 잠늠골 삼층석탑과 늠비봉 오층석탑에서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초기 왕궁 지였던 창림사지(昌林寺址) 삼층석탑과 남산리 사지(寺址) 서삼층석탑에 이르러서는 상층기단부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의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팔부중상은 사천왕(四天王)의 장수(將帥)이니 탑의 기단부가 수미산이 되는 것이다.
남산에 있는 불교유적의 가치는 자연과의 조화와 다양성에 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불상을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높은 봉이 있으면 탑을 세우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성하였다. 비록 바위 속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어도 바위가 불상을 새기기에 적정하지 않으면 불상을 새기지 않고 예배하였으며, 절을 세워도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를 보고, 정(釘)을 들고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다. 남산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산 전체가 보물이니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남산을 아니 보고 어찌 경주를 보았다 할 것이며, 몇 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고 할 것인가?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27.영 주-한국의 전통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한 사찰, 국보 보물로 가득한 부석사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화엄종찰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4점, 도 유형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입니다.
사찰 앞으로 펼쳐진 자연경관을 품안에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부처님의 온화한 자비심처럼 모든 이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합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으뜸 사찰입니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華嚴敎學)을 펴기 위해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절은 신라 화엄종의 도량道場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불(主佛)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安養門)을 세웠으니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되는 것입니다. 부석사라 부르게 됨은 무량수전(無量壽殿)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1916년 해체 보수 시 발견된 묵서 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3년(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제220호), 삼층석탑(三層石塔)(보물 제249호),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제255호)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조사당(祖師堂)(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국보 제46호), 고려 각판(高麗刻板)(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圓融 國師碑)(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삼층석탑(三層石塔)(도유형문화재 제130호) 등이 있습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遺物館展示館)에 보관되어 있다.
28.청 송-백두대간의 등줄이며, 빼어난 경관 내륙의 금강산 주왕산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일대에 솟아있는 높이 720m의 주왕산!
주왕산(周王山)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하였습니다.
주왕산은 신라 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주왕산의 옛 이름) 까지 쫓기어 왔습니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 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이곳에서 신라장군 (마장군 형제들) 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주왕산의 특징은 산 이름을 주왕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왕산은 주왕과 관련된 전설의 산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중에 하나입니다.
주왕산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천년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사찰과 아름다운 계곡, 폭포와 굴이 있으며, 주왕산(720m), 가메봉(882m) 등의 산봉우리가 있습니다. 또한 공원 내에 달기약수터와 아름다운 주산저수지(主山地)가 있습니다.
주왕산은 대전사 뒤편에 솟아있는 기암(旗岩)을 비롯하여 이곳 주방천 좌우로 도열해 있는 병풍바위, 급수 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제1,2,3폭포가 한데 어울러져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주왕산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절골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도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에 수백 년 됨직한 왕버들이 물속에 자라고 있는 주산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답니다.
또한 월외계곡에는 하늘에서 물기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기폭포가 있으며 주왕산 계곡마다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세계적 희귀수목인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둥근 잎 꿩의 비름, 솔나리, 노랑무늬붓꽃 등 식물자원 888종과 수달, 너구리 등 동물자원 902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29.옹 진-환상의 모래섬 사승봉도
승봉도는 아늑한 옛날에 신 씨와 황 씨가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으로서 며칠 동안 굶주린 시장기를 달래기 위하여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경관도 좋고 산새도 괜찮아 살 수 있는 곳이라 판단되어 이곳에 정착하였는데, 당시 신 씨와 황 씨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신황도라 불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곳의 지형이 마치 봉황새의 머리모양과 같다하여 승봉도라 개칭하여 부르고 있다.
-사승봉도
승봉도에서는 '사도'라고 부른다. 개인이 소유한 섬으로서 관리인만 살고 있는 무인도이다.
이곳에는 길이 4km, 폭 2km의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언덕 위에는 해송, 참나무, 오리나무, 칡 등이 우거져 있다. 깨끗하고 고운 모래로 다져진 백사장은 야영하기에 좋으며 갯바위에서의 바다낚시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피서 철에는 승봉도 선착장에서 부정기적으로 배가 다니지만, 비수기에는 섬에 직접 연락해서 배를 불러야 한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변이 조용하고 깨끗하며, 저녁이면 바다 끝으로 떨어지는 석양이 특히 아름답다.
바다의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아 언제나 해수욕을 즐길 수 있으며, 바닷물이 빠지면 골뱅이, 소라, 낙지, 게 등의 해산물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 경치가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어서 여러 편의 영화와 TV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다.
30.서 산-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 서산 천수만
천수만은 매년 300여종 50여만 마리(하루 최대 개체수)의 철새들이 찾아오는 세계 최대의 철새 도래지입니다.
들판을 가득 메운 기러기의 비상과 50여 마리의 노랑부리저어새의 우아한 자태, 30여만 마리의 가창오리의 아름다운 군무, 고니, 청동 오리, 황새는 여러분들을 새들의 세상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행, 위대한 비상의 천수만에서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드라마를 여러분들의 꿈도 하늘로 높이 날아오릅니다.
31.무 안-문화와 연꽃대축제 회산백련지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위치한 회산 백련지는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저수지이다.
면적은 10만여 평으로 두 개의 저수지가 합하여져 인근 250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작물의 젖줄 역할을 하였으나 영산강 하구 둑이 건설된 후 사실상 농업용수 기능을 상실하였다.
당시 저수지 옆 덕애 부락에는 6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이 우물옆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12주를 구해다가 심은 후 그날 밤 꿈에 하늘에서 학12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이 흡사 백련이 피어있는 모습과 같아 그날 이후 매년 열과 성을 다해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었다.
그런 정성이 헛되지 않았음인지 해마나 번식을 거듭하여 지금은 동양최대의 백련 자생지가 되었다.
또한 이 곳 마을이름이 회산(回山)으로 온 세상의 기운이 다시 모인다는 의미로 유래되고 있어 앞을 내다보는 옛 선현들의 높은 안목과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운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탕에 두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특성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송나라때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보면서,
< 나는 연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이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맛을 느끼게 하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라고 애찬 하였다.
연꽃은 씨주머니 속에 많은 씨앗을 담고 있으므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며 그림이나 건축물, 의복, 자수 등에 연꽃 문양을 많이 새기고 있다.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인 연꽃은 7월과 9월 사이에 일시에 피지 않고 3개월 동안 피고진다.
연꽃의 종류는 다양하나 홍연이 대부분이며 백련은 극히 희귀할 뿐만 아니라 꽃이 연잎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 연꽃 중에 꽃이다. 이곳 회산 백련지가 동양 최대의 백련서식지로 최근에는 충남이남. 지방에서는 멸종 된 것으로 알려진 가시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32.포 항-12폭포의 진경 내연산 보경사
보경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중남산을 등에 업고 좌우로 뻗어난 내연산 연봉에 둘러싸여 있으며, 12폭포로 이름난 그윽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을 껴안고 포근하게 배치되어있다.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온 대덕지명 법사가 왕께 아뢰어 「동해안의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략을 막고 장차 삼국을 통일하리라」하자 왕이 기뻐하며 포항을 거쳐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데 오색구름이 덮인 산을 보고 찾은 곳이 내연산이며 그 연못을 메우고 팔면보경을 묻고 절을 창건하여 보경사라 하였다 한다.
서운암, 청련암, 문수암, 보현암이 있다.
-내연산
내연산은 태백준령이 빚어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산으로 골이 깊고 물이 맑아 십이 폭포를 간직하고 있어, 찾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감탄을 자아낸다. 정조 16년(1792년) 보경사에서 일생을 보낸 동봉은 내연산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쪽의 신구산과 북쪽의 내연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합하여 한 곳으로 흐르는데 그 수원이 30리나 되며 폭포와 절벽과 층벽, 기암괴석이 굽은 소나무와 함께 면면이 진열되었으니 이곳 사람들은 소금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연산의 명소를 나누어보면 상생폭포, 기화암, 용바위, 학소대 등 28경이 있다하나 명확히 알 수가 없고, 20여개의 명소가 알려져 있다.
- 12폭포 : 내연산 계곡에 위치, 연산폭포, 상생폭포, 관음폭포, 은폭포 등
- 바위 : 내연산 계곡에 위치, 기화대, 학소대, 선바위 등
33.보 성-보성차밭 보성군 회전면에는 온 산에 녹색 양탄, 보성 녹차밭(보성다원)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150만평 규모의 차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전남 보성에 있는 대한다업관광농원은 한국 유일의 차(茶)관광농원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밭을 배경으로 농원이 들어앉아 있다. 보성은 원래부터 한국 차의 명산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바다와 가깝고, 기온이 온화하면서 습도와 온도가 차 재배에 아주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한다업관광농원이 이곳에 차재배를 시작한 것은 57년부터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재배지라 할 수 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내륙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차의 품격도 국내 제일을 자랑한다.
보성읍 봉산리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산록에 자리 잡은 농원은 무려 30여만 평이나 되는 드넓은 평원을 형성하고 있다. 모두가 차밭으로, 농원 건물과 함께 그림 같은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농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신주 크기의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서있어 신선감이 더욱 넘친다. 차밭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직접 찻잎을 따는 일도 하면서 건전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34.평 창-대한민국에서 설경이 가장 아름다우며 동양 최대 규모의 삼양대관령목장
산간 고랭지인 대관령은 채소를 경작하고 가축을 살찌우기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 40여 곳의 목장이 운영되기도 했다.
이 시기 생겨난 삼양대관령목장은 서울 여의도의 7.5배인 2천만m2의 광대한 부지를 자랑하는 동양최대의 초지 목장이다.
그 덕분에 삼양대관령목장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애용된다.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그들이 사는 세상'도 일부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겨울이 오면 목장은 초록색 옷을 벗어던지고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매표소로부터 전망대까지 4km가 넘는 길이 눈길로 변한다. 수은주가 내려가면서 바람도 더욱 날카로워진다.
동물들도 튼튼한 양 50여 마리와 토끼를 제외하고는 모두 축사로 들어간다. 목장에서는 5월부터 11월까지는 자가용의 출입을 억제하고 순환버스를 운행하지만, 겨울에는 체인만 있으면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대관령목장에서 설경이 예쁠 때는 눈이 내린 바로 다음날이다. 특히 방문객이 많지 않은 오전에 찾아가면 아무도 밟지 않아 뭉그러지지 않은 눈부신 설원과 마주칠 수 있다. 여기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전인미답의 눈 덮인 대지에 뽀드득대며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매우 특별한 느낌을 선사한다. 또한 나무의 둥치와 가지에 눈이 남아 있는 것도 눈이 온 다음날뿐이다. 이곳은 바람이 워낙 세차서 한나절만 지나도 나무에 붙어 있던 솜털 같은 눈이 흩어져버린다. 혹여나 날씨가 춥다고 해서 무작정 올라갔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돼 있는 대관령목장에서 설경의 백미로 통하는 곳은 해발 1천140m의 전망대와 '연애소설'나무가 서있는 자리이다. 맑은 날이면 강릉 시가지와 주문진은 물론, 멀리 동해바다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오르면 산바람에 몸을 가누기 어렵지만, 시원스레 펼쳐진 목장이 굽어보인다. 바람소리와 강풍을 원료 삼아 날개를 돌리며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의 소리 외에는 어떠한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한편 '연애소설' 나무는 고혹적인 겨울풍경으로 소문난 홋카이도(北海道)의 후라노(富良野)나 비에이(美瑛)를 연상시킨다. 연인이나 가족들이 차를 세우고, 반드시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다. 동산위에서 홀로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와 벤치, 목조계단이 어우러져 서정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35.봉 평-메밀과 문학의 고장 - 효석 문화재
평창이 낳은 한국 현대문학의 대가 가산 이효석 선생을 배출한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이기도 하다.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흐드러진 메밀꽃이 보기만 해도 숨이 차오를 듯 문학적 감각에 젖게 한다. 매년 8월말이면 봉평에서는 시골 장터에서 느낄 수 있는 웅성거림과 설레임이 느껴진다. 가산 선생의 문학적 열정을 기리고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백미인 메밀꽃 필 무렵의 시간적, 공간적 재현을 통하여 참여자에게 가식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효석 문화제"의 백미는 달빛 아래에서 메밀밭 전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생애 단 한번 아름다운 사랑을 추억하는 첫사랑의 마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달빛아래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에서 일어난 생애 단 한 번의 사랑, 작품의 실제 무대가 되었던 봉평 메밀밭에서 펼쳐지는 첫사랑을 추억하는 축제,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밭을 배경으로 옛날을 추억하며 시골마을의 넉넉한 인심과 흥겨운 볼거리를 체험하셔요."
36.정 읍-가을 단풍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장산국립공원
정읍에서 11㎞ 떨어진 내장산은 영은산이라 불렸으며 전국 8경의 하나로써 용굴과 금선폭포, 도덕폭포와 금산, 원숙 등 두개의 계곡이 흐르고 있다.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은 신선봉을 주봉으로 하여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영봉, 연지봉 등 9개의 봉우리가 말발굽처럼 드리워진 특이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굴거리나무 등 760여종의 자생식물과 858종의 자생동물이 살고 있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매화와 산 벚꽃이 다투어 피고, 여름이면 숲이 깊고 골짜기의 물이 서늘하며, 가을 단풍은 전국에서 으뜸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겨울 설경 또한 뛰어나다.
37.춘 천-언제나 젊음과 낭만의 에너지가 가득한 강촌과 연인들의 고향 남이섬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있는 남이섬은 본래는 섬이 아니었으나 청평댐 건설로 인해 물이 차 만들어진 북한강의 섬이다.
섬의 둘레는 약 6Km이고 넓이는 13만여 평인데 섬의 중앙부에 8만여 평의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고 섬 둘레에는 밤나무, 포플러나무 등이 병풍처럼 서 있어 산책하기는 그만이다.
남이섬 선착장에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섬으로 들어가 보면 이 섬의 이름이 유래된 남이장군의 묘소가 있다. 남이장군은 17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조선조 세조 13년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세조가 죽고 예종이 등극한 후 역적으로 몰려 2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라는 귀에 익은 시 한수가 남이장군의 시로 전한다.
남이섬에는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밤나무,자작나무,은행나무,단풍나무,소나무등을 심은 숲을 가꾸고 각종 놀이시설, 숙박시설, 동물원, 식물원, 유람선까지 완벽하게 조성하여 종합휴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남이섬은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운치를 간직한 곳으로서 젊은이들에게는 낭만을, 연인들에게는 추억을, 가족과 직장인들은 따사로운 정을 듬뿍 담아가는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2002년 TV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내국인뿐만 아니라 일본 등 동남아 지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38.안 동-국제탈춤페스티발 한국문화의 결정판 하회마을
하회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 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등으로 지정된 여러 유형·무형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징비록은 임진란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하회탈과 고택 등은 민속 문화에 관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겸암 유운룡과 서애 유성룡이 태어난 풍산 유씨 동성마을이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마을의 전통 가옥들은 부용대, 낙동강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이룬다.
39.영 월-국내 최대의 시민 천문대 별마로 천문대
강원도 영월군에 위치한 천문대로 부지면적은 2,208평이며 대전에 이어 두 번째로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시민 천문대이다.
부지면적 2,208평, 연 건물면적 281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천문대이다. 대전에 이어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시민 천문대로서, 2001년 10월 13일 개관하였다.
영월군 군비와 도비 40억 원, 과학기술부 국고보조금 5억 원 등 총 45억 원의 사업비가 들었으며, 해발고도 800m의 봉래산(蓬萊山) 정상에 위치한다. 주요 시설은 국내 시민 천문대로서는 최대 규모의 80㎝급 반사망원경이 설치된 주돔(주관측실)을 비롯해 보조망원경 10대를 갖춘 슬라이딩돔(보조관측실), 지름 11m의 플라네타리움돔(천체투영실)으로 나뉜다.
그밖에 천문전시관·천문공원·시청각교재 실이 있으며, 조망 및 야경 관망이 가능하다. 특히 영월 지역의 쾌청일수가 192일이나 되기 때문에 별을 보기에 알맞은 천문대로, 매주 월요일에 휴관하며, 개관시간은 14시부터 22시까지이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495번지 봉래산에 있다.
40.예 천-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마을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 한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 마을로서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이곳은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인근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원산성, 봉수대 등 역사적 정취가 숨 쉬는 자연공원으로 산책과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또한 이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 장안사가 산중턱에 있으며 이 사찰의 뒷산에 올라가면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어 의성포(회룡포)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41.울 산-신라왕의 바다 정원 대왕암과 대왕암공원
-대왕암
신라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문무왕처럼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하여 대왕바위라 한다.
일찍이 신라의 문무대왕이 죽어 동해 바다의 한 곳 수중에 장사 지내니 왕의 유언을 따라 왕비도 죽어 한 마리의 동해용으로 변해 하늘을 날아오르다 이곳 등대산 끝 용추암 언저리에 숨어드니 그때부터 이곳을 대왕암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산의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어 일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찰랑이는 물결은 찾는 이의 발길을 묶어 놓는다. 이 곳 전망이 좋은 곳의 아래에는 천연동굴이 있어 예로부터 용굴 이라 전해오고 있다.
-대왕암공원
산책이 즐거운 숲 그늘과 기암괴석 해변을 끼고 있는 동구 일산동의 대왕암공원은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휴식처다.
925천㎡에 달하는 산뜻한 공간을 가진 이 공원 옆에는 울퉁불퉁한 바위해변을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킬 수 있는 일산해수욕장의 모래밭이 펼쳐져 있어 더욱 좋다.
우리나라 동남단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 지점에 해당하는 대왕암공원은, 그래서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등대로도 유명하다. 공원입구에서 등대까지 가는 길은 600m 송림이 우거진 길로 1백여 년 아름드리 자란 키 큰 소나무 그늘 덕에 시원하고 아늑함을 느낀
다.
송림 길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 마치 선사 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의 집합소이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 바다색과 대비되 선명한 첫인상을 준다. 곧장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물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다. 점점이 이어진 바위를 기둥 삼아 놓여진 철교를 건너면 대왕암에 발을 딛고 설 수 있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 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왕의 호국룡 전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문무 대왕비가 남편처럼 동해의 호국룡이 되고자 이 바위로 바다에 잠겼다는 것이다.
대왕암 외에도 괴이하게 생겼다 하여 쓰러뜨리려다 변을 당할 뻔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남근바위, 탕건바위, 자살바위, 해변 가까이 떠 있는 바위섬, 처녀봉등이 꽉 채운다. 기암 해변의 오른편으로는 500m 가량의 몽돌밭이 펼쳐져 바위 해안의 멋스러움을 더해 준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북쪽 등성이를 넘어 계단 길을 내려가면 바로 일산해수욕장을 만난다. 동해안답게 자갈 섞인 거친 모래밭이지만 1㎞ 달하는 길이가 멀찍이 그어진 수평선과 함께 해수욕장 걷는 맛을 자아낸다.
특히 울기등대가 있는 육지에서 보는 풍경도 멋지지만 배를 대절해서 바다에서 조망하는 바위형상은 가히 절경이다. 방어진항에서 2㎞ 정도 내달리면 기암과 해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작은 울기등대를 만난다.
울산은 지도상으로 보아 동해 남단의 돌출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울기등대는 이 돌출한 끝부분에 해당한다.
42.장 성-자연의 풍화가 깃든 백양사
백양사톨게이트를 빠져나와 1번 국도를 타고 백양사방면으로 9.6km을 달리다 16번 군도를 타고 북하면 약수 리로 향하다 보면 오래된 벚꽃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다소곳이 줄지어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곳, 그곳이 백양사이다.
여느 절처럼 산속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으나 동시에 커다란 계곡과 연못을 끼고 있다. 또한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초록이 흐르는 신록, 가을에는 백암산의 오색단풍, 겨울에는 산사의 겨울풍경이 사계절 사람들의 발길을 향하게 하는 절이기도 하다.
노령산맥 백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여환선사가 백암사로 개창하였고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선사가 중창 불사 후 정토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 절이 지금의 백양사로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선조 7년(1574년) 환성지안 선사가 영천굴(靈泉屈)에 주석하여 법화경을 독경하며 예불하였는데 그럴 때면 백학봉 밑에 사는 흰양 한마리가 암자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스님이 '법화경'을 외는 것을 다 듣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스님의 독경소리에 깨달음을 얻어 축생의 몸을 벗고 이제 사람의 몸으로 환생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하며 절하며 물러났다.
스님은 이를 이상히 여겨 다음날 아침 뒷산을 산책하던 중 흰 양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꿈을 이해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스님의 높은 법력에 의해 축생인 양을 제도하였다 하여 이때부터 절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라 고쳐 부르고스님의 법호도 지안에서 '환양(喚羊)'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양사 일주문을 지나 흐르는 계곡을 따라 멀리 그림 같은 백학봉 학바위의 절경과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푸른 공기를 마시며 걷다보면 연못에 물그림자를 만들며 서있는‘쌍계루’를 만난다.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쌍계루의 그늘에서 한숨을 돌리면 바로 ‘극락교’가 있다. 이 극락교를 지나야 비로소 사천왕문이 나타나고 백양사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예로부터 선도량으로 유명해 수많은 높은 고승들을 배출했던 백양사는 송광사의 더불어 호남 최대의 사찰이지만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고 평범하고 수수하다. 오히려 단아하고 조용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참선하는 스님들의 독경소리에 따라 온갖 상념에 잠기다 보면 일상의 시름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다.
백양사에는 현재 국가지정문화재인 소요대사부도 뿐만 아니라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천왕문, 청류암 관음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쌍계루와 부도군 사이의 길을 따라 500미터 정도 올라간 곳에 자리한 비구니의 도향 천진암, 또한 백양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약사암이 있고 그 옆 영천굴이 있다. 그 외에도 선방스님들이 자주 찾는다는 청류암과 산의 정상 가까이에 있는 운문선원이 있다.
43.제 주-올인 촬영지 섭지코지
제주특별자치도 동쪽 해안에 볼록 튀어나온 섭지코지는 봄철이면 노란 유채꽃과 성산 일출봉을 배경 으로한 아름다운 해안풍경이 일품입니다.
들머리의 신양해변백사장, 끝머리 언 덕위 평원에 드리워진 유채밭, 여유롭게 풀을 뜯는 제주조랑말들, 그리고 바위로 둘러친 해안절벽과 우뚝 치솟은 전설어린 선바위 등은 전형적인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제주의 다른 해안과는 달리 "송이"라는 붉은 화산재로 되어 있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속에 잠겼다가 일어서는 기암괴석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의 수석전시회를 연출합니다.
◈ 섭지코지의 전설 섭지코지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선녀를 한번 본 용왕신의 막내아들은 용왕에게 선녀와 혼인하고 싶다고 간청하였습니다. 용왕은 100일 동안 기다리면 선녀와 혼인시켜줄 것을 약속했으나, 100일째 되던 날 갑자기 파도가 높고 바람이 거세어져 선녀는 하강하지 않았습니다. 용왕이 이르기를 너의 정성이 부족하여 하늘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구나 하였습니다. 이에 슬퍼한 막내는 이곳 섭지코지에서 선채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44.제 주-우리나라의 끝이자 시작인 곳 마라도
우리나라의 끝이자 시작인 곳입니다. 섬에는 최남단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해안을 따라 도는데 1시간 반이면 충분합니다. 섬 가장자리의 가파른 절벽과 기암, 남대문이라 부르는 해식터널, 해식 동굴이 마라도의 손꼽는 경승지입니다.
그리고 잠수 작업의 안녕을 비는 처녀당(또는 할망당)과 마라도 등대, 마라 분교도 한 번 둘러볼 만합니다. 이 곳 주민들은 관광객이나 낚시꾼을 위해 민박 16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83년입니다. 마라도에는 주민들이 하늘에 있는 수호신이 강림하는 곳이라 신성시 여기는 [장군바위]와 애기업개에 대한 전설이 서며 있는 [할망당(처녀당)]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가파도에 살던 고부이씨 가문의 가산이 탕진되자 가족이 마라도로 건너왔습니다. 이때 업저지(어린아이를 업어주며 보아주는 계집아이)도 함께 왔는데 이 씨 가족들은 마라도의 풀숲을 불태우고 개간 작업을 벌였습니다. 불탄 수풀들이 다음해에 거름이 되면 돌아오기로 하고 가파도로 다시 건너가려고 하였는데 이 씨에게 처녀 한 사람을 두고 가지 않으면 풍랑을 만날 것이라는 신의 현몽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기 직전 주인 이 씨는 처녀 업저지한테 심부름을 시키곤 떠나 버렸는데, 그들이 다시 마라도로 돌아왔을 때는 처녀 업저지는 앙상하게 유골만 남아 있었고 이 씨네는 이때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라도 북쪽 해안가에 남아있는 처녀 당에는 그 가련한 처녀 업저지의 혼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섬을 일주하는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한데, 마라도 등대 가까이 동남쪽 장군석에 이르면 최남단 기념비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5.제 주-탁 트인 전경이 압권인 도로 1115산록도로와 1117산록도로
산록도로는 제주시 5.16도로에서 1100도로로 연결된 곳과 서귀포1100도로에서 5.16도로를 잇는(현재 공사 중) 동쪽과 서쪽이 연결되는 곳이다. 산록도로를 다니는 시외버스는 없으나 이곳을 드라이브코스로 달려보면 탁 트인 전경이 답답한 마음까지 탁 트이게 도와줄 것이다.
제주시지역 15분이 소요되며 1100도로의 도깨비도로가 있으며, 관음사를 거쳐 또 다른 도깨비도로를 지나면 5.16도로와 만난다.
서귀포지역의 산록도로는 서부관광도로(파라다이스골프장 부근)에서 핀크스골프장을 지나 서귀포로 진입하면 폐기물처리종합타운(재활용품 선별장, 오리사육장, 사료화시설, 퇴비장, 폐식용유 재생비누제조장 등을 갖춘 종합타운)을 지나면 1100도로(탐라대학교)까지 개통되어있으나, 5.16도로와 연결공사 중 이며, 10여분정도 드라이브삼아 진입해보면 그 경관이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다시 가보고 싶은 드라이브코스나 추천하고 싶은 드라이브코스가 될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추가로 그 고장의 관광정보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
※각 고속도로 휴계소내 안내 대에 가시면 근처의 지방자치단체 관광 안내도를 비치하고 있고(무료로 제공) 정말상세하게 잘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