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회 서소문 성지 순례길 걷기 후기입니다.
+ 주님의 사랑안에 머물며
형제애로 피조물인
서로에게 기쁨과 감사함이 되어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01. 모임 일시 및 장소
ㅇ일시 : 2023년 3월 18일(토) 오전 9시
ㅇ장소 : 명동대성당
02. 코스 :
명동대성당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
서울 시립 미술관 ○---○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 ○---○
중림동 약현성당
* 소요시간 ; 약 4 시간
* 구간거리 : 약 5km
( 매주 토요일 서소문밖 네거리 성지에서
오후 3시에 특전미사가 있습니다
시간이 가능하시면 미사참례도 좋을듯 합니다.)
03.준비물 :
-.장갑, (경)등산화, 식수
-,기부금 1,000원
04 난이도 : "하"
05.진행자 : 이재전프란치스코
010~4217~1994
06.참가자 명단 (존칭은 생략입니다.)
01. 김선희안젤라
02.정영란안젤라
03. 이재전프란치스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명실공히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자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기도 하구요.
2천 년 교회사 안에서 유례 없이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인 스스로의 손으로 창립돼었습니다
※ 알림 사항
1. 모임 시간을 준수합니다.
(지각시 진행자에게 미리 연락바랍니다)
2. 진행자(선두 리딩자) 보다 앞서 걷거나
너무 뒤쳐지지 않도록 합니다-
이탈시 진행자에게 사전 연락 바랍니다
3. 일회용품 사용 피하며 개인 컵을 사용합니다
4 걷기중 일어나는 사고는
진행자및 평의회는 책임지지 않으며,
안전 사고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5. 체력에 맞게 주3회 정도 걷기 생활화를 합니다.
6.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각에는 걷기 여행을 삼가 바랍니다.
(걷기 종료시간 : 하절기 오후 7시, 동절기 오후 6시)
7. 혼자 여행을 할 경우에는 주변 사람에게 행선지를
꼭 알려둡니다.
8. 숲속의 동·식물들을 보호합니다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상징이며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교회당 건물로서, 당시의 교구장 블랑(Blanc) 주교가 1883년 무렵
종현(鍾峴)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현 일대의 이 터는 원래 이조판서를 지낸
윤정현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바깥채만 60여 칸 되는
대형 가옥과 함께 김범우(토마스) 명의의 명례방 터를 구입하여
블랑 주교가 그대로 이용, 우선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을 설립ㆍ운영하였으며, 이후 풍수지리설과 관련해
조선 정부와 토지 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 이를 마무리지었습니다.
1892년(고종29년) 8월 5일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가 정초식을 가지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을 축성 기초하였으며, 성당의 설계와 공사 감독은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Poisnel) 박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성당 건축을 완공하였으며, 그리고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습니다.
종현성당(鐘峴聖堂)으로 한국 최초의 본당(本堂)이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된 성당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언급되는 만나와 더불어 먹을 것에 관련해서
최고로 꼽히는 기적이며. 그 상징성 때문인지 다음의 4대 복음서
전부에서 언급되는 몇 안 되는 기적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14장 13-21절
마르코 복음서 6장 30-44절
루카 복음서 9장 10-17절
요한 복음서 6장 1-15절에 해당.
당시 사람들은 이 기적을 만나와 연관지어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문서의 제목인 '오병이어의 기적 '이라는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오천 명을 먹이시다 등으로 풀어서 말하기도 합니디
아무래도 인류의 기본 욕구인 '먹을 것'과 관련되어서 그런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많이 퍼진 이야기이기도 해요.
제대위의 성모자상입니다.
성모자상 뒤로는 " 14 사도화 " 가 펼쳐집니다.
14 사도가 성모님과 예수님을 옹위하듯이 서있습니다.
14사도는 복음을 전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권한도 받았구요
제대위의 " 14사도화 " 는 화가 장발 루도비코 (1921~2001)
의 작품입니다.
이는 경주의 석굴암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구상을 고민하며
석굴암을 방문하여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부처님 둘레의
10대제자상 입상부조가 새겨진 것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져요
12제자외에 다른 두사제는 바오로 사도,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각 사도의 이름이 발아래에 한글과 라틴어로 적혀 있구요
제단의 중심인 제대에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미사 끝자락에 신부님께서
제대에 입맞춤을 하시고는 퇴장을 하시는데
이는 예수님의 몸인 제대와 제대 바로 밑에 있는
지하성당에 모셔져 있는
5분의 성인과 4분의 순교자분들께 경의를 표하는 것이예요
1. 베드로 (=시몬 Peter. simon )
그는 요나의 아들로서 최초로 부름받은 제자들중 하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며 예수님을 3번 부정하였으며
"시몬"은 " 듣는자 " "복종" 을 뜻하며 "베드로"는 "반석" 을 뜻합니다
네로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으며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카톨릭을 세계적 종교로 만든
초대교황 성 베드로가 묻혀 있습니다
안드레아와는 형제입니다.
2. 안드레아 (Andreas)
" 남자답다 " 라는 뜻이며 초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입니다
성경에서는 형제로 나오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서열중심이 아니라서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정획하게 서술되지 않았어요
일설에 그는 감히 주님과 같은 십자가를 질수가 없다고 하여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문에 이 X자는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도 불리며 스코뜰랜드의 국기와 러시아 해군의 군함. 깃발등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3. (대)야고보 (James)
" 대신 들어 앉다 " 라는 뜻이 있고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천둥의 아들" 이라는 별명을 가진 헤롯에 의해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요한과 형제입니다.
4. 요한 ( John 사도요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친척간이며 "하느님의 은혜" 라는 뜻이며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의 저자이기도 한데
자신을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 라고 불렀습니다
세례자요한의 제자이기도 한데 12제자중에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5. 필립보 (Philip)
" 투쟁적 " 이라는 뜻이 있으며 벳세다의 어부출신입니다
6.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u )
"탈마이의 아들" 이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입니다
7. 토마스 (Thomas)
"쌍둥이" 또는 "소리"라는 뜻이 있고 의심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순교하여쓴데 신라까지 왔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인도에는 지금도 토마스교회가 있습니다.
8. 마테오 ( Matthew )
" 하느님의 선물 " 이라는 뜻이 있으며 금융업자의 수호신인데
아마도 가버나움의 세리였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마테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또한 마테오의 이름을 빌려온
다른 제자로 알려져 있기도 해요..
9. (소)야고보 (James )
"주님의 형제" 라는 뜻이 있고 타대오와 형제이며
알패오의 아들입니다
10. 타대오 (=다데오 Thaddaevc )
본명은 유다인데 예수님을 배반한 가리옷유다와 구분하기 위하여
그의 별칭을 쓰고 있습니다
11. 시몬 (Simon 가나안 사람)
열심당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2. 가리옷 유다 (Judas is cariot )
12사도중에 유일하게 갈릴리 출신이 아닙니다.
유다는 "찬양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 마티아( Matthiah )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가리옷유다의 후임으로
새로운 12번째 제자입니다..
* 가리옷 유다는 13이란 숫자와 연관이 있을까요?
그는 13번째 사도가 아니라 예수님과 12사도외의 사도로서
사도에서 제적된 사람인데 그에 의해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13과 연관된것이며
서양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을 제일 싫어한다는~
*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에서는 가리옷유다를 지옥 최하층에 있는
루시퍼의 입에 물려 놓았다고 해요
서양 문화권에서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함께
배신자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구요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e 1452~1529)
종류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크기 460×880cm
제작년도 1495~1497년
소장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1밀라노시대(1482∼1499년)에
1495년에서 1497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누었다(마태 26:20, 마르 14:17, 루가 22:14)는
매우 낯익은 주제를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의 장대한 구도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화면의 구도는 대단히 수학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네 복음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 등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화면 한 가운데 위치한 예수의 몸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확한 원근법으로 작품이 짜여져 있지만
감상자의 입장에 그 원근법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자리가 없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그림이 일상의 차원이 아니라 이상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기획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뛰어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독창성,
그리고 예리하면서도 정확한 형식미,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뛰어난 방식 등 이 작품은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됩니다. 1980년 유네스코가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명동성당안 스테인드글라스
명동성당 제대위의 강론대(설교대)
명동성당 설교대(강론대) ambo
지금의 제대위로 옮겨지기전의 예전의 위치와 모습입니다.
명동성당은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한국교회사의 상징이라
할수있습니다. 명동성당에 설치되었던 강론대에는 프랑스.
일본 독일인과 그리고 한국인과 가톨릭 정신이 섞여 있어요.
당시 프랑스 선교사와 독일 선교사, 일본 침략자는
모두 각각 한국 국민을 위해서 이 땅에 왔다고 합니다
1915년에 제작된, 당대 한국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명동성당에 걸 맞는 강론대입니다.
뮈텔 주교의 주교성성 은경축을 축하하기 위해 성 베네딕도회
서울 백동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숭공학교에서
10년된 생느티나무를 가지고 꼬박 2년에 걸쳐 만든 선물이라고 해요
그 강론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해체되어
자리를 이동하였는데 1977년 원래 오른쪽 남자석의
세 번째 기둥 위, 나선형 오름 계단에 부착되었던
닫집(천개)은 현재 주교좌 상부에 걸려 있습니다.
해체된 강론대 부분은 독서대와 목조제단으로 조립되어
백동 수도원 자리에 세워진 혜화동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져요.
나선형 오름 계단 일부는 현재 왜관 수도원에 보존되어 있다하구요
예전에는 마이크가 없었던 관계로 사제가
설교대위에 올라가 말하였다고 해요
명동성당 내부 뒷편의 성가대석에 한국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있습니다.
명동성당내 소나무
명동성당 제23대 주임신부님 (2004.9~2010.8) 을 역임하셨던
박신언라파엘 몬시뇰 신부님께서 은퇴하시며 기증하신
고가의(?) 여러그루 소나무중의 하나입니다..
성당뒷마당에 있는 성모무염시태 (聖母無染始胎) 입니다
무염시태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됨을 뜻하는 말로서
옛 신자분들께서 쓰던 말로서 현재에는
" 원죄 없으신 잉태 " 또는 "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 으로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 은
12월 8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이자 전승으로, 성모 마리아가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내용인데. 성모 마리아 4대 교리 중 하나구요
성모 마리아는 구원을 위해 오실 하느님을 낳을 몸이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교리로서 가톨릭교회에서
1854년 정식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지하성당안에는 모셔져있는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는
기해박해(1839년)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엥베르(Imbert) 주교, 성 샤스탕(Chastan)신부,
성 모방(Maubant) 신부, 성 김성우(안토니오),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등 다섯분의 성인과
병인박해(1866년)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Pourthie J. Antoine 신부, Petitnicolas M. Alexandre 신부 등 2분과
무명 치명자 2분 등 총 9분의 유해를 모시고 있습니다.
명동성당내 샬트르수도원(박물관)
수도회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옛 수녀님들의 유물을 통해 수도회의 영성과 사명을 알리고자
설립되었습니다. 한불수교가 체결된 이듬해 한국에 첫 발을 내딛었던 샬트르 수녀들의 유물을 통해 초창기 한국 천주교의 척박했던 환경과 수녀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명동성당에서의 종신서원
여주 샬트르수도원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성공회 주교좌 성당
아서 딕슨의 건축
성공회성당은 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으로
1922년 주교인 마크 트롤로프 3대 주교가 착공하여
건축가 아서 딕슨, 영국인 브로크의 감독으로 지어졌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3층 교회 건물로, 십자형 평면 구조로 되어 있어요 기초부와 뒷면 일부는 화강석을 사용했으며, 나머지 벽체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축물의
전체적인 균형감과 조화가 뛰어나며
지붕과 처마는 한국의 전통 건축을 차용한 것이 특징이구요.
특히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요
당시 전체 계획의 일부만 완성되었던 성공회성당은
1991년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증축 계획을 세우다 이후
아서 딕슨의 원설계도를 찾아 건축가 김원의 설계 감독으로
증축되었어요. 서울에 현존하는 유일한 로마네스크 건물로,
1988년 세계 건축가들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제공
.4모지붕을 덮은 중앙 종탑은 신랑과 수랑(袖廊)이
만나는 부분의 위쪽에 3층 높이로 세워졌는데,
이 뒤로 작은 종탑과 후진(後陣, apse : 건물 동쪽 끝에 내민
반원형의 부분)이 생동감있게 연결되어 있어요
수랑을 기준으로 그 앞부분은 전체를 붉은 벽돌로 마감하였고,
정면에 아치(arch) 문과 장미창(薔薇窓)을 내고
측면에는 반원형 아치 모양을 장식적으로 되풀이하면서
3개씩의 창문을 내었다.
수랑의 후반부는 화강석으로 아치구조를 만들고
벽을 쌓거나 기둥을 세우고 개방하는 등 다양한 조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벽체와 지붕의 경계에는 코니스(cornice : 처마 복공)를 두르고
모딜리온(modillion)을 촘촘하게 배열하여
건물 전체에 율동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 건물은 1890년 우.리나라에 온
초대주교 코프(Corfe,C.G.)가 1922년에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완공하고 헌당식(獻堂式)을 가짐으로써 세웠고
일제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하여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설계된
본격적인 건축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건물이라고 합니다 (대한성공회 펌글)
성공회 주교좌 지하성당에 있는
조선 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트롤로프(Mark Trollope) 주교
( = 조마가 주교 )의 지하무덤 ~
4대문안에 있는 유일한 무덤이라 해요..
사제관
정동길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옛대법원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름 괜찮은듯 합니다.
즐거운 주말 정동길에서 걸어가는 길속에 노란 개나리꽃 아래에서
사진 찍는 이들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기도 하구요
그치만 세상에 나만 혼자있는 느낌은 뭔지 쓸쓸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주말 도심 생기를 머금고 있는 반면 덕수궁 돌담길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극과 극 상반되는 분위기 이 두 곳을 교차해서 다니는
내 마음은 편치 않으면서도요
오늘 본 것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에 또렷이 남는 건 무엇일지!!
기록을 이길 순 없으니 오늘도 난 걷기와 관람으로서
내 삶의 흔적을 남겨보기로 합니다.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1875년 7월 26일 –1939년 2월 22일)는 에스파냐의 시인.
서소문밖 네거리성지 앞에서 신호대기 중에
기차가 지나가고 있어 찍었는데 조금은 신기하였어요
1984년 이 땅에는 103위 순교 성인의 탄생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로 세운 신앙의 터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가슴속에 굳건히 살아 있습니다. 이들 103위 순교 성인들 중
44명의 성인과 함께 수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가 바로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입니다.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된 124위 순교 복자 중에서도
27위가 바로 이곳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썼습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숨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중 성인품에 오른 이만도 44명으로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통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희광이의 칼 아래 스러져 갔습니다.
오랫동안 서소문 시민공원으로 단장돼 있던 이 순교의 현장에는
103위 성인의 탄생을 본 1984년,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위원회에서 세운 순교자 현양탑이 하늘로 치솟아 건립돼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서소문 공원 재개발과 함께 철거되자
서울대교구에서는 1999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을 공원 내에 건립하였다.
또한 1891년 서울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성지 인근의
중림동약현 성당을 중심으로 성지 보존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순교자 현양탑은 1984년 5월에 건립되었는데
서소문역사공원 조성에 맞추어서
1999년 5월 15일 성령강림절에
다시 세워졌다고 합니다.
순교자 현양탑은 1984년 5월에 건립되었는데
서소문역사공원 조성에 맞추어서
1999년 5월 15일 성령강림절에
다시 세워졌다고 합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15m 주탑과
13m의 좌우대칭의 3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3개의 탑위에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서 7개의 선이 아래로 그어져 있는데
이는 죽음을 통한 하느님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해요
또한 천주교의 7대성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탑 기단위에는 유리로 막아
물이 흐르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박해와 죽음의 상징인 칼과
생명의 상징인 물을 대비시킨 것이라고 해요
자연광이 직선으로 들어오는 저곳에는
이영희 . 이정희 . 허계임 . 남종낭 . 최형.
총 다섯분의 순교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이곳에서
위로와 위안 감동 그이상을 전하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안젤라봉사님과 안젤라총구역장님이 넘작게 보이네요
다음에는 조금더 근접하여 찍어야 될듯해요~~
" 경천 " 경술 3월 뤼순감옥에서 대한국민 안중근서
경천은 안중근의사가 이또 히로부미를 저격한 다음해인 1910년 3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작성되었다고 하구요. 안중근의사가
처형을 당하기 전에 일본인이 부탁을 하여 남긴 글씨로 알려져 있어요
이후에 일본에 있던 유물을 박삼중스님이 오랜 시간 노력을 하어
2004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태석신부님과 안젤라봉사자님..
노숙자 예수 / 티모시 슈말츠 (Timothy Schmalz 1969~)
노숙자의 모습을 한 예수상이 처음 어느 성당 앞에 설치되었을 때,
신성 모독이라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항의를 받아
철거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로마 교황청에서 바티칸 인근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축복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성하와 노숙자 예수
목민심서 천주실의
흠흠신서 치명일기
한끼의 기도 / 후회없는 삶
해결할수 없는 구속 / 움직일수 없는 손과 발
두께 우물터
우물이 크고 깊으며 물이 많이 나서 늘 흘러내려
한번도 품어 보지 못하였다 하는데
우물의 뚜껑을 늘 덮어놓고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때에나
뚜껑을 열고 칼을 씻었다고 한다
한국의 피에타상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아닌
순교성인의 머리를 안고 있는
은행나무로 만든 피에타상입니다
성지순례후의 맛나는 점심
중림동에서 줄을 항상 선다는
닭도리탕집에서 맛있게 먹었어요~^^
중림동 약현성당
중구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고딕 성당으로 1892년 지어졌어요 1891년 박해가 끝나고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약현성당을 세웠어요
한국 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의의를 지녀 건축된 이후 한국 교회
건축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건물은 1998년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복원 공사를 거쳐 완성된 것입니다
사적 제252호로 지정된 중림동 약현성당은
1893년에 축성된 한국의 첫 벽돌조 서 양식 성당 건축물입니다.
명동성당의 축소판이자 시험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약현성당의
평면 구성은 삼량식으로, 줄지어 늘어선 기둥의 아치와 천장에 의해
중심부(네이브)와 측량(아일)의 구분에 내부에서 뚜렷하지만
외부에서는 낮은 단층 지붕으로 되어 구분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면 중앙에 돌출된 정방형 종탑 하부에 주출입구가 있으며
좌우 양축에 부출입구가 있습니다.
고딕적 요소가 극히 적은 바실리카식 벽돌조 건물이지만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자 본격적인 벽돌조 건물로
건축사적인 의의가 크며, 명동성당과 함께
아름다운 근대 성당으로 꼽히는 곳이예요
▲ 이남규, 성녀 김효임 골룸바·김효주 아녜스 자매의 순교,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의 달드베르 작품 1975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이남규(1931~1993)의 첫 작품으로
1975년에 완성돼 설치돼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참형 장소였던 서소문 밖 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에
앞서 1892년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입니다.
1974년 이 성당 보수공사와 함께 교회 내 스테인드글라스도
새롭게 계획됐고 당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하고 귀국한 이남규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해 진행되었어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달드베르(Dalle de verre) 기법으로 완성한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희생된 성녀 김효임 골룸바와 김효주 아녜스 자매의 순교를
작품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