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18
상한 감정을 치유하라 (II): `우울증` / 김흥규 목사
Heal Your Wounded Heart (II): 'Depression'
1808년 어느 날, 영국 맨체스터의 유명한 의사 제임스 헤밀튼 앞에 지치고 슬픈 표정을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선생님, 아주 심한 병입니다."
"어떤 병인데요?"
"저는 세상 사람들이 테러를 할까봐 겁이 나서 살 수 없습니다. 또 매일 우울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아무데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고 도무지 즐거운 일이라곤 없습니다. 저는 정말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금방 죽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제가 보니 죽을 병 같지는 않군요. 지금의 상태에 변화를 한번 주면 어떨까요. 한번 신나게 웃고 즐거워 해보세요. 마음의 병이 곧 나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오늘 저녁 서커스를 보러 가서 광대짓을 하는 그리말디를 보십시오. 이 세상에 그리말디만큼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배우는 없습니다. 그리말디가 당신의 우울증을 말끔히 고쳐줄 것입니다." 그러자 환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발 웃기지 좀 마십시오. 제가 바로 그리말디입니다!"
남을 웃기는 희극배우도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20-40대에 주로 발생하는 마음의 병입니다. 요즈음은 청소년들과 노인들에게서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두 배 이상 우울증으로 고생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호르몬의 영향과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폐경기 등에 심각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작년 6월에 휴스톤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으로 시달리던 여자가 자신이 낳은 다섯 자녀들(4남 1녀)을 차례로 물에 빠뜨려 죽인 사건 말입니다.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은 우울증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벼운 의기소침 증세로부터 임상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무거운 우울증 증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중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성인 6명당 1명에 이를 정도로 높다고 합니다.
우울증의 증상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괜히 우울하고 슬퍼지며,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해지며,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잘 웃지도 않게 됩니다. 잠을 자다가 자주 깨게 되고, 입맛이 떨어져 식사량도 줄어듭니다. 또한 평소보다 말수도 적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금방 했던 일도 쉽게 잊어버리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분은 제법 괜찮은데도 소화불량, 두통, 목과 가슴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 변비 및 설사, 몸이 여기저기 아픈 증세 등을 느낍니다. 이런 증상들은 주로 아침에 심한 편인데, 개인에 따라서 오후나 저녁에 심해지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우울증은 성격이 강박적이고 양심적이고 융통성이 적고 책임감이 강하고 급하며 예민한 사람들에게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울증에 대한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지적(認知的)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기는 결함이 있고 부족하며 가치 없고 아무도 원치 않는 존재라고 자신을 학대합니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가 마치 자기를 벌주고 패배시키는 고통의 장소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염려하며 부정적이 됩니다. 미래에도 자기는 계속해서 고생하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고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이와 같이 마음의 자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울증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극심한 우울증 증세로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되었다는 말씀이 본문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는지는 본문 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하를 호령하던 엘리야가 지금 형편없이 쇠약해졌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주소서!" 하면서 하나님 믿는 사람이 차마 할 수 없는 절규를 내뱉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누굽니까?
구약 성경을 대표하는 두 사람을 들라하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마태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변형된 모습으로 대화하실 때 두 사람과 대화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왜 하필이면 모세와 엘리야가 대화의 상대자로 나타났을까요?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였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신 분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엘리야는 예수님 시대에 세상의 심판이 있기 전에 이 땅에 올 예언자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말 4: 5-6; 마 11: 14; 17: 12; 요 1: 21).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이름 그대로 일생동안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온 마음과 몸으로 증거한 사람입니다. 아마 구약시대에 가장 많은 이적을 일으킨 선지자를 들라면 엘리야일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던 아합과 이세벨 여왕을 상대로 영적 전쟁을 벌인 영웅이었습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엘리야는 바알 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 400명, 모두 850명의 우상신들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승리했습니다.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기도함으로서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소낙비를 내리는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죽을 때에도 보통 사람들처럼 자연적인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들이 모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습니다(왕하 2: 11). 에녹과 마찬가지로 죽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던 것입니다(창 5: 22-24).
여러분, 이런 엘리야가 우울증에 걸려서 기진맥진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우울증이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인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명랑하고 적극적인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될 때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엘리야와 같은 거인도 우울증에 걸려서 세상만사 다 내 팽개치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얼마든지 디프레스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야에게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렇게 위대한 선지자도 인생의 짐이 버거울 때 우울증에 빠질 수 있구나!"
엘리야는 아합왕과 이세벨 여왕을 대항해서 단독으로 싸웠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무관심하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싸웠습니다. 자기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 가운데, 누구 하나 거들어 주는 이도 없이, 고독과 소외 한 가운데서 영적 전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이세벨 여왕이 자신이 믿는 이방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엘리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을 알자 엘리야에게 보복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갈면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사방으로 엘리야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이 이세벨 여왕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날뛰자 이세벨의 손길을 벗어나 도망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과연 이와 같이 처절한 우울증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되었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우울증을 신앙적으로 이겨내는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자녀들이 힘든 일들을 만나 마음고생을 할 때 어떻게 해서든지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엘리야가 차라리 자기를 죽여주는 것이 낫다고 울부짖다가 지쳐서 로뎀 나무 아래 잠이 들었습니다. 이세벨 여왕의 칼날을 피하여 정신 없이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몹시도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깜박 잠이 든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마시게 했습니다. 두 번씩이나 떡을 먹고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것도 천사가 엘리야로 하여금 그냥 먹고 마시게 한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면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타일렀습니다. 낙심과 패배감 속에 나자빠져 있던 엘리야를 부드럽게 어루만지시고 또 일어나라고 용기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실망과 우울증에 빠져 죽겠다고 생떼를 썼지만 하나님은 정반대로 엘리야를 살리기 위해서 먹을 것을 공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여러분이 낙심할 때마다 주저 앉은 여러분들을 어루만지시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새힘과 용기를 불어넣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우울증이 엄습해 올 때마다 여러분을 다정하게 어루만지시면서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전에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전해 준 떡과 물을 마신 뒤 엘리야는 힘을 얻었습니다.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런 뒤 엘리야는 40일을 밤낮으로 걸어가 호렙산에 있는 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호렙산이 어딥니까? 호렙산은 다른 이름으로 시내산으로도 부릅니다. 시내 반도 남쪽 깊은 곳에 솟아있는 시내산, 즉 호렙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산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소입니다(출 3: 1, 6).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장소이기도 합니다(19: 3).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것처럼, 엘리야 역시 시내산 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답답하고 낙심되고 우울할 때 어느 곳으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야 합니다. 호렙산 굴은 오늘의 성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분명하고 가장 활발하게 역사하시는 장소가 성전입니다. 천사의 배려로 떡과 물을 대접받은 엘리야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의 우울증을 완전히 치료하기 위해서 복잡한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곧장 하나님의 성산, 호렙산에 있는 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의 병을 고침 받고자 하면 하나님의 성전으로 찾아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치명적인 사고의 20%가 자동차사고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사고의 17%가 집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횡단보도를 걷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사고의 14%가 횡단보도를 걷다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나 배, 열차를 타고 여행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사고의 16%가 바로 이와 같은 여행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 중에 일어나는 사고는 0.001% 불과합니다. 교회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예배에 자주 참석하십시오."
어떤 미국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교회야말로 가장 안전한 장소요, 마음의 병을 가장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장소임을 믿으십시오! 정신과 의사의 치료도 중요하고,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성전에 나와 하나님의 치료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호소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울증이 깨끗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 들어가 앉아 있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엘리야는 먼저 자기가 호렙산을 찾아 온 이유를 하나님께 고했습니다. 자기가 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자초지종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던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굴 밖으로 나가서 산위에 서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모습을 한번보고 싶었습니다.
제일 먼저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며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지진'이 지나갔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이 있었지만 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람과 지진과 불이 모두 지나간 뒤 '세미한 소리'--a still small voice, or tiny whispering sound, or a sound of sheer silence--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상처받은 마음으로 낙심중에 있던 엘리야가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거창하고 요란스러운 것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않았고, 아주 세미한 소리, 침묵에 가까운 소리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세미한 소리는 우리의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하고 정돈될 때에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초자아(Super-Ego)가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서 들었던 것은 자기 영혼 깊은 곳에 숨어있던 목소리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호렙산 밑에서 엘리야는 아합왕과 이세벨 여왕의 무리들과 싸우느라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너무 진을 뺐습니다. 그는 엄청난 일들을 해내면서 숱한 기적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신경과 정신이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 말대로 해골이 복잡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연 하나님께 불평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인지 아시지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그런데 저에게 돌아 온 보상이 무엇입니까? 이세벨의 칼뿐이지 않습니까?"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니 자연 우울한 탄식만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엘리야의 영혼 깊은 곳에 안식과 평화가 있기를 소원하십니다. 그의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사막에서 수도 생활하는 공동체에 찾아왔습니다.
이 때 수도하던 형제들이 가장 늙고 존경받는 수도사 아바 팜보(Abba Pambo)에게 감독님이 감명 받을 이야기를 좀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 때 팜보는 내내 침묵만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채근하자 그제서야 다음과 같이 한 마디했습니다. "만일 감독님이 내가 침묵하는 것에 의해 감명을 받지 못한다면, 내가 말해봤자 역시 감명을 받지 못할 걸세."--"If he is not inspired by my silence, he will not be inspired by my words either." 여러분, 때로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또한 오해가 많고 다툼이 많은 세상 속에서 침묵은 오해와 다툼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영성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독거(solitude) 훈련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디프레스가 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영혼의 안식을 취하십시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침묵 속에 마음을 정돈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처방을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복잡한 것들이 내 마음을 옭아매고 있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고요해져야 합니다!
맺는 말: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자기의 남은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무서워서 비겁하게 도망쳐 나온 길로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아합왕을 폐하고 예후를 새로운 왕으로 세웠습니다. 또한 바알신을 섬기던 우상숭배의 본거지였던 아람나라의 왕을 폐하고 하사엘을 아람의 새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선택하여 기름 부었습니다. 마지막 세 가지 사명을 완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누구나 다 가볍든 무겁든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우울증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이 우리를 결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천사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마음을 고요히 정돈하게 될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고치고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