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불교는 불교인가
초기경전에 따른 교리적 검토
1.들어가는 말
흔히 한국불교의 전체적인 양상이 기복(祈福)신앙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 비판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복신앙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현재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오랜 역사와 함께 광범위한 뿌리내림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기복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불교 현실에서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주어진 주제와 관련하여 과연 기복불교가 불교인가를 초기불교의 범위 속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복불교라는 말의 첫 글자인 '기(祈)'자에 주의를 보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글자 그대로 '빈다'라는 뜻으로 동의중복의 어휘로 '기도(祈禱)'라는 말이 불교계를 포함하여 널리 쓰여지고 있다. 따라서 기복불교와 관련한 문제는 '기도'라는 말과 다음의 '복'이라는 말 그리고 '불교'라는 말을 중심으로 검토되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비는 종교적 행위 즉, 기도'가 불교 교리의 근본적인 입장에서 성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복'은 과연 '빌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아니면 '빌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그 교리적 근거는 무엇인지가 바로 '기복불교가 불교인가'를 논하는 중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2.기복불교의 정의
1)기복이라는 말
기복이나 기복신앙이라는 말은 사실 불교계뿐만이 아니라 민간신앙이나 기독교계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기복불교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기복은 특히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기복, 기복불교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술적인 전문용어로는 정착되어 있지 않는 듯하다.
몇몇 국어사전에서 기복이라는 말을 '복을 빎'이나 '복을 내려 주기를 기원하는 일' 정도로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을 뿐이며, 대부분의 국어사전류에서는 기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등재되어 있지 않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몇 종류의 불교사전에서도 '기복'은 물론 '기복불교'라는 항목조차 찾을 수 없다. 예외적으로 최근에 개정된 한 사전에서만 '기복불교'라는 항목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1)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복불교'를 논의할 수 있는가. 일단 역사 속에 나타난 '기복'이라는 말의 용례를 찾아 논의의 실마리를 삼아보자. 고려시대 왕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부처님께 빌었던 법회를 기복도량(祈福道場)이라 불렀다. 이 용례를 차용해서 기복불교의 정의를 한자 그대로 '복을 비는 불교'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기도는 어떠한가. 고대문헌에서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기곡(祈穀)과 특정한 날에 지내는 기곡제(祈穀祭) 또는 기곡대제(祈穀大祭)가 있었으며, 이외에도 가물 때 비가 내리기를 비는 기우(祈雨) 또는 의례를 갖춘 제사를 기우제(祈雨祭)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눈 오기를 비는 기설제(祈雪祭)나 날이 개기를 비는 기청제(祈請祭) 등이 있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전통적으로 마음에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천지신명(天地神明)과 불, 보살(佛, 菩薩)에 비는 종교적인 행위로서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빈다는 뜻의 기도(祈禱)라는 동어반복의 말이 사용되고 있다. 문헌에 따라서는 도(禱)자만 쓰이거나, 또는 기도의 순서를 반대로 도기(禱祈)라는 말로 특정한 대상에 소원을 비는 행위로 다양하게 쓰여져 왔다.
따라서 기복의 '기'는 '기도'라는 말과 의미가 일치하며 비는 형식에 있어 민속과 무속 그리고 밀교2)의 잡다한 요소를 그 옷으로 입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그리고 현재 불교신앙에 있어서도 기도라는 말은 관음기도, 지장기도, 독성기도 또는 참회 정진 기도 등으로 매우 중요한 종교적 기능을 담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불교 경전에서 한자(漢字) 기도는 밀교에 속하는 경전인 <이취경(理趣經)> 등에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밀교에서 가지기도(加持祈禱)나 기도찰(祈禱札)이나 기도예(祈禱禮)라는 말이 사용된다. 이 외에도 중국과 한국 찬술의 여러 문헌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도를 대신 맡아서 해주는 스님을 기도법사(祈禱法師)라고 하는 용례도 있다.
2)기복불교의 성격
기도라는 말에 대한 현재 유통하는 불교사전들의 설명을 보면 기도는 기원(祈願), 기청(祈請), 기념(祈念)과 같이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3) 이러한 말들은 모두 기복불교라는 뜻과 부응하여 '불, 보살의 가피를 빌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비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즉, 양재초복(禳災招福)을 비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의 한 불교사전은 좀더 구체적으로 기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기복불교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어 그대로 인용한다.
(기도란)
①부처님이나 신에게 적극적으로 빌어 그 초자연적인 위신력을 기계적으로 구하는 것으로 현세 이익적인 기도와 ②부처님 등의 숭배 대상에 귀의하여 믿음을 가지고 참회하여 죄를 소멸하고 감사, 보은, 찬탄, 숭앙 등을 위하여 부르는 비공리적(非公利的)인 기도 등이다.
전자는 주로 민간신앙과 기능신앙(機能信仰)이고 기도사(祈禱師)와 산복(山伏)에 의해 행해지는 악마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며 병을 치료하는 것 등에 이용되었다. 후자의 예로는 밀교의 3밀가지(三密加持), 정토교 계통의 염불(念佛)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기도형식은 반복하여 외우고 부르는 과정으로 쉽게 자기 목적화하여 한층 현세이익을 구하는 주문과 주법으로 마침내 첫 번째의 기도 형태로 근접하여 이행한다. 그 점에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숭배대상과 인간이라는 이원대립적(二元對立的)인 관계에서 후자의 인간이 전자의 초자연적인 여러 가지 힘을 강제로 사람의 일에 유익하게 개입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주술이나 종교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도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개발하여 체계화한 것이 밀교인데, 밀교의 기도법은 크게
①식재법(息災法): 재앙과 고난을 제거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
②증익법(增益法): 행복과 건강을 부르기 위해 수행하는 것,
③경애법(敬愛法): 인간의 마음에 자애로운 생각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
④조복법(調伏法): 악인(惡人)과 악심(惡心)과 삿된 영혼을 물리치고 제압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
⑤구소법(鉤召法): 스스로 희망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 등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것들은 좁은 뜻으로는 소위 삼밀행(三密行) 안에서 구밀(口密)에 해당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삼밀행 전체, 곧 입으로 진언(眞言)을 부르고 손으로 인계(印契: mudra)를 맺고 마음으로 본존(本尊)을 생각하는 것에 관계된다. 그리하여 기도라고 하는 밀교의 다섯 가지 방법은 주술적 현세 이익적인 측면과 종교적 구제론적인 측면의 두 가지를 통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4)
조금은 장황한 인용문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이후의 기복불교의 설명에 있어 중요한 내용들과 용어를 대부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기도 즉, 비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위에서 '부처님'이나 '신'과의 '이원대립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토계의 염불'의 언급에서처럼 아미타불과 함께 관세음보살 같은 여러 보살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들 가운데는 호법신(護法神)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경전 가운데의 한 신중(神衆)이나 또는 전체 그리고 한국 재래의 민속 신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나아가 '초자연적인 힘'도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둘째로 비는 방법 즉, 기도 형식에 있어 '초자연적인 위신력'을 구하기 위해 '반복하여 외우고 부르는' 또는 '주문'이나 '주법'이,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다섯 가지 기도법 모두 삼밀(三密) 가운데 구밀(口密)의 언급에서처럼 반복하여 외우고 부르는 데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문과 주법 그리고 진언이 언급되는 것은 기도의 매개로 초자연적인 힘을 빌기 위한 방법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복 의례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사찰과 무속의 의례에서 주문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로는 그러한 대상에 비는 행위의 목적은 기복과 관련해서 '악마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며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은 '현세 이익적인 것'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특히 밀교의 기도법 가운데 식재법, 경애법, 증익법과 조복법의 내용에도 기도의 목적이 잘 요약되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식재법은 수해나 가뭄과 같은 자연의 재앙과 전쟁이나 기근 그리고 귀신 접한 병과 같은 재앙을 소멸하기 위한 것이고, 경애법은 모든 사람이 나를 보면 기쁨을 내게 하고, 천룡(天龍), 팔부(八部), 야차(藥叉)귀신 등을 복종시키고, 귀신을 복종시키며, 모든 원적(怨敵)들의 마음을 돌려 내 편으로 만들고, 제불보살이 보살펴 주도록 하는 것이고, 증익법은 세간의 쾌락을 비는 복득증익(福得增益), 벼슬을 비는 세력증익(勢力增益), 장수, 건강을 비는 연명증익(延命增益), 땅속의 보물을 얻는 것 등이 그것이고, 마지막으로 조복법은 적을 항복받기 위한 기도이다.
넷째로 이 같은 '호마법(護摩法)'과 같은 양재초복을 비는 의례가 언급되는데, 이는 기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이를 주관하는 사제와 함께 집전이 필요하였음을 보여준다. 현재에 있어서도 개인적 차원의 기복이든 호국불교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기복이든 주로 의식과 의례를 통해 행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째로 기복과 관련한 기도는 비는 대상과 비는 사람 그리고 중재하는 사제와의 일종의 조건적인 거래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신, 불과 같이 복을 줄 수 있는 대상에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방법으로 정성을 보이는 것으로 결국 신, 불이 감응을 일으켜 비는 사람에게 그 위신력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같은 의식에 따라 비는 사람은 중재자인 사제에게 적당한 보수를 바치는 구조인 것이다. 이는 종교집단에서 왜 기복신앙이 더욱 조직화된 형태로 정비되어 나아가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초자연적인 여러 가지 힘을 강제로 사람의 일에 유익하게 개입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주술이나 종교적 행위'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한 기복불교와 한국의 샤머니즘 즉, 현세 이익적 차원에서 기복적 주술을 행하는 무속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만날 수 있는 장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복불교와 관련하여 무속의 관계는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되는 이유는 원색적인 기복불교의 양태 중에는 무속과의 경계가 극히 애매해 어디까지가 무속이고 어디까지가 불교인지 모를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5)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비공리적인 기도'나 '종교적 구제론적 측면의 기도'이다. 이 말은 엄격한 의미에서 기복불교의 비는 행위 즉 기복의 범위로 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즉, 현재 한국불교에서 기도라는 말은 쓰이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는 행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있다. 그것은 화(禍)를 거두고 속죄나 복이 내리길 비는 타력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참된 성품(인간성)을 계발하기 위한 자기연마의 일환으로, 내용에 있어 순수하게 내면적인 성찰과 자발적인 참회반성을 하는 종교적 행위까지 기도라는 말이 쓰여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참회기도나 참회정진기도가 그러한 말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예경 대상으로부터 현세 이익적인 차원의 보수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신앙 행위을 말한다. 밀교의 수행법인 주문 또는 진언의 독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갖는 일반적인 기능인 양재초복의 기복적 주술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선정 수행에 들기 위한 방편으로 독송될 때에 한에서는 종교적 구제론적인 측면으로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의 수행에 적용되는 기도라는 말과 여기서 논의하려고 하는 기복이라는 말의 적용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
1)홍법원의 <불교대사전>, 1998.: "복을 비는 불교란 뜻으로 경전에는 없는 말이다.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깨달아 참 부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에서 오직 개인이나 가족의 안녕과 복만을 빌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기복불교라 한다."
2)이는 일본학자들에 의해 잡부밀교(雜部密敎) 또는 약해서 잡밀(雜密)이라고 분류한 것을 말한다.
3)<불교용어사전>, <가산불교대사전>, <불교대사전(홍법원)>의 기도 항목.
4)<가산불교대사전>의 '기도' 항목.
5)무속의 여러 종류의 기복적 주술(magic art)과 잡부밀교 경전에 나타나는 갖가지 주술의 내용이 놀랍도록 흡사하다. 현재까지 한국불교의 기복적 성격의 책임이 마치 무속과의 습합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반대로 현재 무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주술적 방법이 이러한 밀교 경전에도 나타난다는 것은 유의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복불교와 관련해서 무속이 불교에 영향을 준 것이라기보다는 밀교 경전이 무속의 주술적 방법과 내용을 더 풍부하게 기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가히 몇 개의 밀교 경전, 순밀로 분류되는 <대일경>이나 <금강정경> 등을 제외하고는 많은 밀교 경전은 풍부한 주술적 내용을 담고 있는 기복 경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준호
동국대 불교학과 및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 철학박사. 현재 동국대 강사. 논문으로 <붓다(Buddha) 개념에 관한 연구: 팔리(Pali) 경전에 나타난 일국토 일불설에 대한 비판> <불교의 기원과 Upanisad 철학: 불교는 Upanisad 철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가> 등이 있다.
<불교평론 7호/ 기복불교는 불교인가/ 조준호 동국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