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김해자의 시 세계
서정적 자아(自我)와 사랑학의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삶’의 애환에서 충전하는 생명성
우리 인생의 삶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애환(哀歡) 그 체험 속에서 재생된 생생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한 단면에서 우리는 추억하고 인식하면서 성찰(省察)하는 과거 지향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인 사유(思惟)의 향방(向方)이나 정서의 표현들이 지난 삶의 방식에서 불멸(不滅)의 상상력으로 남아 있는 체험들이 현실적인 삶의 지향점에서 지대한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실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체험적인 소재들이 다양하게 작품의 소재나 이미지 그리고 주제에도 상당한 영향으로 발현(發現)되는 것이 시 창작의 요체(要諦)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 시인의 시적 상황에서 하나의 진실로 승화하여 주제의 창출(創出)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歸結)이다.
여기 미향(美香) 김해자 시인의 첫 시집『갯마을에 피는 향기』를 대하면서 김해자 시인이 살아온 삶의 현장에서 추출하는 ‘삶’의 향훈(香薰)은 바로 그가 지향하면서 구현하려는 시적 진실의 원류가 되기 때문에 우리들의 공감을 유발시키는 효율성이 돋보이는 시적 구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삶’에 대한 회상은 바로 그의 상상력을 재생시켜서 지나온 과거에 수놓아진 불망(不忘)의 추억들이 그의 내면에 잠재한 정감(情感)과 지적(知的)인 해후(邂逅)를 함으로써 생성한 진실이 한 편의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앙상한 가지 새봄을 기다리며
활기를 찾아 날개를 펼치고
꿈과 희망을 전하는 천사
한 송이 꽃이 되어간다
오월의 신부 새로운 탄생
화사한 웃음을 전하며
미래의 희망을 향하여
행복한 사랑을 나누고
삶의 계절을 흐르는 인생처럼
오름의 높낮이처럼
견디어낸 한 송이 장미
새봄을 기다리며 꽃 한 송이 꿈을 꾸련다.
--「장미꽃은 다시 피어나」전문
김해자 시인은 이와 같이 ‘새봄’의 향기에서 ‘꿈과 희망’이 활기를 찾는 시간적(계절)인 의미로 ‘삶’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그가 삶에 대한 주제를 ‘장미꽃’에 비유해서 계절과의 융합(融合)을 통한 ‘미래의 희망’과 ‘행복한 사랑을’ 구현하는 ‘인생’의 한 과정과 같이 변모하는 시법(詩法)이 우리를 공감(共感)케 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겨울을 견뎌내고 새롭게 피어난 ‘한 송이 장미’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우리 인생과 대칭적인 비유를 적용함으로써 삶에 대한 애환이 동시에 현현되고 있어서 생존에서 탐색하는 생명성이 적절하게 메시지로 전해지고 있다.
빈 지게 가지고 오를 땐
희망을 가지고 생각에 잠기신다
아버지의 청춘이 담긴 기나긴 터널
꿈을 하나씩 채워가며 인생을 엮으셨고
땔감 가득히 채워 오시던 그 날
진달래 꽃잎을 먹여주시던 사랑
빈 지게는 가벼운데 삶의 인생은
무거운 짐이었지만 내리사랑이시었다.
--「지게」전문
여기에서도 ‘빈 지게’라는 일상적인 사물에서 ‘아버지’와 함께 ‘청춘이 담긴 기나긴 터널 / 꿈을 하나씩 채워가며 인생을 엮으셨’던 애환이 ‘삶의 인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결론으로 적시한 ‘무거운 짐이었지만 내리사랑이’었음을 감지하고 거기에 포괄된 삶과 생명성의 존귀(尊貴)에 대한 김해자 시인의 사유(思惟)는 사물과 이미지의 투영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비유는 ‘캄캄한 밤하늘 누가 볼세라 / 기지개를 켜며 초승달이 되어 // 둥근 달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 하나씩 모으며 둥글게 속을 채우니 // 마음이 부자 되어 이웃에게 / 나눔을 사랑으로 베풀며 // 하현달이 되어가니 / 인생의 삶이 달과 같구나.(「둥근달」전문)’라는 어조(語調-tone)와 같이 ‘인생의 삶이 달과 같’은 현상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그가 구현하려는 시적 진실이 인생과 삶의 복합적인 평행선이 곧 생명성이라는 의미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가 탐구하는 삶에 관한 정서는 작품「훨훨 날아서 님에게」에서 ‘둥지를 틀어 따뜻하고 아늑한 / 새 삶의 터전으로 희망으로.’라거나 작품「구름 위의 하늘」에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깨끗한 사회 / 밝은 미래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니 / 우리네 삶 한층 밝아 보이는구나.’, 「고추잠자리 춤」에서 ‘삶의 무게를 날개에 실어 / 바다에 던지니 / 잔잔한 수평선 어깨를 들썩이며 / 하늘을 향해 춤을 추는구나.’ 그리고「초침 소리」에서도 ‘생명의 존엄성 누가 알까 / 기약 없는 삶 살면서 / 맑고 밝은 영혼을 가지고 / 예쁜 마음으로 살다 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담겨진 그의 내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2. ‘제주’에 대한 영원한 시혼(詩魂)
김해자 시인은 ‘제주’에 대한 사랑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삶의 터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과 주변 환경에서 획득한 정서의 원류(源流)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체득(體得)한 제주 삶의 애환에는 우선 제주의 지리적 환경에서 추출한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발현되는가 하면 그들의 실재(實在) 삶이 투영된 제주의 혼(魂)이 짙은 향수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모태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하늘을 향하여 나래를 피며
새순과 꽃을 피우고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사랑가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오름마다 엽록체에 물들이니
웅장한 오백 장군도 병풍바위도
백록담도 덩달아 고운 옷을
갈아입나 보다
색동옷을 입고 노루 새랑 뛰놀고
바람 소리 물소리 들으며
가을 마무리하겠지.
--「한라신이 옷을 입다」전문
우선 제주라는 지명만 들어도 ‘한라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제주가 품고 있는 명산(名山)으로 제주인들의 애환이 결집된 장구(長久)한 시간성의 대명사이다. 김해자 시인도 이러한 풍광(風光)과 동시에 발양하는 시적 이미지가 그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시적 소재로 등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다.
그는 이 한라산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서 좀더 사고적(思考的) 주제의 창출을 위해 주변 경관과 더불어 그의 서정적인 정서를 동화(同化)하는 시법이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령 그가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사랑가’, ‘새들의 합창’ 그리고 ‘바람 소리’ 등 청각적인 이미지의 투영은 물론이지만, ‘새순과 꽃’, ‘오름마다 엽록체’, ‘병풍바위’, ‘고운 옷’등의 시각적인 그의 사유도 동시에 어우러져서 시적 감응(感應)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올렛길 코스 17KM
걸으멍˚ 쉬멍˚ 보멍˚
중문 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바닷바람 마시며
야생화 벗하고
철새들 노랫가락 들으며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웅장한 바위들 자연의 숨소리
발걸음도 가벼워 룰 룰 날라
청정공기 마시며 대화를 나누니
모두가 친구이고 꽃이 벗하여 주니
세상이 자유롭고 평화롭다.
--「계곡의 물소리」전문
김해자 시인은 다시 제주의 ‘올렛길 코스 17KM’에서 그는 ‘청정공기 마시며 대화를 나누니 / 모두가 친구이고 꽃이 벗하여 주니 / 세상이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계곡의 물소리’에 대한 정취(情趣)는 아늑하고 고즈넉하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걸으멍 쉬멍 보명’이라는 제주의 고유 방언(方言)으로 시적인 흥취(興趣)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주(註)를 달아서 ‘걸으멍 : 걸으면서, 쉬멍 : 쉬어, 보멍 : 보면서’라는 정감어린 언어의 멋이 가해져서 시적 상황이나 분위기를 가중(加重)하는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제주의 감응은 ‘수많은 파도 속에서 역경을 이긴 / 웅장한 자연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 세계의 보물이지.(「주상절리」중에서)’라거나 ‘한라산 오름 동굴이 / 세계 속의 자연 유산이 되어 / 만천하에 알리니 / 제주인의 희망이요 / 태양이랍니다.(「오름 계단」중에서)’라는 등의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제주의 정경(情景)이 넘치는 시적 상황을 엿보게 한다.
밝은 빛줄기를 바라보면서
하루의 출발을 시작합니다
나를 위하여 투자하는 시간을
한 발 맑고 밝은 마음으로
오름 중턱에서 바라본 마을 잔잔한 파도
그 위를 미끄럼 타듯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어선
새벽의 눈을 비비며
만선을 꿈꾸며 일과를 출발합니다.
잔잔한 파도일 땐 배 흔들림이 덜한데 파도 너울 클 땐
어부들도 뱃멀미를 합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어 만선 이루면 흥겨워 노래 부르고
흥얼거리며 뱃고동도 춤을 추지요.
김해자 시인의 의중(意中)에는 제주의 풍광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감지할 수 있는 애환을 주제로 다루려는 그의 진실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작품「아침을 여는 어촌 마을」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만선을 꿈꾸며 일과를 출발’하는 어촌의 여망을 통한 그들의 애환이 잘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잔잔한 파도일 때’와 ‘파도 너울 클 때’의 ‘어부들’의 ‘나를 위하여 투자하는 시간’이 어쩐지 희비(喜悲)의 곡선이 우리들의 심경에 예측불허의 삶 혹은 인생 등의 행로(行路)가 적시되어 있어서 김해자 시인이 탐색하는 제주의 진실이 내재되어 있다.
이 밖에도 작품「외돌개」「만조의 희망」「썰물」「1100도로 눈꽃」등에서 제주의 향수를 넘치게 하는 현장감의 정서를 포착할 수 있게 한다.
3. 그리움과 사랑학의 시적 진실
김해자 시인은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이미지의 창출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이러한 체험의 재생으로 심중에서 아직 삭이지 못한 절절한 사연들이 시적 소재나 주제로 형성되면서 그가 평소에 간직한 그리움이 시적 진실로 승화하는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먼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그리움과 사랑이 강렬하게 부각(浮刻)되고 있는데 이는 다음 작품에서 읽을 수 있듯이 ‘당신이 주신 사랑’을 매체로 해서 ‘어머니의 힘든 삶’을 ‘고이 간직하리다’라는 어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당신이 가시는 길
발자국 건너기가
힘이 드시나요
뒤돌아보지 마세요
당신이 주신 사랑
가슴 깊이 간직하며
12문마다 다라니 얹으며
당신의 마음 고이 간직하리다
어머니 힘든 삶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극락왕생하시옵소서」전문
그는 어머니에 대한 정감이 많이 현현되고 있는데 작품「김매는 어머니」에서 ‘뙤약볕에 앉아서 흥얼거리며 / 부르던 노래 회심곡 / 멀리 떨어져 사신 부모님 그리워 / 흐느끼시던 어머니’「궤」에서 ‘친정어머니 사랑 가득 담아 / 숨겨진 보물 담은 궤 / 꽃 피운 청춘 남편 곁으로’, 「가마솥」에서는 ‘우리 집 건강 행복을 / 느낄 수 있게 하는 가마솥 / 엄마의 사랑 고마움 / 감사함을 깨우쳐 주고 /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리고「하얀 한복 입은 항아리」에서도 ‘혼이 깃든 항아리 안의 음식 / 신토불이를 주장하시던 / 당신의 정이 그리워’라는 그의 진실이 풍겨지고 있다.
김해자 시인이 탐색하는 사랑학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재생되고 있다.
- 실타래 같은 연결고리 첫눈에 반한 사랑 / 달콤한 사랑으로 마음을 전하며 / 그리워하는 마음 기다림이 가 득하니 / 사랑으로 얼룩진 가슴(「김매는 어머니」중에서)
- 눈보라 속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 저장된 영양분을 흡수하며 / 어머니의 품 안에서 잠을 자는 / 겨울나무 들(「그리움을 기다리며」중에서)
- 시원하고 향기로운 바람 / 두 팔을 벌려 맞으며 / 온몸을 감싸주는 미소 / 살며시 어깨를 스치는 사랑(「바 람결에 전하는 사랑」중에서)
- 세월이 흘러 아름답게 피어나는 / 한 송이 꽃을 보며 떠오르는 님 /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랑 / 행복을 꿈 꾸어 보려 하니(「그대 사랑 아끼고 싶어」중에서)
- 애타게 비추어도 그림자일 뿐 / 그대는 보이지 않으니 / 내 사랑 아픔만 남아(「내 사랑 그림자」중에서)
- 봄비 내리는 마음 / 내 마음도 함께 흐르니 / 사랑도 흐르고 싶다.(「사랑이 흐르네」중에서)
- 미래를 꿈꾸며 선택한 사랑 / 살다 보니 옛사랑은 아득하고 / 미운 정 고운 정 삶을 살다 보니 / 모두가 안갯속 사랑인가 보다.(「안갯속 사랑」중에서)
- 따뜻한 장미 한 송이 나눠주며 / 사랑도 함께 전하니 / 따뜻한 정이 가득한 오월이네.(「사랑이 담긴 오 월」중에서)
- 등대가 불빛을 / 그리움으로 수평선에 전하여도 // 석양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 장밋빛 사랑 추억으로 남 기렵니다.(「청춘의 사랑」중에서)
그렇다. 김해자 시인의 사랑학은 그의 심저(心底)에서 숙성된 다양한 현상들이 현실과 직접 교감할 때 생동감 있게 발현하는 시적인 상황(situation)과 더불어 그가 탐구하면서 천착(穿鑿)하려 했던 주제를 명징(明澄)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그에게 여과(濾過)된 사랑의 심도(深度)를 이해하게 한다.
창문 밖에 있는 가로등
밤하늘 밝게 비추니
둥근 달 기다림을 그리워하며
빛이 나는 사랑 전하고
어두운 세상 밝게 인도하니
그리움도 아름답게 보이며
사랑의 기다림 창밖에서
사랑가를 불러주니 행복이 가득하네.
--「창밖의 보름달」중에서
김해자 시인은 이러한 사랑학의 요체는 어머니나 주변 상황에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만유(萬有)의 현실적 현상에서 탐색하게 되는데 그는 위의 작품에서처럼 ‘창문 밖에 있는 가로등’이 내포(內包)하는 이미지는 외연(外延)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성립에서 분화(分化)하고 있다.
그는 ‘둥근 달 기다림을 그리워하며 / 빛이 나는 사랑 전하’면서 ‘어두운 세상 밝게 인도하니 / 그리움도 아름답게 보이’는 사랑의 결실이 현상학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랑학의 정립을 위해서 ‘어부의 사랑’이나 ‘오누이의 사랑’ 등을 소재로 해서 사랑에 대한 진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 시간과 서정성의 융합 그 해법
김해자 시인은 아름다운 자연 서정 시인이다. 제주라는 특수 풍광이 시적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겠으나 그는 천성적으로 서정적 자아를 희구(希求)하는 의식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가 이처럼 서정성의 융합을 위해서 현실적인 시간성을 배제하지 못하는데 그가 주로 취택하는 소재는 봄과 가을을 자주 도입하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가령 ‘칼바람 추위도 가고 / 사랑의 굴레 속에서 / 모태의 사랑을 받으며 / 새 생명을 꿈꾼다 // 자궁에서 움트는 새싹 / 목마름의 해소 / 포근하게 감싸주는 / 사랑을 기다리니 // 입춘을 기다리는 비 /촉촉이 내리니 / 갈증을 해결하고 / 꽃단장 꿈을 꾼다.’는 작품「봄을 기다리는 비」전문에서 감지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봄은 생명의 탄생 및 새로운 출발 등으로 상징되고 있다.
한라산 백록담 하얀 눈 쌓이고
우수도 지난 쪽빛 바다 더 푸르니
해안가 예쁜 야생화 미소 띠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환호성 지른다.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개나리
봄 탐할까 봐 먼저 인사하니
봄 마중 나온 바람 향수 전하며
푸른 향기 곧은 마음 춘향(春香)이네.
--「봄의 향기」전문
기온의 차이
태양열에 옷차림 달라지고
하늬바람 속에서
가을꽃 단장을 하는 자연의 경관
아름다운 미소
억새꽃 춤을 추니 강산이 옷을 입네
화려한 가을을
그리움으로 낙엽화되니 겨울 길목이 되었지.
--「가을이 가는 길목」전문
그가 집착하는 계절적인 향훈이 그의 서정시의 원천(源泉)으로 작용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형성에서 어떤 교감으로 현현되는가에 대한 해법(解法)을 탐색하는 융합이 바로 김해자 서정시학의 위의(威儀)로 정립하게 되고 시의 본령(本領)이 되는 것이다.
그는 봄과 가을의 시간성에서 창출하는 이미지의 모습은 우선 봄에 대해서는 ‘봄 마중 나온 바람 향수 전하며 / 푸른 향기 곧은 마음 춘향(春香)이네.’라는 생동감이 중심축을 이루는 사유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으며 가을에 대해서는 ‘화려한 가을을 / 그리움으로 낙엽화되니 겨울 길목이 되었지.’라는 우수(憂愁)가 깔린 가을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소재나 이미지의 추출은 작품「봄비」에서 ‘계곡에서 용트림하며 / 솟아오르는 아지랑이 / 무지개 꿈을 꾸고 싶다.’거나 작품「새 봄날의 꿈」에서 ‘흰 목련 피어날 때 그대의 입맞춤 / 사랑의 무늬 하늘에 새겨놓고 / 따뜻한 사랑 땅에 묻어 놓으니 / 그 사랑 아름다워라.’는 등으로 봄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가을에는 작품「가을 끝자락에서」에서 ‘지금은 행복을 안겨준 / 넓은 들판이지만 / 앙상한 가지를 남기며 / 새로운 둥지를 찾아 / 희망의 안식처를 찾아서.’라거나 작품「가을을 부르며」에서 ‘들판에 억새 어깨춤 덩실덩실 / 가을 하늘 들녘 함께하니 / 오곡 과일 풍성하네’라는 그의 서정성과 서정적 자아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많은 소재와 주제로 서정을 노래하고 있으나 가정 확실한 것은 자연과 동화하는 시법을 즐겨 적용하면서 우리들의 정서를 유로(流路)하는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다시 겨울에 대한 상황도 설정하고 있는데 ‘엄동설한 / 진통의 아픔을 / 땅속에서 견디니 / 돋아나는 새순 꽃봉오리 / 더욱 선명하구나(「복수초」중에서)’ 또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 / 가던 길 멈추고 잠시 / 땅에 머물다 태어나려 하네.(「낙엽이 땅에 머물고」중에서)’와 같이 시간성 특히 춘하추동 사계에 관해서 관심도가 상승하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본 김해자 시집『갯마을에 피는 향기』에서는 대체로 삶과 생명성에 관한 존재의 문제에서부터 그리움과 사랑학에 대한 집착의 원류 탐색, 그의 삶의 본령인 제주에서 펼쳐지는 체험이 재생되는 시혼 그리고 시간성과 의 해법을 탐구하는 서정적 자아의 융합이 주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들판에 핀 야생화처럼 힘든 과정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이듯이 저에 마음을 표현하고 탐라 여성들의 삶을 배우면서 한 걸음씩 발자국 남기듯 시(詩)로 흔적을 남겼습니다.’라는 진솔한 심경은 그가 정립하고자 하는 새로운 인생관의 시발점으로써 그의 시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삶의 굴곡이 징검다리에 있으니 / 조심하며 인생을 배워 보렵니다.’라는 작품「징검다리」에서처럼 그의 겸손한 삶의 지향성은 더욱 그의 시혼을 불태우고 있게 한다. 그리고 그에게 내재된 시적 진실은 ‘마음의 그릇 가득히 담으려 하니 / 채워가는 마음 행복하지만 / 비워가는 마음도 함께하니 / 마음 온도가 따듯하구려.’라는 작품「채워가며 비우는 마음」전문처럼 그는 존재와 자아에 대한 인식을 지나서 성찰하는 삶의 추구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영국의 대시인 엘리엇의 말대로 시는 그 시인의 감정이 해방된 것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