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_신학과 실천] "이세종의 영성지도와 한국교회 목회 현장 적용에 관한 연구"

[이강학]

* 이글은 <신학과 실천> 49호(2016, 여름)에 실렸습니다.

이세종의 영성지도와 한국교회 목회현장 적용에 관한 연구

이강학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기독교영성)

초록

기독교 영성지도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영성사에 이름을 남긴 영성지도자의 경험과 활동의 터 위에서 발전되어 왔다. 한국 기독교의 영성지도가 지닌 특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독교 영성가들을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세종(1877-1942)은 한국 기독교 영성사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영성지도자들 중 한 명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 개신교 영성의 대표적인 인물들 중 한 명인 이세종의 영성지도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이세종은 현대적인 영성지도 사역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제자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는가를 영성지도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세종의 영성을 탐구한 논문들은 있지만 이세종의 영성지도에 관한 논문은 아직 전무하다.

이 논문에서는 첫째, 전통적 영성지도 및 영성지도자가 지닌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둘째, 이세종의 영성의 특징들을 정리하였다. “이세종선생기념사업회”는 이세종을 “한국 기독교 토착신앙 영성의 뿌리”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소개문에 담긴 네 가지 개념을 바탕으로 이세종의 영성을 탐구했다: 영성가, 기독교 영성, 토착화 영성, 그리고 한국 기독교 영성의 뿌리의 역할 등. 셋째, 이세종의 영성지도의 특징을 대표적인 두 제자 이현필 (1913-1964)과 손임순 (1893-1963)의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았다. 아울러 이세종의 영성지도와 현대 영성지도를 비교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세종의 영성지도가 한국 교회의 목회에 주는 통찰을 찾아보았다.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스승의 권위를 강조하는 전통적 스승-제자 모델의 틀 안에 있으므로, 은사적이고 비제도적인 것을 강조하는 현대 영성지도와는 다르다. 또 이세종의 영성지도에서 추구했던 순결과 가난의 방식을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이세종은 스스로 권위를 내세운 것은 아니며,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피지도자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현대 영성지도에 좋은 통찰을 던져준다.

주제어: 이세종의 영성, 한국 개신교 영성, 영성지도, 이현필, 손임순

I. 들어가는 말

기독교영성학자 유해룡의 분류에 따라 자리매김하면, 이 논문은 기독교 영성의 ‘간학문적 영성 연구’ 안에서 ‘실천적 영역의 영성’을 다루는데, 그 중 ‘영성지도’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기독교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는 한 성숙한 기독교인이 일대일 또는 소그룹 대화를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의 영적 성숙을 돕는 하나의 영혼 돌봄 사역이고 하나의 영성훈련이다. 먼저, 필자는 기독교 영성지도(Christian spiritual direction)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한 성숙한 기독교인(영성지도자, spiritual director)과 다른 기독교인(피지도자, spiritual directee)이 맺은 계약적 관계의 과정이다. 이 관계를 통해 피지도자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더욱 깊이 관계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discernment)하고, 그 뜻에 기초해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영성지도라는 개념에 있어서 영성(spiritual)은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지 않는 통전적 영성을 뜻하며, 지도(direction)는 상명하달식의 권위적 지시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적 관계 안에서 행해지는 도움을 의미한다.

기독교 영성지도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영성사에 이름을 남긴 영성지도자의 경험과 활동의 터 위에서 발전되어 왔다. 한국 기독교의 영성지도가 지닌 특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독교 영성가들을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세종(1877-1942)은 한국 기독교 영성사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영성지도자들 중 한 명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세종의 영성을 영성지도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세종의 영성을 탐구한 논문들은 있지만 이세종의 영성지도에 관한 논문은 아직 전무하다. 이 논문에서는 첫째, 전통적 영성지도 및 영성지도자가 지닌 특징들을 살펴보고, 둘째, 이세종의 영성의 특징들을 정리한 후, 셋째, 이세종의 영성지도가 지닌 특징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통찰을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영성지도에 적용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세종은 현대적인 영성지도 사역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제자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는가를 영성지도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II. 전통적 영성지도

영성지도의 전통에는 다양한 모델들이 있어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영성지도자 자넷 러핑(Janet K. Ruffing)은 그녀의 책 To Tell the Sacred Tale: Spiritual Direction and Narrative에서 영성지도를 여섯 가지 유형론적 모델로 제시한다. 첫째는, 사막의 압바와 암마 모델이다. 가장 개인화된 형태의 영성지도로서, 피지도자가 자기의(willfulness)를 버리고 압바 또는 암마에게 순종하는 것을 중시했다. 둘째는, 베네딕트 수도원 모델이다. 수도원 규칙과 공동체 환경 안에서 영성지도자의 역할이 수련장 및 양성장과 수도원장 등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졌다. 셋째는, 후기 중세의 비수도원 모델이다. 여성을 포함해서 평신도들이 공동체의 지도자 및 영성지도자로 활동했는데, 풍부한 영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피지도자들에게 상담 및 조언을 해주었다. 넷째는, 이냐시오식 간섭주의(interventionist) 모델이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을 매뉴얼 삼아 피지도자를 선택하고 피지도자에게 기도의 방법과 기도할 내용을 안내해주었다. 다섯째는, 트렌트 공의회 이후 고백성사 모델이다. 사제들만 영성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권위적이고 지시적이었다. 여섯째는, 현대에 들어와서 제 2차 바티칸공의회 모델이다. 현대적 영성지도 모델의 특징은 은사를 중시하며 비제도적이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권위와 복종에 대한 이해가 전통적 영성지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개신교 전통에서도 영성지도는 실행되었다. 미국 실천신학자 하워드 라이스(Howard L. Rice)는 그의 책 Reformed Spirituality: An Introduction for Believers, 제 5장 “Consultation: Spiritual Guidance in the Reformed Tradition"에서 전통적 영성지도를 개신교 특히 개혁주의 전통의 맥락에서 정리하였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행해진 영성지도, 즉 개인의 영적성장을 위한 공동체 차원의 지원과 안내는 크게 네 가지 형태가 있다: 교회의 치리(church discipline), 죄의 고백, 목회 상담 그리고 영성안내(spiritual guidance). 여기에서 죄의 고백은 세 가지로 행해지는데, 공동기도, 자기 성찰과 영성일기를 통한 개인 기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고백 등이다. 또한 영성 안내는 세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개인의 영적 돌봄, 편지, 그리고 비공식적 상호지지 등이다.

전통적 영성지도자들은 어떤 자질을 소유하고 있었을까? 전통적 영성지도자들의 특징을 잘 정리한 사람은 영국 성공회의 영성지도자인 케네스 리치(Kenneth Leech)이다. 리치는 그의 책 Soul Friend: Spiritual Direction in the Modern World의 제 2장 “Spiritual direction in the Christian tradition" 말미에 전통적 영성지도자들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영성지도자는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가까이 있으며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둘째, 영성지도자는 기도와 삶의 현실을 잘 알고 극복한 경험의 사람이었다. 셋째, 영성지도자는 성경과 교부들의 지혜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넷째, 영성지도자는 시대의 표지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식, 통찰, 그리고 비전이 있는 분별의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영성지도자는 피지도자가 자기를 넘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성령께 길을 내어드리는 사람이었다.

이상에서 소개한 전통적 영성지도 및 영성지도자의 특징들은 서양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그의 영성과 영성지도를 통해 탐구해보도록 하자.

III. 이세종의 영성

1. 이세종의 영성에 관한 논문들

기독교 영성학은 기독교인의 경험 즉,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spiritual life)을 그 연구의 대상으로 한다. 기독교 영성학의 방법론은 기독교인의 영적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독교 영성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세종의 영성에 관한 본격적인 논문은 지금까지 두 편이 있다: 유은호의 “이세종의 생애와 영성사상에 관한 연구”와 최광선의 “이세종 생태영성 탐구”. 그 외의 논문은 기독교 영성학의 논문이라기보다는 교회사 분야의 논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유은호는 자신의 논문에서 먼저 이세종의 생애에 관한 역사적 사실 규명을 시도한 후, 이세종의 영성사상을 동방과 서방 그리고 개신교회의 에큐메니칼 영성적 관점에서 비교 연구 하였다. 유은호의 논문은 전반부는 교회사의 논문에 해당하고, 후반부는 기독교 영성학 논문에 해당한다. 논문 후반부에서 유은호는 이세종의 영성을 서양 기독교 영성사에 나오는 다양한 영성과 비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세종의 영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교회사의 자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영성학의 방법론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영적 경험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이세종의 영적인 삶을 서양 기독교 영성사 전체를 대상으로 비교함으로써 비약이 심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논문이 되었다.

최광선의 논문은 기독교 영성학의 방법을 사용한 전형적인 논문에 해당한다. 최광선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세종의 회심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버나드 로너간의 회심 이론의 관점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세종의 영적인 삶을 토마스 베리와 프란츠 알트 등의 기독교 생태학 이론의 관점을 이용해서 해석했다. 또한 이세종이 보여준 유기체적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주돈이와 장재와 같은 유교의 관점을 사용했다. 이처럼 최광선의 논문은 기독교 영성학의 연구 대상이 영적인 삶 즉 경험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며, 동시에 기독교 영성학의 간학문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논문이다.

마지막으로, 유은호의 논문과 최광선의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짧은 소논문에서 이세종의 영적인 삶 전체를 다루는데서 오는 피상성이다. 또 논문마다 이세종의 경험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게 되면 독자들은 이세종의 영적 경험에 대한 타성이 생겨서 그 경험의 깊이를 탐구해보려는 호기심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후의 논문에서는 이세종의 영적 경험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도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이세종의 생애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영성지도자인 이세종의 영성지도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더듬어보자. 이세종은 1877년 전라남도 화순군 등광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머슴 생활을 하며 자랐다.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 십년 동안 자식이 생기지 않아서 무당을 불러 산당을 짓고 정성스럽게 굿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찬송가를 보고 성경을 빌려서 읽게 되면서 회심하게 되었다. 회심 이후 그의 삶은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자기 이름을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는 의미로 이공(이空)으로 바꾸었다. 순결을 위해 아내와 다른 방을 썼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스스로는 거지처럼 살았다. 성경만 읽고 묵상했으며,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자주 했다. 전도를 열심히 했다. 자연 만물을 사랑하는 모습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를 닮았으며, 두 번이나 집을 나간 아내를 대하는 태도는 호세아를 닮았다. 이세종은 1942년 하늘로 돌아갔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대표적인 열매로 동광원이라는 수도공동체와 귀일원이라는 사회복지단체가 생겨났다.

3. 이세종의 영성의 특징

2013년 7월 27일 발족된 이세종선생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이세종을 “한국 기독교 토착신앙 영성의 뿌리”로 소개하고 있다. 이 소개문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믿음이 담겨 있다. 첫째, 이세종은 영성가이다. 둘째, 이세종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이다. 셋째, 이세종의 영성은 한국에 토착화된 영성이다. 넷째, 이세종의 영성은 한국 기독교 영성의 뿌리의 역할을 했다. 필자는 기념사업회가 지닌 이 네 가지 믿음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 네 가지 믿음은 이세종의 영성을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차원에서 귀한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으로 더 규명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위의 네 가지 믿음을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바꾸어 보자: 이세종을 왜 영성가라고 하는가? 이세종의 영성은 어떤 기독교적 특징을 담고 있는가? 이세종의 영성은 어떤 한국적 특징을 담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세종의 영성을 한국 기독교 영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1) 이세종을 왜 영성가라고 하는가?

기독교 ‘영성가’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만남을 경험한 사람이다. 기독교 영성사가인 브레들리 홀트(Bradley P. Holt)는 영성가(mystics)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영성가들은 종종 관상의 수준에 이른다. 그들은 그들의 경험을 묘사할 수 없고, 대신 자기들이 경험한 관상의 정수를 그 황홀경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채로운 표현과 시를 사용한다. 그들은 온 세상에 신적인 영광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 그들이 지닌 정의와 사랑의 이상을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세종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들은 그를 깊이 있는 영적 체험이 있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비한 빛을 보고 치유 받은 경험도 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공은 유산각 쪽에서 신비한 빛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의 얼굴과도 같았다. 그러고 나서 이공은 언제 아팠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세종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공의 기도는 ...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마치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 외에도 그의 삶에는 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반 사람들의 눈에 기이하게 보이는 모습이 많다. 그는 순결한 삶을 추구하며 더 이상 부인과의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생물도 배려하였다. 그는 극단적인 가난을 추구하였다. 이런 삶의 동기는 성경 묵상을 통해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러한 영적 경험들을 볼 때, 이세종은 영성가라고 불리우는 것이 맞다.

2) 이세종의 영성은 어떤 기독교적 특징을 담고 있는가?

이세종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특징들을 다수 보여주는데,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세종의 영성은 성경 중심적 영성이다. 이세종은 하루 종일 성경과 함께 생활했다: “낮에는 성경을 읽거나 강론을 했고, 밤에는 성경구절을 암송했다.” 그는 평생 성경 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경을 묵상하고 깨달은대로 철저하게 실천했다. 엄두섭은 이세종이 “산상보훈을 그대로 실천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므로 그의 ‘기이한’ 행적을 이해하려면 성경을 들춰봐야 할 것이다. 그는 성경이 유일한 약이라고 주장했다. 이세종은 성경을 개인적으로 묵상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위한 성경 강의 및 요청이 있을 경우 교회마다 다니며 성경 강의를 열심히 했다. 이후에 언급하는 이세종의 영성의 특징들 역시 모두 이세종이 성경을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을 실천한 것에 다름아니다.

둘째, 이세종의 영성은 순결을 지향하는 영성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세종은 회심한 직후부터 부인과의 성생활을 피하고 분방하며 남매처럼 살기로 했다. 이세종이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죄를 지을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결혼하는 것은 육체만 아니라 자기와 상대방의 영혼문제까지 생각하고 해야 한다. 결혼하는 일이 죄는 아니나 잘못하면 영혼까지 멸망하고 만다.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짝을 짓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심령 형편을 우리는 알지 못하는고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차라리 바울같이 결혼하지 않는다면 만물도 춤을 출 것이다.” 순결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사에서 수도원을 통해 익히 알려졌지만, 한국 교회사에서 수도회와 상관없이 순결을 지향하는 영성이 강조된 것은 매우 특이하다.

셋째, 이세종의 영성은 가난을 지향하는 영성이다. 이세종은 회심 이후 자기에게 빚진 자들의 빚문서를 태우고 빚을 탕감해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재산과 곡식을 나누어주었다. 거지처럼 먹고 거지처럼 입었다. 다음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이세종이 가난을 추구하며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고난은 내 죄로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생을 당하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복된 일이다. 육체의 고난을 받음으로 죄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선해진다. ... 죄를 뉘우치는 것이 나에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가난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사에서 대표적으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1181/1182-1226)에게서 나타났다. 순결의 영성과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사에서 극단적인 가난의 자발적인 추구가 수도회와 상관없이 등장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넷째, 이세종의 영성은 자연친화적 영성이다. 이세종은 자연의 생물들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길을 걷다가 밟힌 개미를 보고 울었다. 잡초도 밟지 않으려고 했고 옮겨 심어 주었다. 집 안의 쥐, 독사나 지네도 잡지 않고 밖으로 나가게 도와주었다. 호랑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산천과 우거진 숲을 바라보며, “만물들아!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세.” 소리치며 기뻐했다. 이세종의 자연친화적 영성은 기독교 영성사에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무척 닮아있다. 역시 한국 교회사에서 이 정도의 자연친화적 영성이 등장한 점이 특이하다.

3) 이세종의 영성은 어떤 한국적 특징을 담고 있는가?

한국 무교(shamanism)는 이세종의 영성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결혼하지 10년이 지나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자녀에 대한 간절한 마음에 사로잡힌 이세종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마을에서 잘 알려진 무당이었다. 무당은 천태산 중턱에 산당을 지으라고 권했고 이세종은 무당이 명당자리라고 잡아준 곳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산당을 지었다. 또 칠성각을 세우고 그 안에 여러 신들을 모신 후 열두 개의 상을 차렸다. 마당에는 연못을 파고 유산각을 지었다. 산당을 준공한 후에는 무당과 함께 매일 열두 상을 차려놓고 제사 지내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그러나 무당이 갑자기 죽었고, 이세종은 그동안 공들였던 것에 대해 회의에 빠졌다. 그 와중에 성경과 찬송가를 얻어 읽고 회심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경과 찬송가를 얻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이세종이 레위기의 제사법 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이 열두 상을 차려놓고 제사 지내던 것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무교가 이세종의 영성 전개 과정에서 나름대로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회심 이후 이세종은 산당 안에 있던 모든 기구들을 불사름으로써 더 이상 무교와의 관계를 끊었다.

이세종의 회심 과정은 당시 다른 한국 기독교인들의 회심 과정과는 상당히 특이하다. 외국 선교사들이나 먼저 회심한 한국 사람의 전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얻게 된 성경을 읽으면서 회심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회심 이후에 이세종의 영성 형성 과정에서, 동네에 있던 등광교회에서 그에게 세례를 주고 이후에도 가끔 만난 노라복(Robert Knox) 선교사를 비롯해서 다른 한국인 기독교인들의 간접적인 영향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종의 회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또, 이세종의 영성은 한국 유교의 배경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성생활을 설명할 때 유교적 지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교 경전에도 남녀 7세 부동석이라고 하였다. ... 여자가 남자가 오면 함께 밥먹고 한 방에서 같이 놀고 웃고하는 일은 좋지 못한 행동이다. 속에는 음욕을 가득히 품고 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 죄가 일어난다.” 이세종은 기도하는 중에 “도인은 화려하면 못쓴다”는 음성을 세 번 들었다고 한다. 이세종은 ‘군자’에 대하여 가르쳤다: “군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검박군자다. 모든 것을 검박하게 사는 이요, 둘째는 혈식군자로서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서 애써 먹는 이요, 셋째는 도덕군자다.”

4) 마지막으로 이세종의 영성을 한국 기독교 영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세종의 영성은 한국 기독교 영성의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수도 영성의 뿌리” 또는 “한국 개신교 공동체 영성의 뿌리”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그 증거는 현존하는 수도공동체 동광원이다. 동광원은 이세종의 제자들 특히 이현필이 주도해서 형성된 수도공동체이다. 이세종의 영성은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그의 영성지도를 경험한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고 그 열매가 동광원인 것이다. 한국 개신교 역사 초창기에 발생한 수도공동체는 찾아보기가 매우 드물다. 이후에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수도원인 은성수도원을 세워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실험했던 엄두섭 목사는 그의 책 『한국적 영성』에서 한국적 영성을 대표하는 인물 일곱 명을 소개한다: 이세종, 이현필, 정인세, 김현봉, 이용도, 유영모, 그리고 김교신. 이 중 이세종, 이현필, 그리고 정인세는 수도 공동체 동광원의 뿌리와 줄기를 이루는 인물들이다.

이세종의 영성은 한국 개신교 수도 영성의 뿌리일 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 영성의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이세종의 제자들 및 그의 영향을 받은 지인들이 개신교 수도공동체 외에 한국 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로교의 최흥종 목사와 강순명 목사이다. 이세종의 영향을 받은 최흥종 목사(1880-1966)는 광주기독교청년회(YMCA)를 창립했고, 한국 최초의 나환우 수용시설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했으며 그 후에 소록도 나환우갱생원이 설립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이세종의 영향을 받은 강순명 목사(1898-1959)는 최흥종 목사의 사위가 되었는데, YMCA를 중심으로 청년운동을 펼칠 뿐만 아니라, 천혜경로원을 세워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았다.

이세종의 영성은 당시 감리교를 대표하는 한 신학자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교회사학자 이덕주는 그의 책 『한국 영성 새로 보기』에서 한국기독교 영성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12명을 소개하는데 그 중에는 정경옥과 이세종이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정경옥 교수(1903-1945)가 한 때 교수직을 버릴 정도로 실의에 빠졌었는데, 영성을 회복하게 된 계기가 이세종을 만나 교제를 나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덕주에 따르면 정경옥이 “천태산 골짜기에 은둔해서 수도 생활을 하던 이세종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이고, “그에게 ‘성자’ 칭호를” 처음 붙인 사람이다. 정경옥은 이세종을 만난 후에 『새사람』에 “조선의 성자: 숨은 성자를 찾어”라는 제목으로 그를 소개하였다. 이 자료는 “이세종이 생존하였을 당시, 그를 직접 만나고 쓴 최초의, 그리고 아직은 유일한 보고서”이므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세종의 영성은 장로교를 넘어서 감리교까지, 호남 지역을 넘어 서울까지, 그리고 일반 성도를 넘어 목회자와 신학자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끼쳤던 것이다.

IV. 이세종의 영성지도

이제 이세종의 영성지도의 특징을 살펴보자. 다음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내용을 전개하려고 한다. 첫째, 이세종은 그의 “수제자” 이현필과 손임순에게 어떻게 영성지도를 해주었는가? 둘째,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현대적 영성지도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떠한가?

1. 이세종의 영성지도

이세종은 누구와 어떻게 영성지도를 했는가?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안에서 행해진 영성지도였다. 엄두섭은 『호세아를 닮은 성자: 도암의 성자 이세종전』 “12. 제자들”에서 이세종의 지도를 받은 여러 사람들을 열거 한다: 최흥종 목사, 강순명 목사, 최 장로, 백 전도사, 한촌에 사는 정모씨, 손임순, 이현필, 박복만, 이상복, 오복희, 이철선 등. 한편, 동광원 김금남 원장은 『동광원 사람들』에서 이세종의 제자들 가운데 이현필과 손임순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김재현은 『이세종의 명상 100가지』, “성자가 된 머슴: 이세종의 생애”에서 강순명, 최흥종, 이현필, 박복만 외에 이세종을 따랐던 사람들로 수레기 어머니, 이대영, 백영흠, 이만식, 최원갑, 안학수 등을 거명한다. 신명열은 『이공 성자와 여인들: 20세기 한국의 호세아』에서 이세종의 여성 제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는데, 수레기 어머니와 함께 이세종의 부인인 한골 어머니(문순희) 역시 회개한 이후에 이세종의 제자로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 가운데 우선 이세종의 후계자로 알려졌으며 가장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제자 두 명, 이현필 그리고 손임순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영성지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1) 이현필 (“성자”, 1913-1964)

이현필은 1925년(12세)에 기독교인이 되었고, 주일학교 교사(관파교회)를 하였다. 1927년(14세)부터 1932년(19세)까지 이세종 선생의 움막에서 성경을 배웠다. 김금남에 따르면, 이현필은 “산중턱에 산당을 짓고 기도하고 수도하고 신령처럼 살고 있다는” 이세종에 관한 소문을 듣고 처음으로 그를 찾아가서 그의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세종에 관한 소문은 이러했다: “땀 흘려 힘들게 모아온 재산도 절반은 장로교단의 전남노회에 바치고 남은 절반은 가난한 이들과 소작인들에게 다 나눠주시고 겨우 연명할 것만 남겨 두시고 부인까지 시집을 가고 없어도 믿음으로 성경연구와 기도로 평화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그러나 이현필은 얼마 후에 이세종을 떠나 광주로 가서, 1933-1934에 강순명 전도사가 이끄는 <독신전도단> 활동을 하였고, 1934-1936 재매교회 전도사, 1936-1937 서울 YMCA에서 영어공부, 아현동 교회 출석, 1938년(25세)에 백영흠 목사의 처제 황홍윤(20세)과 결혼한다. 이현필이 이세종을 떠난 계기는 이세종의 순결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세종의 순결 사상은 그의 가르침의 핵심에 있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면 부부라고 할지라도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세종은 창세기의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를 성생활로 해석했다. 이세종의 성경 강의를 듣던 목사들은 이세종의 성경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현필도 목사들에게 동조했다.

결혼한 이현필은 화순 가래몰에서 2년 동안 행복한 신혼생활을 했다. 결혼하여 나타난 제자를 보며 이세종은 무척 가슴 아파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악과 따먹지 말고 남매같이 깨끗하게 사시오.” 그리고 제자를 위해 남은 생을 바치며 기도했다. 그런데 이현필에게 태아가 자궁외임신으로 죽고 부인은 겨우 죽음을 모면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이현필의 기도 내용을 보면 그가 스승을 배신했다는 자책감에 얼마나 심하게 시달리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오! 자비하신 아버지, 스승을 배반한 이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놈 죄로 아내가 희생합니다. 차라리 이놈을 징계하시고 아내를 살려주십시오.”

이후 이현필은 스승의 뜻대로 순결을 지키며 살기로 결심하고 부인에게도 이렇게 부탁하였다: “내가 요사이 가슴이 좀 아픈 것이 아마도 폐가 좀 나쁜 것 같으니 우리 이렇게 남매같이 지냅시다.” 이 부탁은 “욕정과의 투쟁”, “자기와 세상을 이기는 투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40년(27세) 화순군 도암면 화학산에 들어가 본격적인 영성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전북 남원 지리산 서리내와 갈보리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남원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1944년(31세)에 마침내 수도공동체, 동광원을 창립하게 되었다.

이현필이 스승 이세종의 삶과 사상을 물려받았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순결을 강조하고, 곤충까지도 살생을 하지 않았고, 성경 묵상과 기도 생활을 열심히 했고, 가난을 추구했다. 이현필은 스승의 성경 강의를 완벽하게 필기했고 스승의 전기인 『우리의 거울』을 썼다.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구약 성경의 엘리야와 엘리사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이현필에게서 이세종과는 다른 독특한 점도 있다. 이세종은 성경만 읽었으나 이현필은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스승과는 달리 이현필은 일기문을 남겼다. 이현필이 서리내에서 어린 소녀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이세종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이세종은 이현필을 자신의 후계자로 여겼고 큰 기대를 걸었다는 것이다. 엄두섭의 표현이 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잘 요약해준다: “좌우간 이세종은 이현필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자기의 후계자로 지목했으며, 이현필도 처음에는 이세종의 사상에 말려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점점 깨닫게 되고 스승을 그대로 따르게 되었다. 스승과 제자는 자주 청소 강변 잔디밭에 앉아서 도인들답게 성경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았다.”

2) 손임순 (“성녀”, 수레기 어머니, 1893-1963)

이세종의 또 다른 제자, 손임순은 “개신교 여성수도자들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수락기’ 마을에서 시집 와서 ‘수락기댁’이었는데 사람들이 발음이 편한 ‘수레기댁’으로 불렀고, 이후에 제자들은 ‘수레기어머니’로 호칭했다. 자료들에도 대부분 ‘수레기어머니’로 등장한다. 등광교회를 세운 이원희 장로는 손임순의 열 번째 아들이다.

손임순은 1908년(15세)에 결혼을 했는데 아홉의 아이를 낳고 잃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증산교의 계열인 선도교를 믿었는데 그로 인해 재산마저 잃게 되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살고 있을 때, 같은 마을에 살던 이세종의 전도로 손임순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손임순은 이세종이 회심 이후 변화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세종은 날마다 손임순을 찾아와 성경을 가르쳐주고 기도해주었다: “수레기 댁, 예수 믿읍시다. 예수님은 돼지 고기도 쌀밥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제물은 우리의 통회하는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나의 제물은 찢어진 이 마음, 갈기갈기 찢어지고 터진 우리의 상한 심령 뿐이오니 업신여기지 마소서.” 이세종의 가르침과 기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손임순은 기쁨을 회복하고 삶의 희망을 지니게 되었다. 남편은 손임순이 성경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도 가르쳐주었다.

손임순의 영적인 삶에서 중요한 과제는 역시 스승 이세종이 강조한 순결이었다. 남편의 주장으로 다시 열 번째 임심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세종은 “아이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이때 손임순이 한 기도에는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이 가득 담겨 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죄를 용서해 주셔요. 미련한 이 죄인이 미처 깨닫지 못하여 실수를 했습니다. 기왕에 생긴 것이니 불쌍히 보시고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시어 우리를 용서하여 주소서.” 아들을 낳은 이후에는 순결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 밤마다 전쟁을 하며 8년을 지냈다. 이 기간에 손임순은 이세종의 말씀 듣고 예수 믿은 것을 후회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공님도 같은 싸움을 싸우신다.”고 생각하며 날마다 예수님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손임순이 이상한 꿈을 꾼 후부터 신기하게도 남편은 밤마다 깊은 잠에 빠져 더 이상 손임순을 괴롭히지 않았다. 이 꿈을 손임순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음란의 마귀가 떠난 것으로 해석하였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천사만사 모든 문제는 다 내게 있는 것을 모르고 남편만 나쁘다고 미워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내 몸 안에 있는 음란의 마귀가 떠나니 자동으로 싸움이 끝이 난 것입니다.” 이 승리의 감격을 손임순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8년간의 싸움은 밤의 한 정점같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늘을 봐도 기쁘고 땅을 봐도 기쁘고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졌습니다. 내 기쁨은 몰라. 내 기쁨은 사람은 몰라 지금 이 땅에서 겪는 작은 고생이 영원한 엄청난 영광을 가져다주는 것을.” 이 일 후에 이세종을 만나러 갔을 때, 스승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알고 기뻐하며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순결은 손임순에게 완전히 내면화되었다. 그래서 스승이 돌아가시고 며칠 후에 제자 이상복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임순은 무척 슬퍼했다. 뿐만 아니라 훗날 외지에 나가있던 아들 사무엘(이원희 장로)이 오랜만에 동광원으로 찾아와 30세가 넘으면 장가가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낙심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세종은 손임순에게 광주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가보도록 한 적도 있었다. 소감을 묻는 스승에게, 손임순은 부흥회가 “도깨비 소굴” 같았다고 답했고, 이세종은 그 말을 지지해주었다. 손임순은 스승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아이를 업고 산당에 갔다고 밤늦게 산길을 걸어 돌아오곤 했다. 호랑이가 길을 밝혀주는 신기한 체험도 했다. 또한 손임순은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병이 들어도 약을 쓰지 않았다.

이 외에도 손임순에게는 신비한 체험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빛 체험이다: “눈 내리는 겨울날 낮에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아버지를 향해 날고 있었는데 갑자기 온 방안이 은빛 같은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워-메, 무슨 빛이 이리도 아름답고 고울까?’ 처음 보는, 해보다 더 밝은 그 빛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똑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그 영광의 빛 속에서 보리밥 한 솥지기 동안 빛에 싸여 계셨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으로 짐작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기록한 동광원의 김춘일은 그 빛을 “예수님을 상징하는 영광의 빛”이라고 해석한다. 또 다른 체험은 두 총구멍 체험이다: “그 무렵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맑은 두 줄기의 총구멍 같은 빛이 보이는데 맑은 하늘을 볼 때 같이 맑고 투명했습니다.” 이 경험에 대하여 이세종은 “믿는 증거요!”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이세종이 이현필과 손임순에게 해준 영성지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승-제자의 모델로 행해진 영성지도였다. 이세종은 성경 공부와 삶의 모범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안내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초지일관 잃지 않았다. 가난과 순결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이 워낙 도전적이라서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이현필과 손임순은 스승의 가르침을 자신의 것을 만들었고 남은 평생을 같은 길을 걸었다.

2. 이세종의 영성지도와 현대 영성지도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현대 영성지도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떠한가? 첫째, 이세종과 제자들의 관계는 영성지도의 관계였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세종은 제자 이현필과 제자 손임순이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제자들이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잘 되기를 바랐다. 또 제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속 성장해 나가기를 바랐다. 이세종은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잘 분별하였고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잘 극복하도록 기도로 말씀으로 도와주었다.

둘째, 이세종은 어떤 영성지도자였는가? 이세종은 교회 제도가 부여해주는 권위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세종과 제자들의 관계는 20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인식 안에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자발적이었지만, 일단 스승과 제자로 서로를 인식하는 한에 있어서 스승의 영적 권위는 대단했고, 제자는 무조건 순종해야 했다. 순종하지 않았을 경우, 스승은 실망했고 제자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세종이 절대적으로 강조한 순결을 부부 사이일망정 지키지 못했을 때 이현필은 자신을 “스승을 배신한 제자”로 여겼고 손임순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 이럴 경우 스승의 눈치를 보게 되고, 스승을 의존할수록 스승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스승이 자신의 생각이나 성경 해석을 강하게 주장할수록 스승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거나 순종하기가 힘든 제자들은 스승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다시 스승의 주장에 순종하기 전까지는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게 된다.

영성지도자로서 이세종의 자질은 어떠한가? 먼저, 이세종은 신앙공동체 즉 제도 교회와의 관계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노회에 많은 재산을 기증했고, 많은 목사들이 이세종에게 와서 배우기도 했지만, 이세종은 제도 교회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 점은 계속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이다. 다음으로, 인격성, 관상적 태도, 넘치는 따뜻함, 그리고 자신감 등의 자질은 이세종에게 차고 넘친다. 교육 과정과 관련해서 이세종은 다양한 삶의 체험이 있는 반면에, 공부는 오직 성경만으로 한정했다. 제자 이현필은 이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만약 이세종이 성경만을 묵상하기보다 성경 주석책을 읽었다면, 기독교 영성사를 공부했다면, 가정이 지니는 긍정적 의미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면,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결혼을 해체시키는 일체 순결 사상을 계속 주장했을까?

셋째, 이세종의 제자들은 스승과의 관계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앞세우지는 않았는가? 이 주제는 이미 첫째 주제에서 언급했다. 스승 이세종과의 관계 때문에 제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방해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세종의 소천 이후 제자 이현필과 손임순의 삶이 더 아름다운 영성의 열매들을 거둔 것을 볼 때 이세종의 영성지도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IV. 나가는 말: 이세종의 영성지도와 현대 한국교회

이세종의 영성지도를 현대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먼저, 이세종의 영성지도를 연구하면서 다시 한 번 이세종의 영성이 기독교 영성의 본질에 닿아있고,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영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수의 영성이 사도들의 영성을 통해 확인되듯이, 스승의 영성의 진정성은 제자들의 영성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종의 영성은 이현필의 영성과 손임순의 영성을 통하여 그 진정성이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서 20세기 초 한국 땅에서 하나님은 이세종을 부르셨고 이세종과 함께 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이세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응답하려고 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이세종의 삶의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자의 메시지에 회개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고 예수님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던 유대인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이세종의 영성이 던지는 메시지는 현대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난하라! 순결하라!

둘째, 현대 영성지도의 관점에서 이세종의 영성지도를 들여다볼 때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었다. 현대 영성지도는 영혼 돌봄 사역 가운데 전문화된 하나의 사역이다. 현대 영성지도자는 목회자와는 구별되는 사역을 한다. 그런 점에서 영성 운동을 일으킨 카리스마적인 영적 지도자를 현대 영성지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좁은 렌즈를 들이대는 것과 같아서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현대 영성지도의 관점에서 전통적 스승-제자 모델에 충실했던 이세종의 영성지도를 평가한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종의 영성지도를 현대 한국 교회에 소개하는데 있어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통찰이 있었다. 이세종의 영성을 현대화하려면 가난의 실천과 순결의 실천 역시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적용해야 한다. 가난과 순결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대인이 가난과 순결을 실천하는 영성생활을 하려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와야 하고 그에 대한 증언들이 나와야 한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무작정 순결 생활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이세종 당시나 지금이나 급진적이고 반사회적인 도전으로 들릴 수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특히 젊은 세대들은 다양한 지식이 많다. 이들을 설득하려면 성경적으로 영성사적으로 정립된 가난 신학 그리고 순결 신학이 준비되어야 한다. 영성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으려면 신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예수에게는 사도 바울이 있었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에게는 보나벤투라가 있었고, 아빌라의 테레사에게는 십자가의 요한이 있었다. 이세종의 영성, 이현필의 영성, 손임순의 영성을 뒷받침 해줄 신학이 있어야 한다.

넷째, 영성지도의 방식이 현대에는 달라졌다. 이세종의 시대에 스승-제자의 모델이 현대 기독교인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어떤 형태이든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이세종의 영성이 역사를 이어 계속 전해지려면 영성지도자로서 이세종의 태도에서 권위적인 스승의 모습보다는 친구나 여행 안내자 또는 동반자와 같은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사용하는 이세종의 모습, 제자의 실수에 화를 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고 긍휼히 여기는 모습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세종의 영성지도 대상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목회자, 신학교 교수 등의 교계 지도층도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가정주부, 청소년들도 찾아와서 이세종으로부터 성경을 배우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경제적인 상황을 불문하고 누구나 와서 만날 수 있었다. 이세종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 거지의 자리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점은 현대 영성지도자들에게 큰 도전이 된다.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영성지도자가 되려면 더욱 더 가난해지고 낮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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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Lee Sejong’s Spiritual Direction

Lee, KangHack (Torch Trinity Graduate University, Christian Spirituality)

Christian spiritual direction has been developed on the ground of the experiences and practices of renowned spiritual masters in the history of Christian spirituality. In order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Christian spiritual direction, we need to explore Korean Christian mystics. Lee Sejong(1877-1942) is one of the great spiritual masters in the history of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This paper purpose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Lee Sejong’s spiritual direction, who is one of the representatives in Korean Protestant spirituality. Lee Sejong certainly did not know about spiritual direction. However, it is possible to explore his guidance for his disciples from the perspective of spiritual direction. There have been several papers which explored Lee Sejong’s spirituality but none on Lee Sejong’s spiritual direction.

In this paper, first, I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spiritual direction and spiritual directors. Second, I summarize the salient points of Lee Sejong’s spirituality. The Society of Lee Sejong’s Legacy introduces Lee Sejong as “a root of Korean Indigenous Christian Faith.” Based on the four terms in this introduction, I explain Lee Sejong’s spirituality: mystic, Christian spirituality, indigenous spirituality, and the role of a root. Third, I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Lee Sejong’s spiritual direction by looking into his relationship with his two disciples, Lee Hyunpil (1913-1964) and Sohn Imsoon (1893-1963). I also compare Lee Sejong’s spiritual direction and contemporary spiritual direction. In conclusion, I provide some insights of Lee Sejong’s spiritual direction for the ministry in Korean churches. His spiritual direction which was done in the traditional model of master-disciple which showed the authority of the master is different from contemporary spiritual direction which emphasizes gifted-ness and non-systematic. His ways of spiritual direction which led his disciples to pursue extreme purity and poverty cannot be applied for contemporary Christians. However, the facts that Lee Sejong himself did not press his authority and his directee showed diversity provide insights for contemporary Korean spiritual direction.

Keywords: Lee Sejong’s Spirituality, Korean Protestant Spirituality, Spiritual Direction, Lee Hyunpil, Sohn Im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