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첫 수요일, 춘천지역 기온 29 ℃ 를 기록한 날, 유정독서모임이 커먼즈필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차시에 이어령 교수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함께 읽었습니다. ' 보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영어에는 look, see 처럼 2개, 한자어에는 目·見·看·視·觀 5개의 어휘가 있는데 한국어에서는 그저 '보다' 하나 뿐이라는 것이 이상하지요.
하긴 빨강 노랑 파랑 보라 하양 검정 등 색채 언어 가운데 초록색을 의미하는 단어가 우리 말에는 없습니다. 파랑색에 靑·綠이 함께 들어가 있지요. 또 우리 말에 오늘을 중심으로 어제 그제 그끄제, 모래 글피 그글피는 있어도 내일(來日)의 고유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이 없다니요.....그러나, 찾아보면 내일, 명일(明日)을 의미하는 고유어 '하제'라는 예쁜 어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 않다보니 잊혀진 어휘지요,
이야기가 빗나갔습니다. 본다는 것에는 시각적 보기와 마음으로 보기가 있습니다. 별 의미 없이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로 눈을 피하는 일, 그러나 사랑과 기원, 순진무구한 눈길 앞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언어에는 눈이 있다고 합니다. 시인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눈동자가 있다고 합니다.
나이든 결혼한 여자를 의미하는 언어들에 여성· 여인· 부인· 여사· 마님·마누라 · 여편네·아낙네·아줌마·아줌씨·아주머니등 다양한 어휘들이 있습니다. 시인이 선택한 언어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서 시인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대상을 보고 있는 가를 보여줍니다. 정확한 시선, 정확한 언어선택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모두 시인의 마음이 되어 언어의 눈동자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바른 세상,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데 언어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커다란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승>이란 제목의 시작품 두 편, 백석 백기행은 한 사람의 여승을 만나자 그녀가, 오래 전 금판에서 만난적 있는 어린 딸과 함께 있던 젊은 어미였음을, 순간 젊은 어미가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상상의 눈으로 구성합니다. 지아비는 집떠나 소식없고 남겨진 모녀. 여기서 남편은 돈 벌러 떠났거나 항일 운동하러 떠나 돌아올 수없는 사람이 되고 딸마저 돌무덤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시인은 함축적 언어와 이미지를 가지고 1930년대의 시대적 아픔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송수권의 <여승>에서는 어린 소년이 염불하는 여승의 고랑깊은 음색과, 슬퍼보이는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 앞에서 지금까지 식구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이질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슬프면서도 그리운 감동에 사로 잡힙니다. 소년은 여승의 뒤를 따르고, 여승으로부터 작별인사를 통고 받은 이후, 그는 여승을 만나기 이전과는 아주 다른 세계 속에 살게 되지요. 그 멀고도 가깝고 슬프고도 감미롭고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성스러우면서 다가갈 수 없는 감동, 시인은 그런 감동으로 평생 시를 쓰고 싶다고 합니다. 백석의 <여승>이 시대적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면 송수권의 <여승>은 한 소년의 정신적 성장의 계기, 곧 통과제의를 보여준다고 하면 어떨지요.
이어서 윤남석의 수필작품 <모습>을 읽었습니다. 병원 정원에 이식된 소나무의 온전치 모습을 보면서 심장수술을 받으신 노쇠한 어머니를 병치시킵니다. 작가는 소나무의 상처들, 옹이와 헛나이테를 보면서 그동안 소나무가 겪었을 고난을 생각하고 동시에 어머니가 걸어오신 고통스런 한평생을 돌아봅니다. 세명의 자식을 먼저 보내고, 늙은 남편 마저 떠나 보낸 어머니 가슴의 옹이가 결국 병이 되었고, 심장 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닳아버린 지문,농사일로 쩍쩍 갈라진 손마디들을 떠올립니다.
수필작가의 시각적인 눈은, 이식된 소나무와 늙은 어머니의 온전치 못한 현실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동시에 마음의 눈으로 소나무가 겪어온 시련의 날들과 어머니가 겪어오신 모진 세월을 일치시킵니다. 이 작품은 마음의 눈으로 살펴본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구구절절이 그러나 절제된 언어로 펼쳐나간, 산문으로 쓴 한편의 사모곡(思母曲)이라고 할까요.
2차시에는 미국의 추리작가 반 다인(S.S.Van Dine 1888~1939) 원작의 소설을 김유정이 번역한 「잃어진 보석」(1937)을 읽었습니다. 본래 이 소설의 제목은 「벤슨 살인사건」(1926)이었으나 일본에서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가 「벤슨가의 慘劇 」이란 제목으로 번역, 이후 김유정이 이 번역본을 저본으로 「잃어진 보석」이라는 제목으로 중역(重譯) 했습니다.
이 작품은 전체 21장으로 구성, 인간심리에 관심이 깊은 피방소( 원작에서는 파이로 밴스)가 친구인 지방검사 조막함( 원작에서는 존 마컴)을 도와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가는 이야기 입니다. 요즘 시점에서 본다면 피방소는 프로파일러 같은 존재입니다. 사건 전개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관계로 가독성이 높은 작품입니다.
유정독서모임 다음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2024.06.26, 14:00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열차
김유정 번역 탐정소설 「잃어진 보석」 7장 중간부터( 213쪽 상단 3행부터) 계속 읽겠습니다.
( 「잃어진 보석」은 『 정전김유정전집 』 2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6월 26일, 14:00, 김유정문학열차에서 뵙겠습니다.
2024.06. 05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