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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1월 ☞새출발의 달☜
삼상10:8-27절) 틀림없으신 하나님
우리는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엄청나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어서 걱정이고, 직장인들은 언제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스트레스로 큰 병에 걸릴지 몰라서 걱정입니다. 또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또 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큰 변수가 생길지 몰라서 불안한 중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을 붙잡아야 살 수 있을 텐데, 이 세상에 그렇게 큰 힘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엄청난 힘을 의지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미국 자체가 아주 불안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살면 절대로 추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불안정한 때에 만약 어떤 사람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정확하게 예언을 할 수 있다면, 그의 예언을 듣기 위해서 기를 쓰고 찾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는 이 세상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예언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에게는 이런 예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예언을 하시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큰소리 지르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리를 많이 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절대로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작은 일은 하나님이 간섭하고 계신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청년의 집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암나귀들을 다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사환 한 명과 아무리 돌아다녀도 암나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울은 하나님의 예언자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사무엘은 사울에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예언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며, 잃어버린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는데,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 두 명이 너에게 인사하고 암나귀를 찾았다고 말을 할 것이며,
또 다볼 상수리나무 밑에서 세 사람을 만날 것인데, 한 사람은 염소 셋을 끌고 가고, 다른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져가고, 또 한 사람은 포도주 한 부대를 가지고 갈 것이고, 그 중 한 사람이 떡 두 덩이를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줄려면 포도주를 다 주든지, 염소를 다 주든지, 하지 떡 두 덩이만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산에서 선지자 무리를 만날 것인데, 그들을 만날 때, 사울도 성령에 충만하여 예언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가 하는 예언을 믿었을까? 아니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울의 행동을 보면, 하나님의 예언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믿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Ⅰ.사울에게 이루어진 징조
사무엘은 맨 먼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쓰신다는 증표로 세 가지 징조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10:9절)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도 다 응 하니라.”
하나님은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새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났을 때, 기분이 아주 개운하고, 좋은 것처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마음*은 오늘부터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다 부딪쳐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갑자기 기분이 개운해지면, 새 힘이 생기고, 감정이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모든 과거의 우울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처음 사무엘이 기름 부을 때부터 하나님의 예언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즉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은 말도 되지도 않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하면, 일단 지파(支派)자체가 크고.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라든지, 아니면 에브라임 지파같이 수가 많은 지파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베냐민 지파는 가장 작은 지파였고, 힘도 없는 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사울 자신도 자기가 왕이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얼떨결에 무릎 끓고 앉으라고 해서 앉았는데,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언들을 세 가지나 했습니다. 즉 ☞라헬의 묘지에서 두 사람을 만나서 암나귀를 찾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세 사람을 만나서 떡을 두 덩이를 받을 것이고,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나서 그들에게 섞여서 예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사울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맨 먼저 일어난 일은 사울의 마음이 새 마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기분은 아주 신선해지고, 아침에 눈을 뜬 것처럼 피곤하거나. 찜찜한 것들, 즉 암나귀를 잃어버려서 우울했던 기분은 싹 사라지고, 무슨 일이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예언했던 것은 하나씩 다 이루어졌습니다. 즉 사울은 라헬의 묘지에서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네가 잃어버렸던 암나귀들을 다 찾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세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사울에게 떡 두 덩이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의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대단한 예언의 징표는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사울과 그 사환이 산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산 위에서 선지자들의 무리가 악기를 연주하면서 내려왔는데, 사울을 보고 자기들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선지자의 무리 안에 들어가니까 성령이 사울에게 강하게 임하면서 사울은 엑스터시(ecstasy)상태 즉 황홀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춤을 추기도 하고, 지휘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선지자는 일반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울은 일개 가난한 농군(農軍)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이 선지자들 사이에서 춤도 추고. 지휘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보면, 평소에는 전혀 사울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울은 농사나 짓고. 입 다물고 남이 하라는 일이나 할 뿐이지. 다른 사람 앞에서 지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설교를 할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도 성령에 감동이 되어서 춤도 추고. 예언도 하고. 지휘도 하니까 사람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하면서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기스의 아들이 미쳤느냐?*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사울이 선지자 중에 있느냐?*했는데, 이것은 *사울도 앞으로 선지자가 될 것이냐?* 하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서 *그의 아버지가 누구냐?* 고 묻기도 하고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하는 것이 하나의 속담처럼 되었습니다.
즉 사울이 성령을 받고. 선지자들 사이에서 예언했던 것이 사람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흉내 낼 것을 흉내 내야지, 전혀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따라 하면, 욕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체험이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신 중요한 증표(證票)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섬세한 생활을 다 알고 계시고, 만일 그가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있으면. 다른 것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 기도했던 작은 일들이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고. 속담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작은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에게 멋진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Ⅱ.사무엘의 불발된 계획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런 징조가 이루어지거든 너는 길갈로 내려가서 칠일 동안 나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무엘도 길갈로 내려가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이 왕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10:8절)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그런데 성경에 보면. 사울이 이런 징조가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서도 길갈로 내려갔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울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사울이 길갈로 내려갔던 것은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2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는데, 그때야 비로소 사울은 길갈로 내려갔고, 사무엘은 일주일 만에 오기는 왔지만,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사울은 사무엘 없이 자기가 제사장의 일까지 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화를 내면서 *왜 당신은 제사장이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렸느냐?*고 하니까 사울은 *당신은 일주일이 되어도 오지 않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블레셋 군대는 몰려오니까 내가 부득이해서 먼저 제사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무엘은 사울에게 *왜 당신은 조금을 더 기다리지 못하느냐? 당신이 조금만 더 하나님을 기다렸더라면, 당신의 나라가 길었을 텐데. 당신이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버릴 것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징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서도 길갈로 가지 않고. 자기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울은 사무엘의 징조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울은 자기가 선지자들 사이에서 은혜를 받고. 예언했다가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는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후면. 있을 수 있었던 사울의 왕위식이 불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징조나. 사울이 은혜 받은 것이 아무소용 없게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사울이 집에 가니까 삼촌이 *너는 도대체 어디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삼촌에게 *암나귀들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사무엘을 만나고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10:14절)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사울은 자기와 사환이 암나귀를 찾으러 갔다는 것과 사무엘을 만났다는 말만 하고, *사무엘이 자기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징조가 이루어지고. 자기가 선지자들 사이에서 황홀경에 빠졌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신중한 사람이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촌이 미리 사람들에게 이 말을 퍼트려서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제비를 뽑아서 왕을 세우려고 하는데, 삼촌이 먼저 선수를 쳐서 *내 조카가 왕이라*고 떠들어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이런 징조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사무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길갈로 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순간부터 *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야하고,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하시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징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고. 선지자의 무리와 춤을 추고. 예언했던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인간적으로는 참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영적(靈的)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Ⅲ.하나님의 틀림없는 계획
사무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마스바에 모으고. 왕을 뽑는 작업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을 뽑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잘못한 것을 책망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오른손은 홍해를 가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원수의 압제에서 건져내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믿지 못하고, 인간 왕을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왕이 없으면. 너무나도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에게 고정된 수입이 없으면,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불안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함으로 가장 크게 손해 본 것은 역시 하나님의 *한 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의 가치(價値)를 깨닫고, 출애굽의 위대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한 방*으로 적(원수)을 부수어 버리십니다.
마치 *질그릇을 쇠몽둥이로 부수듯이 부수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의 *한 방*을 포기하고. *인간 왕을 가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쇠몽둥이를 버리고. 질그릇 항아리를 가지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사울 단 한 사람이 *왕으로 뽑힐 가능성은 제로(zero)*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이스라엘 백성만 해도 열두 개 지파가 있습니다. 사울은 그 지파 중에서도 *별 볼 일 없는 베냐민 지파의 집안*이었습니다. 즉 사울은 *왕으로 뽑힐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뽑힌다고 해도 다른 큰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말을 들을 리*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을 뽑는 일에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먼저 사무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리더(leader)가 될 만한 사람들 천 명씩을 뽑아서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들 만 이천 명이 모였습니다. 물론 사울은 거기에 들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왕을 뽑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유다 지파도 아니고, 에브라임 지파도 아니고, 단이나 납달리 지파도 아니고,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그다음에 베냐민에서 나온 천 명 중에서 제비를 뽑으니까 마드리 집안이라는 이름 없는 집안이 뽑혔습니다. 그중에서 뽑으니까 기스의 집이 뽑혔고. 또 제비를 뽑으니까 천 명 중에는 들지도 못했던 사울의 이름이 뽑혔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남자들 중에는 *사울*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사울의 이름을 부르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사무엘이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사울이 왕으로 뽑혔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울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사울이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0:22-23절)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컷더라.”
사울은 자기가 도저히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짐 꾸러미 사이에 숨어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제비로 뽑고서도 그를 찾지 못할 정도로 그는 겸손(謙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사울이 이렇게까지 왕이 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자신 없어 했는데, 이것이 과연 그의 *겸손이냐?, 아니면 불신앙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것과 너무 지나치게 자신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마저도*불신*하는 것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강해 설교로 집중적으로 전하는데도. 셀(cell)가족 공동체 리더(leader)를 *못 하겠다*는 듯 왜 계속 침묵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가페 성경을 보면 골2:18절)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겸손도 했었지만 불신앙도 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표가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사울은 도망갈 생각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울을 소개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신 자를 보라.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사람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20센티 이상 더 컸습니다. 이 왕의 선출의 공정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출방법이나 뽑힌 왕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왕 선출의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즉 이런 소극적인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전쟁에서 이기게 하겠느냐? 하면서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예물도 바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지파에서 왕으로 미리 찍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불량배라고 불렀는데,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반대하고 인정하지 않는 부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사울을 왕으로 뽑기는 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모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즉 기름을 부어도 어렵고, 징조가 나타나도 어렵고, 황홀경에 빠져도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작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것을 봐야 합니다. 겸손한 것은 좋지만, 너무 지나치게 자신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2월 *영적 성숙의 달*부터는 각 셀(cell)공동체 리더(leader) 중심으로 충성된 주님의 군병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 리더(leader)1명을 뽑아 *필수과목*을 필하고,예배 인도 등 본원과 계속 소통해야만 거짓과 가짜가 판치는 악한 세상 안전할 수 있습니다(직분자 임명도 동일합니다).
※성경연구원 건물을 구입하여 금년 후반기부터 양육과 성례전을 할 수 있도록 적극 기도와 관심을 가집시다. 찬송가 353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
※ 매일 새벽과 저녁에 기도할 때. 반드시 ▽ 아래 3가지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求)합시다.
요16:23절)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求)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셀(cell)공동체
Ⅰ.열방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Ⅱ.동탄에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금년 설립할 동역자 위해
Ⅲ.신실하고 충성된 후임자와 일꾼들을 보내주시기 위해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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