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12월23일
드라이브하다 우연히 만난 기쁨
얼마 전 보령에 다녀왔다. 딱히 목적지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드라이브 삼아, 제철 만난 서해안 굴
맛도 보고, 예쁜 여행지 구경도 하고, 새로 만든 해저터널에는 뭔가 신기한 게 있을까? 확인도 해 보고,
그리고 해저터널에서 연결되는 안면도로 해서 돌아오는 심플한 루트였다. 그런데 보령 초입에서 만난
카페 보령 우유창고가 기대 이상의 큰 기쁨을 주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풍경을 오늘의 그림으로 만드는
주인장이 있다.
동물 복지에 신경 쓰는 목장…카페 우유창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카페 우유창고’를 보고 흥분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낙농 산업의 큰언니쯤 된다는
보령우유를 생산하는 개화목장의 일부가 알록달록 재미있는 우유곽 그림으로 변신했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에
즐겁게 웃었던 기억도 있다. 보령시 최북단 지역인 천북면을 지나는 40번 국도를 가운에 두고 한쪽에는 카페를
포함한 ‘체험 공간’과 목장이, 길 건너에는 카페 ‘밀크스토어하우스 MILK STORE HOUSE’가 있다. 이곳은
동물 복지를 기본으로 하는 목장 체험 프로그램과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이곳을 단박에 좋아하게 된 이유는
수채화로 변신한 목장과 카페 공간, 동물 복지에 방점을 찍은 체험 프로그램 운영 방식 때문이다. 우유창고의
체험 프로그램에는 몇 가지 유익한 원칙이 있다. 첫째, 동물 복지의 원칙이다. 젖소에 올라타거나 젖 짜기 등
젖소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일체의 스킨십을 배제한다. 둘째, 체험에 사용되는 아이스크림, 치즈 등의
원료는 질 높고 신선한 재료들만을 사용한다. 셋째, 참가자들이 함께 만들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체험 활동
을 통해 우유, 특히 유기농 우유를 쉽고 흥미롭게 이해하는 생활 지식을 공유하도록 한다. 이런 체험은 단순
히 낙농뿐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할 모든 건강한 먹거리 문화 정착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카페 우유창고보령우유 물류 트럭의 외관 수채화에 젖소 그림 대신, 초지와 멍멍이가 뛰어노는 그림이 들어간
것을 보면 이 목장의 푸근한 세계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크리스마스와도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체험 프로그램은 시간대 별로 주제가 바뀌는데, 오전 10시30분에는 목장을 구경하고 젖소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을 통해 스킨십 없이 젖소와 교감을 나눈다. 12시30분에는 목장 체험의 필수 코스인 버터 만들기를 통해, ‘
좋은 버터’의 기준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으로 배울 수 있다. 오후 1시30분에는 오전 10시30분에도 운영하는
목장 체험과 건초 주기에 참여할 수 있다. 오후 2시30분에는 카페 우유창고의 인기 상품인 아이스크림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오후 3시30분에는 역시 목장 체험의 인기 프로그램인 치즈 만들기가 열린다.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보령우유 웹사이트에 들어가 예약을 하면 된다. 어린이 유아의 경우 보호자 동행이
필수이며 프로그램별 체험비는 참가자 모두에게 부과된다.
카페 우유창고
천북에서 맛 본 생생한 겨울 제철 맛 ‘굴’
천북면은 보령시 최북단 지역이다. 해안도시인 천북면에 눈이 내리면 동네 아재들은 야상에 소주 한 병, 작은
칼 하나, 식성에 따라 초장 한 병 들고 갯벌로 달려 나갔다. 갯바위에 지천으로 널린 석화를 따서 굴을 빼먹는
즐거운 마을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말이다. 천북면 아재들에게도 눈 내리는
갯벌에서 석화를 따 먹는 일은 그해 겨울 잊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억되곤 했다. 그 맛과 낭만이 소문나면서
천북변 사람들은 물론 옆 마을 사람들도 석화 따먹기 원정에 나서곤 했다. 굴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천북면은 본격적인 굴 마케팅을 시작했다. 마을 사업으로 수산물을 공동으로 양식하고 판매하는 영어(營漁)
조합을 만들었고, 홍성 방조제에서 이어진 천북면 장은리 마을은 굴을 중심으로 가리비, 소라, 낙지 등 겨울철
대표 수산물의 성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장은리 바닷가에 가면 ‘천북굴단지’가 있는데, 100여 곳의 굴 전문점
에서 굴구이, 굴찜, 생굴, 굴물회, 굴무침, 낙지탕탕이, 굴칼국수, 굴라면, 돌솥영양굴밥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영어조합에서 공동 생산하는 상품이다 보니 표준 가격도 공개되어 있고, 영양, 맛 또한 거의 평준화되어 있다.
단, 장, 조리법, 양념 등은 식당의 특성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가격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굴은 11월
부터 2월까지를 맛과 영양의 피크라고 말하곤 하지만, 현지인들 꿀팁에 따르면 12월 말일 쯤이 굴의 씨알도
굵고 향기도 좋아 식욕을 돋구는 시기라고 한다. 그 씨알과 맛은 2월까지 유지되며 현장, 또는 인터넷을 통해
석화, 깐 굴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겨울 최고의 맛 천북굴! 겨울이 가기 전 실컷 먹고
즐겨 보자.
위치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천북굴단지 돌솥영앙굴밥(아래)
오래 전 세상과의 만남
썰물 때 맨삽지(밤섬)이 드러나며 공룡 발자국 화석도 관찰할 수 있다.이곳의 공식 명칭은 ‘보령학성리공룡발
자국화석단지’(2019년 5월30일 충청남도 기념물 지정)이다. 보령시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에 가면 지구의 신비
로움 몇 가지를 경험할 수 있다. 첫째, 달의 중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지구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썰물과
밀물 현상이 그것이다. 만조(밀물) 때는 바다 수위가 올라가고, 간조(썰물) 때는 드넓은 갯벌이 바다의 평야가
되어 여행자들을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이런 ‘바다 갈라짐 현상’은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과 남해안 서쪽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공룡발자국화석단지의 두 번째 신비로움은 간조 때 바닷물이 밀려나가면
그 갯벌 지역의 맨삽지(밤섬을 말한다. 이곳은 육지와 약 160m 떨어진 작은 섬이다)가 드러나며 공룡 발자국
화석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공룡 발자국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가 ‘에계?’다. 만화에서 흔히 보았던
공룡의 발을 상상하며 날카로운 자국이 선명한 화석을 기대했겠지만, 이 발자국이 형성된 시기는 중생대 백악
기로 지금부터 8600만 년 전부터 8400만 년 전의 일이다. 그 세월이 지나면서 발자국은 풍화와 퇴화를 거듭
했고 결국 두루뭉술한 형태로 남게 되었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공룡발자국화석(사진 문화재청)가장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움푹 파인 바위 표면을 보며 의문과 연구를
거듭, 8600만 년 전의 공룡 발자국임을 밝혀내는 연구의 출발을 알리고 실천한 교사 정풍희 씨의 지식과 상상
력, 그리고 지적 뚝심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학성리 공룡 관찰과 사진을 찍어두는 일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8600만 년 전 흔적을 발견한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움푹하게 파였다고 그게 전부 공룡 발자국 화석
이라고 볼 수도 없다. 공룡발자국화석단지에서 공룡 화석으로 확인된 자국은 현재 13개체(직경 20~30㎝,
113㎡)이며, 나무 화석도 함께 발견되었다.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는 맨삽지(밤섬)에서는 수많은 지질을 확인할
수 있고 퇴적의 특성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보령학성리공룡발자국화석단지를 백악기 퇴적층의 축소
판으로 보는 게 대세이다. 공룡발자국 화석 단지는 밤섬 안에 있는데, 밤섬은 간조 때만 들어갈 수 있다. 갯벌
이 평야가 되면 밤섬과 육지가 연결되는 바다 갈라짐 지역 육지 쪽 입구에 공룡과 똑같은 사이즈의 인조 공룡
세 마리가 물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흥분하게 하는 이 공룡들은 각각 루양고
사우르스, 프로박투르사우르스인데, 세 마리 모두 실제 크기를 재현했다. 보령학성리공룡발자국화석단지는
만조과 간조 시간을 절대적으로 파악하고 가야 하며, 충분히 보고 싶은 사람은 물이 빠진 직후 들어가 밀물이
시작되기 이전에 빠져 나오는 게 좋다.
위치 충남 보령시 천북면 학성리 산 45
조용히 즐기자, 검붉은 서쪽 하늘
대천해수욕장의 붉은 노을대천해수욕장은 해운대해수욕장, 경포대 해수욕장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대형 해수
욕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대천해수욕장은 머드축제가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성장하면서 축제 기간에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다. 이들은 갯벌 단지 안에서 온몸을 갯벌에 던져 미끄러지고 구르며 비벼
대며 천진난만한 시간을 즐기곤 한다. 그리하여 대천해수욕장은 여름 머드 축제는 물론 가을, 봄, 그리고
겨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즐거운 사계절 놀이터가 됐다. 여행자가 몰리는 에너지의 힘을
받아 보령시에서는 대천해수욕장 일대에 해변조각공원과 산책길을 조성, 방문객들로 하여금 문화적 만족도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스카이바이크는 차가운 겨울바다의 짜릿한 바람을 즐기는 사계절 인기 놀이 시설이다.
대천해수욕장에서는 2022년 12월23일(금)부터 12월25일(일)까지 3일 동안 ‘대천겨울바다사랑축제’를 연다.
축제의 주제는 ‘바다·빛 그리고 사랑’. 대천겨울바다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빛 조명과 연인과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지는데, 야간경관시설 ‘빛의 로맨스’, 로맨틱포토사진관, 로맨스라이브, 1박
2일 로맨틱 투어, 크리스마스 해상불꽃쇼 등이 준비된다. 공식 페스티벌과는 별도로 12월17일부터 2023년
1월29일까지는 머드박람회장 솔밭에서 야간 경관 쇼가 펼쳐진다. 야간 인생샷을 노리는 사람들의 모습 자체
가 좋은 풍경이 된다.
대천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새 서해안 보령시는 붉은 노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날이 밝은 초저
녁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해수욕장은 붉은 노을과 어우러지며 점점 침묵의 바다로 변신해갔다. 바다를 가로
질러 달리는 어선, 시뻘건 태양, 회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검붉은 밤하늘이 여행자들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보령 겨울바다 여행은 보령해저터널로 자동차가 들어가면서 완전히 막을 내렸다. 보령해저터널은 이미 알려
진 바 그대로 터널 자체가 여행을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순전히 원활한 교통을 위해 건설된 기능성 터널
이었다. 단지 터널이 바다를 가로지른다는 사실이 새로울 뿐이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깊은 밤에 휩싸인
안면도 소나무숲길이 등장한다.
하루를 꽉 채운 보령 겨울바다 여행. 보고, 먹고, 즐길 거리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모든 걸 가질 순 없다. 여행
이든 재물이든, 사랑이든 아침엔 눈 뜨고 일하고, 밤이 내리면 조용히 성찰하며 뿌듯한 표정으로 잠드는 것이
본질이리라. 천북굴단지의 식당 주인장들이, 8600만 년 전 공룡들이, 목장의 젖소와 일꾼과 카페의 바리스타
들이 그랬던 것처럼. 종일 여행이 몰두했던 우리도 이제는 돌아가야지, 집으로.
-대천해수욕장 공영제1주차장: 보령시 신흑동 1441
-대천해수욕장 제3공영주차장 전기차충전소: 보령시 신흑동 2285
-여객선터미널 주차장: 보령시 신흑동 2242
-보령해저터널 보령시 쪽 입구 위치: 보령시 오천면 77번국도 대천해수욕장 지점
글 이누리 사진 안동수(다큐PD), 문화재청
첫댓글 보령겨울 바다 여행 정보 감사합니다.
많이 도움되었어요.
보령 해저 터널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