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강팍’하다고 하는 말의 정확한 철자는 원래 “강퍅”이고 개역개정에서는 “완고”고 바뀌었습니다. 영어로는 ‘딱딱하다’의 뜻을 가진 hard로 번역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굳은’이라고 번역된 적도 있습니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마음이 곧 말씀을 심는 밭인데 딱딱하게 굳어 있으니 씨가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완고한 마음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며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탄이 쉽게 말씀을 앗아갑니다. 이 설명도 언뜻 보면 이해력이 없어서 말씀을 빼앗기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이해력이 없는 원인이 바로 완고(hard)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완고하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길 가에 대한 각각의 복음서들의 설명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마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막 4: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길’은 보통의 밭에 비해 딱딱하겠죠. 그러니 완고한(hard) 마음에 대해 비유하기에 딱입니다. 씨가 땅을 뚫고 들어가지 못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으니 새들이 쪼아 먹기도 좋고요.
또 한 가지 문제는 번역입니다. 번역을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두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이해하다’의 영어는 ‘understand’인데, 이게 이해하다 보다는 좀 더 넓고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저는 지나친 의역을 피해 되도록 손대지 않고 원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편이라 understand를 그냥 ‘이해’라고 번역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understand한다’고 하면 ‘이해’보다는 ‘묵상하여 깨닫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계시가 되었다'는 뜻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understand에다가 ing를 붙인 understanding은 구약에서는 ‘명철’이라고도 번역이 되었고 신약에서는 ‘마음’이라고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understanding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 뜻을 이해해 보려고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까지 저의 설명과 또 평소 제가 번역의 문제를 자주 언급하는 것을 들으시고 오히려 성경을 읽을 때 의심이 더 생기셨을 수도 있는데 성경을 제 아무리 원어로 읽는다고 해도 애초에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정확하게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기로 하셨을 때 일정 정도 한계를 감수하셨다고 봅니다. (= 제 생각) 그래서 이런 정황을 모르고 번역된 글귀를 맹신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인간의 언어와 번역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지적인 이해가 아닌 성령의 조명으로 깨닫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는 것은 말씀이기에 우리가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고 따져 보면서 말씀에 집중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들여다 보는 그 말씀만 조명해 주실 수 있으니까요.
정말이지, 말씀을 마음으로 받는 이 과정을 씨와 땅의 협력으로 비유하신 것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씨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고 땅은 땅에 심긴 그 씨를 엄청난 크기로 증식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씨 혼자, 또는 땅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