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은 권력의 또 다른 모습이다
《말과 사물》과 더불어 계보학으로 이전하기 이전인 고고학의 시기를 대표하는 또 다른 저작인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1961)의 결론 또한 자연스럽게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에서 푸코는 광기의 고고학을 추적한다. 여기서 푸코는 광기란 서구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타자로서 출현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서구 사회의 질서가 이성에 기초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광기라는 타자가 반드시 필요하였음을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다. 광기의 역사를 밝힌다는 것, 즉 광기의 고고학은 결국 이성의 타자로서 광기가 어떻게 정립되어 왔는가를 밝히는 것과 동일하다.
여기서 그는 서구의 최고 가치인 이성이 지닌 억압적 성격을 폭로한다. 중세 시대에도 광기는 비난받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자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서조차 광기는 아이러니하지만 고상하기도 한 이성의 예외적인 형식으로 간주되었다. 말하자면 근대 이전에는 광기에 대해서 두렵기도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병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1656년 파리에서 병원이 설립되고, 18세기 말에 이르러 윌리엄 튜크(William Tuke, 1732~1822)와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이 미치광이 해방을 위해서 특수시설을 설립한 순간 이러한 병존의 시대는 끝나고 만다. 왜냐하면 푸코가 고전 시대라고 부르는 바로 이 시기에 광기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치료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정신병을 다루는 학문의 탄생과 맞물려 있다. 여기서 광기는 이성의 타자로서 철저하게 배격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성은 이러한 타자를 철저하게 억압하고 배제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광기의 역사》에 나타난 광기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이성의 엄청난 폭력적 권위를 파헤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미 권력의 분석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보자면 푸코의 고고학이 계보학으로 확장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실제로 《감시와 처벌》에서 밝히고 있는 권력 작용의 변천은 《광기의 역사》나 《말과 사물》에서 나타난 시기적 분류와 거의 일치한다. 여기서 푸코는 앎의 의지와 관련하여 특정한 복종양식이 어떻게 인간을 대상으로 한 과학적 지식의 담론으로 생산되는가를 계보학적으로 밝힌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 의해서 실행된 인간주의적인 감옥 제도이다. 그리고 이는 군주의 절대 권력으로부터 훈육에 의한 권력으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계몽주의 시기 이전에 처벌은 매우 끔찍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끔찍한 공개처형 중 하나가 푸코가 소개한 다미앵의 사례일 것이다.
루이 15세의 하인인 다미앵은 국왕 살해를 시도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파리 성당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했다. 그는 셔츠만 걸치고 2파운드의 무게가 나가는 불타는 양초 횃불을 든 채로 이륜마차를 타고 그레브 광장으로 끌려간다. 그곳에 세워진 교수대 위에서 가슴과 팔,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의 살점들은 발갛게 달구어진 집게에 집혀 떨어져 나갔고, 그가 국왕을 살해하려고 했을 때 칼을 잡았던 오른손은 황산으로 태워졌다. 바닥에 떨어진 살점들 위에는 용해된 납과 끓는 기름이 부어졌고, 황산과 불타는 송진과 양초 및 황산 혼합액으로 다시 태워진 다음 사지는 말에 묶여 찢어졌다. 다시 그의 사지와 몸뚱이는 화장되어 재가 된 후 바람 속에 날려 보내졌다.
이러한 끔직한 처벌은 계몽주의 시대의 박애주의와 함께 사라지고 태형이 아닌 회개를 위한 감옥이 등장한다. 하지만 인간해방이라는 고귀한 이상의 근저에서 계몽사상은 전통사회에서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전방위적인 통제가 가능한 ‘도덕기술’을 개발하였다. 이제 처벌이 아니라 훈육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사실 형벌제도를 개혁하고자 한 계몽주의적 개혁가들은 형벌의 양을 줄이기보다는 형벌을 더 효과 있게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가혹성은 완화시키되, 형벌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높여 처벌 권한을 사회 내에 좀 더 깊숙하게 집어넣기를 원했던 것이다. 감옥은 교도소 혹은 회개소가 된 것이며, 처벌은 훈육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여기서 푸코는 그 유명한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팬옵티곤(panopticon)’을 거론한다. 벤담의 팬옵티곤은 널리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흥미롭게도 팬옵티곤의 상징적 의미는 팬옵티곤의 본래 기능이 실패할 경우 더욱 잘 드러난다. 가령 경험적으로 볼 때도 훈육을 목적으로 한 감옥제도는 범죄를 예방하거나 범죄자를 교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사실상 감옥제도는 성공한 것이다. 훈육의 당위성은 일탈의 범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갱생이나 교화 대신에 사회적 악을 양성하는 이러한 감옥제도는 규범과 도덕적 지식이라는 규율의 보편화를 통해서 권력과 지식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푸코는 감옥제도가 범죄를 억제하거나 범죄인을 교화하기보다는 그것을 구분하고 배분하여서 이용하는 데 활용되며, 범법을 체계화하고 유형함으로써 형벌체계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벤담의 팬옵티곤.범죄자를 교화하기 위해 감옥을 만들었지만 감옥의 당위성은 오히려 일탈이 많아지는 데 있다. 푸코에 따르면 감옥제도는 범죄자를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화하고 유형화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상과 비정상, 위생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이성과 광기의 구분은 그 자체가 권력의 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한 권력은 반듯하게 격자 모양으로 구획된 도시의 공간 자체에서도 끊임없이 행사되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학문의 체계에서도 작동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훈육은 권력의 또 다른 모습이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