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롬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롬 16: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롬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롬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롬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롬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롬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롬 16: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롬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롬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롬 16: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롬 16: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롬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롬 16: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롬 16: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롬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요절 :
“(롬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준비찬송 : 23, 35, 186, 190, 257, 268, 350, 355, 544
기도 : 성령님!!! 이 시간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제목 : 동역자
‘동역자’라는 단어는 영어로 Fellow worker 즉 ‘함께 일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 명사 ‘쉬넬고스’ 입니다. 이것은 ‘주역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보다 높은 목적 달성을 위해 협동하여 일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와 익은 열매라는 신앙의 목표를 위해서 애써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심경을 이 단어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이 말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기신 분들에게 나의 동역자라고 함부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장성한 겨자나무에 깃든 새떼라는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고 삶이 새롭게 변화 받는 귀한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PART I. 동역자의 의미(롬 16:3,9,21)
먼저 동역자의 다양한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영문 KJV에 보면 크게 세 가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동역자는 ‘돕는 자 즉 helper’ 의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3, 9절의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우르바노가 바울의 helper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24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기쁨을 돕는 ‘돕는 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 23절을 보면 디도도 고린도 교회를 돕는 helper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요한도 요한 삼서 1장 8절에 가이오를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 즉 helper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롬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고후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후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요삼 1:8)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Helper 즉 도우미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면 ‘행사 안내를 맡거나, 남에게 봉사하는 요원으로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처음 쓴 말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20년이 돼 가는 지금 현재 한국 사회는 도우미 시스템이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산후도우미, 육아도우미, 가사도우미, 행사도우미, 외국인도우미, 웨딩도우미, 독서도우미, 다운로드도우미, 청소도우미 등 너무나 많은 종류의 도우미 시스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2000년 전부터 Helper 시스템을 구원과 성화에 적극 활용했던 사도 바울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UBF 선교 단체 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가정을 개방해서 후배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교제도 하면서 그들을 양육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가정을 개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물질이 없는 후배들에게 몰래 장학금을 준다든지 아니면 방을 얻어 준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서 또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후배들은 베이비 시터를 통해서 자녀가 있는 분들이 일대일 혹은 그룹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혹은 모임이나 전도를 할 수 있도록 그 자녀들을 돌보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귀한 시간을 내서 선배들의 자녀들을 보수 없이 돌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런 Helper들을 들어 쓰셔서 성서 한국과 세계 선교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복교회는 성도님들이 더욱 최선을 다해서 교역자를 섬기고 교역자도 하나님과 성도님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으로 쌍방간의 도우미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매우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되겠습니다. 가정 개방과 베이비 시터 같은 다양한 도우미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밑거름도우미, 진리증거도우미, 전도도우미, 예배도우미, 물질도우미, 환경도우미, 안내도우미, 봉사도우미, 구제도우미, 선교도우미, 기도도우미, 관리 도우미 등 다양한 도우미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도우미 시스템을 통해 교회가 고린도 교회처럼 기쁨이 넘쳐야 되고 성경의 핵심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함으로 더욱 많은 영혼들을 구원과 성화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복교회가 다양한 도우미 시스템이 정착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지교회간 Helper 시스템도 가동되어야 합니다. 지교회의 임직예배나 사경회 그리고 부흥회가 있을 때 기도와 참여로 도와야 합니다. 어떤 분은 그것을 어떻게 다하느냐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박희진 목사님을 통해 감동을 받습니다. 그 분은 거의 지교회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박희진 목사님과 함께 금주에 은총교회 사경회, 도내동 교회 심령 부흥 사경회 전도를 함께 했는데 은총교회 성도님들과 강사님들이 얼마나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도내동 교회는 전도를 통해 막혔던 하수구가 뻥 뚤리는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개교회의 문제도 뛰어 넘지 못하는데 지교회까지 신경쓰기가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시돈 땅 사렙다 과부에게 임한 기적이 일어날 때임을 믿어야 합니다. 지교회들이 서로 상생하는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복교회가 지교회간 Helper 시스템을 가동함으로 살아나는 기적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지교회와 공동체간 Helper 시스템도 가동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공동체의 행사가 너무 많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지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교회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지교회 중심의 선교 단체 경험과 밝은 빛 공동체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마지막 때 사명이 있는 우리들은 더욱 공동체 중심이 되어야 함을 말씀 드립니다. 따라서 1년 2차 대사경회는 필수로 하고 나머지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교회 부흥과 성도님들의 헌신과 영적 성장은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지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교회가 부흥되어 부교역자를 세우고 전임 전도사를 세우고 다양한 교역자들을 세워야 지교회와 공동체 모두가 상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앞으로 성복교회 가운데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교회와 국가의 Helper 시스템도 가동되어야 합니다. 국가를 위해 중보 기도의 Helper가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0년 공동체의 회개 금식 성회를 받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북한의 도발을 막으시고 성도의 기도를 통해 또한 동일한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보 기도 Helper 시스템의 위력인 것입니다. 이번에 달 형제님의 간증을 통해서 전세계 경제적 어려움을 위해 중보 기도 Helper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 자신이 북한과 전세계를 위해 중보 기도할 때 진한 간절함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복교회도 이제는 중보 기도의 Helper 시스템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선교의 Helper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합니다. 전주 안디옥 교회를 개척하셨던 이동휘 목사님은 개척 초기부터 교회 재정의 60% 이상을 선교비로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그랬을 때 바울 선교회를 통해 놀라운 세계 선교 역사를 이룰 수 있었으며 교회도 든든히 세워져 갔다고 간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때가 되면 세계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땅끝 선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성복교회도 이제부터라도 세계선교를 위한 후원의 Helper 시스템이 가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둘째, 동역자는 ‘(특정한 종류의 일을 하는)노동자 즉 worker’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21절에서 디모데를 복음전파의 worker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4장 11절을 보면 유스도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롬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골 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교회시대 초기 네 천사가 바람을 붙잡고 있는 동안 구원받은 이방인들의 수가 충만하게 채워지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교회 시대 마지막에 성복교회를 통해 동일한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 복음전파의 worker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진리와 은사로 양 날개 쳐야 합니다. 예배, 성경의 핵심 진리 증거, 일대일과 그룹 성경 공부, 소감 등을 통해 진리로 한 분 한 분들이 든든히 세워져 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한 신유, 예언, 계시, 방언 등 다양한 은사 활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월요일은 공용복 선생님 육성 강의실과 성경 공부, 화요일은 성령 집회, 수요일은 주일 예배 소감 발표, 목요일은 전도 집회, 금요일은 철야 기도와 찬양 집회, 주일날은 노방 전도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 할 수 없는 분도 계십니다. 최선을 다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선교와 목회를 고민하고 있을 때 목회를 하도록 계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목회를 상징하는 파란 깃발과 선교를 상징하는 노랑 깃발을 주시면서 원하는 깃발을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파란 깃발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파란 깃발을 흔들라고 명령하셨고 제가 흔드는데 좌우로 흔들 때마다 빛 줄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을 옭아매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흔드는 모습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장면 후에 제가 강을 한참 가다 중간쯤에서 노를 멈추더니 오래 전에 하얀 종이에 싸서 품 속에 보관한 뭔가를 꺼냈는데 그것은 선풍기 씌우는 망처럼 생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던지라고 명령하셨고 저는 그 망이 너무 작은지라 예수님이 실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얼마나 커지나 보자는 식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던졌을 때 그것은 고무줄처럼 늘어나서 강에 넓게 드리워졌습니다. 망 속에는 여러 마리의 물고기들이 보였고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간수한 게 다행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천국 갈 때까지 간수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고기가 입을 벌리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전도사님 저 같은 물고기도 잡히잖아요.’ 저는 속으로 목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구나. 내가 이 일을 하다 하나님 나라 가야겠구나 그러면서 계속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장면 후에 이전의 양광석은 죽고 새로운 저는 로봇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였는데 그러다가 마지막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동쪽에다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집을 세워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밝은 빛 가운데 생활 하면서 마태복음 4장 19절 말씀처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밝은 빛 어부가 되어 사람을 낚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 worker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셋째, 동역자는 ‘(특히 옥외에서 단순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 즉 labourer’의 의미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을 보면 바울과 아볼로가 하나님의 labourers 입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을 보면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수고한’ labourer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4장 3절을 보면 바울은 부녀들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리고 글레멘드 등이 자신의 labourers 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 즉 자신의 labourer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빌레몬서 1장 1절과 24절에서 바울은 빌레몬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를 자신의 labourers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살전 3: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몬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몬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labourers 중 유오디아 순두게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가에대해서 바울은 사도행전 15장 38절에서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마에 대해서는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의 내용을 볼 때 수도선교의 귀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영성 생활이 뒷받침 되지 않는 labourer는 믿을 수 없고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이진복복음선교회의 태승철 목사님,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님을 보십시오. 음란 때문에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분들 뿐이겠습니까? 우리도 성무일과와 회칙 중심의 영성 생활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고 위험한 labourer가 될 수 있습니다. 성복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바울, 아볼로, 에바브로디도, 디모데, 아리스다고, 누가와 같은 좋은 labourer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PART II. 익은 열매된 바울의 동역자 (롬 16:7,21)
먼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입니다. 다같이 7절을 합독 하시겠습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어떤 분들입니까? 첫째, 안드로니고는 헬라식 이름으로서 황족 중에서 발견됩니다. 이 이름에는 ‘승리자’의 뜻이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유대인 성도였습니다. 유니아는 로마식 여자 이름으로서 이 이름의 부인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같은 장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족 이름에 흔히 이런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인이라는 가능성이 짙습니다. 따라서 유니아는 아마 안드로니고의 아내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둘째,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이스’는 문자 그대로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로마서 9장 3절에서처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골육’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셋째, 이분들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된 자’란 뜻입니다. 이분들이 바울과 함께 언제 감옥에 갇혔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마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입니다.
넷째, 이분들은 사도들 중에서 유명한 특출한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합될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위의 내용과 더불어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말씀을 통해 바울보다 먼저 하나님의 생명이 합일된 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디모데 입니다. 성경의 핵심 진리 “교회 시대의 이긴자들”에 보면 디모데가 익은열매 되신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로마서 16장 21절을 합독 하시겠습니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디모데는 ‘하나님을 공경함’, ‘하나님의 영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디모데의 출생지는 더베인지, 루스드라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부친은 헬라인이고, 모친은 유니게라는 기독교로 개종한 경건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외조모 로이스도 그 집에 동거하여 그는 신앙이 돈독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행 16:1,20:4,딤후 1:5). 디모데도 훌륭한 인물들의 예에 빠지지 않게 모친의 좋은 감화를 많이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구약성경을 토대로 신앙을 키웠으며, 사도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 갔을 적에 디모데의 모친과 외조모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었는데, 디모데도 그때 주를 영접하고 새로운 신앙을 이행할 수 있는 연령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도 회심했을 것입니다(행 14:6,22,고전 4:14-17,딤후 1:5,3:11).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까이 하였으나(딤후 3:15), 할례는 받지 않았습니다(행 16:3). 청년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칭찬받는 자가 되었습니다(행 16:2).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AD 50년 경)에서 다시 남갈라디아 여러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는 디모데와 친교하면서 그의 사람 됨됨을 확인하고 전도여행의 동반자로 하려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그때 디모데가 그 지방에서 좋은 본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행 16:2). 사도행전 16장 3절에 디모데가 직접 전도사업에 동참하여 일할 때, 유대인의 반감을 살 것을 염려하여 할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디모데는 특별한 봉사를 위해 택함을 받았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딤전 1:18,4:14). 그리하여 바울은 전도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장로들과 더불어 안수하고, 그를 그 때문에 성별했습니다(딤전 4:14,딤후 1:6). 그 후 그는 바울을 따라 갈라디아에서 드로아, 빌립, 데살로니가, 베뢰아로 갔습니다. 디모데와 실라는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 베뢰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행 17:14). 바울은 그들에게 속히 아덴으로 오도록 연락했습니다(행 17:15).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3장 1-2절에 의하면,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돌려보냈으므로,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기까지는 같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행 18:5,살전 3:6). 이리하여 디모데는 바울과 더불어 고린도에 체재하였습니다(살전 1:1,살후1:1). 다음에 그의 이름을 보는 것은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서 "이 편지를 쓰기 전에 고린도에서 볼 수 있는 악폐(惡幣)를 고치기 위해 디모데를 거기 보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린도전서 16장 10절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인지 디모데는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는 에베소에 돌아온 듯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 직전, 디모데와 에라스도는 먼저 마게도냐에 가서(행 19:22) 거기서 바울은 곧 디모데와 합류했기 때문입니다(고후 1:1). 이리하여 그들은 같이 고린도로 갔습니다(롬 16:21). 또, 디모데는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의 동행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행 20:4).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까지 갔는지 어떤지는 불명합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의 옥중에 있을 때, 로마로 가는 항해에 그가 동행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로마에서 쓴 서신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빌 1:1,2:19-22,골 1:1,몬 1:1). 바울이 석방된 다음은 그전보다 더 중요한 책임을 디모데에게 맡긴 것 같습니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책임을 맡은 모양입니다. 청년 디모데에게 그것은 곤란한 임무였습니다(딤전 4:12). 그는 거짓 교사들과 싸우며, 임원을 임명하고, 교회의 규칙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디모데의 지위는 사도 대리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가 그 직무에 대한 특별한 편지를 쓴 것도 이상스럽지 않습니다. 바울은 순교 직전 디모데에게 최후의 편지(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고독하게 죽음을 안전에 둔 노사도는 그의 ‘아들’이 빨리 와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습니다(딤후 4:9,21). 확언할 수는 없으나, 디모데는 바울이 순교하기 전에 그에게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 밖에 디모데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것은 히브리서 13장 23절입니다. 그 성구에 의하면, 디모데는 옥에 갇혔다가 다시 석방된 듯합니다. 그는 바울과 더불어 한 때 옥고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 또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이었습니다. 그의 말년에 대해서는 분명치는 않으나, 전설에 의하면, 에베소의 감독이었던 그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Titus Flavius 51- 96)나 네르바(Nerva, Marcus Cocceius 30- 98)가 로마 황제 때에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에 대해서는 바울의 생애와 관련해서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나, 바울에게 있어서는 실로 좋은 동역자였으며 위로자였습니다. 바울이 전도자로서의 디모데를 얼마나 신임하고 있었는지는 빌립보서 2장 19절 이하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인 에배네도와 그의 영적 부모와 같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도 익은 열매된 바울의 동역자로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사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가는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가 더 필요한 만큼 참고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론의 말씀은 6,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심고 물을 주는 수고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마리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6장 21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나의 동역자 디모데’ 했던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불러 주실 것입니다. 한 주간 주님께서 찾으시는 복음 전파의 동역자 되시고 일평생 수고와 사랑을 계속해서 행함으로 마침내 익은 열매의 동역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 “주님!!! 우리 모두 복음 전파의 동역자, 익은 열매의 동역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