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튤립대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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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굉장히 좋은 일거리를 얻었다.
우연히 본 신문의 구인구직란에서 찾은 이 보모 일거리는
라일라라는 작은 소녀의 옆에서 그녀의 수발만 들면 끝이었고,
심지어 보수는 최저임금의 두 배였다.
특히나 내가 이 곳이 마음에 든 이유는
이력서에 제대로 한 줄 적을 것조차 없는
나의 신분과 경력을 모두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주말과 매달 9,10일의 휴가 외에는
그녀에게 24시간 붙어있길 원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집에서 살다시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예 내게 방 한 켠을 내준다 하여
일이 시작되기 전 모든 짐을 옮길 예정이다.
휴일에는 값싼 싸구려모텔을 가면 그만이다.
매우 귀찮고 번거롭지만 이 도시의 미친 집값과 물가를
생각하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라일라를 만날 날이 매우 기대된다.
이 멋진 행운이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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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의 집에 들어가기 전 필요한 물품을 샀다.
이제 잔짐만 정리하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틀어놓은 라디오로 몇 가지 뉴스가 지나갔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몇백억을 증여하는 재벌가의 이야기,
12번가에서 일어난 작은 추돌사고,
다음 주 날씨에 대한 시시콜콜한 내용 등.
그다지 뉴스를 즐기진 않지만
티비가 없기에 라디오라도 틀지 않으면
집 안은 너무 적막하다.
그래도 라일라의 집에 가면 당분간은 사람사는 소리가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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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보모로 일한 지 한 달째가 되어간다.
여전히 라일라는 나를 끔찍히도 싫어한다.
처음 근무를 시작한 일주일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부모가 적어놓은 이상한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이 사실이었다.
그녀는 식사시간이 되면 그 작은 몸 어디에서 힘이 나는지
어어-소리를 내며 먹기를 거부했다.
억지로 먹이다가 치아가 듬성듬성 빠진 그녀의 입에 물릴 뻔 한 적도 있었다.
또한 내 짐을 창문으로 던지려해 문에는 강력한 잠금장치를 달았으며,
시도때도없이 화를 내거나 주먹질을 해댔다.
물론 그녀는 매우 작고 마른 체구의 아이였기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내가 막기에 무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진땀을 빼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잠금장치를 달기 전까진 밤마다
시도때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 내 머리를 때리곤 했다.
가끔 머리카락을 뽑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건 제법 아팠다.
그러나 체력이 약하단 말은 사실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안 먹는데 건강할 리가 없다)
식사 시간과 가끔 내게 못된 짓을 할 때가 아니면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때는 내가 잘못된 일거리를 택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익숙해지니 나름 할 만하다.
기왕이면 라일라가 나를 좀 마음에 들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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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의 혀는 매우 짧다.
그녀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원인일 것이다.
자주 집을 비우는 그들의 부모를 어쩌다 마주쳐
한 번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본적이 있는데 그들은 매우 불쾌해하며
10번 조항을 기억하라고만 한 뒤 집을 나갔다.
당분간은 이 망할 호기심을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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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이 집은 으리으리한데 이상하게 와이파이가 안 된다.
데이터 자체가 안 터지는 모양이다.
돈 아낀다고 2G폰을 사용하고 있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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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최근 며칠 동안 라일라가 최악의 금식투쟁을 벌였다.
그녀는 이제 주사기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억지로 밀어넣은 음식물을 모두 토하기까지 했다.
이건 도저히 내가 혼자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부모에게 SOS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에 부모가 집에 귀가했고, 그녀는 수액을 맞으며
여러가지 훈계를 들은 모양이다.
휴일이 지나고 다시 본 그녀는 놀랍게도 식사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야채와 과일 몇 개를 소량 섭취하는 정도지만
그녀에게 있어 장족의 발전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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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가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며 울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녀의 발가락이 있을 양말 위 쪽으로
새빨간 피가 범벅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벗기는 걸 강력히 거부했다.
결국 부모에게 말하고 진통제와 항생제를 주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요새 자꾸 찝찝한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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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는 여전히 우울한 아이였고,
때때로 자해를 하긴 했지만 내게는 다소 마음이 열린 모양이다.
그녀는 이제 곧잘 내게 다가와 머리를 기댔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손짓을 했지만
그것은 5번 조항에 위배되기때문에 나는 매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풀이 죽은 그녀가 안쓰러워 거리의 꽃을 꺾어다 준 적이 있는데
라일라는 매우 환하게 웃으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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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의 보모로 일한 지 어느새 넉달이 되어간다.
그 사이 그들의 부모는 차를 두 대나 더 샀다.
차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매우 비싸고 멋진 차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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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젠장,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이번 주말에 묵은 친구네 집 근처에 맛있는 푸딩가게가 있어
라일라와 함께 먹을 생각으로 샀는데 그게 유리병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그것은 일반 우유병에 담긴 푸딩으로, 아주 연한 우유푸딩이라
잘못보면 그냥 우유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라일라는 이 푸딩을 우유로 착각했다.
그녀는 내 손에 든 푸딩을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포효했고,
얼마 안 있어 쓰러졌다. 그나마 부모가 부엌에 있던 것이 다행이였다.
그들은 즉각적인 처치를 시행했고, 라일라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바로 해고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주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내 잘못이었다. 라일라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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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의 집은 상당한 고급저택으로
개인 수영장과 헬스장에 목욕탕까지 있는 집이다.
카페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커피머신과 와인이 가득한 와인냉장고.
없는게 없는 그녀의 집에 유일하게 없는 것은 컴퓨터와 티비 정도일까?
때문에 습관적으로 바깥 세상 소식을 알기위해 라디오를 튼다.
오늘 내용도 시시하기 그지 없다.
한 셀럽 부부의 불륜 사실이나,
어느 재벌가 자식의 심장이식 수술이 결정되었다든가,
태풍 피해로 인한 과일 가격의 상승이라든가.
어쨌든 나와는 관계없는 일들이었다.
(과일 역시 잘 사먹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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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이번 휴일에는 라일라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그동안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삶이라
건강검진은 커녕 병원도 제대로 가보지 않았는데
(물론 이것은 감사히도 내가 워낙 건강체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그 얘기를 들은 라일라의 부모님이
비용 일체를 지불할테니 한 번 다녀오라 한 것이 계기였다.
그들은 건강검진 결과서만 자신들에게 보여달라고 했다.
가급적 심신건강한 보모가 좋지 않겠냐는 이유였다.
역시나 이상소견은 전혀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게 이 건강함만은 감사해야겠다.
X월 X일
갑작스런 해고통보를 받았다.
일전의 푸딩사건이 있은지 두 달이 지난 후였고,
그 이후 이렇다 할 사건은 없었다.
이미 집도 정리한 마당에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나?
물론 그런 고민을 하기 전에 그들은 내 편의를 보아
2주의 시간을 주었고, 퇴직금을 두둑히 챙겨주기로 하였다.
굉장한 혜택이었기에 (거절할 위치도 아니었거니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더욱 수긍한 이유는 나의 해고가 라일라의 치료를 위함이기 때문이었다.
라일라는 다른 나라의 저명한 의료진에게 어렵게 치료를 받기로 해 빠른 시일 내로 출국해야 한다고 했다.
라일라와 함께 하며 든 정은 나도 모르게 그녀의 건강을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다.
남은 시간을 라일라와 좀 더 충실히 보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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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라일라는 그 날 이후 부쩍 밥을 잘 먹었다.
이제는 매번 식사시간에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얼굴도 제법 밝아졌다. 그녀의 기분은 그녀와 만난 이래 가장 좋아보였다.
마지막 근무 전 날 라일라는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둔 작은 편지를 건냈다.
그녀는 편지봉투에 반드시 내일 혼자 읽을 것! 이라는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적혀있었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가리키며 눈에 힘을주는 라일라가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맞추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부디 그녀가 건강을 되찾아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그동안 라일라를 잘 돌봐줌에 감사하며
부모가 내게 저녁식사를 권해서 이만 써야겠다.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내겐 좋은 일터였다.
마무리까지 잘 끝낼 수 있도록 행동과 말에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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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오, 시발. 살려주세요.
여기에 모두 적기에 시간이 없다.
라일라가 왜 나를 내쫓으려 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라일라의 편지를 내 일기장 맨 끝에 동봉한다.
누구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911에 신고해주세요.
내 이름은 이든 J. 비네트입니다.
라일라는 그들의 자녀가 아닙니다.
반드시 우유병을 조사해주세요.
라일라의 편지를 꼭 읽어주세요! 모두 사실입니다.
라일라는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우리를 살려주ㅅ
첫댓글 꺄아악 후속작이야???선댓후감
헐???라일라가 뭔가 비정상적인 존재인가했는데 부모가 흑막이야?????
장기이식을 위해 납치한건가 이든은 왜지
갹 너무재밋어 라일라의 편지도 궁금해요ㅜ
재밋당
호 꿀잼 흥미진진 더줘어어어
헐 존잼 대박
와씨 편지!! 편지!!!
우유가 프로포폴인가??
재벌가 자식의 심장이식….? 혹시?
라일라 불쌍해ㅠㅠ
헐 뭐지????!!
갸아아악 뭐야!!!
헐 너므궁금해 우유병이뭔데 대체..라일라한테 아주 안좋은거 뭔 약이라 이런걸 강제로 먹였어서 라일라가 그걸보면 막 발작일으킨건가??
우유에 부식하는 성분이 있나?? 아니다 이빨은 그냥 말을 못하게하려고 뽑은거겠지...?끔찍해ㅠㅠㅠ뭘까 다음편 너무 궁금해!!!!
다음글 원츄!!!!!
와 부모가 쓴 조항보고 읽으니까 더재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ㅁ뭐야 보모 살려줘유 ㅠㅠ
뭐야 빨리 더줘요ㅠㅠ
여시 넘 대단하다 재밌게 잘 읽었어 !
하 존나 재밌어…..
헐 우유에 약탄건가?
헐 장기매매인가봐
꺄아아악 뭐지 꼭 공포영화보는거같아
재밌다
혀가 매우 짧다고 한 거 보니 잘랐나봐ㅠㅠ 금식투쟁하고는 발가락 잘렸나보다ㅠㅠ
보고 나니 전편이 있었잖아! 보고오면 이해가 더 잘되려나
건강검진 너무나 심장이식... 우유는 대체 멀까
헐
헐 뭐야뭐야
헐 치아가 빠져있다니 ㅠㅠ 근데 부모는 왜 혀 짧은 이유 물었는데 불쾌해하지 지들땨문인가 ㅡㅡ 라일라 꽃에 웃으며 우는 거 보면 나쁨 애는 아닌거 같은데 ㅜㅜㅠ
헐 마지맏 미친
ㅁㅊ 너무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