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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글쓰기 Re:겉으로는 남북국, 속으로는 통일신라
라이센스 추천 0 조회 230 07.06.24 12:19 댓글 2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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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6.24 13:28

    첫댓글 별 문제 없어 보이는군요. 우선 고.백의 멸망당시 발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삼국의 통일이란 표현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이후 약 30년 후 발해가 건국되며 그때부터 남북국시대가 전개되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고.백 유민들이 나당전쟁에 참가했으니 왜 그걸 서술안했냐고 하시는데 이건 좀 트집같아 보이네요. 신라까지 탐한 당과의 일전을 결심하고 실제 전쟁에서 승전하여 민족의 근거지를 지켜낸 신라의 공은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는거죠. 너무 신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것 같은데 왜 그런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우려스럽군요. 또 김춘추의 구걸외교라 하는데 생존을 위한 외교죠.

  • 작성자 07.06.25 03:53

    생존을 위한 피할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극단적인 예로들어보겠습니다.. 나라가 멸망하는것도 극단적이니.한번 써보겠습니다.. 전교 1등을 시샘한 전교2등이 자신이 1등이되기위해 전교1등의 옥상에서 밀어서 떨어지게한다음..자신이 1등먹는.. 2등이었던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대학을 가기위한 생존을위한 선택이었지만 이것은 결코 약육강식의세계에서 약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라는것입니다

  • 07.06.25 08:42

    그렇다면 라이센스님은 신라가 당시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그냥 백제나 고구려에게 영토 돌려주고 옛날의 그 약하디 약한 소국으로 돌아가서 고구려나 백제에게 빌빌 대는 거나 아니면 어익후 '후대의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고구려나 백제에게 그대로 멸망해주는 것이 그것이 올바른 선택입니까? 고구려와 동맹 맺으려고 했는데도 거부당한 상태에서 신라가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님이 예로 든 것은 생존을 위한 예가 아니죠

  • 07.06.25 08:44

    나라가 멸망하느냐 마느냐하는 거하고 전교 1,2등의 다툼하고 같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썼으면서 왜 신라가 취한 행동이 약자가 할 행동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라고 보는데요? 약육강식. 이름 그대로 강한자가 약한 자를 먹는 겁니다. 신라는 자신보다 강한 자인 고구려에게 청병외교를 취했다가 실패했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강한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고구려 멸망의 주축은 당이지만)을 쳐냈습니다. 약한 신라가 오히려 전세를 역전시켜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중에는 당까지 쫓아냈습니다만

  • 07.06.25 11:49

    옳은 것과 필요한 것을 종종 혼동하곤 합니다. 라이센스님도 혼동하시는 것 같군요. 당시 신라의 선택은 민족적 관점에서 옳은 일은 아니었을지언정, 신라 자신에게는 꽤나 필요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 07.06.24 13:31

    김춘추, 김유신같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신라는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민족의 터전과 역사의 계승을 단절없이 이루어 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신라는 절대 님이나 님같은 분들에게 욕먹을 역사가 아닙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역사인데 철없는 사람들이 신라를 욕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없을 때가 많습니다.

  • 작성자 07.06.25 03:45

    자부심이 아니라 수치심을 느낍니다.. 여전히 韓민족패배주의만 느껴질뿐입니다.

  • 07.06.25 08:51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했다고 해서 우리가 후대에 사대외교를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님은 극히 일부만의 모습을 보고 패배주의를 운운하는 것 같습니다.

  • 07.06.25 12:00

    국가가 국가로 존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이긴 자에게 칭찬을 하고 진 자에게 욕을 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삼국 말기에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사건은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유감이고 안타깝지만, 그에 대한 1차적 비난은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양국에 돌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키고 영토를 확장한 나라와 제 나라도 지키지 못한 나라 중 누가 비난받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고구려/백제 멸망이 안타깝다면, '신라 나쁜놈' 보다는 '왜 고구려와 백제가 어이없이 무너졌는가, 국가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가' 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비난의 대상이 될 개인을 찾는다면, 김춘추

  • 07.06.25 12:01

    보다는 연남생을 꼽아야 합니다. 자기 나라를 지키려고 당에 간 김춘추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당에 간 연남생 중 누가 배신자겠습니까?

  • 07.06.24 14:23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신라 무열왕 김춘추를 비하하는 쪽은 구걸외교라고 폄허하지만 정상적인 용어로는 "청병외교"이지요. 결국은 성공시켰으며. 그렇다고 신라가 땅한치라도 당나라에게 넘기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국가보다 배이상의 영토를 확보하였으며, 나머지는 발해가 고스란히 차지하였으니 결국은 당나라만 엄청난 출혈을 하고도 땅 한치도 못건진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 된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지배하지도 못할 이웃나라를 패망은 시켰으나 그 후손들이 다시 고스란히 찾았으니 당나라만 멍청하게 된 실속없는 그리고 신라는 짭잘하게 확실히 실속을 챙긴 전쟁사일뿐입니다.

  • 작성자 07.06.25 03:48

    신라가 당을 이용했다고 아직도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신라가 당을 이용한것이라면 당은 왜 동맹국의 땅에다가 도독부를 설치했을까요? 결국은 한반도에 제일 세력이 약했던 신라를 이용하여 한반도-만주-요동 일대의 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신라를 중국의발아래 두기위해 중국이 신라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인정하지않으시는지요;; 어떤분은 신라의 통일이 1500년 사대외교의 물꼬를 텄다고말씀하시기까지합니다.. 물론 1500년 내내 사대외교를 펼친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사대외교였으니..

  • 07.06.25 08:47

    계림도독부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것은 당나라의 뻥포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당을 끌어들인 신라가 영토를 1g이라도 당나라에게 넘겨주었습니까? 그리고 당은 한반도나 만주 내에서 자신들이 흘린 피만큼에 해당하는 영토를 얻었습니까?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당나라는 혼자 헛짓거리 한 것입니다만 -_ -;; 그래고 한반도에 제일 약한 신라를 이용해서 당나라가 결국 한반도와 만주, 요동 일대에 자신의 세력권을 확보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만

  • 07.06.25 11:56

    신라가 당을 이용하려 한 것처럼, 당도 신라를 이용하려 한 건 당연한 겁니다. 국제정치는 '국익' 을 기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지요. 외적으로는 고구려-백제에 대응하여 신라와 당이 연합해서 대립했으면서도, 내적으로는 신라와 당끼리도 또 대립하는 면이 있었지요. 이게 국제정치의 기본입니다. 이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랍니다. (한국과 미국도 중-북에 대응하는 동맹관계라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을 수 있을 때에는 철저히 이용해 먹습니다. 우리도 미국을 이용해 먹고자 하다가 꼬리가 밟힌 사건 중 하나가 코리아게이트 사건이었지요.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고)

  • 07.06.24 14:24

    "소요자"님께서 워낙 공감이 되는 내용으로 잘 설명된 답글이라 저로써는 별다른 사족이 필요없군요!....^^*;

  • 07.06.24 22:14

    그렇죠. 닭 쫓던 개꼴이야 말로 당나라에게 당시로선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 작성자 07.06.25 03:26

    모자란 지식으로 한번 반박해보겠습니다.. 겉보기엔 고-백이 망하고나서 30년후에 발해가 건국되었으니 남은건 신라뿐..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 처럼 보이죠 통일이란 한 국가의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문화와 영토지배권을 포괄하여 모두 자국의 세력으로 포섭했을때 쓰는게 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제 나름대로는 백제통일까지는 인정합니다. 백제의 전 영토와 문화권과 백성들,, 빠짐없이 신라의 영역안으로 편입되었으니말이죠.. 하지만 고구려의경우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똑같이 멸망했는데 뭐가 다르느냐..고 물으신다면

  • 작성자 07.06.25 03:30

    고구려의 유민들이..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다수의 유민들과 말갈인들은 만주와 요동지방을 근거지로 계속해서 대당항쟁을 하며 굳건히 버텨왔습니다..물론 당의 탄압도 심했지만 그렇다고하여 당에 완전히 복속되어 당의 신민이 된것도 아니였고, 지속적으로 저항하면서 나름 반당세력을 형성해나가다가 성립된게 발해라고 알고있습니다 참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오로지 신라만을 중요시여겨왔기때문에 발해를 소홀히하는경우가 매우많습니다..

  • 작성자 07.06.25 03:34

    물론 백제도 대당항쟁을 하며 지속적으로 항전해왔지만. 신라의 영토내로 완전 복속이되었기때문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되기전까지는 신라의복속이되있는 백제,, 즉 백제통일이 인정되는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애시당초 신라는 고구려의영토는 관심이없었기에 백제통일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니 고구려의영향력은 당나라가 쥐고있었으니 신라는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를 쓸 자격이 못됩니다. 고구려의 영토와 문화권이 모두 신라의 소유가 되지 못했기때문입니다..백제는 그와 달랐기때문에 인정하는것이구요. 고구려와 백제를 동일시보시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07.06.25 08:49

    고구려에 대한 영향권을 진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는 왜 계속 서쪽으로 이동했을까요?

  • 작성자 07.06.25 04:01

    정리하자면 신라가 복속한 범위는 백제영토내 그쳤으니 백제통일까진 인정할 수 있지만, 고구려의 영토는 당나라에게 영향력이 있었으므로 신라는 고구려땅을 취하지못하였으므로 삼국통일은 인정할 수 없으며 차라리 어거지로 불완전한삼국통일이니 영토가축소됐니 이런식으로 갖다붙이지말고 소위말하는 삼국통일신라를 과감히 버리고 북한처럼 전기신라와 후기신라로 깔끔하게 구별하였으면 합니다,, 내친김에 북한처럼 민족의 최초통일을 고려로 보는게 합당하다는것이 저와 같은 의견입니다.. 아 그리고 꼬릿말쓰실때.. 문답형보단 단답형으로 써주셨으면합니다..학생이라 글을 보고 쓸시간이 많지않아서..

  • 07.06.25 09:51

    라이센스님 특히 우리 고대 삼국사를 너무 단편적으로 그리고 간단하게 보고 결론 지우시면 아니됩니다.매우 복잡하고 어려워 전문 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은 논란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개인적인 견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방적으로 단정하기에는 보다 많은 연구와 다양한 사료들을 교차 검증하시면서 이해를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 07.06.26 02:19

    라이센스님, 저는 삼국 모두를 애정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고구려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크고, 그 다음엔 백제, 신라 순입니다. 저도 '통일 신라'라는 용어는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정확하게 따져보자면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려 삼국 통일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삼국 통일을 해서 '통일 신라'로 존재한 기간(한민족이 세운 정권이 신라 하나였던 시기)는 668~698년까지 30년간입니다. 그 이후로는 남북국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지요.

  • 07.06.26 02:24

    확실히 통일 신라 시대가 200~300년씩 이어지는 것과 30년에 불과한 것은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예전에 라이센스님과 같은 입장에서 신라를 비난했던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신라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 했으며 백제와 고구려가 내부 분열로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한 셈이니 신라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안타깝다면 오히려 통일 후에 연호를 다시 사용하거나 보다 더 자주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당의 주변 국가로서 만족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발해 역시 자주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고구려처럼 동아시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굳이 신라에서 비난하자면

  • 07.06.26 02:23

    인명과 지명을 모두 당나라식으로 바꾼 경덕왕을 비난하고 싶습니다. 당시 신라의 위상이나 국제 정세로 보아서는 연호도사용하고 보다 더 자주적으로 나갔어도 되었을 텐데 당의 주변 국가로서 자족하고 특히 발해 건국 전에 평양 경영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대동강 이남의 국가로 자족하고 만 것은 신라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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