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그런 날, 그런 때가 있다. 믿었던 이들 다 떠나고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있는 그런 소외감,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던가. 상실(혹은 소외나 배신)의 경험은 인간에게 내면으로만 꽁꽁 잠가버리는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며 차갑게 정지된 사물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다시 일어설 기력마저 앗아가 현실 세계를 겉돌게 하던 아픈 상흔이 내게도 있다. 파란 신호등 하나 찾지 못해 비탄과 자학으로 멀어버렸던 두 눈의 기억을 소환해본다. 어떤 노래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던 이방인 같던 그런 나를 정작 이해해야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한참을 방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시인의 심상을 다독거리듯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화자가 ‘파랑 없는 길은 또 어려웠네’ 라고 고백하는 것은 이미 극복해낸 길이었으므로... 그 어떤 상실의 아픔마저도 詩로 버무려낼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