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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4일 오후 충북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부인 유순택 여서와 함께 참석했다.(왼쪽) 반 전 총장은 이날 고향인 충북 음성을 찾은 데 이어 오후엔 충주로 이동해 모친에게 큰 절을 올렸다. 한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문익환 목사 23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문 전 대표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도식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뉴시스]
대선 유력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본격 행보에 들어갔다. 유엔 사무총장 재임 10년 동안 국내 활동이 거의 없었던 만큼 취약점인 대중적 저변을 넓히는 데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귀국 사흘째인 14일 고향인 충북 음성을 찾은 반 전 총장은 성묘 후 고향 주민들에게 귀향 인사를 한 뒤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인 음성 꽃동네로 발길을 옮겼다. 오후엔 충주로 이동해 모친에게 인사한 뒤 충주시민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올겨울 가장 추운 날씨에 꽃동네 관계자들은 장작이 타고 있는 드럼통 주변에 모여 반 전 총장을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요양 중인 고령의 노인들과 인사를 나눈 반 전 총장은 먼저 관계자들에게 “제가 와서 불편을 드린 건 아닌지”라고 양해를 구했다. 46년간 몸에 밴 외교 매너에서 나온 의례적 인사일 수도 있지만 이후에도 노인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계속 등을 구부리는 등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귀국 다음 날인 13일부터 이틀간 반 전 총장을 동행 취재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봤다.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마친 뒤 오찬 장소로 이동한 김치찌개 집에선 그의 직업 정치인 같은 순발력이 눈에 띄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테이블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그러자 반 전 총장은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조리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20·30대 젊은 층 6명과 자리를 함께한 그는 김치찌개가 끓자 30대 직장 여성에게 “레이디 퍼스트”라며 직접 떠주기도 했다. 대화가 시작되자 청산유수였다. 청년실업 문제를 화제로 삼은 반 전 총장은 “창업할 때 조심해야 하는 ‘데스 밸리(death valley·자금 가뭄에 시달리는 창업 3~4년차 시기)’를 막아주는 게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육아 문제에 대해서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출산휴가로 일주일을 썼다는 말을 듣고 우리 남자들이 좀 시니컬해 했다”며 “나중에 보니 서구에선 남편도 출산휴가 가는 게 보편적이더라. 육아는 공동이라는 게 국제적 수준인데 느끼는 게 얕았던 거다”며 경험담을 들려줬다. 식사 말미엔 “유엔 사무총장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러다 기회가 열린다. 자신이 생기면서 계속 기회가 열리는데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기회가 올 땐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전에는 주로 듣는 스타일이던데 청년들 앞에서 그렇게 말을 많이 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귀국 후 사흘간 반 전 총장이 가장 많이 한 행동 중 하나는 어린아이를 안아주는 것이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강행군 일정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힘을 내비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엔 수장으로 10년간 정상 외교에 나선 경력답게 눈을 맞추고 적당한 높이에서 손인사로 답하는 등 대중적 스킨십에 익숙한 모습도 보여줬다. 메시지 또한 ‘돌직구 화법’을 즐겨 쓰며 “몸을 불사르겠다”거나 “청년들의 길잡이가 되겠다”는 등 정치적 수사를 자주 동원하곤 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협상 합의에 대한 평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했다.
이처럼 정치 현실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지만 ‘정치인 반기문’의 앞길엔 혹독한 검증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분석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3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은 유엔 대변인 명의로 성명까지 내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여전히 불씨가 살아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한 시사주간지가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반 전 총장 측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의혹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기자들과 문답할 때도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박연차씨가 금품을 전달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왜 내 이름이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 진실에서 조금도 틀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에선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것이란 얘기마저 돌고 있는 실정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4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할머니에게 죽을 떠먹이고 있다. [뉴시스]
반 전 총장의 장남 우현씨가 2011년 SK텔레콤 뉴욕사무소 직원으로 채용될 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업계 안팎에서는 ‘반 전 총장에게 SK텔레콤이 일종의 보험을 든 게 아니겠느냐’는 의혹의 시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과 SK텔레콤 모두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반 전 총장 귀국을 하루 앞두고 동생 반기상씨와 그의 아들 주현씨가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된 것도 악재다. ‘비선 실세’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현실에서 반 전 총장도 친인척과 측근 관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인사에서 “깜짝 놀랐다. 가까운 가족이 연루된 것에 당황스럽고 민망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아는 게 없었다. 장성한 조카여서 사업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반 전 총장의 귀국에 맞춰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지지 그룹’들의 교통정리도 시급한 과제다. 그동안 물밑 그룹은 크게 외교관팀·MB팀·충청팀 등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이와 함께 자가발전식 자생적 조직들까지 난립했지만 컨트롤타워 없이 뚜렷한 역할 분담도 이뤄지지 않은 채 백가쟁명식 경쟁을 벌이면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의 국내 활동이 시작되면서 일단 마포팀으로 불리는 지원 조직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도운 마포팀 대변인은 “내가 전하는 말이 반 전 총장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총괄은 김숙 전 유엔대사가 맡는다. 김봉현 전 호주대사(총무), 곽승준 고려대 교수(정책), 이상일 전 의원(정무), 이 대변인(공보), 김홍일 전 대검 중수부장(네거티브 대응)에 최형두 전 국회 대변인, 박수영 전 경기부지사, 이병용 전 총리실 정무실장, 김정훈 유엔SDGs 한국협회 대표 등이 가세했다. 반 전 총장은 마포팀이 자리 잡은 건물에 집무실을 둘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공식 출마 선언 이후 캠프가 커질 경우다. 출신과 경력이 다양한 여러 그룹, 특히 외교관 그룹과 정치인들 사이에 접점이 별로 없다 보니 주도권 갈등과 알력이 분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캠프 내부에서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대선주자 반기문’의 리더십에 대한 또 다른 시험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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