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를 바꾸고 있는
'새로운 어른'이 궁금하다
지금 일본에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중·노년이 주목받고 있다. 보통 나이가 들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소비를 줄일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새로운 어른(新しい大人)’은 이런 편견을 과감히 깨버린다. 이들은 은퇴 후의 삶을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한다. 젊었을 때 동경했던 고급 바이크 ‘할리 데이비슨’을 구입하기도 하고, 비용이 1인당 500만 원에 가까운 호화 크루즈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어른들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어른’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초고령사회 일본을 흔들어놓을 만큼 잠재력이 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어른’의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세계적인 광고회사 하쿠호도(博報堂) 본사를 찾아갔다. ‘새로운어른문화연구소(新しい大人文化硏究所)’의 사카모토 세쓰오 총괄프로듀서를 만나기 위해서다. 사카모토 총괄은 ‘새로운 어른’을 정의하고, 이들의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초고령사회 일본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어른들. 이들의 등장이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여러 궁금증과 기대를 안고 하쿠호도 본사 로비에 들어섰다.
'새로운 어른', 과거의 노인들보다 긍정적이고 문화 친화적
과거의 노인과 다른 '새로운 어른(新しい大人)’의 출현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일본은 지난 2006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초고령사회는 힘없는 노인들로 가득찬 시들시들한 사회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 초반부터 중·노년의 삶을 꾸준히 지켜봐온 나는 통념대로 노인들이 활력 없는 모습으로 전락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계기는 2000년경 실시했던 설문조사였는데, 조사 결과 50대 이상의 미디어 활용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새로운 문물에 뒤처지고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노인이 아닌,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하고 미디어를 즐기는 새로운 중·노년층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중·노년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이들이 ‘변화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게 됐다. ‘새로운 어른’ 역시 변화의 관점에서 그들의 삶을 분석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개념부터 얘기해보자. ‘새로운 어른’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새로운 어른’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 후반기를 새로운 시작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긍정적이다. 예전에 중·노년들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2003년에 단카이 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남에게 들어서 기분 좋은 말로 ‘생기발랄하다’, ‘센스가 좋다’를 응답한 비율이 높고, ‘성숙한 사람이다’를 꼽은 사람은 드물었다. 그후에 이뤄진 조사에서도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새로운 어른’은 또한 인생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다. 예전의 시니어, 중·노년들은 50대 이후가 되면 ‘절반쯤 포기’하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소위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새로운 어른’은 마음속에 ‘몇 살이 되더라도 젊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이에 맞게 사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하면 50, 60대의 80% 가까이가 그렇게 응답한다. 50세가 넘어서면 직장에서 물러나고 자녀들도 독립해 나간다. 또 건강에는 적신호가 들어온다. 이런 상황 자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중·노년들이 이 상황을 ‘인생 내리막길의 시작’이라 보았다면, ‘새로운 어른’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풀어가려 한다.
‘새로운 어른’은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를 말하는 것인가?
‘새로운 어른’은 사고방식, 문화, 소비 양식에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경향을 보이는 중·노년층을 지칭한다. 지금 60대 초·중반인 단카이 세대는 그 특성상 ‘새로운 어른’에 가깝다. 이들이 청소년일 때 남자의 장발(長髮), 청바지, 미니스커트가 등장했고 포크송이나 비틀즈 같은 해외 문화도 들어왔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수가 많은 만큼 단번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들이 만든 청소년 문화는 이전 세대와 전후 세대를 구분하는 분수령이 됐다.
‘새로운 어른’의 시초가 되는 단카이 세대는 노인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단카이 세대 이후 중·노년에게서 나이 들어 활력 없고, 돈 쓰는 데 인색하며, 새로운 문화와 문물에 뒤처지는, 흔히 알던 그런 노인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들은 선호가 분명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더 좋은 것, 더 좋아하는 것을 산다. 자신의 시간을 즐기며,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것에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새로운 어른', 저축보다 투자에 적극적
'새로운 어른'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떠한가?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다.
먼저 여행시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어른’의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여행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노년층이 은퇴 후 삶을 즐기려고 할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이 ‘여행’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JR규슈의 호화관광 열차 ‘세븐스타스 in 규슈’는 ‘새로운 어른’의 니즈를 잘 공략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규슈를 둘러보는 이 크루즈 열차의 1인당 비용은 48만 엔(약 462만 원)에 이르지만 예약 경쟁률이 30 대 1에 달한다. 열차 여행자의 평균 연령은 52세다. 최근 호쿠리쿠 신칸센 개통 이후 주목받고 있는 여행지인 가나자와는 50, 60대 여성들이 친구끼리 함께 가는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시간과 돈이 있는 중·노년층이 제2의 인생을 즐기고자 여행길에 나서면서 JR규슈를 비롯한 일본 철도회사 수익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새로운 어른’ 중에는 은퇴한 후에 다시 기타를 치려고 악기점에 가서 ‘마틴’이나 ‘깁슨’ 등 30만 엔 이상의 고급 기타를 사는 사람도 있고, 은퇴 후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기자 과거 동경의 대상이었던 100만 엔 넘는 ‘할리 데이비슨’을 사는 ‘리턴 라이더’도 등장했다. 고급 바이크가 잘 팔리면서 제3차 바이크 붐이 일어날 정도다. ‘새로운 어른’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가 많지만 마음은 젊은이들이며, 은퇴 후 다시 시작하는 삶에 주저하지 않는다.
'새로운 어른'이 향유하는 문화가 있다면?
‘새로운 어른’은 그야말로 문화 친화적이며, 음악은 이들을 관통하는 코드다. 40~60대에게 ‘구조조정’, ‘엔고(円高) 불황’ 등 세태를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를 주고 ‘자기 세대를 표현하는 말’이 무엇인지 선택하라고 한 적이 있다. 60대는 포크송과 비틀즈를, 50대는 사잔 올스타즈와 마쓰토야 유미를, 40대는 B’z를 꼽았다. ‘새로운 어른’은 음악과 관련된 단어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단카이 세대 이후 일본 주류 음악은 가요와 트로트에서 팝과 록으로 변모했다. 이런 문화적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에 ‘새로운 어른’은 자부심을 느낀다. ‘새로운 어른’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며, 이들의 콘서트는 요즘도 성황을 이룬다.
문화 영역 외에 '새로운 어른'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새로운 어른’은 기존의 중·노년 세대와 다른 경제관을 갖고 있다. 특히 저축, 투자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다르다. 70대 이상은 기본적으로 퇴직금을 받으면 무조건 저축으로 쌓아두었다. 일본의 1800조 엔에 달하는 개인 자산이 거기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단카이 세대에게 퇴직금 사용처를 물어봤더니 반은 저축을 하지만, 나머지 반은 투자, 소비, 대출 상환에 나눠 썼다고 응답했다. 단카이 세대는 투자에 적극적이다. 이것이 아베노믹스의 뒷받침이 되기도 했다. 50대에서 40대로 갈수록 투자 마인드가 확산되는 경향이 있고, 이들로 구성된 새로운 어른은 돈을 불리기 위해 투자를 하고, 불린 돈은 쌓아두기만 하지 않고 활기찬 삶을 위해 여행, 취미를 위해 과감히 쓴다.
'새로운 어른'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생겨난 배경은 무엇인가?
사회적 배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살아온 시간은 여성의 주체성이 강화되고 유교문화의 영향이 약화된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태어난 단카이 세대와 그 이전 세대는 인종이 다르다고 비유할 만큼 다른 세대다. 현재 70대 이상인 단카이 세대 윗세대들은 중매로 결혼을 했고, 단카이 세대부터 연애결혼이 대세가 되었다. 결혼 방식의 변화는 여성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연애결혼이 보편화되면서 여성들은 결혼 상대방을 고르는 데서부터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여성, 아내의 주체성이 생기며 ‘친구 같은 부부’가 출현했고, 이 경향이 확산되면서 친구 같은 부모, 친구 같은 가족이 등장했다. 이와 더불어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힘을 잃으면서 중·노년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미덕에 변화가 생겼다고 본다. 성숙하고 나잇값을 해야 하는 웃어른이 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활력 있는 초고령사회의 열쇠 '크로스 제너레이션'
'새로운 어른'의 문화나 소비양식이 일시적인 유행이거나, 특정 세대에 국한되는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새로운 어른’의 문화와 이들이 만드는 시장은 10~20년 동안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40~60대가 초고령 일본 사회의 중핵으로 자리 잡는 시간이다. 구체적인 문화 현상이나 소비 트렌드는 바뀌더라도, 그 저변의 ‘새로운 어른’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새로운 어른’ 문화는 이미 중·노년만의 문화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더 어린 세대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융화됐다.
'새로운 어른'문화가 더 어린 세대에게 융화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준다면?
유명 배우이자 희극인인 기타노 다케시는 올해 70세가 되었지만 요즘도 그가 나와야 TV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사잔 올스타즈 출신의 구와타 게이스케도 6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활동 중인데 그의 음악은 20, 30대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어른’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 롤링스톤스 콘서트는 50, 60대와 젊은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함께 즐겼다.
'새로운 어른'에게 초고령사회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앞서 소개한 사례에서 보듯 ‘새로운 어른’의 소비는 이미 여행,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어른’ 세대의 특징인, 좀 더 젊게 살고자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사회를 더욱 활기차게 변모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어른’은 간병이 필요한 상태가 되기 전에 미리미리 건강을 잘 관리한다거나, 사회적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나 수혜자가 되기보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행하는 주체가 되려 한다. 이들은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새로운 어른'의 잠재력을 더 잘 발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환경이나 노력해야 할 점이 있다면?
‘크로스 제너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어른’과 젊은 세대의 공존, 공조(共助)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어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젊은 세대를 지원할 수 있다면 일본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이 많은 여성이 젊은 여성의 육아를 지원하거나 중·노년 선배들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의 창업을 돕고, 프리터족과 니트족의 취업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2년 ‘고령사회 대책 대강(高齡社會對策大綱)’을 개정했다. 이를 통해 고령자를 ‘지원 받는 쪽’에서 ‘지원하는 쪽’으로 여기는 의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말했듯 ‘새로운 어른’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고 사회에 공헌하길 바라며, 젊은 세대들과의 교류를 지향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새로운 어른’ 세대로부터 젊은 세대를 지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이끌어내는 정책이 필요하며, 젊은이들과 만나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지금 일본은 ‘새로운 어른’의 출현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적극적인 활동은 침체됐던 소비시장을 되살리고 있고, 중·노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허물어 젊은 세대와 공유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새로운 어른’의 활약은 초고령사회 일본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과는 대략 15~20년 정도의 시차가 존재한다. 2026년이면 우리나라도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에서 등장한 ‘새로운 어른’은 미래에 한국 노인들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긍정적이고, 문화 친화적이고, 투자에 적극적인 ‘새로운 어른’의 특성을 머잖아 한국에서도 보게 될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어 심현정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인터뷰이 사카모토 세쓰오
통역 사카이 준페이
글 미래에셋은퇴연구소 (20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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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죠..돈이 있어야 뭘하든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