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는 불암산, 그 앞은 도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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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벼랑을 잡고 두 무릎으로 기어올라 兩手爬崖兩膝前
고생 끝에 해가 기울어서야 꼭대기에 이르렀네 日斜辛苦到層顚
끼었다 개었다 하는 구름바다를 돌아보고 回看雲海相呑吐
이어져 늘어선 봉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네 却指岑巒互接連
가슴속에 답답함 사라짐 절로 느끼겠나니 自覺胸中無芥滯
하늘 밖에 세속의 번뇌를 어찌 알겠는가 豈知天外有攀緣
목마르매 다시 부지의 물을 마시고 渴來更酌鳧池水
왕교를 불러다 열선을 묻노라 喚取王喬問列仙
(한국고전번역원 ┃ 강여진 (역) ┃ 2009)
――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 1629~1703), 「여러 사람과 수락산을 오르다(與諸人登水落山」)
주1) 서계 박세당은 수락산 선부봉(仙鳧峯) 아래에 은거하며 사는 곳의 샘물을 ‘석천(石
泉)’이라 했는데, 석천을 부지(鳧池)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2) 왕교(王喬)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왕자교(王子喬)로, 생황을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내었는데, 신선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산(嵩山)으로 들어가 도술을 배운
지 30여 년 후 백학(白鶴)을 타고 구씨산(緱氏山) 산마루에 올라가 며칠을 있다가 떠나 버
렸다고 한다.《列仙傳 王子喬》
▶ 산행일시 : 2017년 2월 8일(수), 구름, 미세먼지
▶ 산행인원 : 건달산악회 5명
▶ 산행거리 : 도상 7.8km
▶ 산행시간 : 6시간 9분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10 : 00 - 수락산역, 산행시작
10 : 37 - 염불사
11 : 45 - 곰봉(466.3m), 매월정
12 : 45 - 620m봉, 철모바위
12 : 54 - 수락산(水落山, △640.6m), 점심
13 : 56 - 607.9m봉, 홈통바위
14 : 28 -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이 석림사 1.6km
15 : 30 - 석림사(石林寺)
16 : 09 - 장암역, 산행종료
1. 수락산 남릉 도솔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FE24C589BC02B27)
건달산악회의 건달은 ‘건물보수의 달인들’의 약칭이다. 작년에 서울시 동부기술교육원(종전
직업훈련학교)의 건물보수과 4개월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이 건달산악회를 결성한 후 첫 산행이다. 내가 건달산악회에도 관계하는 것은 오로지 ‘오지
산행’의 저변확대와 인재육성 내지는 영입을 위해서다.
나 역시 수락산을 오랜만에 찾는다. 수락산 입구를 헷갈려 이랬던가 하고 엉뚱하게 아파트를
들락날락하다 벽운동 계곡을 만나고 대로 따라 오른다. 우우당(友于堂) 울타리를 돌아 계곡
을 내려 건너편 산자락에 붙는다. 우우당은 조선후기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이 세운
벽운동 별장이라고 한다. ‘명상의 길’이다. 오솔길인 리기다소나무 숲길을 지나 산자락을 돌
면 쉼터가 나오고 계곡 건너로 염불사 절집이 보인다.
날씨가 포근하다. 겉옷 벗고 홀가분 차림 한다. 완만한 참나무 숲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지능
선과 만날 때마다 등로는 더욱 탄탄해진다. 슬랩이나 바위길이 나오면 골 건너편 도솔봉 연
릉을 살피려고 일로 직등한다. 소나무 숲 아래 슬랩은 빼어난 경점이다. 도솔봉이 설산 준봉
이다. 개울골 갈림길을 지나고부터는 바위길이다.
심산 같은 불암산, 도솔봉, 하강바위, 코끼리바위를 연신 곁눈질하며 간다. 이따금 뒤돌아보
는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은 미세먼지로 흐릿하게 보인다. 느슨하던 등로가 가팔라지고 한
피치 바짝 오르면 곰봉이다. 매월정 정자가 있다. 매월정 정자 오른쪽으로 10여 미터를 가면
수락산 전모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전망바위다.
매월당 김시습은 계유정난(1453년) 이후 출세의 길을 단념하고 전국을 방랑하며 2,000여
편의 시와 문을 남겼다.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 이듬해 37세 때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동
봉에 폭천정사를 짓고 10여 년간 생활하였다고 한다. 매월정 주위로 매월당 김시습의 시판
을 여러 개 세워놓았는데 색이 바라고 혹은 깨져 알아보기 힘들다.
시판에 새긴 매월당의 시 중 두 수를 들어본다. 우수가 가득하다.
水落殘照 수락산의 남은 노을
一點二點落霞外 한 점 두 점 떨어지는 노을 저 멀리
三个四个孤鶩歸 서너 마리 따오기 돌아온다
峯高剩見半山影 봉우리 높아 산허리의 그림자 덤으로 본다
水落欲露靑苔磯 물 줄어드니 청태 낀 돌 들러나고
去雁低回不能度 가는 기러기 낮게 맴돌며 건너지 못하는데
寒鴉欲棲還驚飛 겨울 까마귀 깃들려다 도로 놀라 난다
天涯極目意何限 하늘은 한없이 넓은데 뜻도 끝이 있다
斂紅倒景搖晴暉 붉은 빛 머금은 그림자 밝은 빛에 흔들린다.
3. 도봉산 연릉, 김시습 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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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른쪽이 수락산 남릉 하강바위
![](https://t1.daumcdn.net/cfile/cafe/26380B4C589BC02C2D)
5. 도솔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770914C589BC02D2B)
6. 왼쪽이 수락산 주봉, 가운데는 배낭바위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8A94C589BC02E2D)
7. 김시습 산길의 개울골 갈림길에 있는 기암
![](https://t1.daumcdn.net/cfile/cafe/226A204C589BC02E24)
8. 오른쪽이 도솔봉, 왼쪽은 하강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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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도솔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709214B589BC03028)
椵峴 갈림길에만 서면
驟雨暗前村 소나기로 앞마을 어둡더니
溪流徹底渾 시냇물 온통 탁하네
疊峯遮客眼 첩첩 봉우리가 나그네의 눈을 막고
一徑入溪源 깊은 골짜기 향해 한 줄기 길이 나 있네
靑草眠黃犢 파란 풀밭에 누런 송아지 잠들었고
蒼崖叫白猿 푸른 낭떠러지엔 흰 원숭이 울부짖네
十年南北去 십 년 세월 남북으로 떠다녔건만
歧路正銷魂 갈림길에만 서면 애가 타는구나
매월정 팔각에 수락산의 풍취를 나타내는 사자성어의 현판을 걸어놓았다.
峰上靑楓 봉우리 위에 푸른 단풍나무
白雲岩下 흰 구름 바위 아래
盧原草色 노원의 풀빛
水落殘照 수락산의 남은 노을
心同流水 마음을 흐르는 물과 같음
風前飛松 바람 앞에 날리는 소나무
林泉淸興 숲과 샘물의 맑은 흥취
곰봉에서 가파른 눈 쌓인 바위 길을 길게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깔딱고개다. 이제 바위
슬랩의 연속이다. 철주와 쇠줄 잡고 오른다. 슬랩은 더러 빙판이고 철주와 쇠줄 또한 미끄러
워 오르기 쉽지 않다. 느긋이 호흡에 발맞춰 오를 일이다. 그리고 경점에서는 사방 설산 둘러
보며 가쁜 숨을 돌린다. 나는 수락산의 제1경을 620m봉 철모바위 가기 전 전망바위에서 보
는 불암산 쪽의 경치를 든다. 원근농담의 코끼리바위와 도솔봉, 불암산은 드물게 빼어난 가
경이다.
휴식할 때마다 주전부리했더니 점심때를 놓쳤다. 내쳐 수락산 주봉을 향한다. 눈길 약간 내
렸다가 데크계단 잠깐 오르면 수락산 주봉이다. 한산하다. 수락산이 우리들 차지다. 영험하
다는 창바위에 들어 한 바퀴 돈다. 원경은 여전히 흐릿하다.
미산 한장석(眉山 韓章錫, 1832~1894, 조선후기 문신)은 1869년 4월에 수락산을 올랐다.
그의 「수락산유람기(遊水落山記)」 중 일부다. 그는 청학리 금류동계곡에서 올랐다.
"구름과 노을과 푸른 산이 맑으면서도 깊고 밝으면서도 짙푸른데 바위 또한 이따금 그 기괴
함을 드러냈다. 여러 겹으로 접혀서 아름답게 우뚝 선 것이 있으니 병풍바위요, 서린 듯 누워
서 평평하게 펼쳐진 것은 마당바위요, 날아가는 오리며 걸터앉은 호랑이라 하는 것이 모두
그 이름과 닮았다. 이곳을 지나면 물은 더욱 맑게 내달리고 바위는 더욱 희게 닮았고 골짝은
더욱 깊고도 밝아진다. 비탈진 돌길은 구불구불 얽히어 산을 따라 숨었다 나타났다 하고 물
을 따라 넓게 트였다가 좁아졌다.(雲霞攢翠。澄泓瑩綠。石亦往往逞其怪。有摺疊而麗立者
曰屛巖。有蟠臥而平鋪者322_312c曰場巖。翔鳧蹲虎。皆類其名。過此水益淸而駛。石益皎
而厲。洞益幽而明。磴道縈紆。依山偃頫。隨溪濶狹。)"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이지양 (역) ┃ 2015)
수락산 정상에서 늦은 점심밥 먹고 북쪽 사면을 내린다. 가파른 눈길이다. 아이젠 찬다. 뚝
떨어진 안부는 왼쪽이 곧바로 석림사로 내리는 ┫자 갈림길이지만 우리는 홈통바위를 내리
려 한다. Y자 능선이 분기하는 607.9m봉을 오르고, 홈통바위 우회로는 오른쪽 길로 조금 더
가면 나오지만 우리는 왼쪽으로 간다. 예전과는 다르게 안전시설이 보강되었다.
10. 멀리가 도솔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69E4B589BC0312A)
11. 왼쪽이 수락산 주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6E049589BC10C28)
12. 곰봉, 매월정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8724D589BC0E61B)
13. 도솔봉 서쪽 능선
![](https://t1.daumcdn.net/cfile/cafe/2768B14D589BC0E722)
14. 왼쪽이 코끼리바위
![](https://t1.daumcdn.net/cfile/cafe/26440D4D589BC0E710)
15. 가운데가 도솔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65B4D589BC0E821)
16. 도솔봉 서쪽 능선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3FE4D589BC0E923)
슬랩 위에 철책을 둘렀고 홈통 양쪽으로 두 가닥 굵은 밧줄이 매여 있다. 내가 시범을 보인
다. 뒤로 돌아 밧줄을 가랑이 사이에 두고 엉덩이를 내밀고 양손으로 밧줄을 잡고 가볍게 반
동을 주며 내린다. 절반쯤 내려오자 밧줄에 눈이 묻어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그래도 이만
하기 다행이다. 얼어붙어 고드름으로 변했더라면 아주 애 먹을 뻔했다. 홈통바위 구간은 3단
으로 내린다. 끝까지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자 갈림길 안부. 남았던 탁주와 고량주 비우며 얼근한 기분 만들어 왼쪽 석림사로 하산한
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눈에 덮여 걷기 좋다. 더구나 발밑에 뽀드득뽀드득하는 감촉을 느
낌에야. 눈길이거나 빙판은 1.6km 석림사까지 이어진다. 석림사 절집을 들른다. 조용하다.
백구는 짖지 않고 우리를 멀뚱하게 바라본다.
특이하게 석림사는 일주문과 큰 법당 현판, 주련 등을 한글로 썼다.
한 생각 돌이켜 거슬림을 놓아보세
공덕을 쌓는 데는 병간호 으뜸이며
궤산정(簣山亭)이 여기던가 저기던가. 석천계곡의 ‘石泉洞’ 암각한 바위 위에 보이던 궤산정
이 사라졌다. 큰물에 쓸려갔나 보다. 서계 박세당이 후학들에게 강론하던 곳으로 ‘아홉 진산
을 만드는 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란다’라는 고사에서 궤산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 한다.
대로에 다다르기 전에 오른쪽 샛길 가의 서계 박세당의 고택을 먼발치로 들여다본다. 마당
한 쪽의 거목인 은행나무와 느릅나무(?)가 선생의 품위이려니.
뒤돌아 수락산을 바라보고, 선생과 동갑이었던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의 「祭西
溪文」을 들춘다.
아아, 嗚呼
큰아들 직언하다 목숨을 잃고 大兒死直
작은아들 충언으로 목숨 잃으니 小兒死忠
한집안에 훌륭한 이 다 모인 건 一家萃美
고금에 어느 집안 이와 같으랴 今古誰同
양주 땅에 위치한 수락산 서쪽 水落之西
도봉에서 보자면 동쪽 언덕에 道峯之東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묻히니 父子同歸
그 정기 더욱더 크다 하겠네 正氣彌穹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찬 (역) ┃ 2009)
17. 멀리가 불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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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북한산 백운대와 도봉산 선인봉이 미세먼지로 흐릿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711A48589BC16A2D)
19. 수락산 동릉 463.4m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ECD48589BC16B01)
20. 홈통바위
![](https://t1.daumcdn.net/cfile/cafe/231C4648589BC16C03)
21. 서계 박세당 고택 울안의 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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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도봉산, 장암역 가는 길에서
첫댓글 암벽이 그립네요... ㅎㅎㅎ
건달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아울러 우리 오지로 오실분을 많이 추천해 주시와요^^
사진만을 보면
근교산 같지 않구 ~
강원도 어느 산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