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月刊 <문학세계> 2022. 2월호
나라를 지키는 동상
전세준
무궁화동산은 나라를 지키는 동상이었다.
푸른 잔디와 향나무에서 풍기는 향기는 오늘따라 더욱 향기로웠다.
청소를 마치고 당번 일을 하던 숙이는 학교 나라 동산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벌써 철이와 강민이가 자기 자리에 앉아 동화책 읽기에 정신이 없었고 강민이와 철이가 책을 읽는 자리는 변함이 없고 숙이의 자리도 변함이 없었다.
푸른 잔디로 덮인 무궁화 꽃동산에는 무궁화는 물론 예쁜 모양으로 단장한 향나무와, 봄 날 하얗게 눈처럼 꽃을 피우는 벗 나무, 또 넝쿨로 뻗어 올라가 야외학습장의 지붕이 되어 뜨거운 해 볕을 막아주고 있었다.
“오늘 좀 늦었네.”
<이순신> 장군 동상 옆 통나무 의자에서 책을 읽고 던 강민이가 숙이를 보며 인사를 했다.
숙이는 <독서상> 옆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독서상> 옆 자리는 숙이 자리였다.
<사자상> 옆에 놓인 통나무 의자에 서 책을 읽던 철이도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이순신> 장군 동산은 민이가 책 읽는 자리.
정답게 둘이 앉아 책을 읽는 <독서상>은 숙이가 책 읽는 자리.
<사자상>은 철이가 책 읽는 자리.
무궁화동산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동상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강민와 철이. 그리고 숙이가 즐겨 앉아 독서하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강민이, 욱이, 숙이는 모두 같은 학년이지만 모두 다른 반이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학교 무궁화동산에서 만나게 되어 이젠 약속 없이도 학교공부가 끝나면 무궁화동산으로 찾아와 자기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너는 왜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읽지 않고 이곳에 오니?”
숙이가 무궁화동산에서 만난친구는 철이었다.
처음 온 철이는 책 읽을 동상을 자리를 찾다가 <사자상>을 골랐다.
같은 반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친 할 기회는 없었지만, 얼굴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인사를 했다.
“너 언제부터 여기 와서 책을 읽었니?”
<사자상> 옆 통나무에 책을 놓고 숙이에게 다가 온 철이가 말을 걸었다.
“응, 한 일주일 돼.”
“여기 책 읽기 퍽 좋지?”
“응, 그래.”
“응 그래.”
“나도 여기가 책읽기가 좋을 것 같아서 왔어.”
철이는 어쩐지 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빙그레 웃음을 띠웠다.
학교에는 책을 읽을 도서관이 없다. 도서관이 있었으면 그곳에서 책을 골라 그 곳에서 읽을 수 있겠는데 전교생이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없고 각 반마다 학급문고가 있었지만 시끄러워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을 즐겨 읽는 아이들은 교실 구석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교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멀리해 잠시 잠시 책을 읽곤 했다.
“그런데 너는 왜 <사자상>.을 골랐니?”
숙이는 철이가 <사자상>을 골라 앉은 것이 궁금했다.
“으응, 궁금하니? 뭐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사자>가 마음에 들어서야. 저 사자 얼굴을 좀 봐. 얼마나 늠름하니? 숲속의 왕자. 한번 으르렁 거리면 숲속에 살고 있는 모든 짐승들이 벌벌 떨잖니! 난, 사자처럼 용감해지고 싶어. 동물의 왕 사자! 얼마나 멋있니? 그런데. 너는 왜 <독서상>에?”
숙이가 피식 웃었다.
몸도 호리호리한 철이가 사자가 좋다니 잘 어울리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었다.
“얘, 어울리지 않는다. 그 체격에 무슨 사자라니?”
“뭐? 이 바보야 그래서 내가 사자를 고른 거야. 사자처럼 용감해지고 싶어서...”
“그래?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난 책읽기가 좋아. 교실에서 무궁화동산을 바라보며 두 자매가 정답게 앉아서 다정하게 책 읽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나도 저곳에서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어.”
“와, 그럼 이 다음에 유명한 시인이나 작가가 되겠구나 하하 내가 용감한 사자가 되고 싶은 것처럼.”
철이가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쩜 그럴 런지도 모르지 호호...”
“너 글짓기 잘하니?”
“응, 별로...어린이 신문이나 학교신문에 글 발표 했지만 아직 자신이 없어.”
잠시 숙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젠 글짓기 잘하겠다.”
“뭐, 아직...그런데 우리 선생님이 나 글짓기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기는 했어.”
사실 숙이는 이다음 커서 유명한 시인이나 작가가 되어 예쁜 책을 만들어 친구들이나 돈 없어 읽고 싶은 책을 사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글짓기를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부터는 숙이는 시간 있을 때마다 책을 읽고 있다.
강민이가 나타난 것은 숙이와 철이가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눈 그 다음 날 오후였다.
“야, 교실에서 보니 여기서 책을 읽고 있는 너희들 모습이 멋지더라. 모두 쉬는 시간이나 공부가 끝난 후 운동장에서 축구나 하고 고무 줄 넘기만 하지 누가 여기 와서 책을 읽니? 나도 끼워줘. 나, 3반에 있는 강민이야, 이 강민!.”
같은 학년이라 셋은 금방 친해졌다.
“야, 끼워주고 뭐고 있니? 자가가 와서 읽으면 되지.”
철이가 가 반갑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너도 책 읽기를 좋아하니?”
숙이가 젊잖게 물었다. 체격으로 봐서 책 읽기보다 운동을 좋아할 것 같았다.
“응, 사실 난 말이야 책읽기보다 운동이 더 좋아. 가만히 앉아있으면, 다리가 막 아픈 것 같아. 그렇다고 운동만 할 수 없잖아. 집에 가면 엄마가 책 안 읽는 다고 매일 잔소리야. 그래서 어차피 책을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희들을 내다보며 나도...하는 생각이 들엇어.”
강민이는 뚱뚱한 체격답지 않게 덤벙거렸다.
“그래, 생각 잘 했어 운동도 좋지만 어렸을 책을 많이 읽어야 해. 그래야 모든 것을 생각하는 힘도 길러지고 ....”
숙이가 어른스럽게 속삭였다.
“하하, 숙이가 우리 엄마 같다. 늘 우리엄마가 하는 소리야. 이제부턴 열심히 책을 많이 읽어 우리 엄마를 놀라게 해 줘야겠어!.” 강민이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눈을 반짝이었다.
“그래, 열심히 읽어. 참 그런데 너 어디에서 읽을래?”
“응?”
“너도 나처럼 멀지 감치 떨어져 자리를 잡아. 어서 골라 봐. 우리들처럼 동상 옆을...”
“응, 저기가 좋겠다. 거리도 좀 떨어지고..”
강민이는 <독서상> 옆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가르쳤다.
구리 빛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발아래까지 끌리는 긴 칼을 차고 무거운 투구를 쓴 채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와 멋지다!.”
철이가 소리를 질렀고.
숙이는 손뼉을 치며 생긋 웃었고
강민이도 기분 좋은지 어깨를 으쓱이며 씽긋 웃었다.
“그런데 다른 동상도 많은데 왜 <이순신>장군 동상을 고른 거야? 저기 <호랑이상>이나 <코키리상>도 있는데....또 철이가 <사자상>을, 나는 <독서상>을 골랐는데...”
한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는듯하던 강민이가 문득 생각난 듯 급이 이야기를 했다.
“응, 그래...이제 방금 생각했지만, 난 이순신 장군이 좋아.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들을 쳐부수고 화살을 맞고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그 훌륭한 애국정신. 그래 그 애국정신이 얼마나 위대하니? 나도 이순신 장군처럼 용감한 장군이 되고 싶다.”
강민이이가 뚱뚱한 몸으로 가슴을 활짝 펴고 어깨를 으쓱했다.
“크 으윽!.”
철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으흐흐.”숙이도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니, 왜들 그러니?”
강민이가 갑자기 시무룩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게 아니고..., 야 강민아. 그 뚱뚱한 몸으로 어떻게 부하들을 지휘하겠니?.. 너는 몸이 무거워서 전쟁터에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하하하.”
“얘, 너 그 머리에 투구를 쓰면 둘리 같겠다. 맞아, 틀림없는 둘리야 호호호.”
그때서야 민이는 아이들이 웃는 이유를 알아듣고 머리를 긁었다.
“너희들 왜 그러니? 옛날부터 장군은 몸이 우아해야 돼. 그래야 적들이 겁을 먹고 덤벼들지 못해 이 바보들아! 하하 그걸 몰랐지?“
“응?...그래 그래 그 말이 맞다. 뚱뚱하니 화살도 맞기 좋겠다. 부하들을 위해 방패막이되고. 하하하.”
“그래도 난, 용감하고 씩씩한 이순신 장군이 좋아. 부하들의 방패가 되니까..하하하 멋있는 장군. 긴 칼을 옆에 차고 적을 무찌르는 용감한 이순신 장군. 야! 모두들 나를 따르라! 그 웅장한 명령!.”
강민이가 긴 칼을 빼는 흉내를 내며 함성을 질렀다.
“야! 우리 장군님 만세다 만세!”
철이도 두 팔을 번쩍둘고 만세를 부르자 숙이도 크게 손뼉을 쳤다.
이날부터 강민이와 숙이, 철이는 매일 공부가 끝나면 꽃동산에서 만났다.
누가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묻지 않았다.
숙이는 어린 여학생답게 슬픈 <알프스의 소녀>를 철이는 사자처럼 용감한 <동물 왕 라이온>을, 그리고 강민이는 나라를 위해 싸운<영웅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다.
“야, 미안. 내가 오늘 제일 늦었구나.”
제일 늦게 이순신 장군 동상 옆으로 뛰어가며 강민가 책을 흔들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을 땐 옆에 가지 않고 말도 건네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의견을 낸적도 없지만 강민이와 철이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지켰다.
책 읽기에 정신을 쏟을 때 누가 옆에서 한마디 말을 해 오면 정말 신경질이 났기 때문이었다.
공부가 끝난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차기와 고무줄넘기, 발야구를 하면서 떠들썩했다.
“공부가 끝나고 청소를 마친 학생들은 속히 집으로 돌아갑시다.”
교무실 지붕위에 걸린 스피카에서 주번 선생님의 방송이 계속되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산들바람이 꽃동산을 스치며 강민이와 숙이 그리고 철이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아, 아-”
“어, 어...으음.”
강민이와 숙이 그리고 철이는 책을 읽다가 바람의 부름에 입을 크게 열며 하품을 하며 고개를 책속에 묻곤 했다. 약속이나 한 듯...
푸른 바다에는 왜적들의 함선들이 불길과 더불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 앉고 있었다.
“한척의 배도 돌려보내지 말고 모조리 침몰시켜라!”
<사자>등에 올라앉은 강민이가 긴 칼을 뽑아들고 푸른 물결을 헤치며 호령했다. 사자 입에서 뜨거운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야! 좀 천천히 가자! 숨이 차 죽겠다.”
강민이가 수염을 옆으로 쓱 문지르며 등위에 탄 철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안 된다! 저 왜군들을 한 녀석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바닷물에 수장 시켜라!”
강민이의 함성이 바다를 가득 메우며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퍼져나갔다.
“아이고 죽겠네!”
철이가 신음을 냈다.
“이런 사자가 어디 있니? 동물의 왕자가 이렇게 힘이 없다니...아,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 숙아, 어서 난중일기를 적어라! 내 대신 네가 자세히 적어라!’
강민이 등 뒤에 꼭 붙어 앉은 숙이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걱정 말고 어서 사자를 잘 끌고 가!”
숙이는 한지를 펼치고 붓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난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으윽, 으으음...”
강민이가 쓰러졌다.
“내가 화살에 맞았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앞으로 진격을 계속하라! 으음....”
“아! 장군님!”
“아! 철이가...”
숙이와 강민이가 소리를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무궁화동산에 있는 학생들. 어서 집으로 가세요.”
교무실 지붕 위 스피카에서 주번 선생님의 목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강민이는 다리 사이에 고개를 푹 묻고 일어날 줄 몰랐다.
운동장이 텅 비어 있고 무궁화동산에는 <이순신>장군 동상과 두 소녀가 책을 읽고 있는 <독서상>. 그리고 <사자상>이 강민이와 숙이 그리고 철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와! 너희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는 참다운 애국자구나! 이순신 장군처럼 용감하고 상대할 적이 없는 사자랑 할동 하면서도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는 너희들은 정말 훌륭한 어린이들이다. 장하다! 장하다!-
해가 서쪽 하늘로 가까이 더욱 가까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예쁜 무궁화동산을 스쳐가는 바람 소리가 크게 크게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