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4대문, 4소문을 거닐며
박 종 문 (본회 이사, 사무국장)
○ 한양도성의 역사.
1392년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종묘와 사직, 경복궁을 지은 후, 1396년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18.6km 능선을 따라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한양도성을 축성하였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과 사소문을 두었는데, 동서남북 4개의 대문에는 유교의 5가지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을 담았다.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정문의 사대문과 북동쪽 혜화문, 남서쪽 소의문, 남동쪽 광희문, 북서쪽 창의문의 사소문을 만들어 도성 안팎을 연결하였다.
○ 한양도성의 시대별 변화
▼ 태조 5년(1396) : 산지는 석성, 평지는 토성, 성돌은 거친 자연석을 다듬어 사용.
▼ 세종 4년(1422) : 도성을 재정비하여 토성을 석성으로 고쳤으며, 성돌은 옥수수 모양.
▼ 숙종 30년(1704) : 병자호란 때 무너진 구간을 새로 쌓았고, 성돌은 40~45cm로 규격화 함.
▼ 순조 원년(1800) : 정조 사망, 순조 즉위 후, 성돌의 크기를 가로, 세로 60cm로 정교하게 쌓음.
서울 한양도성은 일제에 의해 1915년에 경성시 구역 개수계획에 따라 성벽과 성문을 무너뜨렸지만 당시 축조의 모습과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시대 성벽 축조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른 아침, 이슬비가 내리는 서울역4번 출구 앞에 옹기종기 모인, 서울역사문화포럼 회원님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참으로 맑고 순수한 모습이다.
‘서울 한양도성 4대문, 4소문’ 답사를 위해 처음 간 곳은 한양도성의 정문인 국보제1호 남대문(숭례문)이다. 남대문은 1899년 전차 부설 공사를 위한 도시계획의 미명하에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주변 성벽까지 헐리고, 일제가 남산광장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남산 성벽을 헐어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범에 의해 문루가 소실되어 2013년 5월 4일에 복원 되었다. 남대문상가 앞에서 해원관광버스를 타고 광희문으로 갔다. 이 문은 소의문과 더불어 상여가 운구 된 곳이라 시구문(屍口門)으로 칭하였다. 우산을 받쳐들고, 도보로 간 곳은 동대문운동장 철거 후에 복원된 이간수문이다.
이윽고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에 도착하였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비도 아랑곳없이 박경룡 회장님의 명품 해설이 계속 되었다. “1396년에 건축되었는데, 지대가 낮아 ‘흥인지문’이라고 명명하였다. 옹성(甕城)을 두어 외적을 방비 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빗속을 뚫고, 전장에서 전투중인 용사와 같이 버스로 대학로를 거쳐 도착한 곳이 혜화문이다. 혜화문은 아직도 보수중이라서, 산만했다. “혜화문은 동소문이라고 불렀으며, 동대문과 숙정문사이에 위치하였는데, 항상 닫혀있는 숙정문을 대신해서 북방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비를 피해 짧게 해설을 듣고 나니, 어느새 12시가 되었다.
다음 코스인 숙정문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위험하므로 취소하고, 성북동 돼지불백 식당으로 갔다. 가뭄이 심하면 숙정문을 열고 숭례문은 닫았으며,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숭례문을 열게 하였다고 한다. 박경룡 회장은 “오늘 우리가 답사하는 날에 비가 많이 오니, 숙정문이 당연히 닫혀있겠죠?”라고 조크를 하였다. 본인은 임회원들에게 “후일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무료버스로 삼청각에서 하차하면 바로 숙정문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하였다.
우리 일행은 자하문로를 지나 자하문고개에 우뚝 선 창의문에 도착하여 청계천 발원지(거북샘)표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창의문은 4소문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으로,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으며, 일명 자하문이라고 하였다. 인조반정 때 이 문을 열고 들어가 쿠데타가 성공하였다고 한다. 이 문의 특징은 풍수지리상 자하문 밖의 지형이 지네 모양이므로 이를 억누르기 위해서 지네의 상극인 닭을 나무로 만들어서 문루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홍예문의 천정에도 닭이 지네를 잡아먹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단체사진을 찍고, 돈의문 터로 이동했다.
돈의문은 서대문으로 불러 왔으며, 중국과 통하는 의주로의 관문이다. 최근에 서울시에서 만든 돈의문 모형을 살펴본 뒤 부근에 경교장(京橋莊)이 위치하였으므로 모두 들어갔다. 올해는 안두희가 쏜 총탄에 서거한 백범 선생님의 서거한 지 70주년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백범 선생님의 애국심을 확인하였다.
마지막 답사지로 서소문역사공원과 소의문 터를 답사하였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조선 5백년간 죄인을 공개 처형한 곳으로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이 있다. 1801년 신유박해, 1866년 병인박해, 1871년 때까지 소의문 밖의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처형되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이곳을 참배하였다고 한다.
○ 바람소리
바람에 쓰러지는 풀잎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恨)처럼,
쓰러지는 주검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떠나갔다.
우리는 그들의 넋을 읊는다.
풀잎의 노래를 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