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11월의 일기, 김장 하는 날/고갱이 추억
흔히들 추억을 먹고산다고 한다.
지난날의 사연들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추억을 먹고산다.
잊지 못하는 추억들이 많아서다.
그 중에는 함박스텍 추억과 같은 나를 슬프게 한 추억도 있지만, 괘씸해서 속상한 추억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배추의 속살인 고갱이 추억이다.
어언 10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고향땅 문경에 ‘햇비농원’이라는 이름으로 650여평의 텃밭을 일구어 첫 농사를 지었던 그해였다.
11월쯤 해서 김장용으로 심은 배추 한 포기를 뽑아서 서울로 올라와 단골집인 어느 횟집을 들렀다.
그때만 해도 ‘작은 행복’이라는 우리들 법무사사무소가 번창할 때여서 자주 그 집을 들렀고, 주위에 소문도 내서, 나로 인해서 많은 손님들이 그 집을 찾고는 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단골로 삼아 다니다 보니, 정도 들만큼은 들어서, 나보다 연상인 그 집 주인 남자에게는 ‘형님’이라고 호칭을 하고, 그 부인인 주인 여자에게는 ‘형수’라고 호칭을 했었다.
“형수님, 이거 좀 잘라주세요.”
믿거니 하고 들고 온 그 배추를 주인 여자에게 맡기면서, 내 그렇게 부탁을 했었다.
“그러세요.”
그렇게 답을 하면서 그 배추를 받아간 주인 여자였다.
곧 그 배추가 손질이 되어서 되돌아 나왔다.
노랗게 익은 배추에 그 집에서 주문한 회를 얹고 된장에 고추해서 쌈 싸듯한 안주에 술잔을 기울이고는 했다.
한참을 그렇게 일행들과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주고받던 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되돌아 나온 배추에서 뭔가 빠진듯해서였다.
역시 그랬다.
배추 고갱이가 없었던 것이다.
따져 물으려 했는데, 옆자리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깜빡하고 넘어갔으면 그만 잊고 마세요. 따져본들 아니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아내의 그 말로, 내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누군가 도중에 빼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 괘씸한 심보에 치가 떨렸다.
그러나 달래고 달래서 그날 술판 끝까지 갔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갱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