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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글과 사진들 스크랩 몽골의 초원으로..
몽랑 추천 0 조회 835 12.05.16 18:0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대지는 하늘과 맞닿고 가도 가도 끝없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집니다.

점점이 무리지어 거니는 소, 말, 양 때들...

유목민의 나라

몽골입니다.

 

한 때는 유사 이래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을 거닐었던

칭기스칸 후예들의 나라이지요.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동서 2,393km, 남북1,259km의 타원형의 모습으로

면적 156만6천5백km2(한반도의 약8배),인구 300백만(2010), 평균 해발고도 1500m의

고원지대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겨울은 길고 몹시 추워 평균-35도C(최저-50도C), 여름은 짧고 무더워(20~35도C),

년 평균 강우량 250mm의 몹시 건조한 전형적 대륙성기후로

북서쪽은 울창한 산림지대와 수정같은 호수들이 알알이 박혀있고,

 

                고비사막('gobi'는 몽골어로 '물이없는 곳' 길이 1,600km,너비 480~960km,면적130만km2,로

                몽골남부와 내몽골자치구(중국)에 활모양의 동서로 걸쳐 있음..                                                                                            

 

중부는 초원지대, 남부는 사하라사막에 이어 두 번째로 광대하다는 고비사막이

모래언덕을 이루고 있으며, 국토의 80%가 목초지로 방대한 가축을 방목하기에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몽골의 고비와 미국의 캘리포니아 분지는 공룡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으로 수도

울란바토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공룡화석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시품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몽골은 외몽골(면적 156만km2, 인구 300만)과 내몽골(면적 118만km2, 인구2천3백만)로

불리어 지는데 중국의 내몽골자치구에 대조하여 외몽골은 몽골공화국을 지칭합니다.

 

                                              광활한 대지를 횡단하는  끝없는 길(노란 부분은 대규모로 경작하는 밀밭)

                                               

기원전 209년, 오늘의 몽골 땅에 처음으로 국가체제가 등장합니다.

중국천하를 기원전 221년에 통일한 秦(진)나라의 시황제는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통합된 방어체계를 갖추고 성곽을 구축합니다.

당시 분열되어있던 북방 유목민족들은 진나라의 방어선을 뚫고 쳐들어 가기위해

‘흉노’라는 역사상 통일된 강성한 국가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오늘날의 몽골,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터키 등의 국가는 유목민족의 첫 국가인

‘흉노’족의 직계후손들이라 하는 군요.

흉노족은 역사상 큰 흔적을 남기고 400년간 지속되고 그 뒤를 이어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중앙아시아에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고,

중국대륙은 漢(한)왕조와 隋(수)나라를 거쳐 唐(당)이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황금기의

왕조가 지속됩니다.

 

                                                        국토의 약 80%를 목초지로 샤용하는 드넓은 초원

 

7C 들어 유목민족 돌궐(투르크족)은 강력한 국가체제로 성장하고 그 뒤를 이어 ‘위구루’

제국이 등장하고 또다시 몽골계통의 ‘거란’족이 강성해지면서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찡(북경)을 수도로 삼고 내몽골 일대를 중심으로 번영하면서 점차 한족과 동화되 가며

중국 역사상 遼(료)라는 왕조의 자취를 남기게 되고 이어 ‘거란’을 멸하고 일어선 ‘여진’족은 金왕조를 세우게 됩니다.

                                                                      

1206년 칭기스칸이 출현하여 16년간에 걸쳐 몽골부족을 통합하고 1211년 金을 멸하고

이어 탕구트, 호라즘, 서요를 정복하고 나아가 러시아, 페르시아, 아라비아를 정벌하는데, 1227년 탕구트 점령 시 영웅의 생을 마감합니다.

그 의 후손들은 계속하여 영토를 확장하여 1279년 중국천하를 평정하고 元(원)의

통일제국을 수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흥하고 멸하는 역사의 순리에 따라 1368년 漢(한)족이 明(명)나라를 세우며 번성하자 元은 광대한 제국의 통치의

어려움과 왕위권력의 내분과 왕들의 죽음으로 세력이 위축되어 다시금 그네들의 고향인 몽골고원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明나라는 북방 이민족의 친입을 막고자 진 시황시대 부터 축조 하기 시작한 만리장성(약6000km)을 완성하게 되는데,

지금의 내몽골 남쪽 경계선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테를지 국립공원 가는 길목에 소재한  곳으로 낙타를 기념으로 타볼 수 있음

                                                                      

17C 들어 만주족은 몽골족을 복속시키고 1644년 明을 정복한 후 淸나라를 세우게 되고,

만주족인 淸조는 몽골을 외몽골과 내몽골 등으로 나누어 각각 통치를 하게 됩니다.

점차 만주족의 中國化와 러시아의 위협에 淸(청)은 漢(한)족의 몽골과 만주로의

移住(이주)를 촉진하게 되는데 중국 내몽골자치구 주민 80%는 漢(한)족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淸나라는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된 이후 외몽골은 사실상 중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이 건국됩니다.

1949년에 이르러 중국은 몽골인민공화국을 승인하게 되고 사실상 외몽골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로써 외몽골은 소련의 지원으로 독립을 하게 되고 내몽골은 중국의

한 지역으로 재편되기에 이릅니다.

 

                                                          광활한 대초원을 달리는 흰꼬리 가젤(영양)무리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지원으로 만주지역을 접수하고,

1947년, 소련의 정책에 따라 내몽골자치구를 설립하게 됩니다.

1950년에 들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내몽골자치구는 현재의 외몽골고비사막 아래

길쭉한 모양의 내몽골 자치구가 생기게 됩니다.

 

몽골은 고유한 ‘소요보’라는 문자를 가졌지만 복잡하고 어려워 1940년, 러시아의

'키릴알파벳‘을 사용하기로 하고 1950년 이후 통일된 공식문자로 되기에 이르나 근래에

들어 그네들의 고유한 전통문자도 계몽을 통해 부분적으로 점차 사용하기에 이릅니다.

 

                                                       저녁노을이 질때면  우리로  줄지어 돌아오는 방목되는  말무리

                                                      

역사학에 팍스로마니카, 팍스브리타니카, 팍스몽골니카라는 개념이 있다는데,

이는 세가지 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흘리며 정복한 땅에,

-힘으로 평화를 정착시켜,

-피정복-정복민족사이에 서로 융화하며 분쟁없이 교류하고 상업 활동을 통해 통일된

조세징수체제를 갖는다 합니다.

로마, 대영제국 그리고 몽골제국은 당시 세계적인 제국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거대

제국에서 발생한 개념들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며 통용되게 됩니다.

 

징기스칸의 전쟁으로 40여 개국의 1만2천개 도시가 잿더미 화하고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인구의 30%, 범아시아 10%, 고려 19%, 중국의 30%는 이 정복전쟁에서 희생되고 宋(송)은

대몽항쟁으로 총2,900만의 漢족이 목숨을 잃습니다.

 

드넓은 초원과 척박한 야생에의 환경에서 적응되고 진화된 천부적인 요인들 ..

말 타기에 익숙하여 전투 시 마상에서 달리면서 움직이는 표적을 정확히 맞추는 능숙한 기술 등.. 

유목생활에서의 단련된 강인하고 용맹함 등은..

지도자의 통솔하는 지혜와 호전적인 기상 과 함께..

그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기할 수 있는 요인들 이었으리라 봅니다.

 

초원의 아침을 맞는  낙타 가족(흰낙타는 변색종인 알비노 카멜)

                                                         

특히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하는 몽골말의 강한 지구력 과  전투에서 생?이라고 할 보급부대를 거의 운영치 않고

자신들의 고유한 식량인 육포와 마른젖 덩어리인  식품을 휴대케하고  현지조달을 통해 장기간의 먼 지역에서도

제국의 영토를 넓혀 가며 유지 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대제국의 건설은 전에 없던 안전하고 자유로운 유통로를 가능케 하여 원거리 물자수송이

안전하게 되어 동서간의 교류가 활발해져 번영을 구가하게 되고 ,정복 후 약탈보다는

평화적 통치로 자치를 부여하고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대우하여 제국 내의 갈등을

조절하였으며 이 시기에 동서양의 신기술과 학문 등의 교류를 통해 눈부신 번영을 구가하게 됩니다.

 

유목민들의 신앙은 오래전부터 샤마니즘 이였다 합니다.

샤마니즘의 신앙대상은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으로 하나의 통합된 신앙적인 체계는 없었으나

모든 이에게 신령이 있으며 그들은 모두가 하늘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로 파란하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종교도 수용하여 모든 종교가 동시에 평화롭게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홉스굴 호수(해발3000m 위치.수심이 아시아에서 제일 깊다고 하며 바이칼호수로 흘러 들어감. 제주도 면적의 1.5배 정도로 수정같이 맑은 물과 천혜의 

   원시자연의 췌취를 느낄 수 있어 오지에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음.  울란바토르 북서쪽  자동차 또는 항공편이용)  

 

 

원제국은 이렇듯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지만 도교, 유교, 선불교 등 중국의 기본적 종교가

아닌 티베트의 ‘사짜파’불교를 국교로 삼게 됩니다.

 

몽골에 불교가 전파되자 인도-티베트문화는 유목 몽골민족의 문화와 삶에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옵니다. 16C부터 1938년 까지 800여개의 사원을 세우고 사원을 중심으로

정착생활의 초기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계절에 따른 이동을 하지 않고 목축을 주업으로 하지 않아 한 곳에 정착하는 주민수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양태도 변화되어가기 시작합니다.

 

원 제국이 해체되면서 북방고원의 초원으로 돌아온 후 淸에 침략을 받을 때까지 현재 몽골 땅에는 몽골 민족만이 살고

있었다 하나, 그러나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황제의 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소왕국으로 형성되어 있어

통합된 강한 국가체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분열과 침략을 초래하게 됩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져있는  하늘과 맞닿은 대초원

 

 

몽골에서는 말 경주, 씨름, 활쏘기를 가장 즐기는 3대 경기로써 유목민족의 축제로                                                                      

즐기는데 모두가 전투에서 내려오던 풍습이리라 봅니다.                                                                                                         

몽골의 전통가옥은 유목민족으로써 이동과 야외생활에 적응하기위한 전통의 ‘게르’라는                                                                

천막거주지가 있는데 지금도 도시를 벗어나면 자주 보이곤 합니다.

 

외부의 침략과 내부분열로 어려움을 겪던 淸나라는 政體(정체)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게 됩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었던 몽골민족은 그네들에 이익에

침해되기에 淸의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게 되는데,

淸이 몽골의 영토를 자신의 영토로 삼으려 하자 몽골정계, 종교계의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고비-알타이 지방의 Bayan-Uul village(사막이나 초원지대에 물솟는 지역은 식물이 자라서 동물들의 휴식처가 됨)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은 만주족이 세운 淸을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이에 몽골은 ‘우리는 청나라에 임시 점령되었을 뿐 한족이 세운 중화민국과는 관계가

없다‘며 ’벅드‘를 제8대 황제로 추대하고 1911년 12월28일 독립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는 몽골의 독립을 인정치 않고 1915년 ‘캬흐나’(중-러국경지역)에서

러-몽-중 3국간의 협상을 하게 됩니다.

몽골민족은 몽골전지역의 독립을 원하였지만, 중화민국은 몽골을 그들의 지배하에 두려고 하고

러시아는 단지 외몽골(현재 몽골)에만 자치권을 부여하여 그들의 영향력 하에 두려는 데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울란바토르 (붉은영웅이란 뜻으로 몽골의 수도. 1350m 고원 위에 위치. 도심에는 남북으로 토라 강이 흐르며 소련의 원조로 신도시로 계획된 공업중심도시.

도심에 집단화된 부유층이 거주하는 곳의 최근 아파트 가격은  30평기준 약 4만불 정도이고 비교적 생활이 어려운 빈곤층이 모여

사는 도시 주변의 '게르'는 약 1500불 정도라고 함.  )

 

                             

결국 3국의 이익이 상충된 가운데 몽골측은 어쩔 수없이 외몽골만을 특별자치국가가

되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대륙은 정치적 혼란 속에 군벌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群雄滑車(군웅활거)의

시대로써 중국군벌 ‘쉬세이장’(서수쟁)은 몽골을 침범하여 3국 협상을 무효화하고 몽골의

자치권을 박탈 ‘’벅드‘정권을 해산하기에 이릅니다.(1919)

 

러시아에서는 1917년 공산 10월 혁명이 일어나 백군과 적군의 치열한 내전이 지속됩니다.

자치권을 박탈당한 몽골인들은 여러나라에 도움을 청하지만,

내전을 겪는 소련도 몽골을 중국의 일부분이라 생각하였기에 몽골인들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붉은 군대에 ?긴 반 볼쉐비키혁명 세력의  ‘운게른’남작은 백군을 이끌고 몽골을 침공하여(1920.10)

중국군대를 축출하고 몽골자치국을 회복시키게 되나, 실은 꼭두각시 칸을 앞세워 잔인한 광기어린 폭정을 실시하였는데 세력을 평정한

소련 볼쉐비키의 적군은 ‘운게른’을 제거하기위해 몽골에 붉은 군대를 보내 백군인 ‘운게른’ 병력을 사막전투에서

격파합니다. 그후 1921년 7월11일  몽골인민정부가 수립됩니다. 

                                                                                                                                                                                                                           

                                                                 장엄한 산맥을 뒤로하고 휴식하는 낙타무리.

 

몽골의 신정부는 ‘벅드’ 전 황제를 다시 황제로 추대하고 입헌군주제를 선포하고

노예제 등의 악습을 폐지하고  소련의 앞선 제도를 받아들이며 몽골을 근대문명국가로 도약하게 합니다.

 

몽골의 독립문제에 대해 소련과 북경군벌사이에 여러 가지 논쟁이 계속되어 결국 소련은

북경군벌과 ‘몽골은 중국과 분리될 수없는 한 부분이다.’라는 조약을 1924년 5월

체결하기에 이릅니다.

소련은 이때 중국남부에서 권력을 잡고 있던 국민당 지도자들과도 몽골을 포함하는

중국대륙의 공산혁명에 대해 협상하기도 합니다.

 

126

 

소련-북경군벌-국민당의 얽혀진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몽골은 이렇게 열강들의

협상대상이 되는 약소국의 비애를 맛보게 됩니다.

 

1924년 몽골헌법이 제정되고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게 되고,

소련에 의해 차별과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주의를 명문화하고 공화국으로

국가체제를 정하게 됩니다.

 

 

 

Umnugobi 지방의 Khongor사막(길이 180km 모래언덕).  황사의 주원인인 중국네이멍고원과 몽골지역의 사막화는

대규모 산림파괴와 오랜 가믐 등(년평균 강수량 200mm이하)의 이상기온 등으로 그곳에서 생긴 미립자가 상승기류를 타고 공중에 떠돌다

강한 편서풍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의 대표적 환경공해로  대두되고 있어 주변국들의 사막화 방지를 위한 조림사업.

지구온난화의 방지에 점차 많은 관심과 대책이 따르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참여로 사막화 방지와 황사피해 등.

 지구상의 환경공해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1928년 공산-코민테른측이 결성한 ‘백인회’를 통해 정권을 잡게 됩니다..

1927년 소련은 국민당이 집권한 중국과 적대시 했기에 몽골에 공산주의국가 설립을

서두르게 되고 그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몽골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몽골혁명당

제7차 총회 시 공산당학교학생, 부랑자, 문맹의 시골사람들을 동원해 강제로 정부를

정복하고 공산정권을 수립하게 됩니다.(소련에 이어 2번째 공산국가가 됨)

 

1930년 부유층과 중산층의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하고,

1932년 몽골인민혁명당의 재산몰수, 강제집단화, 종교핍박, 사회계층 구분,

대량 불법체포 등의 시책에 반대하여 소요사태가 일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내전으로 확대됩니다.

 

1937년 ‘정치적 박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무계급, 무종교, 사회를 만든다는 이념에 물들은 공산주의자들은 2년 동안 3만 여명의

인명을 살해하고 6천여 개의 사찰을 파괴하고 수많은 불경과 사원, 문화재를 소각하는데

당시 몽골인구가 약 70여 만명 이었는데, 이 시기에 몽골 성인 남성의 20% 가량이

희생되고 단 한차례의 인민재판으로 1만7천 여명의 승려들이 사형에 처해집니다.

이 대량학살의 배후에는 소련의 주도적 역할이 있었다 합니다.

 

 

 

              몽골(외몽골)                             중국 내몽골자치구(red)                            제2도시DARHAN          테를지공원입구 낙타공원

              

              

자이승 승전탑(러시아와 몽골군이 1939년 일본과의        거북바위(울란바토르 북동쪽 약 75km                                                  칭기스칸 동상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한 승전탑.  울란바토르가               떨어진  테를지 국립공원 소재)  

내려다 보이는 동산에 소재.)                                                                                                       

 

           자이승 승전탑 기념벽화 (1939년 2차대전 당시 만주국과 몽골의 국경 '노몽한'에서 소련군과 몽골군 연합군과 일본군 제23사단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함. 이 전투에서 일본군 23사단은 거의 전멸함.)       

 

                                                전통가옥 '게르'에서 생활 체험을 할 수 있는 자연이 그데로 보존된  테를지 국립공원

                                                                                                                         

1945년 몽골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됩니다.

‘얄타협정’으로 몽골독립이 보장되고 몽골민족이 스스로 독립을 원한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중화민국정부의 의견에 따라 1946년 1월 중국, 1946년 11월 소련은 각각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고 몽골민족의 40여 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로 ‘몽골인민공화국’이란

진정한 독립국을 이루게 됩니다.

 

1952년 몽골은 15년간 통치한 ‘초이반상’장군 사후,

본격적인 소련의 공산사회주의 체제가 도입되고 사회는 기존과 다른 형태로 변모해 가고,

스탈린 사후 ‘공산주의 기본모델’로의 변화는 더욱 가속되어 갑니다.

 

1956년에는 대규모 ;국민문화계몽‘운동을 전개, 중세기에 뒤처진 종교적 관습에만 젖어있던

몽골국민들에게 사회시스템의 대변혁으로 문맹, 만연하던 질병 등을 치유하고

현대화된 생활문화가 점차 몽골 국민들에 보급됩니다.

 

 

                                                                    대초원에서 방목되는 영양무리와 유목민의 거주지 '게르'

                                                                

1959년에는 목축의 집단화(네그텔)가 시작되어 소련의 협동 농장방식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시작하지만 , 실은 유목민에게서 강제로 가축을 빼앗은 결과가 됩니다.

그러나 황무지 개간은 단지 농업에만 새로운 분야가 열린 것이 아니라 유목이 지배하고

있던 몽골의 사회구조에 크나큰 혁명적 변환을 이루게 됩니다.

 

1960년 수도 ‘울란바토르’ 인구는 십 만 여명에 도달하게 되는데, 목축의 집단화로

초원의 유목민들이 수도로 모이게 된 결과입니다.

수도 ‘울란바토르‘는 공업화가 진행되고 도시 사회구조도 크게 변하여 몽고의 도시화,

거주 정착문화가 싹트게 됩니다.

1961년 몽골은 UN에 가입되어 국제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독립국가로서 인정받게 됩니다.

 

인구 300만명(2010)의 몽골은 70%가 35세 이하의 젊은 층으로 구성되 있으며 평균

년령은 66세 이르고 노동인구 25%는 농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몽골정부는 대통령제와 의회제가 공존하는 이원 집정부 형태이며 우리나라와는

1990.3  정식 수교를 했습니다.

 

                   칭기스칸 국제공항                                               도심을  누비는 차량들(우리나라 눈에 익은 차량이 자주보임)

                                                                           

                                                              2기의 화력발전소가 멀리보이는 울란바토르 외각 전경

                                                            

전통적인 목축 유목국가인 몽골은 20C에 들어와 현대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공업화로 국내 총생산 중 농축산업의 비중은 20% 까지 줄어들고 반면에 가축의 수는

현재 약4천만 두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건설, 광업 등의 분야에서도 활발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몽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불 (2010)정도이며, 향후 10년 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높은 소득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국내 총생산량은 연간 증가율 7~10% 고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300만의 몽골 인구 중 100만여 명이 수도 울란바토르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고 상업과                             

서비스 기타 산업의 분화로 일터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모여드는 노동인구로 빈부의 차가                                              

점차 벌어지는 사회구조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신흥부유층 도시민 층이 점차 늘어가며

현대식 주거형태로 신흥아파트단지가 불쑥 불쑥 하늘위로 올라가는 모습에서 이곳의

발전하는 모습을 실감하게 합니다.

 

 

                                           끝없이 초원 위로 뻗어있는  도로(북쪽 바이칼호수로 향한 포장된 유일한 도로망)

 

 

100만 여명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기반시설, 주거시설, 공공시설 등의 미비하여

공공투자가 뒤따라 주어야 하는 급속한 당면과제에 처한 점은 많은 개발이 필요한 기회의 땅이기도 한 곳으로 풍부한

지하자원과 원시의 자연을 지녀 시장경제를 통한 급속한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시민 평균급료가 우리 돈으로 20만원(몽골화페:한국화폐=1:1)이고 최고 급료가 40만원

정도라는데, 풍부한 목축자원으로 주식인 육류는 저렴해 소 1마리에 50만원 내외이고

이동하며 생활하던 유목민족의 습성인지 채소는 거의 들지 않으며, 육류를 그네들의 전통적인 고유한 방법으로 처리한

식품으로 만들어 들며,  만두도 육류만으로 속을 채우고 있었으나 대체로 그네들의 식비는 저렴한 편입니다.

 

석탄등 지하자원은 풍부하고 원유도 매장되 있으나 채굴하여 정련하는 시설을

갖추지 못해 외국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점차 개발한다는 방향을 밝히고 있습니다.

 

 칭기스칸 기념 동상(울란바토르 동쪽 약190km 떨어진 '멍근머리트'에 위치함 이곳은 그의 고향인 '헨리아이막'입구에 위치해 있는데  높이 약 30m.)       

 

                                                                                                 

많은 에너지 자원을 러시아에 의존하여 오다가 근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아 자동차

휘발유 값이 1600원정도/리터 여서 소득에 비해 만만치 않은 수준이였고.

아직 자동차를 만들치 못해 주로 시내에는 일제 도요다 차량이 주를 이루었으며,

장거리를 운행하는 차량을 보니 70~80%가 낯에 익은 우리나라 국산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도요타 중고차(3000cc)를 약 2500만원 정도에 구입한다하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였으며 거리를

꽉 메운  이들 챠량을 보며 잠재된 경제적 富를 실감하게 합니다.

숙박은 우리나라 모텔수준이 1박에 50불 정도이고, 게스트하우스라는 여행자 숙소는

1박1식에 개인 15불, 단체10불 정도로 부담없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2도시 다콴[DARHAN](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약250km 떨어진 러시아 바이칼 호수로 가는 중간지점에 위치.인구 8만)

                 

수도에 있는 모든 에너지 공급은 시 외곽에 위치한 2곳의 화력발전소의 중앙공급식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영향으로 국가가 일률적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9월 중순부터

공급한다고 하여 9월초 기온이 영하와 영상을 오르내리는 급격한 기온의 변화에

여행객들에게는 가벼운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이곳에도 건설, 요 식업, 숙박, 레저 등 모든 분야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출하여 있었으며

한국식당에서 설렁탕 등의 가격이 9000원 정도이니 거의 한국과 같은 혹은 이상의 가격을 유지하고 사우나도 성인1인당

1.5만원 정도로 이곳의 부유층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듯 합니다...

                                                                   

급격한 도시인구의 팽창으로 원래 계획된 도시계획시설을 초과하여 그에 따른 도시정비가 따라주어야 하는데

도로시설, 공공시설, 주거시설 등 각종 도시 기반시설이 미비하여 계속적인

수많은 잠재된 일거리가 산재되어 있는 우리나라 80년도 당시를 연상케 하는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하기위한 급속한 변화와 기회의 땅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전통가옥 '게르'                                             태양전지판           

                                                                                                      

                                                                                       홉스굴 호수(Khovsgol Lake)

                                                        

어느 곳이나 살아가는데 있어 그네들의 살아온 전통적인 풍습과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유사 이래로 거칠은 황야에서 자연과 싸워온 그네들의 호전적인 야성에 길들여진

기상과 환경으로 인한 개방적인 성문화 등은..

 

이곳에서 외지인들이 유입이 그네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부를 축적하려는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무분별한 이방인들의 그네들의 관습에 저촉되는 양태는 호전적인 그네들에게도

반감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이방인으로서 현지에 적응하는 습성을 지니는 것도

휴식이나 일터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성숙된 자세이리라 봅니다.

 

 

 

 

우리네 작은 지방공항 같은 규모의 소담한 울란바토르공항을 이륙하자

드넓게 펼처진 평원 위에 외길로 뻗어있는 기다란 자취들을 응시하면서

소박하지만 강인한 그네들의 눈빛 속에서 아마도 이 나라도 우리나라같이 근면과

강인함으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미래가 밝아지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잠시 눈을 부치니

어느덧 눈에 익은 산야의 하늘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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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20C 몽골역사.몽골sit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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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8.05 14:47

    첫댓글 우와 멋진 역사를 다시금 읽게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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