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타원 김이현 종사님 정전 마음공부길
법타원 김이현 종사님 정전 마음공부길 표어
<정전대의> ‘표어해의’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부분은 대산종사님께서 <교리실천도해>로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해 주신 바 있으니 꼭 참고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 물질개벽 : 지벽(地闢) = 과학문명 = 빈곤 . 질병 . 무지를 물리치고 의식주의 생활을 개선하자 = 일생의 신낙원(身樂園) = 종(從) 또는 외(外)
○ 정신개벽 : 천개(天開) = 도학문명 =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건지자 = 영생의 심낙원(心樂園) = 주(主) 또는 내(內)
• 선후천의 교역(先後天交易)
• 정신과 물질의 병진(도학과 과학의 병행)
• 미래의 전망(원만평등한 낙원의 세계)
○ 우리의 두 가지 큰 과제
우리가 서로 함심 합력하여 영(靈)과 육(肉) 두 방면의 빈곤ㆍ무지ㆍ질병을 물리치자.
여기에서 ‘우리의 두 가지 큰 과제’란 무엇일까요?
‘육’의 빈곤ㆍ무지ㆍ질병만이 과제도 아니고 ‘영’의 빈곤ㆍ무지ㆍ질병만이 과제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영과 육 두 방면의 빈곤ㆍ무지ㆍ질병을 해결해 가는 것이 우리의 두 가지 큰 과제이고 이 과제를 해결해야 광대무량한 낙원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선후천이 바뀌는 교역시대입니다. 따라서 대종사님께서는 도학과 과학을 병진해야 원만평등한 세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종경> 전망품에는 이와 관련된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시기가 진급기요 봄(春) 도수(度數)요, 낙원의 도수이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만 하면 사반공배(事半功倍)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앞서 공부한 내용 가운데 ‘영’의 빈곤ㆍ무지ㆍ질병에 대해서는 각자 연마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정전대의>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살펴보겠습니다.
◯ 일체처(一切處) 일체불(一切佛)에게 보은 합덕(報恩合德)하는 산 불공법이다.
• 처처불상 = 견성(見性) = 정각(正覺) = 혜(慧)
• 사사불공 = 성불(成佛) = 정행(正行) = 복(福)
• 일원즉 사은, 보은즉 불공(一圓卽四恩 報恩卽佛供)
• 인내천(人乃天), 사인여천(事人如天), 대월상제(對越上帝)
◯ 삼대 불공법(三大佛供法)
불석신명 불공(不惜身命佛供)
금욕난행 불공(禁慾難行佛供)
희사만행 불공(喜捨萬行佛供)
대산종사님께서는 처처불상(處處佛象)을 아는 것이 곧 견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주만유의 본원이 곧 사은의 본원입니다. 사은이 각각 행하고 있는 바를 깨닫고 보면 우주만유가 처처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지‧부모‧동포‧법률이 행하는 도를 깨닫게 되면 처처불상이 확실하게 손 안에 잡히게 됩니다.
대산 종사님께서는 ‘신심을 작용할 때에 사사불공(事事佛供)을 하는 것을 보면 견성을 했는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사불공이 곧 성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일원상 법어에서 말씀하신 큰 원상의 내용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깨달았는지의 여부는 그 사람의 심신작용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그래서 처처불상을 혜(慧)로 사사불공을 복(福)으로 연결시켜 설명해 주셨습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란 동학의 말씀은 사람이 곧 부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에서 ‘섬긴다’는 말씀은 불공을 의미합니다. ‘대하기를 저 상제 대하듯이 하라.’는 대월상제(對越上帝)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에는 삼대 불공법을 밝혀주셨는데 이는 불공을 하려거든 미지근하게 하지 말고 확실하고 뜨겁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에는 삼대 불공법을 밝혀주셨는데 이는 불공을 하려거든 미지근하게 하지 말고 확실하고 뜨겁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불석신명불공(不惜身命佛供)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오롯이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나를 죽여버린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금욕난행 불공(禁慾難行佛供)입니다. 먹고, 입고, 자고 싶은 욕구, 성욕, 재물욕, 명예욕 등을 참는 것입니다. 참기가 어렵기 때문에 난행이요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행입니다. 금욕난행은 곧 자기불공입니다. 자기불공에 힘쓴 만큼 상대불공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불공은 상대불공의 기초요 사사불공의 기점입니다. 셋째는 희사만행 불공(喜捨萬行佛供)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희사하라는 것일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모두 다 희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만행’이란 하다 말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다 희사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불석신명이 되어야 그다음에 금욕난행, 희사만행불공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불석신명불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전무출신을 하려거든 30년간은 산송장 노릇을 하라.’고 하신 대산종사님의 말씀도 바로 이 불석신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정전대의>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을 살펴보겠습니다.
◯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동정간 정신을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寂寂惺惺)하게 하고 한결되게 하여 여의자재(如意自在)하게 만드는 산 선법(禪法)이다.
• 정력(定力)을 얻을 때까지 마음을 멈추자.
(수호(守護) = 검문소 설치)
• 혜력(慧力)을 얻을 때까지 생각을 궁글리자.
(사색(思索) = 탁마(琢磨)한 광석(鑛石))
• 계력(戒力)을 얻을 때까지 취사하자.
(실천(實踐) = 부도 안 난 수표)
◯ 삼대력(三大力)을 얻어 나가는데 일분 일각도 간단없이 일심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바르고 빠른 길이다.
◯ 동정간 불리선법(動靜間不離禪法)
육근(六根)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
◯ 동정간 보림(保任)
여리박빙(如履薄氷), 신기독(愼其獨), 수심정기(守心正氣)
사무사(思無邪), 무불경(毋不敬), 불방심 부동심 (不放心 不動心)
일심불란(一心不亂), 면면밀밀(綿綿密密), 평상심(平常心), 화이불류(和而不流) 동정삼매(動靜三昧)
스승님께서는 ‘산 선법’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 반대는 ‘죽은 선법’이겠지요? 무엇이 죽은 선법일까요? 장소와 시간에 구애되는 선법, 생활에 활용하지 못하는 선법이 죽은 선법입니다. 좌선만이 선은 아닙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항상 ‘적적성성 성성적적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적적성성이 주가 되고 일이 있을 때는 성성적적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표현을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자기 마음을 대조해야 합니다.
또 마음에 검문소를 설치해서 정력(定力)을 얻고, 광석을 탁마하듯 혜력(慧力)을 얻고, 부도나지 않는 수표와 같은 계력(戒力)을 얻자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멈추면 멈출수록 정력이 쌓이고 또 쌓입니다. 멈출 수 있도록 마음에 검문소를 설치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 성탑을 보면 같은 돌인데도 유난히 더 광택이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돌도 갈고 또 갈면 광이 나는 것처럼 지혜도 연마하고 또 연마해야 합니다. 계력은 수표와 마찬가지입니다. 부도가 나면 안됩니다. 수양력과 연구력이 있더라도 취사력이 뒷받침 되어야 부도가 나지 않습니다.
‘동정간 불리선법’은 <정전> 무시선법의 결론을 그대로 옮겨 주신 것이니 각자 연마를 해 봅시다.
‘동정간 보림’에서 보림(保任)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줄임말입니다. 잊어버리거나 놓치지 않고 늘 챙겨서 편안하게 맡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전대의> 중 ‘동정간 보림’과 관련한 법문의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은 얇은 얼음 밟듯이 늘 조심하여 챙기라는 말씀입니다. ‘신기독(愼其獨)’은 홀로 있을 때 삼가란 뜻입니다. ‘수심정기(守心正氣)’는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루라는 말씀입니다. 마음도 보이지 않고 기운도 보이지 않으니 여간 정성들여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무사(思無邪)’는 삿됨을 없애라는 말씀입니다. ‘무불경(毋不敬)’은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니 늘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불방심(不放心)’은 주로 일이 없을 때 방심하지 않는 공부이고, ‘부동심(不動心)’은 주로 일이 있을 때 동하지 않는 공부입니다. 일이 없다하여 때 아닌 때 잠을 자거나 망념을 일으키는 등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면 안 됩니다. 반면에 일이 있을 때는 그일 그일에 일심하고 다른 것에 끌리지 않아야 합니다. ‘일심불란(一心不亂)’은 흐트러지지 않는 한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다음 ‘면면밀밀(綿綿密密)’이란 끊임없이 촘촘하다는 뜻이니, 그렇게 마음을 챙기라는 의미입니다. 비유하여 보자면 솜이 가늘어서 끊어질 듯 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있고, 구멍이 난 듯 하면서도 매우 촘촘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이 면면하고 밀밀하게 챙기라는 것입니다. ‘평상심(平常心)’에 대해서는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45장, 46장을 참조하면 좋습니다.
‘화이불류(和而不流)’는 조화를 이루되 휩쓸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 한 교무님이 문답 감정을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즉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 동료 교무와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한 취사가 잘 된 것인지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리가 자리였던지라 술잔이 오고가는 분위기였는데 함께 간 다른 교무님은 술잔을 받았지만 자신은 끝내 사양을 했다며 자신이 심신작용을 잘한 것인지를 물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신 다른 교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불류(不流)’는 잘 실천하였지만 혹여 술을 마신 다른 교무를 질책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화(和)’를 잘하지는 못한 것이다.”라고 감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자리에 참석을 했다가 술잔을 받은 교무님과 문답 감정을 했다면 ‘화’하기는 했는데 ‘불류’를 잘 하였는지 못하였는지를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화’하기 위해서 술을 마실 때 마음에 대중심이 있었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화’를 핑계 삼아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 것이라면 그것은 곤란합니다.
계문을 지켜 나갈 때 ‘연고’를 너무 남발하면 안 됩니다.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6장에서는 “자신의 계행은 소승으로 지키고, 세상의 교화는 대승으로 하여, 소승과 대승을 병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소승으로 하라는 말씀은 연고를 붙이지 말고 철저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법문은 출가나 재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대종사님께서 보통급 십계문에 연고를 50%나 붙인 뜻은 문호를 열고 문턱을 낮추기 위함입니다. 법위가 높다하여 계문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다리를 올라갈 때는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지 날아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날아서 오른다 하여도 처음엔 땅을 의지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행여 보통급 계문이라 하여 소홀히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동정삼매(動靜三昧)’는 동정 간에 삼매를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은 <정전대의> ‘동정일여(動靜一如)’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동하여도 분별이 착(着)이 없고 정(靜)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다. (나가대정-那伽大定)
• 동(動) : 유사시(有事時) 부동심 공부 ◝
항상 챙기는 마음
• 정(靜) : 무사시(無事時) 불방심 공부 ◞
◯ 동정간 일심양성
• 동(動) : 성성적적(惺惺寂寂) = 동중선(動中禪) = 일행삼매(一行三昧) = 일직심(一直心)
= 무불경(毋不敬) = 묘유(妙有)
• 정(靜) : 적적성성(寂寂惺惺) = 정중선(靜中禪) = 일상삼매(一相三昧) = 일정심(一定心)
= 사무사(思無邪 ) = 진공(眞空)
◯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깨어 있다’는 말의 반대는 ‘취해 있다’입니다. 법문에서 ‘동정일여(動靜一如)’를 ‘항상 챙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해 주셨는데 이는 취해 있는 마음이 아니라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챙기는 마음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입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이란 마음을 내되 주착한 바 없이 내라는 말씀입니다. ‘주착(住着)’이란 어디에 머물러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마음이 먹을 것에 붙는 사람, 돈에 붙는 사람, 옷에 붙는 사람, 남녀욕 혹은 명예욕에 붙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마음이 일단 어딘가에 주착하면 어두워지고 좁아집니다. 설사 그것이 ‘선(善)’이라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법상(法相)에도 주착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정전대의> ‘영육쌍전(靈肉雙全)’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복과 혜를 아울러 갖추는 법이다.
정신의 생활은 계정혜(戒定慧) ◝
육대강령 병행실천
육신의 생활은 의식주(衣食住) ◞
정신과 육신을 함께 살리고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는 법이다.
이 내용은 개교의 동기에서도 다뤄질 내용이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은 <정전대의> ‘불법시생활‧생활시불법(佛法是生活‧生活是佛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불법(佛法=眞理)을 생활화 시대화 대중화하여 불은(佛恩)속에서 영생을 잘 살도록 하는 법이다.
• 불법시생활 : 불법으로 생활을 빛내고 = 일심보은(一心報恩)
• 생활시불법 :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는다 = 보은일심(報恩一心)
◯ 실생활에 부합되는 산 종교
◯ 봉불(奉佛)의 의의 (심불봉안 心佛奉安)
봉불은 곧 시불(侍佛)이니 시불을 하는 것은 생불(生佛)이 되자는 것이며, 생불은 다시 활불(活佛)이 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대산종사님께서 특별히 ‘산 종교’를 역설해 주셨습니다. 종교가 생활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신 것입니다. ‘봉불의 의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불(侍佛)이란 부처님을 모신다는 의미인데, 부처님을 모셔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생불(生佛) 즉 살아있는 부처가 되자는 것이요, 활불(活佛)은 활동하는 부처님이란 의미도 있고 보은하는 부처님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또 시불(侍佛)은 밖에 계신 부처님을 모신다는 의미도 있고, 안에 계신 부처님을 모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시불을 하자는 것은 부처님을 모시자는 것만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힘을 얻어 내가 생불이 되자는 것이요, 생불이 되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활동하고 보은하는 활불이 되자는 것입니다.
교리표어의 의미를 종합하면 모든 종교는 다 생활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종교가 영육을 쌍전해야지 영에만 중점을 두어서는 앞으로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동과 정을 자꾸 나누고 가르면 안 됩니다. 동할 때나 정할 때나 한결같이 챙기는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편벽된 선법을 개선하고 불공법도 더 넓혀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무시선법과 불공법으로 불교를 혁신해 주셨습니다. 동정일여 영육쌍전으로 생활과 종교가 하나가 되도록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기존의 많은 종교가 있지만 대종사님께서 다시 이 회상을 여신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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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법문집 제1집(大山宗師法門集 第1輯) 정전대의(正典大意) 표어 해의(標語解義) &
법타원 김이현종사님 정전마음공부 길
1.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선후천의 교역(先後天交易)
정신과 물질의 병진(도학과 과학의 병행)
미래의 전망(원만평등한 낙원의 세계)
우리의 두 가지 큰 과제 우리가 서로 함심 합력하여
영(靈)과 육(肉) 두 방면의 빈곤 . 무지 . 질병을 물리치자.
2. 처처불상 . 사사불공(處處佛像 . 事事佛供)
일체처(一切處) 일체불(一切佛)에게 보은 합덕(報恩合德)하는 산 불공법
일원즉 사은(一圓卽四恩)
보은즉 불공(報恩卽佛供)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 사람이 곧 부처라는 말씀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 섬긴다’는 말씀은 불공을 의미
대월상제(對越上帝) ‘대하기를 저 상제 대하듯이 하라.’ 불공
삼대 불공법 불석신명불공(不惜身命佛供) 계산하지 않고 오롯이 바친다는 의미
몸을 아끼지 않고 나를 죽여버린다는 말
금욕난행불공(禁慾難行佛供) 먹고, 입고, 자고 싶은 욕구, 성욕, 재물욕, 명예욕 등을 참는 것
참기가 어렵기 때문에 난행.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행
= 자기불공
(상대불공의 기초, 사사불공의 기점)
* 자기불공에 힘쓴 만큼 상대불공을 할 수 있음.
희사만행불공(喜捨萬行佛供) 있는 그대로 모두 다 희사를 하라는 것
3. 무시선 . 무처선 (無時禪 . 無處禪)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동정간 정신을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 하게 하고 한결되게 하여 여의자재(如意自在)하게 만드는 산 선법
정력(定力) 마음을 멈추자. (수호<守護>= 검문소 설치) 삼대력을 얻어 나가는데 일분 일각도 간단없이 일심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바르고 빠른 길
혜력(慧力) 생각을 궁글리자. (사색<思索>= 탁마(琢磨)한 광석(鑛石)
계력(戒力) 취사하자. (실천 = 부도 안 난 수표)
동정간 불리선법(動靜間不離禪法) 육근(六根)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
동정간 보림(保任)
(보림
=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줄임말
: 잊어버리거나 놓치지 않고
늘 챙겨서
편안하게 맡아 가지고 있다)
여리박빙(如履薄氷) 얇은 얼음 밟듯이 늘 조심하여 챙기라
신기독(愼其獨) 홀로 있을 때 삼가라
수심정기(守心正氣)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루라
사무사(思無邪) 삿됨을 없애라
무불경(無不敬)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 늘 공경하라
불방심(不放心) 주로 일이 없을 때 방심하지 않는 공부
부동심(不動心) 일이 있을 때 동하지 않는 공부
일심불란(一心不亂) 흐트러지지 않는 한마음
면면밀밀(綿綿密密) 끊임없이 촘촘하다 = 그렇게 마음을 챙기라
평상심(平常心)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45장 46장 참조
화이불류(和而不流) 조화를 이루되 휩쓸리지 않는다
동정삼매(動靜三昧) 동정 간에 삼매를 얻으라
4. 동정일여(動靜一如)
동하여도 분별이 착(着)이 없고 정(靜)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다. (나가대정-那伽大定)
동(動) 유사시(有事時) 부동심 공부 항상 챙기는 마음
정(靜) 무사시(無事時) 불방심 공부
동정간 일심양성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5. 영육쌍전(靈肉雙全)
복과 혜를 아울러 갖추는 법
정신의 생활 계정혜(戒定慧) 육대강령 병행실천
육신의 생활 의식주(衣食住)
정신과 육신을 함께 살리고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는 법
6. 불법시생활 . 생활시불법
불법(佛法=眞理)을 생활화 시대화 대중화하여
불은(佛恩)속에서 영생을 잘 살도록 하는 법복과 혜를 아울러 갖추는 법
불법시생활 불법으로 생활을 빛내고 일심보은(一心報恩)
생활시불법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는다 보은일심(報恩一心)
실생활에 부합되는 산 종교
봉불(奉佛)의 의의
(심불봉안 心佛奉安) 봉불= 시불(侍佛)
시불 = 생불(生佛)이 되자 = 활불(活佛)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