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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없다면 구태여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가 있을까
일반인들은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그리고 다정(多情)과 몰인정(絶情)의 문제를 언급할 경우 대부분은 얼버무릴 뿐 정론(定論)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특히 남과 선(禪)을 담론하거나 스님과 선을 담론할 경우 자연히 자신도 모르게 화제를 바꾸어 버리고 감히 차원 높게 담론해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님의 웃음거리가 되고 속세의 속물로 비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혹은 스님이 정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에 더불어 얘기할 정도가 못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 스님이든 우리나라 스님이든, 고승(高僧)이든 속승(俗僧)이든 고사(高士)이든 하사(下士)이든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무릇 사람이라면 사람의 숨결이 있으므로 결국 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설사 진정으로 수행이 감정에 움직이지 않는 성인의 정도에 까지 이를 수 있더라도 역시 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각각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고 감히 잊지 않아서는 안 될 바를 잊고, 잊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잊었을 뿐입니다.
아득한 태고부터 지금까지 억만 년 동안 이 거대한 우주세계 속의 생명 존재가 각종 문자로 기록한 문헌은, 그것이 문학이든 정치든 군사이든 경제든 경서이든 정사(正史)이든 필기소설이든, 한마디로 말하면 모두 인간의 천태만상의 괴상한 연애소설(情史)기록일 뿐입니다.
이를 확대해 보면 위로는 종교 교주인, 신선이나 부처나 신이나 주(主)로부터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미물에 이르기까지 유정(有情)아님이 없습니다. “정이 없다면 하필 이 세상에 태어났겠는가, 좋아함이 있다면 결국은 이 몸에 부담된다네.”(無情何必生斯世, 有好終須累此身)란 말은 만고에 변치 않은 명언입니다. 신선이나 부처나 신이나 주(主)는 신선이나 부처나 신이나 주의 정이 있고 꿈틀거리는 미물은 미물의 정이 있습니다. 소위 충신, 효자, 열부(烈婦), 의사(義士), 문학가나 예술가, 시인이나 학자, 시골 농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은 특별히 끌리는 대상이 있고 정은 기대고 맡기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라는 채색 무늬 비단 그림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처가 말한 ‘일체유정중생’(一切有情衆生)이란 한 마디는 바로 무상(無上)의 밀어(密語)요 무상(無上)의 혜학(慧學)입니다. 정이 있으면서도 해탈하면 곧 신선이나 부처요, 영원히 정의 노예가 되면 바로 범부입니다.
이를 보면 석가모니 부처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사문이 된 뜻은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미래의 시간과 공간이 다하도록, 즉 ‘허공은 다함이 있더라도 나의 중생구제 서원은 다함이 없다.’(虛空有盡, 我願無盡)라는 말은 다정의 극치요 대정종성(大情種性)이지 않습니까? 공자는 일생토록 ‘불안하게 서성대는 모습이 마치 상가 집 개와 같았습니다.’(棲棲遑遑 如喪家之犬) 공자는 시대의 비운을 돌이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본 것’(知其不可爲而爲之)은 바로 정이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 고난속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유하혜(柳下惠)가 말하기를 “곧은 도리로 사람을 섬기다 보면, 어디를 간들 세 번은 쫓겨나지 않겠소? 비뚤어진 도리로 남을 섬길진대, 어찌 꼭 부모의 나라를 떠나야 되겠소?”(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라 한 것도 정의 쏠림 아님이 없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선혈을 뚝뚝 흘리면서도 하늘과 사람들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정의 승화 아님이 없습니다. 마호메트가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코란경을 들고 사람들을 교화한 것도 고국을 사랑하는 정이요 천하를 생각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오직 노자만은 일부러 무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찌해볼 수 없다는 모습으로 푸른 소를 타고 서쪽으로 함곡관을 지나 사막을 향해 홀로 쓸쓸히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방랑을 떠나 그의 마지막을 알 수 없는데, 이 역시 ‘내일 아침 홀로 말 타고 그대를 그리워하는 곳은, 수많은 산 밖 아득히 멀리 있을 것임을 안다.’(明朝匹馬相思處, 知隔千山與萬山)는 심경임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정을 잊기란 어렵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땅은 산과 바다로 막혀 있지만 산들바람 불어오는 서늘한 달 밤 등잔 앞에서 가끔 영암산의 단풍이 파도 물결치는 것을 추억하면 저도 모르게 방외(方外)의 벗 전서상인(傳西上人)이 그리워집니다. 상인은 출가 승려의 모습으로 구양경무(歐陽竟無) 선생 문하에서 학업을 닦아 유식법상학(唯識法相學)에 정통했습니다. 청성(靑城)에 주석(駐錫)하면서 천하의 많은 명사 학자들과 교유하였는데, 보잘 것 없는 저 역시 그 산중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평소 서로 허물없이 지내면서 이미 승속의 구별을 초월했었습니다. 당시 화서(華西)대학에서 상인더러 선학(禪學) 강의를 해달라고 초청했지만 시종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꾸 재촉하자 한사코 ‘정(情)과 애(愛)의 철학’ 과목을 강의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스님이 ‘정과 애의 철학’을 강의한다는 사실이 실로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청중석도 빈자리가 없었고 스님도 알찬 강의를 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답니다. 저는 때마침 중경에 여행 중이어서 강의현장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상인과 저는 그 날 강의의 대요를 언급하고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고금의 문학작품 중에는 정을 주제로 한 대작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다 아는 고시19수(古詩十九首),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와 양부음(梁父吟), 조자건(曹子建) 부자 형제 3인과 건안칠자(建安七子)의 시문이 있고, 당대(唐代)의 이세민(李世民) 이래의 명작인 이백, 두보, 왕유, 유우석, 이상은 등 재능과 감정이 겸비되고 넘치는 일군의 시인들의 시가 있습니다. 송대(宋代)에는 악비(岳飛)의 만강홍(萬江紅), 문천상(文天祥)의 정기가(正氣歌)와 과영정양(過零丁洋)의 명시가 있으며, 명대(明代)에는 사가법(史可法)과 다이곤(多爾袞) 사이에 오고간 편지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참된 정이 흘러나온 가작(佳作)으로, 정말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이십육사(二十六史)의 흥망성패도 시비정사(是非正邪)의 기록이요 인류사회의 한 부의 연애소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나큰 정은 그만두고 인생경계의 정아(情我)의 작은 경계에 대해서 말해본다면 사람들은 송대의 시인인 육방옹의 다음과 같은 애국 정서를 말합니다.
조정의 군대가 북벌하여 중원을 수복하는 날
집에서 제사지내며 잊지 말고 이 아비에게 알려다오
王師北定中原日 家祭無忘告乃翁
그 다음으로는,
내 사랑 향기로운 여인 떠나간 지 벌써 사십 년 夢斷香銷四十年
심원의 버들도 늙어서 솜털이 날리지 않는구나 沈園柳老不飛棉
이 몸은 곧 회계산의 흙이 될 테지만 此身行作稽山土
아직도 남긴 자취 추모하며 눈물 줄줄 흐르네 猶弔遺蹤一泫然
가 있고 신가헌(辛稼軒)의 다음 시가 있습니다.
배불리 밥 먹고 한가히 작은 시냇가 거닐면서 飽飯閑游繞小溪
지나간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여 본다 却將往事細尋思
때로는 가슴 아픈 일에 생각이 미치면 有時思到難思處
난간이 부서지도록 치는 것을 남들은 모르네 拍碎闌干人不知
이런 시들은 모두 마음 씀이 깊고 치밀하며 늙어서도 달라지지 않는 다정한 이야기요 진심어린 말입니다. 이외에도 승속 중에서 정(情)과 애(愛)의 철학에 관한 소품(小品) 시사(詩詞)들을 대략 골랐으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고천(鷓鴣天) 송(宋) 신기질(辛棄疾)
석양에 추운 까마귀 울음 시름 가득한데 晩日寒鴉一片愁
버드나무 연못 신록은 다사하고 부드럽구나 柳塘新綠卻溫柔
만약 두 눈 속에 이별의 한이 없다면 若叫眠底無離恨
인간 세상에 흰 머리 있음을 믿지 않으리라 不信人間有白頭
이미 애끓는 간장 거두기 어려운 눈물 腸已斷 淚難收
그대 그리워서 다시 작은 붉은 누각에 올라 相思重上小紅樓
구름 멀리 첩첩 산들로 가로막힌 줄 알면서도 情知已被雲遮斷
나를 못 말려 자꾸 난간에 기대어 바라본다 頻倚闌干不自由
피곤해도 잠 못 이루니 이 밤을 어쩔 것인가 困不成眠奈夜何
돌아오지 못할 것 분명하니 수심만 많아지네 情知歸來轉愁多
남몰래 지난 일 두루 생각해 본다 暗將往事思量遍
누가 다정함으로 그를 괴롭혔던가 誰把多情惱亂他
무슨 일이 사람 일 틀려지게 하는가 些底事 誤人哪
설마 정말 집 생각 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不成眞個不思家
교치는 향향이 잠든 것 샘이나 嬌痴卻妒香香睡
일부러 불러 깨워 꿈 이야기 하네 喚起醒忪說夢些
서풍이 부는 김에 멀리 거닐어 본다 趁得西風汗漫游
그이를 만나 노래한 뒤 왜 시름이 일어날까 見他歌後怎生愁
일이란 봄풀 같고 봄은 영원히 오가며 있건만 事如芳草春長在
사람은 뜬 구름 같아 그림자도 남지 않네 人似浮雲影不留
화장 눈썹 찌푸려지며 눈물이 울컥 울컥 흐른다 眉黛斂 眼波流
십 년 정 남기고 떠난 박정한 낭군 얘기하더니 十年薄幸說揚州
또 청루몽 꾸려고 내일 아침 작은 배 타고 가 明朝短棹輕衫夢
계남의 엄화루에만 있겠지 只在溪南罨畵樓
낙엽 진 높은 산에 서리 내리는 밤 木落山高一夜霜
북풍은 기러기를 몰아 또 떠나가는구나 北風驅雁又離行
말 없음이 정감이 더 좋은 것을 매번 느끼고 無言每覺情懷好
읊지 않음이 흥미를 더 길게 할 수 있네 不吟能令興味長
자주 만났다가 헤어짐을 한번 생각해보자 頻聚散 試思量
누구를 위해 봄풀은 못을 꿈꾸는 걸까 爲誰春草夢池塘
중년에는 이별의 일로 며칠을 두고 슬프니 中年長作東山恨
보내지 말게나 이별의 노래에 괴로워 애끓네 莫遣離歌苦斷腸
억강남(憶江南) 청(淸) 납란성덕(納蘭性德)
마음은 다 사그라진 재
머리만 길렀지 거의 스님
인생의 비바람에 시달리고 아내와 생사별
서로 알고지낸 사인 듯 마주 보는 것은 외로운 촛대 뿐
깊은 정 속에서 깨어날 수 없어라
흔들려 떨어진 뒤
가을 바람소리 어찌 들으리
저 어둠속에 산들산들 날리는 오동나무 샘의 나뭇잎들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종소리가 들린다
내가 박복하여 미인이 떠나갔구나
心灰盡 有髮未全僧
風雨消磨生死別 似曾相識只孤檠 情在不能醒
搖落後 淸吹那堪聽
淅瀝暗飄金井葉 乍聞風定又鐘聲 薄福荐傾城
산화자(山花子)
남은 버들 솜 바람에 날려 물위에 떠다니고
못의 연꽃은 굳세지만 줄기는 연뿌리 실들에 얽혔네
이별할 때 향기로운 꽃 한 송이 그대에게 주어
전생을 기념했지
사람은 정이 많아지면 박정해진다고
예전에 정이 많았음을 지금은 정말 후회하면서도
마음 아파하며 이별했던 곳에 돌아와
남몰래 눈물 떨군다
잠깐 등불 앞에서 취해 깨어나지 않았는데
봄날 꿈같은 몽롱한 회한 분명할까 두려워라
어슴푸레한 달빛 얇은 구름에 창밖에는 비
뚝 뚝 뚝 내리는 소리
사람은 정이 많아지면 박정해진다고
예전에 정이 많았음을 지금은 정말 후회하면서도
가지 말라 우는 자고새 소리 울려 퍼짐을 듣는다
단장정에서
風絮飄殘已化萍 泥蓮剛倩藕絲縈 珍重別拈香一瓣 記前生
人到情多情轉薄 而今眞個悔多情 又到斷腸回道處 淚偸零
一霎燈前醉不醒 恨如春夢畏分明 淡月淡雲窓外雨 一聲聲
人到情多情轉薄 而今眞個不多情 又聽鷓鴣啼遍了 短長亭
채상자(采桑子)
그 누가 처량한 악부곡을 연주하고 있을까
바람 소리도 쏴아쏴아 비 소리도 쏴아쏴아
등화는 점점 다 타가고 또 하룻밤이 지나가고
무슨 일이 가슴속을 맴돌고 있는지 모르게
깨어 있어도 무료하고 취해있어도 무료하고
꿈속에서도 그녀 있는 곳 사낭교(謝娘橋)에 갈 수 없네
誰翻樂府淒凉曲 風也蕭蕭
雨也蕭蕭 瘦盡燈花又一宵
不知何事縈懷抱 醒也無聊
醉也無聊 夢也何曾到謝橋
낭도사(浪淘沙)
답답하여 꺼지려는 등불을 돋운다
어둠속에 빈 뜰에 비가 내린다
쏴아쏴아 비 소리 듣는 것도 견디지 못하겠는데
거기다 서풍이 일부러 그러려는 듯
가을 소리를 다 한다
성에서 들려오는 딱딱이 소리는 벌써 삼경
자려고 해도 여전히 말똥말똥
밤중 추위에 은장식 병풍을 가려본다
일찍이 물든 계율의 향으로 속념을 녹여보려는데
왜 또 정은 많은 걸까
悶自剔殘燈 暗雨空庭 瀟瀟已是不堪聽
那更西風偏着意 做盡秋聲
城柝已三更 欲睡還醒 薄寒中夜掩銀屛
曾染戒香消俗念 怎又多情
하엽배(荷葉杯)
나의 지기 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이미 떠나버렸네
내생을 얻어 그르쳐야지
정이 있음은 영원히 무정한 듯
이별하는 말에는 후회가 분명하였네
꽃다운 젊은 시절 보내기 쉽다 말하지 마시어요
아침저녁으로 좋은 시절을 소중히 하시어요
그 사람을 위해 내생의 인연을 가리켜줄
남기고 떠난 비녀를 보니 눈물이 비 오 듯이 떨어지네
知己一人谁是 已矣 赢得误他生 有情终古似無情 别语悔分明
莫道芳时易度 朝暮 珍重好花天 为伊指點再来缘 疏雨洗遗钿
억지로 기뻐하다(强歡) 청(淸) 왕차회(王次回)
슬픔이 일어나 가슴을 메워도 억지로 기뻐하니 悲來塡臆强爲歡
나도 모르게 꽃들 사이에서 눈물이 떨어지네 不覺花間有淚彈
세상사 겪어보고 변덕스런 염량세태 알았기에 閱世已知寒暖變
사람 만나면 웃기도 울기도 어렵단 걸 느끼네 逢人眞覺笑啼難
돌아가는 길에 스스로 탄식하다(歸途自嘆)
병풍을 그리던 이 떠나더니 편지 드물고 畵屛人去錦鱗稀
근심스레 바라보니 눈물이 나그네 옷 적시네 愁見啼紅染客衣
설사 집에 가더라도 여전히 나그네라 縱使到家仍是客
멀고 먼 고향 길 근심하며 돌아가네 迢迢鄕路爲愁歸
역사와 인생을 말한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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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