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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 위에서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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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일반자료 스크랩 충북 보은 예수마을 방문
홍성태 추천 0 조회 206 12.12.05 17: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2년 10월 19일 산본안산공동체 권사님들이 충북 보은에 있는 예수 마을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충북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 62-1  (043-543-9904) 보나교회

BONA는 라틴어 입니다. 영어로는 GOOD이라는 뜻이고 한국어로는 '좋은' 이라는 뜻이지요.

BONA COMMUNITY는 좋은 땅, 좋은 사람, 좋은 열매!!라는 뜻을 포함 한다고 하네요.

 

보나교회 예배당 정문 앞의 모습입니다.

보나콤은 온누리교회내에서 농촌공동체를 꿈꾸던 강동진목사님을 비롯 몇몇 가정들이 충북 보은이란 척박한 땅에 땅을 일구고 손수 목조건축을 통하여 거주할 집을 마련하여 살고 있는 농촌공동체입니다. 기본적으로 보나콤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연농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섭리에 위배되지 않으며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현재는 9가정이 살고 있고 교육은 2004년부터 공교육이 아닌 홈스쿨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학교인 보나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나콤에서는 보나팜이란 이름을 가지고 자연농업을 기반으로 우리 몸에 이로운 농산물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참 아름다운 간판들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강동진 목사님께서 온누리교회 김형회 목사님과 산본안산공동체 권사님들을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방문 시간에 다른 선교사님들도 몇 팀이 방문하신 것 같은데

특별한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강동진 목사님 감사합니다.

마을에 들어오면서 풍력발전기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계신건가요? 국가의 공급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풍력발전기를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는 풍력발전기와 태양모듈을 연동시켜 전기를 발생시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리는 아주 단순해요. 풍력발전기와 태양모듈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면 배터리에 충전하고, 그 후 인버터를 통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전기전압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죠. 하나가 시간당 1KW의 전기를 생산하니까 한 가정에 하나로 충분합니다. 전기가 없는 제3세계와 선교지에서는 한 마을, 한 게르의 전기를 자급시킬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에게 전기를 발생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에너지를 생산하려고 할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들고 가난한 선교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고 있는 2만여명의 선교사님들을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현지인들을 더 잘 섬기도록 돕는 길을 고민하다가 농업과 에너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공동체의 에너지 책임자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워낙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어요. 그래서 공동체가 그 분에게 에너지를 제대로 공부하게 하자고 결정하고, 모든 비용을 지원하여 독일과 영국으로 보냈어요. 이 분 통역을 위해서 우리 공동체의 박사가 직접 따라갔습니다. 두 군데를 돌아보았는데 거기서 교육을 받은 다음, 더 업그레이드된 모델들을 만들게 된 것이죠. 또 다른 이유는 종말론적인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성경이 명약관화하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은 미래에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전세계 경제시스템이 통합되고 그 통합에 따른 통제와 심한 핍박이 주어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순결하고 고결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도시화되고 물질주의화된 모든 문명시스템으로부터 자립하는 것이 순결한 영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바람이 불때는 풍력을 햇볕이 날 때는 태양열을 둘이 함께 사용할 수도 있는 에너지 연구소

파푸아 뉴니니아에 수출을 위한 장비도 포장 되어 있었습니다.

전기가 없는 곳에는 얼마나 유용 할 지 선교지에 너무나 귀하게 사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너무나 값싸게 전기를 충분히 사용하고 있어서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전기를 마음데로 쓸수 없는 선교지 오지에는 너무나 중요한 에너지 연구소인 것 같습니다.

원가로 약 700만원이면 1SET를 장만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보나콤과 선교

올해 상반기에 저희 공동체는 양계학교와 풍력학교를 열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양계와 풍력학교가 그 동안 발 없는 말이 십리를 간다고 세계 곳곳에 계신 선교사님들에게 입소문이 났나 봅니다. 학교를 개설할수록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선물로 주신 양계와 대안에너지에 대한 기술과 경험들을 나눌 수 있게 하시니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생명의 떡으로 오셨으니 아시아 19억 3천 6백 만 가난한 농민들에게 양계와 농업을 통해 떡을 해결 할 수 있는 기술을 나누고,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니 어둠을 밝히는 빛을 나누는 일을 저희에게 하게 하시니 법궤를 옮겨오는 무리 앞에서 춤을 추던 다윗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풍력에너지는 공동체에 5대를 설치하였고, 바누아투라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 수출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야 에너지가 풍족하고 값이 싸기에 저희가 만드는 것들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지만 전기가 없는 나라, 가난한 선교지에서 이것은 어둠을 몰아내는 신기한 것으로 여겨지며 선교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 철거한 합판과 목재를 이용해서 지은 건물인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모델 하우스를 철거하는 것을 인수하여서 트럭으로 보은으로 실고와서

못을 빼는 데만 12자루를 빼셨다고 하시네요. 참 대단하십니다.

예수님은 빵을 12광주리 남기셨는데....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건축한 숙소라고 합니다.

내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마을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아 지셔서 말하자면 민박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팬션이라고 해야하나 숙소인 것 같습니다.

보은에 대추 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대추가 너무 많이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마을회관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마을 단위에 하수처리시설이 되어 있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천문 망원경을 못 보았습니다만 방문객이 많이 늘어나서 정부에서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천문 망원경을 지원해 주셨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마을의 모든 길은 비포장도로였고 집들의 반 이상은 폐가이거나 빈 집인 농촌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습니다. 논은 아직도 천수답이지요. 그런데 2004년부터 하나님께서 이 마을을 바꾸기 시작하셨습니다. 정부자금이 이 마을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죠. 농림부에서 1년에 한 번씩 공모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우리 마을 주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공모했는데, 전국에서 1등을 하여 24천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이것을 필두로 하여 행자부, 산림청, 산자부 등 곳곳에서 40억 이상의 정부자금이 이 마을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길도 새로 닦고, 상하수도 시설도 새로 하고, 마을의 담장들도 돌담으로 바꾸고, 지붕과 부엌도 개량하고, 마을회관도 새로 짓고, 푯말도 센스있게 만들었어요. 생태에 관심을 가지면서는 오폐수를 집결시킬 수 있는 관로를 집집마다 연결하여 정화시설로 보낸 뒤 중수 이상의 물로 바꾸어 내보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에너지팀이 개발한 풍력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보급하고 있고, 태양광발전기는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습니다. 재작년에는 산자부의 그린빌리지 공모에 저희 마을이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 80% 이상이 저희 농법을 따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저희보고 논에 제초제 안뿌린다고 욕을 바가지로 하셨거든요. 저 인간들은 서울 본부에서 돈을 대주니까 저따위로 농사를 짓지 하시면서요. 하하. 그런데 저희 논과 밭에 풀이 안나고 훨씬 더 많은 수확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동네 분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어요. 어떻게 풀이 안나는지 물으시면 저희들의 농법을 말씀해드렸죠. 그러다가 겨울에 동네 어르신들이 다 모여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라고 한 거예요. 몇 차례 설명을 드리니 따라오기 시작하셨어요. 우리에게는 유통구조가 있으니까, 만약 우리처럼 친환경적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농협에서 수매하는 가격보다 얼마 이상을 더 쳐드리겠다고 유도를 했죠. 이런 방식으로 고추농사와 논농사를 저희 방식대로 하게 되었어요.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처럼, 성전에서 스며나온 물이 발목, 무릎, 허리까지 차고 헤엄칠만한 큰 강물이 되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으로 충만케 된 그런 일들이, 실패한 공동체였던 저희들 안에 성령이 임하신 다음에 우리 마을 안에서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을을 흐르는 작은 개천인데 오염이 되지않아 작은 물고기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물도 너무 맑고 깨끗했구요.

말씀하시는 중에 선교사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을 돕는 좋은 방법이 에너지와 더불어 농업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를 위해서도 구체적인 시도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소개해주세요.

처음에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약 3년간 실험을 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논밭에 풀이 나지 않고 작물이 잘 자라게 하는 방법을 창세기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덮는다는 개념인데요. 창세기 3장에서 타락한 아담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옷을 만들어 입잖아요. 사람도 아담이지만 붉은 흙도 아다마잖습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다마도 아담처럼 맨살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더라고요. 오뉴월 뙤약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붉은 흙이 온통 풀을 내서 옷을 만들어 입는 거예요. ‘, 똑같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보니까, 아담이 지은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지어 입히시더라고요. 새 옷을 지어 입히면 되는데 어떤 옷이 새 옷일까 고민했어요.

제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2, 3년 동안은 한 톨도 수확하지 못했어요. 첫 해에는 논에 벼를 심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논에서 자라는 풀을 관찰했어요. 그 결과 논에는 3종류의 풀이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물이 공급되지 않는 솟아오른 땅에는 육지성 식물이, 수면과 접촉되는 곳에서는 습지성 식물이, 물속에서는 저산소 상태에서 싹을 틔우는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었어요. 그 다음 2년 동안 실험한 결과, 풀들을 처리할 답을 찾았습니다. 논둑을 20센티 이상 높이고, 보통 11-12cm 정도 되면 심는 모를 저는 16cm이상 키워서 심었어요. 그리고는 물을 처음에는 8cm를 대었고, 벼가 자랄수록 수위를 점점 더 높여서 최고 20cm까지 높여 육지성 식물과 습지성 식물을 모두 물에 빠져 죽게 했어요. 벼는 원래 수생식물이니까 괜찮았지요. 문제는 저산소 수생식물을 잡는 것이었어요. 그 답을 찾는 데만 2년이 걸렸으니까요. 관찰해보니 수생식물들은 써레질이 끝난 3일째부터 싹을 내기 시작하더라고요. 쌀겨를 물에 뿌리면 염기성 발효를 일으키면서 유기산을 발산시키는데, 이것이 너무 독하여 막 촉을 낸 수생식물들을 태워버립니다. 저희는 써레질이 끝난 5일 이후, 촉을 다 틔워서 싹이 올라올 때에 쌀겨를 뿌렸어요. 벼는 이미 16센티 이상 컸기 때문에 전혀 해가 없죠. 이렇게 하니까 논에서는 더 이상 잡초가 자라지 않게 되었지요.

밭에 풀이 자라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도 관찰과 실험을 병행했습니다. 풀들은 햇빛, 온도, 습기 3요소가 갖춰져야 싹을 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이 3요소 중에 한 가지만 차단시켜버리면 싹이 나올 수 없는 것이죠. 온도를 조절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물을 차단하기 위해 비닐로 씌워버리면 땅이 숨을 쉴 수 없게 됩니다. 햇빛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인삼밭에서 쓰는 차광막을 구해다가 네 겹으로 누벼서 밭에 쫙 깔았어요. 차광막은 얼기설기 얽혀져 있으니까 틈으로는 비가 스며들어가지만 햇빛은 차단되니까 식물들이 싹을 낼 수 없는 것이죠. 두둑은 비닐로 덮어주고 고랑에는 차광막을 덮어주면 풀이 나지 않게 되죠. 논을 물로 가득 덮어버리니까 논의 벼가 건강하게 자라고, 밭도 뭔가로 덮어버리니까 잡초는 안나고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이죠.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의 피로 덮어씌워야 살잖아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모슬렘 국가는 종교 공동체 국가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더라도 그 다음이 참 난감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것이나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 등 집단주의 사회에서 다른 길을 걷는 자에 대해 말할 수 없이 냉혹한 것이 그곳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는 양계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저희와 같이 아이들을 성경에 바탕을 두고 교육을 시키고 성경적 원리의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농업공동체는 그 사회에서 상상하기만 해도 신나는 일들이 일어나리라 예상합니다. 이번에 가서는 일차적으로 양계와 농업에 대한 세미나를 해드리고 이어서 그곳에 실험 양계장을 한 동씩 건축하여 1년 정도를 지켜본 후에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다면 대단위로 모금을 실시하여 3000수 규모의 대형 양계장을 세우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중국 운남성 작은 마을에 세운 농장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차마고도 상의 소수민족 청년들 10여 명이 농장에 모여 농업을 배우는 중입니다. 양계를 배우고 양돈을 실습하고 그리고 각종 밭농사를 익힙니다. 가르치는 것은 농업인데 나누는 중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말씀이 꿈틀거리며 사람들을 변화시키시는 것을 봅니다. 주님 하시는 일이 정말 놀랍고 생명을 다루는 농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신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보나팜의 주력사업으로 떠오르는 양계장입니다. 양계를 시작할때만해도 마을의 반대가 많았었지만(예전에 누군가 양계장을 했었는데 동네에 악취가 많이 나서..) 자연농업을 함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그간 쌓아온 신뢰로 설득하여 조그맣게 시작한 것이 지금은 5동의 양계장과 2000마리가 넘는 닭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떠나는 분들이 이 곳에 잠시 와서 양계를 배우고 가기도 하고 해외 선교사나 현지인들이 와서 양계업을 배워가기도 한답니다. 또 직접 해외에 가서 양계나 농업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선교농업을 하고 있답니다. 여기서 잠시 양계 이야기를 해보면 보나팜의 양계장은 신선한 공기와 햇?이 투과되며 근처의 냇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사료는 천연녹즙을 뿌려 발효시킨 발효사료를 주사료로 먹이며 키우고 있습니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닭인지라 당연히 수많은 닭들이 있는 이 양계장 안에서도 대장닭이 있고 위계질서가 존재하지요.

보나콤의 주요한 사업 중의 하나는 양계인데요. 양계를 시작하고 뿌리내리게 된 과정, 보나콤만의 독특한 양계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양계를 하면 거름이 나와서 논과 밭을 기름지게 할 수 있고, 또 그 수익으로 공동체를 자립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요. OECD가 유기축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그 코덱스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법에 맞추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따라 닭을 길러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양계를 시작하면서 아시아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양계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닭에 대해 배우기 시작할 때,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된 책들을 읽은 후 우리나라에서 양계를 잘한다고 소문난 12군데를 돌아보았습니다. 처음 4군데에서는 목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그냥 머슴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개월 혹은 3개월을 그 집에 살면서 일을 해주었습니다. 질문도 하지 않고 양계에 대해 독습한 원리들을 가지고 닭을 어떻게 기르는지 보기만 하였습니다. 3군데 정도 돌고 나니까 4번째 5번째 양계장에 갈 때에는 질문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마침 그 즈음 하나님께서 일본 고오베, 와까야마, 오오사카 등지에서 양계를 잘하는 양계장 몇 군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일본과 한국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배우면서 스스로 정리했던 것을 기초로 이 양계장을 설계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35일 혹은 45일간의 양계스쿨을 진행하고 있는데, 참가자의 70%는 선교사나 선교사지망생입니다. 장로회(합동)나 감리교에서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귀농을 꿈꾸는 비기독인들도 오시고요. 양계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처럼 양계가 어느새 선교의 도구로 귀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에 저희 양계가 들어가 있습니다. 고아원과 병원을 도우면서 그 지역을 변화시키고 교회 사역자들을 자립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죠. 선교가 지역사회 개발이란 측면에서 홀리스틱 미션으로 나가고 있는 요즘, 양계와 농업이 선교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들만의 독특한 양계법이라고 한다면, 철저히 창조의 원리에 따라 양계를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양계장에서는 닭똥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왜 냄새가 안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닥에 우드칩, 볏짚, 낙엽이 깔려 있고 그 사이에 미생물이 살고 있어서 닭의 똥이 이 미생물들의 밥이 되어서 삽시간에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되어도 닭장에는 선풍기를 틀어주지 않습니다. 밖에 바람이 불지 않아도 자연대류 현상에 의해 늘 바람이 불도록 설계를 했으니까요. 우선 창이 남북으로 통해져 있어서 공기가 들어옵니다.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겠죠? 그런데 지붕에서는 함석이 열을 받아 굉장히 뜨거워져 있습니다. 더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서 더 뜨거운 공기를 만나면 그 공기는 튀어나갑니다. 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닭의 코 높이는 진공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다시 외부에서 공기가 스며들어오게 되고 닭은 시원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순환이 계속 이어지면서 닭의 코 높이에서는 늘 바람이 부는 것이죠. 양계장은 약 73의 비율로 응달과 양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해가 필요한 애들은 해 앞으로 가서 놀고 그늘이 필요한 아이들은 그늘에서 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들은 공기를 싫어하는 미생물과 공기를 좋아하는 미생물을 배양해서 100% 발효시킨 사료를 먹이로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방울도 항생제나 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생물만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바닥에도 미생물이 충분하므로 다른 데서 바이러스가 몰려와도 닭들이 이기게 됩니다. 저희가 직접 배양한 아미노산과 쑥, 인진쑥, 개똥쑥, 참쑥, , 계피, 감초, 당귀, 생강 등으로 만든 물은 닭의 성장과 건강에 각별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료법, 양계장의 원리들, 질병에 대한 대처 등 양계의 원리들을 매뉴얼로 만들어서 필요한 분들과 나누고, 때로는 수퍼비전을 해주기도 합니다.

보나콤공동체의 농업과 양계가 선교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장단기적으로 봤을 때,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우선 저는 우리와 같은 공동체가 우리나라에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게 농촌을 살리고 한국의 미래를 살리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하니까요. 이것은 또한 제가 꿈꾸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기도 합니다. 지난 1, 시카고에 있는 트리니티신학교의 토드 존슨이라는 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분은 2025년도가 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선교하는 나라가 아닐 거라고 하더군요. 한국 교세, 헌금 액수, 허입되는 선교사의 수, 선교비의 비율 등의 감소를 근거로 들면서요. 저는 그 분의 통찰에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제가 꿈꾸는 한국교회의 미래 선교 패러다임에 대해서 말했어요. 한국의 농촌마다 저희와 유사한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고, 이 공동체가 선교지향적인 마인드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한국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정말 멋지게 선교할 때가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요. 무슬림지역과 같은 종교공동체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의 역개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 묻힐 곳이 없기 때문이죠. 이 때 생기는 불안과 두려움, 자녀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등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다 보나콤과 같은 형태로 10만불 정도를 들여 5천 수 규모의 양계장을 지으면 그 수익금으로 선교사 가정 2가정과 10-20개의 현지인 가정을 자립시킬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양계에서 발생하는 거름으로 5-10만평의 땅을 기름지게 할 수 있으니까 양계장과 밭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건강한 자립형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러면 이 공동체 안에서 성경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 가정을 세우고 자녀양육을 하게 되면 코란에 뿌리내려있는 이들의 가치관을 바꾸어주면서 건강하게 자립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런 하나의 콜로니가 만들어지면 이 공동체가 무슬림 사회에서 굉장히 강력한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우즈벡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카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다섯 개 나라에 실험 양계장들을 세워 실험하고 있는데 데이터가 상당히 좋게 나오고 있어요. 이것이 성공하면 각 나라들마다 10만불 규모의 양계장을 짓고 공동체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선교사 혹은 서방선교사들이 해왔던 맨투맨식의 선교가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그 지역을 변화시키는 농업선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패러다임은 193천명이라는 농민이 살고 있는 아시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상황 속에 있는 아프리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봐요. 한국에 우리와 유사한 공동체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다 전수해서 그 공동체가 자립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진 다음에 선교사들과 협력해서 거룩한 네트?을 형성하게 되면 전 세계를, 가난에 핍절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떡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께서 오실 길을, 큰 대로를 수축하는 것이 장기적인 소망이라 할 수 있겠지요

500만원이면 양계장을 하나 지을 수 있고 그것으로 선교지 교회가 자립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감자와 부실한 영양으로 피부에 버짐등이 나 있던 아이들에게 1주일에 2개씩 게란을

무료로 공급 했더니 교실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셨고 이웃의 학교에서도

왜 우리는 그런 시설을 안해주냐고 원망?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선교지에 양계장을 짓기 위하여 특별히 헌금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깃발이 꼽힌 곳 보다 3배 정도 더 많은 숫자의 양계장이 선교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더 많은 깃발이 더 빼빽하게 꽃혀지길 기도합니다.

  "1998년에 보은으로 내려와서 공동체를 시작한 사람은 농사를 지어보지도 않은 얼치기 농부 3명이었습니다. 저는 목사였고, 한 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한 명은 유학갔다온 박사. 농업과 전혀 관계없는 3명의 인간이 모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될 턱이 있었겠습니까?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사는 것도 정말 어려웠습니다. 많이 싸웠어요. 정말 많이 싸웠어요. 그렇게 싸우다가 2002년에 공동체가 두 쪽이 나버렸습니다. 우리가 기독교공동체니까 재산을 100% 공유하자는 기독교공산주의자와 희년의 원리를 따라 부분 사유를 인정하자, 즉 사유와 공유의 조화를 꾀하자는 쪽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지금에야 하는 생각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사상투쟁이 아니었어요.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와 4-5년동안 너무도 힘들게 고생했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결과가 없었던 것에 대한 패배의식, 실패감, 좌절감이었던 것 같아요. 유학갔다온 박사가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들어올 때 부모들의 반대가 어떠했을까요? 저야 사명감을 가지고 왔다고 하지만, 다른 지체들 입장에서 보면 참 힘든 결정이었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여기에서 오는 절망감과 패배감이 우리를 참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그 패배감과 책임감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고 싶어서 싸운 것 같아요. 죽어라고 싸웠어요. 2002년에 매달 모이면 싸웠는데, 그런 와중에 11월에는 우리 이 해를 넘기지 말자. 해체하거나 둘로 쪼개거나 둘 중에 하나로 결정하자.”고 했어요. 적어도 한 달 전에는 결정을 해야 재산 정리도 할 수 있으니까요. 11월달에 모여서 12일로 싸웠어요. 아침 먹고 싸우고 점심 먹고 싸우고 저녁 먹고 싸웠어요. 그 다음 날 또 모여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둘째날 모여서 싸우다가 성령을 받았어요.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면서 깊은 통회와 자복이 우리 가운데 일어난 거죠. 통회하고 자복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방언이 터지고 어떤 사람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대언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2003년부터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어요. 고추농사를 하면 대개 한 나무에서 붉은 고추를 6-70개 정도, 많으면 100개를 따게 돼요. 그런데 그 해 저희는 한 나무에서 붉은 고추를 평균 350, 많이 따면 550개씩 땄어요. 고추 뿐만 아니라 참깨, 들깨, 벼에서 모두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확을 하게 된 것이죠. 성령이 임하신 그 사건이 우리의 예배와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농사짓는 논과 밭들에도 주님의 거룩한 기름부으심이 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저희의 농업이 자리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험실습하게 하셨던 것들이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논이나 밭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도 풀이 안나게 하는 원리와 기술들이 터득되게 하셨습니다. 농업에 비약적인 발전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하는 양계장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냄새가 나지 않고, 약을 쓰지 않아도 닭들이 병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 알을 잘 낳고, 추위와 더위에 관계없이 닭들이 자라는 것 등. 이어서 2004년부터는 양계를 필두로 해서 농업이 선교지로 보급되게 하셨습니다." (보나콤 강동진목사님)

온누리교회 사임할 때 하목사님께서 뭐든지 말만 하면 다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를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이 더 큰 도움일지 모른다고 하면서 도움을 거절했죠. 퇴직금 정산하고 나니까 수중에 남은 돈은 103천원, 이것이 seed money의 전부였습니다. 저 때문에 아내가 많은 희생을 했어요. 아직은 본인에게 콜링이 없다고 하면서 2004년 비교적 늦게 합류할 때까지 혼자 가정 경제를 책임졌으니까요. 공식적으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외부에서 정기적인 후원을 받거나 지원을 받은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 양계장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설계도 끝내고 준비는 다 되었는데, 막상 지을 돈이 없는 것입니다. 보은, 대전, 청주에 있는 고물상들을 훑고 다니면서 고물들을 끌어모아 그것으로 양계장을 지었습니다. 다 지어지고 나니까 사람들이 와서 보고 온누리교회가 모든 것을 지원해주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닙니다.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웠어요. 처음에 집을 지을 때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철거할 때 나온 폐목들을 샀습니다. 못박힌 채로, 뒤틀려진, 녹슨 흔적들이 있는, 페인트가 벗겨진 폐목들을 5톤 트럭으로 4대 분량을 사서 겨우내 못을 뽑았습니다. 그 못이 마대 자루로 12자루를 가득 채웠습니다. 못을 뽑아낸 그 나무를 가지고 직접 설계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돈이 없으니까 몸으로 때웠죠. 몸으로 때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교회개척은 건물 지어놓고 발로 뛰면 됩니다. 공동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저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시작하고 보니까 일단 집이 있어야겠습디다. 가정이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먹고 살 수 있는 생산기반시설이 있어야 했고, 뿐만 아니라 아이들 교육까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요즘에는 에너지와 물 등 생태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농촌에서 공동체를 하겠다고 한다면 이것 중에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부딪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예배는 어떻게 드리나요?

예배는 최대한 드리지 말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저보고 광신선교단이라고 할 정도로 이 부분에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역할이 너무 커지면 공동체가 파행을 겪고 왜곡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매주 예배를 드렸을까, 아브라함이 매일 큐티를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것이라는 거죠. 아브라함은 매일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한 번 들은 말씀을 끝까지 지킨 사람입니다. 매일 새로운 말씀을 듣는 것보다 이미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공적인 예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공적인 예배는 일주일에 딱 한 번 드리고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모여 세대통합예배로 드립니다. 수요예배든 새벽기도든, 아이와 어른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예배순서를 맡겨요. 설교도 항상 제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들이 설교하기도 해요. 장례시에는 공동체 형제들이 상여 메고 제가 모든 예배를 집례합니다. 예수를 믿는 이가 아무도 없던 마을의 복음화율이 이제는 50%가 되었어요.

공동체의 관점에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농촌은 도시와 매우 다릅니다. 도시로 유입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도시는 아주 개인주의적 성향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인들은 늘 지쳐있고 피곤합니다. 결국 도시에서의 목회는 십자가를 강조하기보다는 위로와 치유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와 달리 농촌은 집단주의적 형태를 띠고 있어요. 여전히 협업이 있고, 두레가 살아있고, 애경사를 같이 하죠. 새벽예배를 하고 있으면, 가끔 우리 마을 이장님이 제삿밥 들러 오라는 방송을 하기도 합니다. 집단주의가 살아있는 농촌 마을에서 우리가 배운 교회론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회론은 철저하게 도시라는 맥락에 맞는 것 같아요. 농촌에는 다른 형태의 교회론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농촌에서의 교회는 적어도 공동체적인 교회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 에클레시아의 원형은 바벨론 포로기 때 만들어졌던 회당에서 찾지 않나요? 회당은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랍비들에게 사법적 권한이 주어지기도 했고, 교육적 기능을 갖기도 했으며 사회의 모든 정보가 소통되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영화되어 버린, 예배에만 치중되어있는, 목사가 오직 예배를 집례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만 특화되어 있는 교회라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삶을 살고,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합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교회의 본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강동진 목사님 너무 멋찐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왕관에 달린 보석처럼 빛날 목사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같은 목사님의 간증 잘 듣고 왔습니다.

이런 농법이 비가 오지 않는 땅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 등 비가 오지 않는 열사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물은 윗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랫물도 있거든요. 지하수 아래의 대수층에 있는 강력한 물샘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렇게 가난한 나라에서 어떻게 물을 끌어올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돈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우리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하는데, 반만 그렇습니다. 나머지 반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비로 온 물들이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죠. 나무를 보더라도 땅 속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고 그 물을 빨아들인 다음 그 물을 공기층으로 확산시킵니다. 땅도 마찬가집니다. 땅 속에 아무런 펌핑시스템이 없어도 땅을 뭔가로 덮어주기만 하면, 그 땅은 정확하게 70%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덮어주면 대지는 본능적으로 아래에 있는 물을 위로 끌어올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예순이 넘으신 재미교포 중 한 분이 9.11 테러 사건 이후에 모든 것을 교회에 기부하고 맨몸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셨어요. 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요. 그 분과 매주 한, 두번씩 이메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덮어야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원칙은 현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덮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중 제일 좋은 것은 나뭇가지들, 나뭇잎들, 풀 등 식물성입니다. 땅은 자기로부터 온 것을 제일 선호하겠지요?

마을 회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농사가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실업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919일에 양계스쿨이 열릴 것인데요, 여기 오시는 분 중에 성남 모란시장 부근에서 노숙하는 노숙자팀이 있습니다. 지난 4, 5월쯤에 분당샘물교회가 노숙자들을 모아줄테니 그들에게 강의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교회가 성남시청과 함께 150명을 모았습니다. 저는 그들 앞에서 실패한 이야기만 2시간동안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던 순간,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과정과 지금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요. 그 이야기가 끝난 후에 성남시와 샘물교회에서 저의 강의를 듣고 양계를 배워 귀농하여 자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지 조사했는데 15명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두 명을 선별해서 뽑았고, 그들이 와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출애굽의 사건이라는 것이 원래 농촌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당시 첨단 문명의 진원지였던 곳 중의 하나인 도시 애굽으로 가서 아주 고통스럽게 노예로 살다가 그 도시의 삶, 노예의 삶으로부터의 탈출인 것 같습니다. 노예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다시 귀농하는 이야기가 출애굽이라고 읽습니다. 지리산 사역을 하면서 또 하나 꿈꾸었던 것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 살다가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해버린 무수한 시골 출신의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출애굽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꿈꾸게 하셨는데, 지금은 그것을 조금씩 시도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을 우물

디딜방아

 

사진은 전부 제가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만 글은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출처없이

무작위로 복사해서 붙여 놓은 부분이 많습니다.

혹시 저적권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삭제를 하겠습니다.

보나콤 공동체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곳 저곳에서 옮겨 왔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한번 아웃리치 가서 사역을 한번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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