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안
(務 安)
-방송: 2010. 12. 20(월) -2010. 12. 24(금)
-기획: 류 재 호
-구성: 안 영 하
-촬영: 우 기 정
-연출: 강 대 국 (박앤박 미디어 070-8768-7951)
한반도 서쪽 해안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의 땅.
비옥한 나주평야를 지나 도착하는 그 곳, 전라남도 남서쪽 끝자락엔
세 개의 반도를 품고 있는 전라남도 무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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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은 일 년 내내 풍부한 자원이 가득한 개펄을 품고 있는 무안의 핵심, 무안반도와
줄기처럼 뻗어나간 별 모양의 또 다른 반도, 해제반도, 망운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반도가 이루고 있는 무안의 개펄은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보호구역이며,
국내 최초의 개펄도립공원이자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람사르 습지다.
개펄로 이루어진 반도 곳곳에선 저마다 낙지를 잡는 주민들이 성황을 이루고,
김과 감태가 푸른 융단을 만드는 서해 바다의 멋진 비경과 때 맞춰 무안을 찾아온 겨울 철새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무안의 갯길은 무안 5미를 맛보러 온 관광객들의 관심사가 되고,
장터에서는 무안 사람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품바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서해 바다를 터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산강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전라남도 무안.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정을 따라가 본다.
1부. 겨울 갯길을 걷다
220km의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진 개펄.
청정한 서해 바다의 풍경과 수많은 철새들의 향연을 자랑하는
개펄을 따라 탄생한 무안의 갯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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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짧았던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바짝 다가선 어느 날,
사진작가 박화선, 문월식, 기우경씨가 무안의 갯길을 찾아왔다.
짭조름한 갯내음을 따라 펼쳐지는 비경은 가슴을 설레게 하고,
따사로운 태양빛 조명을 받은 개펄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또한 뜨는 해가 아름다운 도리포 앞바다는 제철을 맞은 숭어 잡이 배들이 가득하고,
찬바람을 타고 도리포를 찾아온 숭어들은
일 년 중 이맘때를 가장 기다린 어부들의 든든한 살림살이가 되어준다.
갯길 속엔 무안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곳곳에 숨어있다.
현경면 송정리에선 한창 석화를 캐는 안정순씨를 비롯한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바쁘고,
개펄을 지나 도착한 황토밭에선 아주머니들이 쪼그려 앉아 마늘 묘종 심기를 시작한다.
고된 일이지만 개펄이 주는 풍부한 자원과 황토밭이 일궈내는 보물은
이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꼬불꼬불한 갯길에서 만나는 무안사람들의 삶의 터전.
갯내음과 그들의 땀내음이 뒤섞인 그 길을 따라 지금 여정을 시작한다.
2부. 개펄의 보석, 낙지
일 년에 무안 사람들에게 총 소득 250억을 안겨주는 귀하고 귀한,
3월 봄부터 12월까지 개펄속의 숨어있는 진주, 무안 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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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백여 가구가 낙지를 잡으며 생활하는 무안 사람들.
이들은 추운 겨울이 되면 꽁꽁 숨어버리는 낙지 덕분에
오늘도 어김없이 낙지잡이 끝물 작업에 열을 올린다.
달이 뜨는 날, ‘달사리’에 잘 잡히는 무안 낙지.
그래서 박형규씨 부부를 비롯한 낙지 주낙잡이 사람들은 늦은밤 배를 타고,
칠게를 좋아하는 낙지를 위해 네모난 타일에 백여 개의 칠게를 매단다.
박형규씨가 줄을 당기자 칠게를 문 낙지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이 유명한 낙지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고,
무안에선 낙지골목이 전국 최초로 탄생했다.
낙지골목 한 켠, 30년 째 낙지 장사를 하고 있는 문옥자씨.
낙지골목이 생기기 전, 아기를 업고 빨간 고무다라에 낙지를 팔았던 그녀는,
오늘도 전국에서 산낙지회, 낙지무침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보러 온 사람들에게
질 좋은 낙지를 선사한다.
이렇게 무안의 낙지가 으뜸인 이유에는 무안의 땅 99.8%가 황토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황토물이 개펄로 흘러들어와 게르마늄을 포함한 수많은 성분이 개펄에 퍼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개펄에서 사는 낙지는 훨씬 맛도 좋고 탱탱하다.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
드넓은 개펄이 자리 잡은 이곳도 낙지잡이가 한창이다.
그 중에 무안의 명물, 전통 가래낙지잡이 홍쌍수, 홍쌍섭 쌍둥이 할아버지가 있다.
낙지잡이 경력 50년.
도리포에서 알아주는 낙지잡이 경력을 자랑하는 쌍둥이 할아버지들은
오늘도 다래끼를 짊어지고, 삽을 든 채 도리포 앞바다로 발걸음을 향한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형제지만 낙지잡이 할 때만큼은 분주한 경쟁이 시작된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을 낙지와 함께 보내는 무안 주민들.
낙지 때문에 웃고, 우는 이들의 낙지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3부. 붉은 빛, 황토골
무안 땅을 수놓는 붉은색의 향연.
무안엔 그 붉은 밭에서 초록의 채소를 수확하고,
황토집을 지어 황토와 더불어 살아가는 황토골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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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서해바다를 풍경으로 삼고, 붉은색의 황토밭을 거닐다 보면,
황토밭에서 배추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들과 황토집을 짓고 있는 아저씨들을 만난다.
일찍이, 황토와 더불어 생활했던 무안 사람들은 황토를 이용한 한옥집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황토의 우수성을 인정, 한옥마을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무안 외에도, 황토로 이뤄진 지역들이 많지만,
무안이 특별한 까닭은 다른 지역에 비해 10배 이상
게르마늄을 비롯한 희소 원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안의 황토가 좋다는 걸 알고 각지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7년 전 황토를 찾아 무안으로 터를 잡은 한기진, 주성희씨 부부.
최고의 황토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무안에 자리 잡았다.
황토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 부부는,
온 가족이 직접 지은 황토 집에 살면서 된장을 담그고, 황토밭에서 자란 작물을 먹는다.
서해 바다를 끼고 있지만, 99.8%가 황토로 덮여있는 전라남도 무안.
그렇기에, 500년 전부터 무안군 몽탄면 사람들은 옹기를 만들어 생활했고,
고온에서도 잘 견디고, 말릴 때 잘 깨지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영산강 뱃길을 따라 팔도 사방으로 팔고 다니기 쉬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옹기마을 사람들의 주머니를 넉넉하게 해주던 옹기공장은 사라지고,
홍순탁씨만이 옹기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 옛날, 옹기장수들의 고맙고 또 고마운 존재였고,
지금은 웰빙이란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황토.
그 붉은색 가득한 무안의 황토골로 지금 출발한다.
4부. 바다에서 푸른 융단을 길러내다
차디찬 겨울, 초록 융단을 수놓은 서해 바다.
겨울 바다를 빛나게 해주는 무안 감태와 무안 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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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맘때쯤이면 무안 주민들은 차디찬 겨울 바다에 손을 담근다.
손이 얼음장으로 변하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바다에 손을 담그는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다.
그래서 감태를 자식 대학 보내줄 등록금이라며 ‘대학 감태’라 부르기도 한다.
또 하나의 푸른 융단을 만드는 김.
구불구불한 게 특징이라 곱창김이라 불린다.
김 또한,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김을 매셨던 어느 누구의 부모님들이 대부분이다.
무안에서 탄생한 김은 완도와 해남 같은 부류식이 아닌,
대나무발에 김을 널어 말리는 전통 지주식 방법.
추운 겨울, 일일이 손으로 김을 널고 말린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견딘 맛 좋은 무안 김은 전국적으로도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다.
서해바다의 보물인 감태와 김이 무안에서 유명한 이유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그곳에서 썰물 때는 태양빛을 받고,
밀물 때는 게르마늄의 성분이 있는 황토물을 섭취해서
일반 김과는 달리 맛 좋고, 질이 좋기 때문이다.
청정해역의 드넓은 게르마늄을 품은 개펄,
그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감태와 김을 만나본다.
5부. 낮은 곳의 웃음, 품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해학을 건네준 품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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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이 넘는 역사와 뱃길 따라 사람들이 모인 일로장 한편에서
촌스러운 옷차림과 깡통을 든 각설이들의 품바 공연이 시작된다.
넉살 좋은 웃음과 개 구진 얼굴이 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흥겨운 장단과 익살스러운 몸놀림은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 탓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기도,
무안 일로장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품바 공연은 계속되고,
일찍이 아리랑 다음으로 전 국민이 부르는 국민가요로 자리매김 했다.
그리고 최종원, 박해미 등 품바 스타들을 발굴해 냈으며,
품바의 최장기 공연 기록은 기네스북에 기재될 만큼 큰 인기가 있다.
품바의 탄생지,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888번지.
바로 이곳이 품바가 탄생한 발상지이자 작품 속 실제 인물이 살았던 곳이다.
키 157cm의 왕초 천장근이 살았던 천사촌.
아직도 이곳에선 백여 명의 걸인을 돌보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옷을 나눠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잔칫날에는 웃음을 함께 나누고
초상 날에는 슬픔을 같이 나눴던 천사촌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품바 창시자 姑김시라 선생.
그가 떠난 지 9년의 세월이 흘렀것만,
아직도 그의 생가엔 연극을 위해 공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람들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할 줄 알았던 천사촌 각설이들.
각설이의 향연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무안 일로읍으로 품바를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