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인도한 말들
인생은 초대하지 않았어도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간다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의지 대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 어느 시인의 말씀 대로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살아온 삶 도돌아 보니, 마더 테레사 수녀 님이 말한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 하룻밤'
일 뿐이고,
백구과극(白驹過隙)이라고 '인생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삽시간에 지나가는
것'인데 그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굴곡 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위안을 받는다면 헬렌 켈러 여사 님이 말한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가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지 모르겠군요.
아주 최근에 얻은 말씀으로 저의 삶의 길잡이로 살려는 마음을 일깨운 말이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지 말라. 몸을 돌려 태양을 바라 보라" 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을 느끼며 그
간 저의 삶을 인도한 말들이 결국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구나 싶어서 제가 살아오면서 저를 인도해]
준 말들을 모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 말씀이 제 별명 쇠뭉치 입니다.
언뜻 들으면 좋은 말도 많은데 하필 '쇠뭉치' 라는 강한(?) 말을 사용하고 살았나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언의 질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별명으로 사느냐고요. 그러나 저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런 별명을 갖고 살게 했습니다.
저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6 남매 중 4 남매가 두 살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누나와 저하고 남매 만
살은 힘든 삶에서 시작했습니다. 해방 된 이듬해 9 살이 되어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가정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서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1년을 쉬고서 중학교에 갔지만 하루에 80 리를 걸어
서 다니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부모님의 허락(?)하에 출발하였습니다. 제 나이 16 세 때입니다.
16 세의 몸으로 하루에 80 리를 걸어서 다니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초인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학교를 매일 80 리를 걸어 다니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각, 조퇴 ,결석 한 번 없이, 심지어 책가
방도 안 가지고 비를 흠뻑 맞고, 삿갓을 쓰고 등교한 날, 역사 선생님이셨던 서 정석 선생님이 첫 시간
에 들어오셔서 "태영이 왔냐?" 하시며 물으셨을 때, 비를 주룩주룩 흘리며 "예,선생님, 왔습니다." 하고
고 일어나니 "저 놈 쇠뭉치야. 이 빗 속에 어떻게 왔어" 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던 그 말씀이 제가 쇠뭉치
로 살 게 한 말씀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쇠뭉치라는 마음으로 살지 안 했다면 저는 이 어려운 세상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1953년이니 2024년 지금까지 연결하면 72 년을 그 별명으로 살아왔고 생을 다 할 때까지 그렇게 살 것
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제 좌우명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입니다. 어느 글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어느 사형수가 형 장의 이슬로 사라지려 할 때 형 집행 관이 사형수에게 최후 진술을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내 가슴 속에는 피곤한 심장이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을 착한 양심이
있다" 하였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헬렌 켈러 님이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가며 살아가는 사람으로도 가득하다" 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형수가 살아온 세상은 사형을 받을 만큼 고통스러운 세상이었고 그 삶 속에서 사형수는
양심과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형을 받을 만큼 죄를 지었던 거지요.
그러나 그에게도 가슴 속에는 누구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을 착한 양심이 있었지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비록 사형수였지만 그가 살면서 받은 아픔의 세월이 제 가슴을 울렸고 동정의 마음을 지울 수 없
었습니다.
참으로 감명 깊은 말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세상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양심' 을 버리고는 살지 않겠다 하여 제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서시' 에서 말씀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 하시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세 번째 말씀은 "그림자를 보지 말라. 몸을 돌려 태양을 바라 보라" 입니다.
아주 최근에 얻은 나의 삶의 길잡이로 살려는 마음을 일깨운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저는 이 말을 달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Why me? Why not?" " "왜 저에게만 ?" "왜 너는 안 되지?"
왜 저에게만 외치며 운명을 탓하였지요. 그러나 왜 너는 안 되지? 물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즉 그림자만 보고 살았습니다. 어두운 그림자만 보고 원망했습니다.
몸을 돌려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밝음만 보이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 밝음만 보며 살 것입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라고 하는 말씀 들으셨지요.
그렇습니다. 살아보니 '이것도 지나가리라' 가 삶의 답이었습니다.
티베트 속담에 '걱정해서 걱정할 일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다'
참으로 좋은 말들입니다.
저는 안 병욱 교수 님의 수필 '인생론' 에서 주신 말씀도 삶의 길잡이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첫째, 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 (배우자의 선택)
둘째,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직업의 선택)
셋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관, 가치관의 선택)
결국 인생은 요약하면 이 세 가지 선택을 스스로 하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인생의 삶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나름 대로 극복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라며 살겠지만 뜻 대로 안 된다면 아래 두 사람의 말씀에서 답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헬렌 켈러 :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나폴레옹 :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
행과 불행은 다 우리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음을 말함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단 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요,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입니다.
말씀을 마치며 8순의 중순에 와 있는 저의 바램입니다.
남은 삶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주어진다면 사랑과 봉사로 살다가 마감했으면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