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상귀애(天上歸愛)저 하늘위에 사랑이 다시 돌아와‥64 ∽┼─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바람과 함께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아, 가련하고도 가련한 한 송이 꽃이여. 꽃이라……. 중전을 표현하기에 따악 알맞은 말이었다. 어느 덧 강녕전 앞에 당도한 그녀. 그녀가 눈물고인 눈으로 강녕전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를 펴고, 앉는다. 석고대죄, 죄가 있는 자가 죄를 청하여 용서를 구하는 방법.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많은 여인들 을 이 자리에 무릎 꿇게 하였던가. 내명부의 기강을 흔들리게 하였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닥달 하였던가. 그로 인해, 죽어간 아까운 한 생명. 소의홍씨‥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재미있을 때만, 가지고 놀다, 필요가 없어지면 단번에 버렸던 여인 소의송씨‥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그녀를 괴롭혀도 단 한번도 그녀의 행동에 대해 왈가 왈부[曰可曰不]하지 않았었다. 비록 자신의 바르지 못한 행동에 소리를 치고, 눈물을 흘린 적은 있어도 끝내 그녀가 잘못했다는 말은 한번도 한적이 없는 송소의. 중전이 그녀를 그리도 괴롭힌 것은, 아마도 그녀가 하는 대로 곧이 곧대로 따라주는 소의의 선한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보니, 중전 자신은 국모라는 자리에서 막강한 힘을 휘둘러 대며, 후궁들을 괴롭힌 것이 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녀에게도 정말 억울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먼저, 자신의 권위를 바닥으로 실추시킨 것을, 왜 하필이면 중전이 그녀에게 벌을 주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난단 말인가. 정말이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말.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한 그 말. ‘........내 오늘 중전의 근신령을 풀어주고, 함께 침수 들러 든 것인데...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다니 유감이오. 다시는 나를 실망시키지 마시오. 내 아직 중전을 믿고 싶으니..........’ 평종의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기로 한다. 그 모두가 자신이 자처한 일이었으니............ 한편, 조금은 흐린 하늘때문에 날씨를 보러 나왔던 조상궁.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중전유씨. 하얀 소복차림에, 얼레머리 차림으로 보아, 그녀는 분명 평종에게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는 것이 었다. 잠시 멍한 눈으로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는 중전을 바라보는 조상궁. 그러다, 이내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는 중전과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평종에게 고 하는 조상궁이다. "주상전하, 소인 조상궁 잠시 들겠사옵니다." 드륵─ 평종의 윤허가 떨어지기도 전에 급히 안으로 드는 조상궁. 그도 그럴것이. 자존심 강한 중전이 석고대죄를 드릴 리 만무했고,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그에게 석고대죄를 올린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이상하다 못해 기이한 일이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을 떠는게냐. 조상궁." "전하, 지금 밖에 중전마마께서 전하께 석고대죄를 드리고 계시옵니다." "뭐라? 중전이" 그 역시 조금은 당황한 기색으로 수라를 채 들기도 전에 서둘러 중전이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는 강녕전 밖으로 나간다. 견고한 자세로, 조금은 슬픈 눈으로 강녕전을 바라보며 석고대죄를 올리 고 있던 중전. 그런 그녀에게, 평종이 다가오고.... 다가오는 평종을 애써 외면하며, 다소 충혈된 눈으로, 강녕전만을 바라보는 중전. 그런 중전을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 이내 고갯짓을 하며, 묻는 평종. "중전, 이 대체 무슨 해괴한 짓거리란 말이요" "신첩에게 죄가 있어 죄를 청하는 것인데, 이 어찌 해괴한 짓거리라 하실 수 있단 말이옵니까." "당장 물러가세요," "전하!! 어찌 자꾸만 신첩을 내치시려 하시는 것이옵니까. 이제는 신첩을 영영 아니보실 작정이 시옵니까?" "내 중전을 볼 것인지, 아니 볼것인지는 좀 더 생각한 후에 결정할 것이니, 중전은 다시 처소로 돌 아가 자숙하고 계세요" "신첩, 전하께오서 신첩의 죄를 사해 주시기 전까진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사옵 니다." "후우, 중전....... 끝까지 이리 나오실 참입니까." "전하께서, 끝까지 신첩의 죄를 아니 사해주신다면....... 신첩 이 자리에서 죽어서 귀신이 된다 하 여도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옵니다. 허니, 전하께서는 신첩의 뜻을 간압하여 주시옵소서." 중전의 완고한 고집에 역증을 내며 안으로 들어가는 평종. "에잇, 중전 마음대로 하시오." 평종의 역증에, 슬픈 듯한 얼굴로, 강녕전으로 돌아가는 평종을 바라보는 중전. 하지만, 그녀가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그녀에게 지쳐가는 평종을, 그녀는 모를 것이다. 다만, 그가 변했다 생각하며 눈물을 떨굴 뿐‥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서 매몰차게 역증을 내며 들어온 평종.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평종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정사일을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있는 평종. 그녀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 때문이 었을까...? 정사일이 쉽게 손에 잡힐 리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가 처음에 봤던 애때고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첫날밤. 부끄러워하는 그녀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첫날밤을 치뤘는 지 몰랐다. 헌데, 그런 그렇게 순수한 그녀가, 그렇게 악에 물들어 버린 후, 그는 그녀에게 조금씩 질려가기 시작했다. 선하고, 순수한 소녀 같은 모습의 다른 여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가 힘들때면 곁에서 그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중전이었기에, 다른 후궁이 들어와도 결코 그는 그녀를 멀리하지 않았 다. 헌데, 그녀가 이렇게까지 바뀌어 버린 지금. 자신에게까지 큰 소리를 칠만큼 악에 받힌 그녀 는 그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젓는 평종. 하지만 그녀는 이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엔 너무도 멀리 떠나있었다................ 한편, 중전이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세여인. 인소의와, 하양제. 그리고 경소용‥ 인소의의 처소…. "뭐라? 중전마마께서 전하께 석고대죄를 드리고 계셔?" "그러하옵니다, 소의마마." 조경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곤란하단 표정으로 옆에서 다[茶]를 들던 하양제를 바라보는 인소의. 찹잡한 심정의 인소의. 하지만, 그 마음은 하양제도 같을 것이다. "후우, 어마마마께서 석고대죄를 드리시다니. 하긴, 그렇게라도 하시어야지요. 그렇게라도 아니하시면, 돌아서신 아바마마의 마음을 되찾긴 힘들 것이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서모님?" "후우, 그렇기는 하다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군." "너무 염려마시옵소서. 어마마마께서 누구시옵니까. 어마마마께선 분명 이 난극을 능히 해쳐나 가실 것이옵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아바마마께서 교태전에 출입을 금하라는 명을 내리시어, 어마마마를 뵙지도 못하옵 고. 참으로 답답하옵니다." "그러게 말일세. 내 아무래도 경가년의 승격과 송가년의 회임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거늘. 또한, 바로 어제까지만 내 아랫것이었던 년이 누구의 씨앗인지도 모를 더러운 씨를 받아와, 나와 같은 소의로 승격을 하다니. 참으로 울분을 토할 일이네" "서모님.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남들이 듣겠사옵니다." "들으라면 들으라지. 막말로 그년이 회임한 아이가, 세자의 씨앗인 지 근본도 모르는 상놈의 씨앗인 지 어찌 알아. 꼭 전하의 아이란 법이 있나?" "서모님! 궐의 담에는 귀가 있고 눈이 있사옵니다. 제발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허허, 이리 겁이 많아, 자네는 장차 무슨 일을 하려 하는가?" 인소의의 답답한 행동에,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는 하양제. 후우....... 한숨을 쉬다, 별안간 탁 연상을 내리치는 그녀의 행동에, 편안히, 다를 들고 있던 하양 제가 연상소리에 놀라하며 묻는다. "서모님, 어찌 그러시옵니까." "거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구만. 그래" "무엇이 말이옵니까." "송가년 말일세. 정사품의 소원이 어찌 나와 같은 품계인 소의까지 올라왔단 말인가 말일세. 더군다나, 그년이 회임까지 하였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질 않은가." "허나, 어쩌겠습니까. 아바마마께서 총애하시는 후궁이온데." "훗, 총애? 총애는 무슨. 그래봐야 제깟년도, 경가년의 반푼어치도 미치지 못하질 않는가. 참으로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구먼. 그래" "허면 어쩌시려고요? 그저, 참으시어야지요" "자네야, 세자의 은덕으로 단 하루의 정으로 단박에 최고품계까지 올라갔다만은, 이 사람은 그렇 지 못하다네!!" "허면요. 이제, 서모님과 동급이신 송소의마마를 불러다가 경이라도 치시렵니까?"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군. 내 그런 방법을 생각치 않고 어찌 이리 답답해 하고만 있었나." "예에? 허면. 참으로 불러다가 경이라도 치실 참이시옵니까?" "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화병으로 몸져 누울 것 같네. ‥조경아." "예, 소의마마." "너는 지금 서경당으로 가, 송소의를 불러오너라." "예." "에라, 모르겠다. 그년이 올때까지 누워라도 있어야겠네." 이젠 자신과 동등한 품계까지 승격한 소의를 불러오라는 인소의의 명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료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인소의를 바라보는 하양제. 그녀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구만. 윤서당…. 속치마가 다 보이게, 무릎까지 치마를 걷어부치곤 거드름을 피우며 보료에 누워있는 경소용. 그런 그녀에게, 웃음을 띈 유하가 다가오고 유하의 웃음에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음을 눈치 챈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묻는다.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있는게구나" "마마께서 보시면 참으로 통쾌할 일이 생겼나이다." "궁금하구나.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보거라." "중전께서 지금 강녕전 댓돌에서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다 하옵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일까 상상하며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던 경소용. 그런 그녀에게 들린 유하의 말 은, 참으로 우스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배를 움켜쥐며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어대는 경소용. 그야말로 포복절도를 하며 웃어대는 그녀였다. "푸하하하, 중전년이 석고대죄를 드려? 그 독한 년이?" 경소용이 재미있다는 듯 웃어대자, 가만히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는 유하. 그다지, 우스운 일도 아닌 것을. 그녀는 끝까지 깔깔 대며, 눈물이 고일때까지 웃어댄다. 그만큼, 몰락하고, 초라해진 중전의 모습이 고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존심 강한 여자가, 석고대죄를 드리다니. 어지간히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구나." "그러하옵니다." "가엾구나. 참으로 가엾어. 푸하하하!! 그리 악행을 저지르더니, 결국은 자신도 그 자리에서 전하 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되고 말았구나."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가, 그 옛날 홍소의마마를 어찌나 가엾히 죽이시던지. 소인 아직도 그때 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옵니다." 유하의 말에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표정을 굳힌 채로 그녀에게 묻는 경소용. "죽이다니. 누굴" 그녀의 내킨 한숨을 그냥 지나칠 리 없는 경소용이, 표정을 굳히며 집요히 물어보려 하자, 서둘 러 발을 빼는 유하. "아..아니옵니다. 소인, 헛말이 나온 것이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나인들에게 내려진 함거령. 그 자리에서 칼을 들고 묻는 중전의 말에, 모두들 엎드리며 빌어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던 그 날. 아무리 지금은 중전이 몰락해가고 있다 하지만, 만약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른 그때의 일을 들먹인다면, 아마 그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 었다. 낯빛이 변해선, 입을 꾸욱 다무려는 유하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긴 경소용이, 다시 한번 집요히 물어가기 시작하고‥ "무슨 말이냔 말이다. 홍소의가 누구이며, 중전이 그 사람을 어찌 죽였다는 것이야." "황송하오나, 소..소인 그 말씀만은 드릴 수가 없나이다." 이제는 말까지 더듬는 유하. 침착한 유하에게서, 말이 더듬는 것은 많이 떨고 있다는 것을 여실 히 드러내주는 단서였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떨자, 무언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이라 추측하며 더욱 더 집요히 묻는 경소용. "어서 말해 보거라. 내 속이 타는구나. 그래, 중전이 무얼. 무얼 했냐니까?" "마마.. 더 이상은 묻지 말아주시옵소서." 아무래도 그녀가 대답을 할 듯 싶지 않자, 연상을 탕 내려치며, 호통을 치는 경소용. "내 말이 말같지 않은게냐. 중전년이 누굴 죽였냐니까!!" 하지만, 경소용의 호통도, 그녀의 목숨이 달아나는것보단 두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들바들 떨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유하. 이것이 화를 내어선 될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소용이 유하를 살살 어루만지고, 달래가며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려 한다. "유하야,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이다. 내게 숨기지 말고 진실을 말하거라." "소..소인을 주..죽여 주시옵소서." "죽이다니. 그 무슨 말이냐. 네 내게 그때 그 일만 바치면 네게 패물함을 주마. 그속엔 네가 그리 도 가지고 싶다는 은비녀도 있단 말이다." "마마, 제발 소인에게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소서." "중전의 보복이 두려운 게냐?" "……." 아무 말도 못하는 유하를 보고, 그녀가 중전의 보복을 두려워 하는 것임을 깨달은 소용.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유하를 설득한다. "푸훗, 몰락해가는 썩은 중전보단, 내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 내 네가 그리 떠 는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대단한 일인듯 싶은데. 그 일을 꺼내면 중전은 한방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더냐. 헌데, 금방 무너질 중전의 보복 따윌 두려워 하다니. 알고 보니 우리 유하도, 겁쟁이였 구나." 경소용의 간사스러운 말에 조금씩 귀가 열려가는 유하. "생각해 보아라. 중전만 몰아내면, 그 자리에 누가 앉겠느냐.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은 바로 나. 자선이 아니더냐. 내가 중전이 되면, 넌 제조상궁이 되는게고. 허면 세상의 온갖 부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단 말이다." "....허면 마마께만 말씀드릴테니, 잘 들으시옵소서." "그래, 유하야. 어서 말해 보거라." "홍소의마마는, 지금의 세자저하의 생모이시옵니다." "아아- 그렇구나. 헌데?" "소의마마께선 타고난 선한 성품에 전하의 단번에 전하의 총애를 얻으시었지요. 그런 소의마마께서, 중전마마의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했고요. 거기다가, 소의마마께서 회임을 하시어 세자저하까지 잉태하셨으니, 전하의 총애는 당연지사 소의마마께 쏠렸겠지요. 항간에는, 소의마마께서 곧 빈이 되신단 소문도 자자했사옵니다." "그래, 계속 말해 보거라." "중전마마께선 소의마마 뱃속의 세자저하를 없애시려 무던히도 애를 쓰셨지만, 그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 열달 후 소의마만, 세자저하를 낳으셨사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 하나의 자식 도 없던 전하이신지라, 해산을 하신. 그것도 군을 낳으신 소의마마가 더욱 더 어여뻐 보이셨겠지 요. 전하의 총애는 가면 갈수록 홍소의마마께 쏠리고, 그로 인해 독수공방하는 날이 잦아지자 결국 중전마마께선‥" "중전은?" "소의마마를 죽이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것입니다. 아무래도 심성이 고우신 소의마마였기에, 중전마말 제치고, 먼저 세자저하를 낳으신 것도 그렇고 전하의 총애마저 빼앗으신 것이 마음에 걸리신 지라, 그 날 소의마마께서 중전마마께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올렸사옵니다. 마침, 중전마마께선 소의마말 죽이려 생각하던 차이온데 소의마마께서 먼저 음식을 보내오시 니, 그 음식에 스스로 독을 넣곤, 한나라의 국모를 독살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씌우시어 내명부의 명으로서 차단한다 하시더니, 아무도 모르게 감찰방으로 끌고 가셔선 소의마말 사정없이 방망이로 내리쳤사옵니다. 그때, 세자저하의 나이가 4살이었사온데, 어미가 중전마마 께 끌려갔다 아니 돌아오니, 울며불며 중전마마께 매달렸다 하옵니다." "쯧, 어린 나이에." "어마마마를 살려 주시옵소서. 중전마마. 우시는 저하의 모습이 어찌나 구슬프던지. 그만 지켜보 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 하옵니다. 결국, 감찰방 상궁들에 의해 소의마마께선 돌아가시었고, 중전마마께선 미리 매수한 가난한 집안의 상궁마마님께 돈을 주는대신, 죄를 뒤집어 쓰고 죽으 라는 조건으로 그 상궁마마님을 강녕전으로 보내시어, 스스로 죄를 시인케 하시었고, 결국 그 상 궁마마님은 다음날 바로 목이 베이셨사옵니다." "저런. 중전년이 참으로 간악하구만." "허고, 그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소인과 소인의 동무들을 모두 죽이려 하시는 것이었사옵 니다. 중전마마께서 칼을 빼들고, 소인들의 혀를 자르려 하시오는데,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중전마마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며 절대로 발설치 않을 것이니, 목숨만은 살려달라 하여 이리 살아난 후, 소인들은 그때 일을 다시는 함거하고 다니지 않았사옵니다. 끝까지 비밀을 지키 시려 소인들을 내치시려는 중전마마께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냐며, 침방 무수리일이나 시키 자하여, 살려주신 마마님들 덕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옵니다." "중전, 그년이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았구나. 점점 악에 물들어간겐가?" "그때 이후, 그날의 일은 누구의 입에도 거론되지 않았으며, 만약 그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자가 있다면 감찰방에 끌려 가 소리소문없이 죽게 될 것이란 중전마마의 말에 소인들은 여지껏 두려움에 떨며 살았사옵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일이? 흐음. 과연, 중전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일이었구 나. 그 홍소의란 사람을 그리도 총애했단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매일 정사는 뒤팽겨치시고, 하루가 멀다않고 홍소의마마께 가시니, 중전마마께 서 어찌 투기심이 아니 생기겠사옵니까." "훗, 허면 서서히 중전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