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검색해보니 예산에서 순천까지 왕복 8시간 거리...
새벽 4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일어났냐고, 무거운 몸땡이를 추스리며 혼잣말로 지껄인다 "내가 미쳤지"
부족한 잠을 채울려고 조수석에서 살짝 눈을 감아본다. 허나 잠이 들지 않는다.
예산리카님의 거친 운전솜씨와 그 큰눈이 졸음에 겨워 꿈뻑이고 있는데, 살기위해서는 계속 지껄일 수 밖에 없었다.
캄캄한 새벽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동이 텄다. 간단하게 고창 고인돌휴게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먼저 조수석에 가서 앉는다. 아직 운전하기에는 내몸이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도사견의 대표적인 혈통인 야수혈의 보석 '대구야수'
그 대구야수를 번식하신 주인공이시고 도사계의 1세대 원로인 순천 황옥하님을 순천에 사시는 진선미님과 함께
본인의 농장에서 뵌 시간은 오전 8시였다. 기나긴 탐문의 시간을 위해 이동한 장소는 순천의 필레모 호텔 커피숍.
![](https://t1.daumcdn.net/cfile/cafe/1628FF0B49C8CF0653)
예산리카(이하 예): 말씀 익히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황옥하(이하 황): 뭘 그런 말씀을...먼 길 오느냐고 수고 많으셨네요.
진선미(이하 진): 같은 지역에 계셨는데, 이제야 처음 뵙겠습니다.
황: 아 그래요. 앞으로 자주 봅시다.
디스(이하 디): 이렇게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몇 년생이시고, 언제부터 도사를 매셨나요?
그리고,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황: 1937년생이니 올해 나이가 73세이네요. 도사를 처음 맨것은 1958년도입니다.
58년도에 삼천포에서 킹이라는 도사견을 구입했어요. 그 이유라는 것이 옆집 살던 사람때문이었는데,
그 부잣집인 옆집 사람이 도사잡종을 키웠었고, 우리집은 세퍼드를 키우고 있었죠.
어떻게해서 개싸움이 일어났고, 우리 세퍼드가 박살이 나서, 그 도사잡종 잡을려고 도사를 구입하게 됐죠.
그런데 그 킹이라는 놈이 별것이 아니라서, 나중에 부산에 가서 페이의 새끼 한쌍을 3만원에 구입했습니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 2,500원일때니, 도사견 그때는 무지 비싼개였답니다.
디: 1958년도라면 도사견 초창기 시절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언급하신 페이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도사견인 철룡호의 직자인데요.
우리나라 도사견 초창기 시절 이야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황: 당시에는 삼천포, 부산, 마산 요 지역 정도에서만 도사견을 키웠었습니다.
미리 밝힌대로 워낙 고가의 개이다보니, 지역의 유지 정도 분들만 관리인을 따로두고 사육을 했었죠.
뭐 도사견 한마리 끌고 나가면 사람들 선망이 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개를 묶어놓거나, 가두어 사육하지를 않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에는 제가 여수에 살고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었는데,
늘 페이 새끼 한쌍 중 한놈이 저를 따라다니면서 다니는 곳곳마다 그곳 동네개들과 늘 마당싸움을 벌여 박살을 내고 다녔죠.
저야 기분은 좋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무법천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놈을 누가 훔쳐가서 결국 남원까지 가서 다시 찾아오는 그런 일도 있었네요.
페이새끼 다음에 키운 도사견은 잭이라는 일본 수입견이었습니다.
이 잭이라는 개는 당시 충무 무역회사 사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놈이었는데, 그걸 제가 나중에 구입해서 사육하게 되었지요.
슬슬 도사견 유행바람이 부니까, 당시 밀항이 워낙 쉬운 시절이라 상당두수의 도사견들이 일본에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잭이라는 놈이었죠.
디: 그렇군요. 일본에서 철룡호가 들어온다음 시간을 두고 차차 도사견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기저기서 도사견이 알게모르게 물밀듯이 들어온 것이었군요.
늘 철룡호와 다찌나미 사이의 그러니까 1960년대 도사견들의 도입과 확산과정이 궁금했었는데,
선생님 말씀덕분에 상당부분 정리가 된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한경비견등록본부 초창기 시절부터 순천지부장으로 활동하신 것으로 이야기 들었습니다.
경비견 초창기 시절은 어땠나요?
황: 이쪽 전라남도 쪽에서 경비견본부 전남지부가 창설된 싯점은 1971년입니다.
약 1960년정도쯤에 경비견이 창설되었으니, 제가 경비견 초창기 멤버라고 하기에는 약간 거리감이 있을 것 같고,
제가 참석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당시 대회가 서울 사직공원에서 있었는데, 그때 한일 친선대회도 같이 열렸었어요.
워낙 먼 거리고, 교통망도 발달하지 못해서, 당시에는 기차로 올라갔었는데,
대회 며칠 전부터 나무로 개장을 짜고, 그 짠 개장에다가 개를 넣고 새끼줄로 잡아매어 7시간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갔었죠.
그리고 서울역에서 내려서 리어카를 빌려 그 개장을 싣고 또다시 사직공원까지 이동을 하는 정말 대장정의 길을 걸어야만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리 했나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만약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내일 또 그 승자끼리 경기를 갖는 시스템으로 대회가 운영되었었는데,
지면 바로 다시 내려와야 했고, 이기면 하룻밤 자고 다음날 내려오고 그랬었습니다.
디: 참으로 대단한 열정들이셨네요. 지금 같아서는 꿈도 꾸기 어려울 일이텐데 말이죠.
예전에는 대회를 각 지부에서 치루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주축이 되셔서 이쪽에서 치룬 대회는 없었나요?
있으시다면 기억에 남는 이야기 좀 해주시죠.
황: 아마 1972년인 것 같네요. 광주 공설운동장에서 우리 지부가 대회를 개최했었는데,
그때 대회 홍보를 위해서 대회전날 경찰기동대의 도움을 받아 경찰 오토바이 9대의 호위를 받으며,
삼륜차 20대에 참가견들을 태우고 시내 한 바퀴를 도는 퍼레이드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홍보를 했었는데도 대회가 적자가 나서 한동안 지부살림이 빠듯했던 기억도 있고 말이죠(웃음).
디: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대회 홍보를 했었다니 이거 실로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도사투견대회가 한 시절을 풍미했었군요. 참으로 그 시절의 낭만이 부럽습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첫댓글 그당시 여수시내 돌아다니던 개들 몰살시켰던 이야기 빠지시면 안됩니다.ㅋㅋㅋㅋ
58년...덜덜덜.....
예산리카님.진선미님 디스님 열정 대단 하십니다.
너무나 고생 하십니다. 항상 노고에 감사를....
고생해서 더욱더 생각이 나는군요.....
도사랑 운영진께 항상 감사를~~~ ^&^
디스님과 운영진 항상 수고 하심에 고개를 숙입니다.
디스님, 리카님 운영진 여러분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항상 좋은 내용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저곳을 가기위해 새벽 03시에 출발 했다고 들었는데 차~~~암 고생 많으십니다...
잘보고 갑니다
도사견 한.일전이라 아! 멋지네요 이렇게되야 되는디...
저두 황선생께 분양 받은견이 소형견 참피온 킬러가 기억이납니다 여기서 황선생님 뵈서 반갑습니다 가까운 여수이고요